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펙스 측에서 회담 일정을 잡아주기를 요청했다구요?”
“예, 그렇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 말하길, 펙소 콘소시엄과의 평화회담은 그냥 엎어진 것 아니냐고 물었다. 존스 대통령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모두 펙소 콘소시엄과의 평화회담은, 지난 번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펙스의 함대를 동아시아로 보내 해상 전역을 일으킨 것으로 사실상 물건너 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먼저 평회협상을 하자고 제의를 했으면서 범인류연방을 향해 군사도발을 일으킨 것이니깐 말이다.
애초에 평화협상을 하자며 최초로 통신을 보내왔었을 때에도 감히 바이오로이드 따위가 인간 행새나 한다며(그것도 만들어진 장난감 주제에라며, 협상이고 나발이고 그냥 처음부터 쓸어버렸어야 했다면서)면전에 대고 결례를 저질렀으니, 연방 측에서 일방적으로 회담을 물리고 군사를 보내 미 대륙에 상륙하여 펙소 콘소시엄을 공격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오메가는 처음부터 평화협상 따위가 목적이 아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펙소 콘소시엄이 평화회담을 요청하니, 말도 안 되는 일일뿐더러 의심이 먼저 갈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평화회담 일정을 잡자며 일방적으로 통보를 보낸 이가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아닌 되살아난 그들의 회장, 콜름 오드리스콜이라는 것이 더더욱 그랬다.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이것은 필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거기다가 뻔뻔하기 그지없게도, 저번에 처음 얼굴을 마주하였을 때 진즉에 자신들을 벌레 새끼들 마냥 눌러죽였을 것이라고 말하던 양반이지 않던가?
“면전에 대고 모욕적인 말을 서슴치 않던 양반이, 어째서 우리에게 평화회담을 요청한 것일까요?”
“뭔가 꿍꿍이가 있는게 분명할테죠. 쉽사리 만만하게 볼 상대가 절대 아닙니다.”
“회담 일정과 장소는요?”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저 쪽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하진 않았습니다. 회담 날짜와 장소 모두 사실상 우리에게 위임하였습니다.”
“의외네요. 저희더러 벌레 새끼들마냥 죽여버릴 거라고 했던 오메가 회장의 성격을 생각하면 말이죠.”
“아무튼, 저 쪽에서 회담을 요청한 이상 우리도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소? 가급적 일정을 빨리 잡는 편이 좋을 것 같군 그려.”
“장소는요?”
“연방군의 영향권 안에서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장소 선정도 저 쪽에서 따로 장소를 일러주지 않고 선택지를 저희에게 위임한 이상, 막말로 그들을 부산까지 오게끔 해도 전혀 이상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렇게까진 못하겠죠.”
“그럴 만한 여유도, 여건도 안 되니까요.”
회담 일정에 대한 선택지를 전적으로 넘겨준 펙소 콘소시엄의 계략에는 무슨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었을까?
오드리스콜 회장이 무슨 생각으로 회담 일정을 잡는 것을 전적으로 자신에게 넘겨주었는지 추리를 해보며, 펙소 콘소시엄 측과의 회담을 위한 장소 물색에 들어갔다.
“... 베링섬은 어떻습니까?”
“베링섬이요?”
“부관? 지도.”
“예, 알겠습니다.”
존스 대통령의 물음에 벨리코프 합참의장은 자신의 전속부관인 최유빈 소령에게 대형 디스플레이 화면에 지도를 띄울 것을 지시하였다.
이윽고 벨리코프 합참의장이 디스플레이에 다가가 화면을 확대하며 베링 해협으로 집중시켰다. 알래스카반도에서 뻗어나온 섬들을 따라 주욱 이어진 끝에, 경도 180도선을 넘어 유일하게 자리잡고 있는 섬 하나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졌다. 벨리코프 합참의장은 러시아 캄차카 반도의 오른쪽에 붙어있는 이 섬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여기가 베링섬입니다. 위치도 연방과 펙소 콘소시엄 알래스카령의 딱 중간에 위치해있고, 항로로 치면 부산이랑도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운 편입니다.”
“만약에라도 저 쪽에서 회담을 빙자한 모종의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이라면, 연방군이 즉각 출동하여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또한 가질 수 있습니다.”
“회담을 준비하는데 벌써부터 군대를 동원할 생각을 하시나요, 합참의장?”
“아니요, 이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준비입니다.”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오드리스콜 회장은 굉장히 간악한 사람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도, 분명 우리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인간입니다. 특히나 이미 펙소 콘소시엄은 우리에게 두 차례 이상 군사도발을 강행하였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하, 합참의장의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회담을 빙자해서 시선을 끌고 군사도발이라도 일으킨다면 연방 측 피해도 상당할 겁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회담 기간 중에는 한시적으로 데프콘 단계를 격상시키는 것도 고려해주셔야 할 겁니다.”
