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새파란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다.
인류는 멸망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했었다가 된다. 어째서 미지의 존재와 원인 모를 병이 휩쓸고 간 대지 위에, 찬란했던 영광의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인류에 생존자가 나타난 것일까. 그리고 어딘가에 남아있을 인간을 찾는다는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의 숙원에 대한 답이 그저 푸른 하늘 사이를 가르며 떨어진 한 명의 남자인 것일까.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은 현재로서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것을 알아야 할 유일한 인간 또한 그것을 몰랐고, 수많은 질문에 답해줘야 할 인류는 그저 한 명만을 남기고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한 명의 남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나섰다. 인류가 남겨놓은 숙제와 먼지와 이끼로 뒤덮인 문명의 재건을 위하여.
자신을 찾아준 이들과 자신이 찾아낼 이들 모두와 함께, 때로는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며, 때로는 한가하게 휴가를 즐기며 말이다.
chapter 1. 대장을 걱정? 인정할 수 없어.
‘톡-. 톡-. 톡-.’
기다란 손가락이, 금속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퍼져나갔다. 매끄럽게 잘 빠진 각선미를 가진 두 다리가 가볍게 꼬여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보는 이는 없었고. 허공의 벽을 향하는 허망한 눈빛은 그 존재가 마치 심오하거나, 또는 별 볼 일 없는 잡다한 생각을 하는듯한 느낌을 낳았다.
쉬는 이 없는 휴게실. 그런 한 명의 바이오로이드만이 그곳의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을 걷는다면 닿을 깨끗한 바다가 품은 모래 해변도, 그보다 조금 더 걸어 도달할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의 야자수 그늘막도. 지금의 그녀에게는 그 어떤 관심사의 한 축에도 속하지 못했다.
한 번의 사건으로 방해받은 휴식기였다. 하지만 그녀를 포함한 수많은 바이오로이드의 협력으로 되찾은 달콤한 휴가의 한 때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끼익 거리는 철제의자에 앉아 묵묵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인류의 멸망과 관련된 심도 있고, 뜻깊은 상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저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한 시시콜콜한 계략일 수도 있다. 그걸 아는 이는 오르카호 속에서도 유일하게 그녀 혼자뿐일 것이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의 교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소심하거나, 말수가 적은 것도 아니다.
그저 들키면 귀찮아질 것이 확실하기에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그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시간이 그것들을 해결해 주지 않을까를 희망하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혼자만이 아는 그런 비밀 속에 빠져있던 그녀의 침묵을 깨는 존재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 존재는 잠시 방 안을 돌아보더니, 휴게실 한쪽에 앉아 테이블을 두드리며 턱을 괴고 있는 연붉은 뒤통수를 가진 바이오로이드를 발견했다.
“... 아, 나이트 앤젤. 여기 있었군.”
“... 어머, 앵거 오브 호드의 칸 대장님께서 저한테 무슨 용무가 있으신가요?”
나이트 앤젤 이라 불린 바이오로이드는 조금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반응했다. 잠시 행동을 멈추고선, 그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이름을 부른 이에게 인사했다.
자신을 방해한 것에 불만을 품은 듯, 거치면서도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하는 이에게, 칸이라 불린 바이오로이드는 그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나이트 앤젤을 향해 걸어왔다.
“후후, 그렇게 까칠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네. 혹시 쉬고 있는 걸 방해했나?”
“보통, 휴게실은 쉬러 오는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자신을 면전에 두고서도 퉁명스럽게 행동하는 이에게서 그녀는 적지 않은 호감을 느꼈다.
누군가는 타 부대의 대장을 대하는 태도가 예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칸은 그런 걸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그녀의 당당함에도 미소는 계속되었다
“그렇지. 나도 그렇고 말일세.”
칸은 의자를 살며시 당겨 나이트 앤젤의 건너편에 앉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나이트 앤젤은 계속해서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바퀴가 달린 기계장비는 없었지만, 휴식기임에도 그녀는 평소와 같이 매끄러운 바디슈트를 착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상시와는 달리 눈가를 매섭게만 보이게 만들었던 전투화장은 지워져 있었고, 언제나 뒤쪽으로 묶여있던 갈색빛 머리칼은 늘어뜨려져서 과일 향기 같은 달콤함을 풍겨왔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낳은 온화하고 화사한 변화를 직감하며 나이트 앤젤은 칸을 천천히 관찰했다.
