장막 너머로 밝음을 드리우는 빛,
아직 일상이 시작되기 전의 차분한 고요.
대수롭지 않은 하루가 되풀이 될 것만 같은 한가로운 느낌.
나는 이런 날을 좋아합니다.
아름다운 꿈이자
이미 실현된 꿈이며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꿈.
샤명을 안으며,
휴게실을 나와 사무실을 마주합니다.
채 걷지 않은 블라인드 사이로 드문드문 핀 그림자가 정연합니다.
전자기기들의 불빛을 밝히며,
나는 오늘의 일과 오늘을 함께할 학생들을 생각합니다.
궤적을 가진 모든 방랑자들을 위한 길잡이.
가벼이 나는 나의 존재적 무게를 다십니다.
비서 씨, 푸른 물결을 찰박이는 당신의 고매함으로 하여금
저를 보우하사 세상을 바름으로 이끄는 지평이 되어 주소서.
업무에 앉기 전,
잠깐 바람을 쐬러 아직 깨어나지 않은 거리로 향합니다.
나가기에 앞서 부재중 팻말을 걸어 놓습니다.
때때로 나의 곁을 눈에 담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은 까닭입니다.
그들이 별에게 품는 경애만큼이나 방향의 꼬리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스침이 그러하듯
우연한 만남과 어울림은 가득하고
나는 그 기억과 동행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한 분홍빛 소녀가 흐늘흐늘 걸어오다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뛰어옵니다.
아침의 말을 나누고 우리는 나란히 걷습니다.
문득 소녀는 하늘이 담고 있는 색깔의 수수께끼에 대해 물었습니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빛의 산란 때문입니다.
소녀는 이어 묻습니다.
그렇다면 땅을 잠식해 가는 쇠퇴의 색깔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의 대지에 하늘처럼 푸름을 틔울 수 있을까?
여기에 이르러서 나는 생각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소녀의 눈은 단지 드러난 색깔의 테두리만을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보다 멀고도 깊은, 색 너머에 압축된 이 세계의 대비적 상징이
그 눈에 거대한 도화지로서 쏟아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걷습니다.
철학이 부유하는 이 하늘을.
눈앞을 아른거리는 무수한 파장들의 아지랑이와 함께.
나는 우리의 곁에 있는 생명과 뿌리와 걸음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소녀를 향해 미소짓습니다.
아리송하다는 둣한 멈칫거림,
그러나 이내 소녀는 나에게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이따금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변화의 계절이 뺨에 닿고
바람과 비와 빛의 감촉이 어제의 흔적들을 비낄 때,
우리는 새로이 대책의 불빛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영원할 것만 같은 것들,
가령 저 투명한 하늘조차도 언제나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불현듯이 도래하는 재해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황혼의 먹구름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믿습니다.
이곳을 살아내려는 우리들의 항상심이,
푸른 물감이 되어
마침내에는 하늘에 파란 번짐을 만들어 내리라는 것을...
나는 소녀와 함께 문앞으로 돌아옵니다.
헤맑게 흔들리는 천진난만함,
다시금 밝는 날.
꽃다운 청춘이여,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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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시이며, 동시에 짧은 소설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 작품을 읽으며 여러분은 어떤 한 시인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보다 친숙한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그러한 분위기가 작품에 스며들도록 해 보았습니다.
블루 아카이브의 청명함,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입체성이 잘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IP보기클릭)121.130.***.***
블아 2차 창작물중 시형식은 첨보는듯 잘보고 갑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