벨리코프 합참의장의 말을, 범인류연방군 제복군인서열 3위인 라자르 아르줄레이 합동참모본부장이 거들었다. 두 군사 참모들의 말대로, 회담을 할 날짜라던가 장소라던가 일정 전반을 온전히 연방에게 맡긴 그 의중이 심히 의심스러웠다. 뱀의 간사함과 여우의 교활함을 가지고 있을 펙스의 회장이, 어째서 자신들에게 이렇게 선뜻 카드를 내밀어주었는지 그 진의도 의심스럽지만, 현재로선 그 자체를 경계해야할 상황이기도 하였다.
펙소 콘소시엄측에서 제시한 평화회담 일정은 점점 구체화되어갔다.
날짜는 돌아오는 주 월요일. 장소는 베링섬. 섬의 북동쪽에 위치한 어느 작은 마을. 과거엔 800여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다고 하며, 작고 협소하지만 남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4km 정도를 가면 공항도 있었기에 부산에서 항공편으로 출발하기 매우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저 쪽에서 얼마나 어떻게 회담을 준비해올지는 모르기에, 담당 관구인 환태평양통합전투사령부에서 해군과 공군을 출동시킬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누가 가느냐였다.
존스 대통령은 본인이 가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지만, 주위 참모들이 그걸 받아들일 리가.
평화회담인 만큼 연방의 정부수반이자 국가원수인 그녀가 가는 것이 맞겠으나, 상대는 펙소 콘소시엄의 회장인 오드리스콜과 그의 비서 레모네이드 오메가였다. 거기다가 존스 대통령은 세계 최초의 바이오로이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이오로이드를 물건으로 볼 그 인간들이라면, 과장 좀 보태서 회담 장소에 나타나자마자 라비아타에게 이 무슨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남는다.
필시, 참모들 모두 그렇게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전 펙소 콘소시엄의 비서이자 현 대통령 비서실장인 알파도 마찬가지였다. 범인류연방의 입장에서 라비아타는 대통령으로서 정부수반이자 국가원수인 지도자이지만, 오드리스콜 펙소 콘소시엄 회장의 눈에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 비해서 굉장한 값어치를 자랑하는 물건 그 이상도 아니었다. 그 리앤조차도 강제로 빼앗기 위하여 군대를 동원했는데, 라비아타라고 오죽할까.
누가 대통령을 대신하여 갈 것이냐 열띤 토론이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자, 의외로 이들을 중재하러 나선 것은 오드리였다.
“Oh~ Ladies and Gentlemen? 조금만 Be quiet 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이러다 오늘 내로는 결론이 나지 않을 거 같은데 말이죠.”
“제게 Good Idea가 떠올랐으니, 이렇게 타협을 해보시는 건 어떻겠어요?”
“어떻게 하시려고?”
“우리의 President를 대신하여 Prime Minister 고진아 외의 정부를 대표할 수 있는 한 명과, 만일의 군사적인 상황이 벌어질 것도 대비할 겸, 또 펙스 측에 우리의 Military Advisor(군사 고문단)의 저력도 보여줄 겸 해서 우리 연방군의 대표로 General Officer(장성급 장교)도 한 명 데리고 가는 게 어떨까요~?”
“고진아 총리 외의 한 명과 장성급 장교 한 명이라...”
“장성급 장교는 합참에서 한 명이 가면 되겠습니까?”
“Of Course!”
“Joint Chiefs of Staff(합동참모본부)에서 대표자 한 명이 같이 동행을 해주면 될 것 같아요.”
오드리가 한 쪽눈을 찡그리며 웃어보였다.
“근데 왜 하필 고진아 총리인가요?”
“그녀는 말을 잘 하니까요~”
“Talking에 있어서는 존스 대통령조차도 따라가지 못하는 걸요?”
“아, 그건 인정.”
“민하준 합참차장조차도 그녀의 말빨 앞에선 한 수 접는다죠?”
“무슨 소리예요???”
“음, 아무튼 그렇다 치고...”
“그럼 합참에선 제ㄱ...”
“제가 가겠습니다.”
“본부장님?”
펙스와의 회담 시, 연방군의 대표자로 참석할 사람으로 벨리코프 합참의장이 가겠다고 입을 여는 순간, 라자르 수석본부장이 손을 들고 말하였다.
“Perfact 해요~ 제가 생각해도 Admiral 라자르가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Admiral 라자르도 멸망 전에는 기업인 출신이었으니까요?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Conference(회담)을 Federation(연방)의 주도로 이끌어 낼 적합자라고 Thinking을 했어요.”