매력적이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평소 작전 시와는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비 될 정도의 변화였다. 날카롭게 느꼈던 눈매는 너그러움을 품었고, 그와 함께 보이는 미소는 따뜻함이 묻어났다. 머리칼은 윤기가 흘렀고, 몸매 또한 뛰어났다.
그렇기에 사령관과의 진도 또한 빠르게 진행된 것일까. 나이트 앤젤은 생각했다. 그리고 떠올렸다. 자신이 느끼는 약간의 질투심과 우는 소리를 내며, 사령관을 앞에 두고 손가락만 빨고 있는 어떤 키 작은 바보를 말이다.
“... 혹시, 수영복이라도 빌려달라고 오신 건가요? 아쉽게도 가슴 부분이 맞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잡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으로 자신의 텅 빈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면서 같이 던진 농담에 칸은 가볍게 소리 내 웃었다.
“하하, 나는 자네의 그런 점이 좋다네. 평소에는 자신의 개성대로 살지만, 작전 때는 그 무엇보다 군인 같은 자네를 말일세. 앵거 오브 호드의 부대원은 모두 그런 모습을 보이지. 그렇기에 내가 자매들을 아끼는 거고 말일세”
“평소에도 군인 같은데요. 특히 브라우니들한테는 말이죠.”
작은 농담이 오가며 날카롭게 날이 섰던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나이트 앤젤은 그제야 괴고 있던 턱을 풀고는 칸에게 물어왔다. 칸의 직책을 강조하며 쏟아 붙이듯이 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여기 있었군.’이라는 대사는, 보통 쉬러 오는 경우에 쓰는 말도 아니고, 칸 ‘대장님’ 정도나 되는 분이 이런 누추한 공동 휴게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사소한 문제는 아닌 거 같고.”
“... 이거 걸려버렸군. 원래라면, 천천히 꺼내려고 했는데 말일세. 뭐, 자네는 그런 쪽에선 남다르니 내 주의가 부족했던 탓일까…”
칸이 잠시 말끝을 흐리자, 나이트 앤젤이 그사이에 끼어들어 비아냥 되듯 말했다.
“그래서, 그걸로 남들 골려 먹는데 쓰는 게 주죠. 그래서요?”
“... 그렇다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오늘, 지휘관 개체들끼리의 정기회의가 있었다는 거 알고 있나?”
“예, 뭐. 저희 대장도 그중 하나고, 저도 간부 중 하나니 그런 소식은 들어오죠.”
“그래. 마리, 레오나, 나, 아스널, 용의 대리로 세이렌. 그리고 자네 대장까지. 이번에 있었던 사건도 있었으나, 휴식기이기도 하니 짧게 한 시간 정도였네.”
칸이 말하는 사건이란, 오르카 호가 점검을 위해 괌의 항구에 정박해있다 일어난 일을 말한다. ‘로버트’라고 불리는 AGS가 중심인 이 사건은, 다행히 적은 피해와 이를 해결하며 얻어낸 정보와 자원, 그리고 새로이 합류한 수많은 바이오로이드와 AGS 덕에 피해라고 부를 것이 없다시피 한 경미한 수준으로 끝마쳤다
그럼에도 지휘관 개체들은 늘어난 바이오로이드들과 ‘Mr. 알프레드’라는 AGS가 ‘로버트’에게서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회의를 준비했었다.
“그리고 그 회의가 조금 전에 끝났네만...”
또 한 번, 칸은 말끝을 조금 흐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나이트 앤젤은 따지듯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또 한 번, 그녀는 비아냥 됐다.
“계속 그러면 감질난다고요. 저희 대장이 무슨 사고라도 쳤어요?”
“... 뭐, 그런 거라네.”
“... 예?”
그녀가 칸에게 농담하듯 내뱉은 말에 돌아온 것은 그녀를 순간 놀라게 만들었다. 나이트 앤젤이 소속되어있는 둠 브링어의 대장인 메이는 때론 냉철하지만 건방지고, 시끄러운 바보 같지만, 냉정한 존재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자신을 제외한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그런 존재는 아니다. 그것이 대장에 대한 나이트 앤젤의 평가였다.
