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앤, 여기 빈 접시들좀 옮겨 줄래?”
“네, 이리 주세요~”
“그거 접시들 옮겨놓고 나면 저기 냉장고에서 마실 것들 꺼내서 가져다 놓고.”
“네, 그럴게요~”
“유빈이 새아가는 참하네, 정말~”
“그러게~ 유빈이가 며느리 하나는 진짜 잘 데려왔어.”
“우리 시라유리는 언제쯤 나한테 새엄마라고 불러주려나~?”
“한 넉 달은 더 기다려보시죠, 국장님.”
“가족끼리 한솥밥 먹는 자리에서까지 그렇게 딱딱하게 굴 필요 없잖니?”
“그러지 말고, 이 참에 미리 예행연습 한다고 생각하고 한 번 새엄마라고 불러보렴, 응? 새.아.가?”
“싫습니다.”
“히잉...”
식기 달그락 거리는 소리.
부엌에서부터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
그리고 마당에 길게 놓여진 테이블.
벨리코프 제독의 집 마당에선 한창 저녁 식사 자리가 준비되어지고 있었다.
원래도 최소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아이들의 유모, 누나들까지 다 모여서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저녁 식사도 하고 대화도 하고 그러는 시간을 가지는데, 하필 오늘 날이 또 날이다보니 이렇게 또 모여서 저녁 식사 자리를 가진 것이었다.
부엌에서는 저녁 요리 준비를 하고, 마당에서는 다 같이 앉아 저녁 식사를 할 자리를 준비해가는 동안, 이들의 또 다른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유모들도 하나 둘 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엄마, 저희 왔어요~”
“우리 왔어~!”
“다들 어서와~”
“우리 아들, 얼굴 한 번 보기 이렇게 힘들어, 응?”
“결혼하고 나가고 나서 양 옆에 부인들 둘 끼고 아주 그냥 행복에 겨웠지? 엄마 젖은 뭐 이제 그립지도 않다는 거지, 아주??”
“아, 아하하하~ 그, 그런 건 아닌데...”
“저 왔습니다. 식사들, 벌써 하고 계셨던 건 아니겠지요?”
“어서오시게, 마리 대장.”
“먹는 입이 많아서 상 차리는 데에만 한 세월인걸, 뭐~”
“그런데, 요안나 씨는요?”
“피곤해서 올 엄두가 도저히 안 난다고, 대신 좀 전해달라시더군.”
“같은 이유로 고진아 의장님도 오늘 식사는 참석 못하시겠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하긴, 오늘 행사가 어디 한 두 곳이었나요. 수뇌부 분들은 다들 피곤할 만도 하죠.”
“나 왔다.”
“나도 왔어!”
“아, 오셨어요, 감마 유모님, 닥터 유모님?”
“유모님이라니, 딱딱하게스리...”
“그냥 언니라고 불러~”
“엄밀히 말하자면 리앤 언니는 나한테 오히려 동생이라고 불러줘야 하는데 뭐.”
“아, 그런건가?”
“그나저나 유빈이가 안 보이네?”
“아~ 아버님이랑 같이 들어온다고 했어요. 아마 곧 올거예요.”
“그렇구만~”
“아, 충성~ 충성~!”
“천재 누우나, 천우의 하도연이 등장!!”
“야. 하도연! 너 뭐야?? 너 일찍와서 상 차리는 거 도와준다면서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야, 오다가 차가 빵꾸가 났다야~ 대신 미안해서 여기 선물 좀 사왔다.”
“자, 엘븐 밀크 선물 세트.”
“엘븐 밀크 담당하는 사람한테 엘븐 밀크 선물 세트를 건네주는 너도 참...”
“야, 나도 멸망 전부터 엘븐 밀크에 주식 투자한게 많아서 지분 꽤 많거든??”
사람 든 곳에 사람이 든다고 하였던가.
마치 그 모습이 연휴에 친척들까지 다 모여서 가족행사를 치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거기다가 막내 우가 유모들이었던 나빈과 아멜리아와 결혼하고 나더니 이번엔 장남 유빈이가 어디서 참한 새색시를 데려오고, 차남 라인하르트가 약혼녀까지 데려왔으니 이 얼마나 경사진 일이 아닐 수 없겠는가?
덕분에 아직 결혼은커녕 애인조차 없는 아벨이와 크리스의 어머니들인 엠마와 마틸다는 은근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적어도 아벨이는 대모이자 엠마의 멸망 전 친구인 하도연이랑 관계 진전이라도 있지, 크리스 이 녀석은 맨날 등에 기타 매고 음악만 하고 다니니 마틸다가 속이 안 터질래야 안 터질 리가.
당장 자기 친구 아멜리아 보는 눈빛이 딱 크리스 보는 눈빛이었다.
“우에 유빈이까지 결혼하고...”
“라인하르트까지 약혼녀를 데려왔는데...”
“... 너흰 언제쯤 새색시 데려올래?”
“그, 그래도 엄마... 나, 나는...”
“... 히히~ 난 도연이 누나 있잖아~”
“그치~?”
“그럼~?”
“하아... 저, 저 위급할 때 빠져나가는 저 능글맞은 소악마 같은거 저거...”