“형이 직접 가게?”
“응.”
“어차피 나도 그 양반 쌍판떼기 직접 봐야할 일이 있으니깐.”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고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이 생겼다.
자신의 아내 마키나가 찾아서 들려주고, 그녀의 가상현실에서 뵌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운 회사인 그룬더 인더스트리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어삼키려하였던 오드리스콜에게 도대체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한 번 물어나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업을, 기술을 빼앗고 싶었던 것인지. 돌아올 대답이 예상이 되지만, 그럼에도 물어볼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고진아 총리님과 라자르 본부장이 간다하고...”
“방금 말한 나머지 한 명은요?”
“후훗...”
“... It‘s Me~”
“에?”
오드리가 제안한 펙스와의 평화회담에 참석할 연방의 대표자 세 명.
그 중 나머지 한 명이 누구냐는 질문에 오드리는 웃으면서 자신을 가리켰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자, 오드리는 방금까지의 여유로운 미소에서 이내 웃음끼 싹- 뺀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번 Conference는 Very Important 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제3자 중에서도 펙스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어요.”
“확실히 오드리 씨라면...”
“골든 워커즈 출신이죠.”
“장관님, 회담에 개인적인 목적으로 참석하시겠다고 하시는 건...”
“알아요, 저도. 당연히 그래선 안 된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메가 뿐만 아니라 그 다음 가는 세력인 레모네이드 델타도 건재하다면...”
“... 결코 우리에게도 쉬운 싸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오메가는 차라리 계산이라도 하지, 델타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도발과 공격을 감행해올 겁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한 번 떠 보려는 거죠.”
“저 또한 저들이 정말 순수하게 오는 Feeling에서 우리에게 Peace를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뭔가 조건부가 분명히 붙겠죠.”
“그런 상황에서 제가 뻔뻔하게 Conference에 나온 걸 보고, 과연 그 심성 더러운 델타라면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떻게 행동을 할까? 그녀는 저와 제 자매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질투심에 불타올라 극도의 히스테릭을 부리는 사람이니까요.”
“델타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소. 그녀또한 회담에 나오리란 보장은 없지 않겠소?”
“처음부터 나오리라 생각도 안했어요. 분명한 건, 제가 나왔다는 걸 오메가가 돌아가서 델타에게 말을 할 거라는 것이죠. 아니면 실시간으로 회담을 VTC로 송출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구요. 어떤 방식으로던 델타는 제가 회담에 연방 측 대표로 나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되려 위험할 수도 있지 않겠소?”
“저는 우리 Federation의 Armed Forces(국군)의 저력을 Trust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사전에 확실하게 차단을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Chairman(합참의장 :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물론입니다. 연방군은 회담 중에 벌어질 그 어떤 위협적인 일에 대해서도 사전에 철저하게 대비를 할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정리를 하는 것으로 할까요?”
“예, 좋습니다.”
범인류연방과 펙소 콘소시엄과의 평화회담 준비가 확정되어졌다. 펙소 콘소시엄측에도 날짜와 장소를 확정한 것을 보냈고, 곧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일단 펙스 측에서 평화회담에 공식적으로 참석하는 사람은 오드리스콜 펙소 콘소시엄 회장과 그의 비서인 레모네이드 오메가였다.
연방의 대표자로 연방 총리인 고진아, 국토교통개발부 장관 오드리 드림위버, 그리고 군사고문 대표로 합동참모본부장인 엘리샤르 라자르 아르줄레이 해군 대장이 참석하게 되었다. 연방군은 사전에 캄차카 반도 인근 해역으로 제7함대를 파견하여 사전에 펙스 측에서 벌일 수 있는 군사도발에 대비태세를 갖추었다. 또한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군기지에도 언제든 베링해협으로 긴급발진 할 수 있도록 비상출격준비태세에 돌입하였다.
사실상 회담과 동시에 전쟁준비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멸망 전이었다면 이 또한 심각한 외교결례이겠지만, 상대를 봐라. 사실상 연합전쟁을 일으킨 원흉인 펙소 콘소시엄이 아니던가? 아닌 말로다가 회담 장소에 나타나자마자 오드리스콜 회장이 자신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도 있을 일이었다. 아니면 회담 장소까지 마리오네트나 AGS들을 이끌고와서 아예 회담 장소를 박살내버린다던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연방이 준비하는 만큼, 펙소 콘소시엄 측도 그 만한 준비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의 염려와 긴장 속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어느새 회담 당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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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나도 오메가 회장 개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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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인 짓 : 사실상 연합전쟁 뒤에서 조종 | 24.03.13 15: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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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3.13 15:0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