그렇기에 그런 그녀가 다른 병사도 아닌, 대장급 개체들 사이의 회의에서 사고를 쳤다는 말은 나이트 앤젤로서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신세 한탄이라거나… 뭐, 그런 건 아니겠죠…?”
“후후, 차라리 그런 거였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네만. 오늘 회의에서, 메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그렇다네.”
“그럼,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죠?”
“잤네. 회의 도중에 말일세.”
잤다라는 말은, 꾸벅꾸벅 졸았다 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나이트 엔젤은 그 얘기가 쉽사리 믿기지 않았다.
그 어떤 이보다도 자기 체면을 중요시하고 자존심과 자존감의 화신과도 같은 그녀가, 중요한 회의 속에서 잤다. 라는 것은 쉽게 볼 상황도 아니었고, 가볍게 여길 문제도 아니었다.
그 얘기를 들은 나이트 엔젤은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눈썹에 힘이 들어가고, 째려보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화가 바짝 난 듯한 얼굴이 되었다.
“... 대장이요…? 분명, 아침에 봤을 때 잠을 설친 것 같이 보이긴 했습니다만...”
“메이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이 달라지는군. 걱정 말게. 사고라고 해도 큰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니 말일세. 그냥 회의 도중에 몇 번이나 책상에 얼굴을 박고 잠들었을 뿐이야. 그래, 4번 정도 되겠군.”
“... 이미 충분히 큰일 같은데요… 안 봐도 뻔하네요. 레오나 대장님이나 마리 대장님한테 걸렸죠?”
일그러진 표정을 풀며, 나이트 앤젤은 차분하게 회의장에서의 상황에 대해 질문해 나갔다.
“그래, 처음에는 마리가 기침 몇 번으로 주의를 줬내만. 결국, 별 소용은 없더군.”
“그리고 레오나 대장님이랑 한바탕 했겠죠. 그렇죠?’
“... 처음에는 나도 시끄러운 소동이 한바탕 일어날 거라 예상했네만…”
“했네만…?”
칸은 잠시 회상하는 듯 팔짱을 꼈다. 그리고 나이트 앤젤과 같이 자신이 본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의아해하며 설명해 나갔다.
“자신을 향해 설교해오는 레오나를 상대로, 어두워진 안색을 보인 메이가 너무 고분고분했다고 해야 할까… 평소와는 다른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네…”
“... 저희 대장이요?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죠. 분명 자기를 추궁하는 상대는 사령관님이라도 불같이 달려들었을 텐데...”
나이트 앤젤은 팔짱 낀 채 턱에 손가락을 얹고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이 기분 좋은 햇살과 바람을 마다하고 칙칙한 잠수함 속 휴게실에 박혀있는 이유를. 원래라면 사령관을 유혹하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야 할 대장이, 이번에는 그렇지 않고 있다는 것과 이전에 그녀들의 휴식을 방해하던 하나의 사건 이후 그녀의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을.
“생각이 정리되면, 메이를 한 번 찾아가 봐주겠나? 일단은 자네가 그녀의 부하 인 것도 있지만, 계급을 떠나서 그녀가 자기 마음을 순순히 여는 상대가 자네밖에 없는 것 같아 부탁하는 걸세.”
“... 알겠습니다. 저희 대장한테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네. 이 오르카에 승선한 이상, 소속은 달라도 모두가 가족이라 생각한다네... 그럼, 그녀를 잘 부탁하지. 나도 지금같이 칙칙한 메이보다는, 도도했던 메이가 그리우니 말일세.”
말을 끝낸 칸은 그렇게 가볍게 의자를 밀어내며 일어나 들어왔던 출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러던 중 생각난 것 중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나이트 앤젤에게 말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아, 그리고 메이라면 아마 방으로 향한 것 같네. 회의가 끝나고 상태를 물으니, 방으로 가서 쉬겠다고 하더군.”
“알겠습니다. 여유가 나면 가보겠습니다.”
나이트 앤젤의 짧은 대답을 들은 칸은 조용히 뒤돌아 휴게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자동문 너머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이트 앤젤은 조금의 시간이 지나 멀어지는 발소리를 확인하고는 바닥을 끌며 의자에서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였다
chapter 2. 밤천사가 낯도둑 된다.
“자, 우리 난쟁이 씨. 설마, 혼자 끙끙거리고 있는 건 아니겠죠?”
칸과의 대화가 끝나고,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나이트 앤젤은 어느 한 방의 문 앞에 서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메이, 둠 브링어 지휘관.’
