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진다. 간만에 햇빛을 보기 위해 부상했던 오르카호를 맞이한 것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었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그녀들은 한 방에 모여서는 자그마한 동그란 창 너머, 어두컴컴한 바다 속만을 들여다보았다.
레오나의 방. 그녀들은 하나같이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알비스는 얼굴을 창 코 앞까지 들이밀었다. 샌드걸은 침대에 누운 채로 연신 하품을 한다. 그렘린은 방 한구석에서 기계를 만진다. 안드바리는 알비스 바로 옆, 창가의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서있었다. 무관심을 가장하지만 눈길이 어떻게 해도 창을 향한다. 님프와 베라는 수다를 떨다가도 알비스와 안드바리, 그 둘을 안타까운 눈길로 쳐다본다.
레오나는 모두가 보이는 위치에서 팔짱을 낀 채로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다.
“비, 안 그치네요.”
“어쩔 수 없죠. 소나기라 했으니 금방 지나갈 거에요.”
베라의 중얼거림에 님프가 대답한다. 곧 발키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발키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까지는 내린다고 하네요.”
“젠장, 간만의 휴가에 이게 뭐야...”
샌드걸은 중얼거릴 셈이었겠지만 조용했던 방안에서는 선명하기만 했다. 안드바리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가 누가 봐도 꾸민 것처럼 밝아진다. 알비스는 그녀들의 표정을 살펴보더니 다급하게 말한다.
“괜찮아! 알비스는 언니들이랑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걸.”
베라는 알비스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내 레오나가 두 눈을 뜨자, 그 광경이 흐릿하게나마 망막에 새겨진다.
“마, 맞아! 모처럼 여름이니 괴담, 같은 건 어떨까요?”
님프가 억지스레 화제를 전환하려고 한다. 모두는 알면서도 속아주었다. 님프의 말을 받아든 건 발키리였다. 옅지만 확연히 미소를 띄운다.
“그렇네요. 그렇지만 괴담이라... 안타깝게도 전 아는 게 없네요.”
“괴담...”
안드바리가 그 단어만을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철충만큼 무서운 게 또 있을까요?”
“철충보다 무서운 거? 알비스는 잘 모르겠어...”
거기까지였다. 바이오로이드로서 전장을 전전하기만 한 그녀들에게 있어 괴담이란 곧 현실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침묵만이 흐르던 가운데, 레오나가 입을 열었다.
“괴담이라면 내가 아는 게 있어. 듣고 싶어?”
의외의 인물에게서 나온 말인 탓일까, 모두의 반응이 살짝 늦었지만 발키리가 가장 먼저 격렬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들려주세요, 부디!”
어쨌든 이 침묵을 부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환영이었으리라. 모두가 시선을 집중하는 가운데, 안드바리만이 모두에게 보이지 않도록 두 귀를 슬쩍 막았다.
“무서워?”
몰래 한다고 했지만서도 알비스에게 들켜버린다. 안드바리는 빨개진 얼굴로 두 손을 뗐다.
“무섭긴요!”
허세를 부리는 목소리가 약간이나마 흔들린다.
레오나는 기억을 더듬는다. 괴담, 어떻게 시작하더라... 천천히 입술을 뗀다.
“도플갱어... 라고 알고 있어?”
고개를 가로젓는다.
“인간분들에겐 지구상에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이가 세 명 있다고 해. 그리고 마주치면 죽는다고들 하지. 그 도플갱어가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있다고 한다면 믿겠어?”
“그렇다면 브라우니는 남아나질 않았겠네.”
샌드걸이 중얼거리자 모두가 낮게 웃었다. 똑같은 모습을 한 인간, 이라면 모를까 바이오로이드는 잔뜩 있다. 특히 브라우니는 양산형이니 그 수가 얼마나 될까. 레오나 또한 함께 웃었다.