“그래, 어려서부터 남한테 은근~ 히 의지하려는 것만 빼면 괜찮긴 한데...”
“하필 그 대상이 도연이라...”
“야, 너 그거 무슨 소리야??”
“크리스, 너는??”
“음!...”
“훗... 저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그게 설령 엄마라 할 지라ㄷ...?!?!?”
“이게 자유!(퍽!)로운(퍽!!)영혼(퍽!!!)같은(퍽!!!!)소리하고 자빠졌넴, 마!!!!”
“니가 니 아빠냐?!?!”
“아악!!!(퍽!)악!!!!(퍽!!)어, 엄마!!!!(퍽!!!)엄마!!!!(퍽!!!!)유모들까지 다 있는데!!!!”
“뭐가 이렇게 소란스러워?”
“저희 왔습니다.”
답답시런 크리스를 향한 엄마 마틸다의 등 매타작에 남편 유진과 장남 유빈이가 돌와왔다.
“뭐야? 크리스는 왜 엄마한테 맞고 있어??”
“아니, 아, 아빠!!! 엄마가 그러니깐!!!”
아빠가 오자, 엄마 앞에서의 당당한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깨갱- 모드가 된 크리스는 아빠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아들아.”
“예.”
“내가 니 나이 때는 말이다...”
“... 길 가다 지나가면서 만나는 여자란 여자는 다 한 번씩 잠 자리를 가졌...”
“쿠얽?!?!?!?!”
“이 양반이 애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네, 정말!!”
“새아가들도 있는데!!!”
“아, 아야!!! 자, 잘못했어!!! 마, 마틸다!!! 잠깐만!!!!”
“아하하하하하하~!!!!”
괜히 말 한 번 잘못했다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거 현관에서 구두 벗기 무섭게 마틸다에게 매타작을 맞는 유진이었다.
하여튼 적잖은 소란(?) 이후에 남편에 큰아들까지 오고 나서야 대가족의 오붓한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번에 정식 4성 제독으로 취임한 나빈이 이모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용 작은 엄마의 임신 소식 이야기, 라인하르트가 곧 사관후보생으로 입교한다는 이야기와 또 다시 시작된 크리스의 연애 잔소리로 마당 테이블은 어느새 시장통이 되어갔다. 서로 마주보며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는 하는 모습이, 누가 보면 인류가 멸망했다는 사실 조차 잊어먹을 정도로 흔하디 흔한 가족, 친척의 식사 자리 풍경이었다.
딱 한 명만 빼고.
“응? 왓슨, 왜 그래?”
“...”
리앤의 물음에도 유빈이는 들고 있던 포크를 그저 잘그락 거릴 뿐이었다.
아까부터 밥을 뜨문뜨문 들면서 어째 영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유빈이의 모습을 본 리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유빈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현관에서 들어올 때도 그렇고. 가상현실에서 나오자마자 결혼까지 단 번에 골인하고 나서 한 동안 얼굴에 웃음꽃이 만연했던 그의 얼굴에 요 근래 들어서 묘하게 그림자가 드리운 기분이 들었다.
정작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괜찮다고 답하기에 아무런 더 이상 묻질 않았지만, 리앤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유빈이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라고. 적어도 자신은 처음 오는 가족들 식사 모임 자리에서는 그래도 표정이 풀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리앤은 오히려 걱정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소령 진급한 거 이 자리에서 다 같이 축하해주려고 했는데 눈치가 보여서 그러지도 못하겠다.
차라리 대답이라도 해주지, 왜 그렇게 불편하게 그러고 있는지 물음에 대답이 없어 조금 서운하려던 찰나에, 유빈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빠.”
“응?”
“왜 날 갑자기 소령으로 진급시키신 거예요?”
“음?”
“어??”
“...”
유빈이의 한 마디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냥 일제히 식기들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다.
아빠를 향한 유빈이의 물음에는 부자지간 사이의 예의를 차린 듯 하면서도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유빈이의 물음에 아빠 유진은 유빈이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이내 손을 멈췄던 식기들을 다시 움직여 식사를 하며 답했다.
“필요하니깐 진급시킨 거지.”
“그렇다 해도 이렇게나 빨리요? 저 대위 단지 이제 겨우 2년 됐어요, 아버지.”
“정규조종사 뱃지 달고 탑건 스쿨 수료한 지는 이제 1년 반 정도 되었구요.”
“전시 상황이잖니. 너 뿐만 아니라 이번에 해군본부 인사처에서 좀 더 우수한 사람들 뽑아다가 필요한 만큼 진급시켰다.”
“그렇지 않아, 여보?”
“응?”
“아아... 그렇지, 그렇소, 서방.”
아빠가 작은 엄마 용을 향해 묻자 용 엄마가 대답했다.
용 작은 엄마가 해군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해군참모총장이기 때문이었으리라.
“필요해서 진급시켰다구요...”
“좋아요.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 왜 저는 아빠 전속부관으로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그럼? 그것도 해군본부 인사처에서 필요해서 결정한 사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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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챕터의 주제는 감마의 극복, 그리고 아빠와 아들의 이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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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실 친척이 없어서, 저렇게라도 대가족을 원했스빈다... | 24.03.09 22:2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