천장의 전등 빛이 반사되어, 조금 하얗게 보이는 문패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나이트 앤젤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그 방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위에서 자신에게 향할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간부급 바이오로이드들이 거주하는 층이었지만, 오늘같이 좋은 날 혼자 방에 박혀있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자신이 지금 찾아온 이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지금 이 층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라곤, 대장과 자신뿐이라고 나이트 앤젤은 확신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방 주위는 오르카호의 미약한 구동음 말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의 반쯤 걱정이 드리운 마음은 침을 꿀꺽 삼키며 방문을 두드릴 준비를 했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수만 가지 생각이 흘러넘쳤지만, 곧 자신의 앞으로 다가올 결과는 대수롭지 않기를 바랐다.
“... 대장. 나이트 앤젤 입니다.”
들어 올린 오른손이 방문을 두드렸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평소에도 나이트 앤젤의 대장은 그 소리를 듣고 반응해왔었다.
“... 대장, 안에 계신가요?”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수차례의 두드림에도 방 안쪽에서는 그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되는 침묵에, 나이트 앤젤은 몇 번의 두드림을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것은 문의 울림이 통로를 타고 울려 퍼지는 소리뿐이었다.
마치 방안에는 그 어떤 존재도 없다는 듯이. 미약한 반응도, 자그마한 소음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일련되는 결과가 나이트 앤젤의 불안감을 증폭시켜나갔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그녀의 머리와 마음속을 한가득 채웠다.
“메이 대장, 들어갑니다.”
나이트 앤젤은 방문에 나 있는 손 구멍에 손을 넣었다. 만약 지금 이걸 당겨서 열리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쩌면 상태가 호전되어, 사령관을 꼬시러 밖으로 튀어나갔을 수도 있었다. 그런 가능성을 희망하며, 나이트 앤젤은 행동으로 옮겼다.
“...”
‘위이잉-.’
누군가의 무거운 걱정과는 다르게, 그녀 앞의 방문은 너무나도 쉽게 열려 나갔다. 나이트 앤젤은 또 한 번 긴장을 안은 채로, 대장을 나지막히 불렀다.
“마지막이에요. 대장, 저 지금 들어가요.”
여전히 그녀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문의 잠금은 걸려있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희망 하나를 지웠다. 그와 동시에 다음 가능성에 대한 수만 가지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이트 앤젤은 식은땀을 흘리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으로 두 발자국 내디뎠을 때. 그녀는 그토록 찾았던 존재를 발견했다. 그 존재가 자리한 장소는 침대의 한가운데도, 방의 한구석도 아니었다.
“대장? 대장, 괜찮아요!?”
책상의 의자였다. 그곳에 앉아, 책상 위에 상반신을 엎드리고 있는 익숙한 뒷모습을 포착한 그녀는, 대장을 부르며 조금 빠르게 걸었다. 이마에서 송골송골 흐르던 식은땀이 한 방울, 두 방울 움직이는 그녀의 뒤로 사라져 갔다.
나이트 앤젤은 대장의 바로 뒤까지 쫓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리고 조심히 그녀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불안감이 깃든 손이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나이트 앤젤은 생각했다.
그녀의 대장은, 자기 건강을 못 챙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병에 걸린 것이라면?
바이오로이드는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높다. 하지만 그것이 곧 완전한 면역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얼마 전을 떠올렸다. 오르카가 지금 이곳에서 점검을 받게 만든 하나의 큰 사건을.
사령관이 ‘별의 아이’라 부르던 존재와의 전투, 그리고 그 난전 속에서도 확실하게 느낀 공포. 넘실거리는 파도, 수많은 철충.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속은 뒤집히고,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머릿속은 두려움이라는 것으로 한가득했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하지만 다행히 별의 아이는 철충들과 싸우며 동귀어진했고, 그 후 나타난 또 다른 개체 또한 ‘무적의 용’이 데려온 함대가 막아내었다. 그렇게 그들은 큰 피해 없이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다면?
공유된 정보에 따르면 그 존재가 내뿜는 무언가가 인류 멸망의 근원인 ‘휩노스 병’과 접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만약, 그 무언가가 바이오로이드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 현상의 첫 피해자가 자신의 대장이라면?