“물론 바이오로이드에게 있어 도플갱어는 조금 달라. 그러니까, 이따금씩... 꿈을 꾸듯이 보는 거야. 자신이 본 적도 없는 광경을. 환청처럼 목소리가 들릴 때도 있어. 겪은 적 없는 경험을, 마치 피부로 느낀 듯 읊을 때도. 내 동료... 여기서는 나라고 해둘게. 그러니까, 그런 현상을 계속 겪으니 이상하게 여긴 나는 조사를 시작했어.”
레오나는 두 눈을 감고 떠올렸다. 새하얀 설원, 모두의 웃음소리. ...아니, 비명소리다. 눈이 미친듯이 쏟아지는데도 그녀들은 총을 들고 나아갔다. 하지만 적의 숫자는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로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숫자다. 그럼에도 거부하지도 못한 채 나아간다.
“잠깐이나마 지나간 풍경이지만, 특징이 없지는 않았어. 그곳에는 두 개의 깃발이 꽂혀있었거든. 보통 기지에서는 두 개씩이나 꽂지는 않잖아? 그렇지만 그 이유도 나는 알 수 있었어. 알비스가 실수로 꽂았으니까. ...아, 알비스, 네 얘기가 아냐. 걱정하지 마렴.”
알비스가 깜짝 놀라자 레오나가 진정시키듯 덧붙였다.
“의외로 조사는 순조롭게 끝났어. 두 개의 깃발이 꽂힌 그 기지는 북쪽, 일찍이 우리의 자매들이 싸우던 곳이었어. 그들은 철충과의 싸움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죽었지. 그때서야 나는 알게 된 거야. 내가 본 풍경, 내가 들은 그 목소리들은 전부 다른 내가 겪었던 거라는 사실을. 나와는 다른 레오나가 겪었던 일을, 나는 마치 내 일처럼 느낀 거야.”
레오나는 자신의 옆구리를 감싸안았다. 다친 적도 없는 옆구리가 아파왔다.
“나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어. 완벽한 나에게 결함이 있는 거라고 인정하는 꼴이니까. 그렇지만 곧 무서워졌어. ...후후, 내가 무섭다고 하니 이상해? 무섭다는 건, 그래, 마치 내가 기계처럼 느껴졌거든. 나는 나와는 다른 개체지만 같은 기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와 경험을 공유했어.”
레오나와 또다른 레오나 사이에는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었다. 오로지 하나, 같은 기종이라는 것말고는. 그런데도 악몽은 끊이질 않는다. 그녀가 남긴 원혼이라도 깃든 것처럼 되풀이되는 광경, 비명. 새하얀 설원에 남겨진 빨간 혈흔, 대장이라도 도망치라면서 외치는 발키리, 전신이 기계의 부품처럼 사방으로 흩어진 부대원들.
레오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너는 어째서 그렇게 태연하냐며, 어째서 너만이 행복하냐면서. 너도 어차피...
숨이 턱하니 막힌다. 자신의 두 눈 앞에 자매들이 있음에도 모든 걸 잃은 것 같은 허무함이 전신을 지배한다. 공허함이 목을 조른다. 두 눈앞이 컴컴해지는 절망감이 선명하게 흐른다.
“대장님, 그건...”
“결국 우리들은--”
문득 레오나는 창밖을 바라본다. 햇빛이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다가 자매들에게 웃어보였다.
“난 괴담에 소질이 없나봐. 자, 어서 나가자.”
모두가 신이 나서 밖으로 나간다. 발키리만이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 문고리를 잡고서 뒤돌아보았다.
“대장님도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시죠. 그리고 그 이야기는...”
“걱정하지 마, 발키리. 나는 아무 일도 없어.”
레오나가 그리 말하니 발키리로서도 더 할 말은 없었다. 결국 문을 닫고서 밖으로 나간다.
레오나는 자신의 권총을 몇 번인가 둘러보았다. 멀쩡한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방아쇠를 당길 수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레오나는 쓰게 웃었다.
“대장님, 뭐하세요!”
“그래, 알았어. 그만 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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