나이트 앤젤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원래라면 망상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그녀는 닥터도 아니었고, 의학전문가도 아니었다. 그저 둠 브링어의 대원이자, 메이의 부하였다. 그저 적들을 무찌르는 전투원일 뿐이었다..
그녀의 손이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이제 그녀의 생각이 상상인지, 현실인지를 밝혀낼 시간이었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는 또 한 번, 이름을 불렀다.
“... 메이, 대장…?”
메이의 어깨에 나이트 앤젤이 손끝이 닿았다. 그리고 그 작으면서도 든든했던 어깨를 흔들었다. 그 기나긴 침묵도, 누군가를 향한 걱정도. 그 끝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 어…?
짧은 외마디와 함께, 나이트 앤젤의 걱정은 허무한 끝을 맞았다. 그녀의 두 눈에 담긴 것은 쓰러져서 숨을 가파르게 내쉬는 이도 아니며, 악몽을 꾸듯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모습을 보이는 이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얌전하다 못해 바보 같은 얼굴로 잠이 든 이가 그곳에 있었다.
그에 반해 나이트 앤젤의 얼굴은 얼이 빠져 멍하니 그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붉은 양갈래 머리는 기름에 떡진듯 빛나고, 잔머리가 여기저기 헝클어져 있었다. 두 눈가의 밑은 다크서클 천지였고, 입가에서는 고여있는 침이 흐를락 말락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렇기에 나이트 앤젤은 더욱 허무함을 느꼈다.
한숨을 쉰 그녀는 꽉 쥔 주먹으로 책상에 박혀있는 옆 통수를 당장에라도 후리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애써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는 메이를 더욱 강하게 흔들었다.
“... 대장. 피곤하면 침대에 누워서 자요. 불편하게, 이게 뭐예요.”
“... 응…? 우웅… 납작아. 웬일이야…?”
“상태를 보니, 머리를 크게 다친거 같으시네요. 피곤하신거라면 침대로 가시죠.”
“... 응, 잠시만… 조금만 더 자고… 10분만 있다… 깨워줘...”
메이는 말없이 의자를 드르륵 밀고는 일어나 걸었다.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을 나이트 앤젤이 옆에서 지탱했고, 침대 옆에 도달한 메이는 털썩하고 베개에 얼굴을 박으며 쓰러졌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침묵을 이루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이트 앤젤은 허무함 뒤에 따라오는 안도감을 느끼며 침대를 벗어났다. 메이는 그녀에게 화내지 않았다. 그녀는 메이에게 따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나중으로 밀었다. 지금은 그녀가 편하게 쉬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일단, 추궁은 나중으로 미룰까… 응? 이건…”
방을 벗어나기 위해 조심스레 움직이던 그녀의 시선을 끈 것은 방금까지 메이가 엎드려 자고 있던 책상의 위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조금 전까지 메이의 상반신이 가리고 있던 하나의 태불릿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이트 앤젤의 움직임은 발은 더욱 느려지고, 손은 조심스러워졌다. 마치 들키지 않게 주의하는 도둑처럼, 주인이 잠든 집에 몰래 들어온 밤도둑처럼. 그녀의 손은 태블릿을 향했고, 그것을 가볍게 손에 넣은 나이트 앤젤은 화면을 켜서 기기의 내용물을 확인하려 했다.
“흐음, 역시…”
하지만 그녀를 받아들인 것은 기본적인 잠금화면이었다. 가장 기초적인 보안체계. 나이트 앤젤은 처음부터 막다른 벽을 만났다. 물론 훔쳐보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잠시 침대에 쓰러진 메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기기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기기 번호랑… 비밀번호 입력창… 그리고, 힌트.”
화면에 굵직하게 써진 글귀 사이로 나이트 앤젤은 힌트라고 적힌 화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태블릿의 한쪽에 작은 창이 열리며, 그 속에 담긴 내용을 들어냈다.
.
‘믿을 수 있는 존재.’
“흐음… 대장이 믿는 존재라…”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진 그녀는 첫 번째 답안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자판이 들어선 화면을 두드리기를 십몇 초여, 입력을 마치고는 확인 버튼을 눌렀다.
“... 읔, 사령관님은 아니네… 그럼, 자기 자신?”
그 이후로 나이트 앤젤은 몇 개의 정답을 계속해서 입력했다. 둠 브링어. 블랙리버. 오르카호. 빨간 버튼. 큰 버튼. 아름다운 버튼. 크고 아름다운 빨간 버튼. 몇 차례의 실패와 함께. 화면에 나타난 경고문은 그녀의 남은 기회가 한 번뿐이라는 것을 나타냈다.
“읔, 한 번 만 더 틀리면…”
마지막 한 번. 만약 틀리면, 기기는 보안상 완벽하게 잠길 것이다. 그리고 기술자가 오지 않는 이상은 나이트 앤젤은 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궁금증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대장한테 걸려 꾸중만 들을 것이다.
“... 마지막… 믿을 수 있다라...”
나이트 앤젤의 마지막 선택은 자신의 이름이었다. 반은 아무 생각도 없었고, 반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답이었다. 잠시 화면에 원이 돌아가더니, 기기의 잠금이 풀린 것이다.
나이트 앤젤은 터져 나오는 약간의 감탄을 입으로 가렸다. 그 허망한 표정에 얇은 미소가 나왔고, 쓰러진 메이의 뒷모습을 보고는 잠시 존경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기기의 화면을 내려다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 이건…?”
그녀는 남는 손 하나를 턱밑에 갖다 대고는 잠시 그 화면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방에 들어서기 전과 같이, 서두르며 방을 벗어났다.
chapter 3. 호기심이 유미를 죽인다.
“여기 있었군요. 당신한테 물어볼 게 있어요. 역시 브라우니들은 붙잡고 물어보면 왜만한 건 다 아네요.”
“어머, 나이트 엔젤 씨. 안녕, 하세요…”
먹잇감의 목덜미를 노려보듯 날카롭게. 나이트 앤젤의 허탈한 듯 보이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그런 눈총을 맞으며 잔뜩 쫄아있는 한 명의 바이오로이드. 여기저기 헝클어진 보라색 머리와 작은 체구, 애써 웃고 있지만 어색한 미소.
후드는 벗고 있어 평상시에 보이는 동물 귀는 보이지 않았지만, 항상 양 눈가에 드리운 다크서클과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만나 만들어진 모습이 마치 병약해 보이는 바이오로이드.
그런 상대의 어색한 반응과 뻘쭘한 몸짓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나이트 앤젤. 그녀는 그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챙겨온 메이의 태블릿의 불 켜진 화면이 유미에게 보이도록 내밀었다.
“유미 씨, 별로 경계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간단하게 모르는 것만 물어보고 갈 거니까요.”
“예…? 아아, 혹시 사용법에 관해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아뇨, 전자기기는 잘 안 쓰는거지. 못 쓰는 게 아니라서요. 단지 이 화면에 대해 물어볼게 있어요”
유미는 나이트 앤젤이 내민 태블릿의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그 화면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낯익은 화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즉각 반응하며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했다.
“아, 이건. 스틸라인 온라인 결과 창이네요.”
“스틸라인 온라인이라면… 요새 오르카 내부에서 유행한다는 전쟁 전 게임 말인가요…?”
“예. 저도 하고 있거든요. 서버 유지보수도 겸해서 말이죠. 근데, 그걸 물어보시는 걸 보니. 나이트 앤젤 씨가 하시는 거 같지는 않네요…”
“아, 이건 제께 아니에요. 저희 대장꺼죠.”
“... 그렇다면, 지금 그 계정이 메이 대장님 거란 말인가요…?”
“뭐, 아마 그렇겠죠.”
질문에 귀찮은 듯 대답하는 나이트 앤젤과는 다르게, 다시 한 번 태블릿을 내려다보는 유미의 눈빛은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대방의 성격과 들려오는 소문을 잘 알기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며 안절부절 거리는 모습을 본 나이트 앤젤이 의문을 가지고 먼저 물어왔다.
“갑자기, 초조하게 움직이시네요.”
“예? 아, 저, 그게… 제가 잠시 봐도 될까요? 아니, 보면 안 될까요!?”
“흐흠…”
나이트 앤젤의 눈은 유미의 그런 변화를 그냥 놓치지 않았다. 마치 사냥감을 꾀어내기 위한 미끼를 만드는 사냥꾼처럼. 그녀는 조금씩 미끼를 풀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 설명해 주시면 말이죠. 자세하게.”
“으응… 그게…”
유미는 나이트 앤젤의 시선을 피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실수한 것에 덜미를 잡힌 듯.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도 우물쭈물 거리는 그녀의 상태를 본 나이트 앤젤은 간단하게 한 번 줄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내밀고 있던 태블릿을 거두고, 뒤돌며 말했다.
“... 뭐, 말할 생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죠. 혹시, 그렘린 기술병 어딨는지…”
“하, 할게요! 아니, 하게 해주세요!!”
“후후…”
분명 유미가 나이트 앤젤의 그 미소를 봤다면 생각을 바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상황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이용하는 것 또한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다. 그리고 그런 나이트 앤젤은 살며시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고는 애써 담담한 척을 하며 뒤돌았다.
“자, 한번 말해볼까요. 무슨 생각을 했죠?”
“그, 그게… 사실 스틸라인 온라인은 게임을 플레이한 전적 검색이 가능한데… 병사 계급으로는 상급자의 전적을 검색하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흐음… 그러니깐, 유미 씨는 저희 대장의 전적을 검색하는 게 불가능 하다는 거죠? ”
“... 예…”
“그리고, 우리 통신병 유미 씨는 저희 둠 브링어 대장의 게임 전적이 궁금한 거구요?”
“... 예…”
유미는 새빨개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후드를 얼굴까지 뒤집어썼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며, 자신이 한 행동을 한순간 후회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런 그녀의 대답을 들은 나이트 앤젤 또한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지고는 들고 있던 태블릿을 다시 유미에게 향했다.
“한 번 확인해보시겠어요?”
“... 예!?”
“싫어요?”
“아뇨! 바로 시작할게요!!”
메이의 태블릿은 나이트 앤젤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넣은 유미는 잠금이 풀려있는 태블릿의 화면을 몇 초간 두들겼다. 전문가의 시간이었다. 나이트 앤젤은 유미가 탐색을 시작하는 동안, 잠시 멍하니 주위를 걸으며 배경을 둘러볼 뿐이었다.
나이트 앤젤이 그녀를 찾은 곳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 퍼블릭 서번트의 공동 숙소였다. 다른 인원들은 이미 휴식을 즐기기 위해 자리를 떠난 것 같았지만, 유일하게 유미만이 그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다른 부대원들은 다 외출 중인가요?”
“예? 아, 맞아요. 마이티R 씨랑 티에치앤 씨는 하루도 수련을 빠트리면 안 된다고 뛰어나가셨고, 익스프레스 씨랑 LRL은 항상 어디론가 사라지고, 엘븐 두 분은 이번에 새로 오신… 세레스티아 씨였나요? 그분이랑 같이 휴식을 즐기고 계세요. 이그니스 씨는 포츈언니랑 잠시 작업하러 나가셨고요.”
“... 유미 씨는 그렘린이랑 같이 다니지 않았나요?”
“그렘린도 작업에 끌려갔어요. 수영대회 때 난리를 일으켰던 알… 프레드였나? 그 AGS가 찾아낸 정보 중에 새로운 AGS 개체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걸 조사하러 갔어요. 그러면서도 커다란 AGS공룡이 있다며 헤벌레하더라고요… 결국, 전 혼자 남게 됐지만요…”
유미는 잠시 훌쩍이는 소리를 내는 듯했지만, 곧내 그치고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 한 듯 이전과는 다른 밝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찾았다! 근데 이, 이건…”
“오, 벌써 발견하신 건가요. 역시 기술자는 빠르네요.”
태블릿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살금살금 내리는 유미의 등 뒤로 나이트 앤젤이 걸어가 섰다. 그리고 등 너머로 태블릿을 내려다봤다.
“빨강, 빨강, 빨강, 빨강, 파랑, 빨강, 빨강… 이거 혹시 청기, 적기 게임인가요?”
“... 아뇨. 빨강은 패배고, 파랑이 승리에요…”
“그렇다면… 적어도 저희 대장이 게임 실력 하나는 없다는 건 확실하네요. 역시 영양분이...”
“아직 남았어요. 최근 전적보다는 캐릭터별 승률로…”
유미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화면을 한 번 톡 눌렀다. 그러자 좀 전과는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거기엔 오르카호속에서 익숙한 자매들의 얼굴도 보였다.
“어머, 이것도 다 처참하네요. 불굴의 마리 85판 32%, 브라우니 62판 27%, 레드후드 21판 43%...”
“이럴 리가 없는데… 승률은 원래 50%에서 ±15% 범위가 정상인데…”
“뭐, 키도 평균에서 벗어나는데, 게임 실력도 그럴 수 있죠.”
“그, 그런 걸까요…? 어?”
“왜 그러죠. 저희 대장의 참담한 현실에 더욱 큰 구멍이 있는 건가요?”
“이거 한 번 보시겠어요?”
유미는 자신이 발견한 화면을 나이트 앤젤이 잘 볼 수 있게 그녀의 앞으로 조금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화면을 천천히 훑어 본 나이트 앤젤은 조금 흥미를 느꼈다.
“어머, 이건… 조금 특이하네요. 하지만 판수가 적은 거 같은데요?”
“아뇨, 이거 눌러서 상세정보를 보면… 생각보다 킬 관여율도 높고, 생존력도 좋은데요! 시야 확보나 도움으로 칭찬도 많이 받았네요.”
“... 좋은 건가요?”
“이 정도면, 이 캐릭터 하나로 상위 등급으로 가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요! 뭐… 팀으로 브라우니만 만나지 않는다면 말이죠…”
“... 설마, 그 수많은 브라우니가 다 하는 건가요?”
“아, 마도요…? 현재는 오르카호만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통신망만 제대로 구축된다면 무적의 용님을 따라 떠난 자매들과도 같이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완전하게 사회를 복구해내면, 지구 그 어디에 있든 인터넷만 연결되면 만날 수 있구요!!”
“그럼, 적어도 브라우니가 줄어들 일은 없네요.”
유미의 희망적인 연설을 들은 나이트 앤젤의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유미는 그 표정을 별로 반기지 않았다.
“... 기분이 언짢아 보이시네요.”
“스틸라인이랑은 좋은 기억이 없어서요. 특히 레프리콘과 브라우니. 브라우니는 더욱더.”
“아하하… 그래도, 브라우니들이 없으면 힘든 일도 많잖아요. 스틸라인 온라인만 해도 브라우니들이 없었다면, 매일 만나는 사람들끼리만 만났을 텐데 말이에요.”
“... 그건, 그렇겠죠. 근데 우리 대장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게임에 푹 빠진 건지...”
“아마, 사령관님도 하시니깐요…?”
“... 사령관님도…?”
유미의 대답을 통해 나이트 앤젤의 머릿속에서 의문이라는 퍼즐 조각이 하나씩 맞처져갔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조각들이 계속 연결되어 어떤 그림이 완성되느냐였다.
“나이트 앤젤!! 내 태블릿 당장 가져와!!”
어린아이가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오르카 호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잠수함 밖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던 바이오로이드도 놀라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을 쳐다볼 정도였다.
“이런, 난쟁이가 잠에서 깨어났나 보네요.”
“이, 이거 큰일나는거 아니에요!? 잘못했다가는 사령관님 귀에까지 들어갈 텐데!?”
“그건, 제가 맡을게요. 일단 아직 대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남은 거 같으니…”
나이트 앤젤은 그대로 태블릿을 들고 있는 유미의 양쪽 어깨에 두 손을 얹으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머리를 유미의 오른쪽 귀에 갖다 대며 속삭였다.
“우린, 지금부터 한배를 탄 거에요. 만약 사령관님이 추궁하면 제 입에서 누구 이름이 나올까요?”
“... 아, 아까는 책임져주신다고…”
“아, 물론. 총대는 제가 메죠. 하지만, 공범이 있다면 저 하나로는 안 끝나겠죠?”
유미는 자신의 뒤에서 흘러나오는 죽음의 속삭임을 듣고는 떨기 시작했다. 눈이 뱅글뱅글 돌고, 식은땀이 전보다 더 많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크게 소리 내며 말했다.
“제,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뭐든 시켜주세요!!”
“후후, 간단하게 몇 가지만 솔직하게 얘기해 주면 된답니다.”
시간은 촉박하게 흘러간다.거대한 불길 같은 기운이 점점 그들에게 다가오려 했다. 떨어져 가는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나이트 앤젤은 남은 시간을 알뜰하게 써야만 했다. 자신의 앞에 덜덜 떠는 작은 동물과 함께 말이다
주 등장인물은 나앤과 메이 두 명인 소설입니다만,
정작 메이(존만이)의 제대로 된 등장은 다음편부터 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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