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나서야, 하준은 어째서 중앙사령부가 제독 부대와 화력 지원 부대의 증원에 지지부진해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한국군뿐만 아니라 다국적군이 벌이고 있는 작전의 성과를 가지고 파이를 독차지하려고 하였던 일선 지휘관들의 파렴치한 행각 때문이었다. 소위 “은하수” 라고 불리우는, 과거 20세기 대한민국의 군사독재를 이끌었던 신군부 하나회와, 21세기 초 계엄령을 빙자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하였던 알자회의 뒤를 잇는, 육군사관학교 출신들 중 독일 유학파 출신 장교들을 시작으로 모인 사조직 모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아마도 배알이 꼴렸을 거다. 비육사 출신 특전여단장이, 자국군 뿐만 아니라 소위 내놓으라 하는 전 세계의 특수부대원들을 한 곳에 모아서 작전의 진두지휘를 하였으니.”
“그래서 지원을 보내지 않은 거라고?!”
“...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아예 안 보내려고 했었다 그러더군.”
“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건 우리만 있었던 게 아니였어. 미국의 네이비 씰도 있었고, 영국의 SAS 22연대, 캐나다, 독일, 일본, 그 외에 수 많은 국가의 특수부대원들이 한 데 모여있었지.”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지원을 거부하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을 거다. 실제로 들어보니, 증원을 보내네 마네 하는 걸로 중앙사령부 내에선 타국의 다른 장성들과 언성이 오갔었다고 하더군.”
“근본이 심히 뒤틀린 자들이로군.”
“하마터면 외교 문제로 번지는 것을 넘어서, 자칫 잘못하면 한국군이 NATO에 강제로 탈퇴당할 수도 있을 중대한 문제였다.”
“그 은하수인가 뭔가 하는 조직은, 다국적군에 있는 것을 싫어했나?”
“어. 무지막지하게 싫어했지.”
“일단 1세대 슈퍼솔져 선발 과정에서 육사 출신들은 선발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졌었으니깐.”
“로비를 했다 그랬었지.”
“불법적으로. 자신들 출신들을 먼저 기용해달라면서?”
“그래.”
“그 일이 벌어지고 나서, 그 당시 증원 병력을 보내지 않았던 일선 장성급 지휘관들은 모조리 경질되어졌다.”
“그거 다행이로군.”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만약에 이게 그 당시에 한국군 단일로만 싸우던 작전이었다면, 그 덤터기는 모조리 내가 써야만 했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걔들은 그런 놈들이니깐.”
“만약은 어디까지나 만약일세.”
“어쨋건 자네가 덤터기 씌워지는 일은 없지 않았나.”
“그래, 그건 그렇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하들을 살려서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건 변하지 않아.”
“...”
그 뒤로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칸은 하준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을 치르고 나서도, 하준은 꽤나 많은 일을 겪었음을 알 수 있었다.
군인으로서는 제법 솔깃하면서도 흥미를 돋구는 재미진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영웅이라는 칭호까지 받게 된 민하준은, 모든 장교들의 염원이라 할 수 있는 포스타, 대장으로 진급하고 나서는 퇴역을 신청하려고 하였지만 매번 정권의 뜻에 따라 퇴역이 반려되어졌고, 덕분에 과거 제37대 합동참모의장이었던 정승조 예비역 대장의 뒤를 이어서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두 번째로 대장급 보직을 세 개 이상 걸쳐간 장성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 바로 그 이야기였다. 여기에는 약간의 뒷이야기가 있었는데, 원래는 육군특수전사령관 보직을 마지막으로 퇴역을 하려고 하였으나, 직후 해군과 공군의 특수부대들을 모두 한데 모아서 증창설된 합동특수전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영전과 동시에 진급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다시 재차 퇴역을 하려고 하였으나, 그 당시 정권의 뜻에 따라 대한민국 국군의 야전군급 사령부 중 하나인 제2작전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전보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진짜, 진짜로 퇴역을 하려고 하였으나, 또 다시 정권의 뜻이 그를 등용하고자 하여 붙잡는 동시에, 개인으로는 학창시절부터 지내온 오랜 학우이자, 외교적으로는 한미동맹의 살아있는 상징과도 같은 친구 유진, 러셀 벨리코프 미 해군 대장이 인도-태평양 통합전투사령관에서 제32대 합동참모의장 및 NATO군 군사위원회 의장 겸 최고사령관으로 영전하게 되어버리는 바람에 외교라인을 통해 인맥질(???)을 함으로서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영전하게 되어버렸다. 이 덕분에 하준은 참모총장은 안거쳐간 주제에 대장급 보직은 세 개나 걸쳐간 비육사 출신 4성 장군이라는 기이한 이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준은 자신을 더러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말하였지만, 냉정하게 제3자의 눈에서 보고 객관적으로 따지고 들어보자면 그 또한 만만찮에 능력과 주변 인맥들이 좋은 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미국의 4성 제독이 학창시절부터 친구였으니, 까놓고 말해서 국방부장관이 와도 그 부분은 함부로 건들 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 외에 들은 이야기로는, 지금의 유진의 아내인 복규리 양과 멸망 전에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장으로 진급하던 시절에 육군본부에서 정훈 홍보용으로 인터뷰를 했을 때 만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라던가,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재직 시절에 육사 출신 사조직인 은하수를 중심으로 하여 서울 도심 한 복판에 쿠데타가 일어난 일이라던가 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슬슬 퇴역을 바라보고 전역을 해야할 시점에, 제1차 연합전쟁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고, 거기서 그의 유일한 가족이자 안식처였던 동생을 잃었던 것까지. 이제야 와서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오르카 인류 저항군이 만들어지고, 지난 30년간 사실상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하준은 칸의 앞에서 말하였다. 혼자서 격동의 세월을 살아왔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하준이 살아온 삶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잘못만나, 어른이 되고 난 후엔 전쟁으로 인해 유일하게 남은 가족마저 잃게 된 그의 삶은, 혼자로 시작해서 혼자로 끝났다. 언제나 옆에 누구 하나 위로의 한 마디 건네주는 사람 없었고, 자신또한 그것을 바라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항상 혼자였다. 유일하게 돌아갈 수 있는, 자신이 혼자가 아닐 수 있게 해주었던 동생의 보금자리 마저도, 이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게되어졌다. 저항군에 합류하고 난 후에, 부인들을 만나고, 아들들을 만나게 된 이후에도, 하준은 늘 혼자였다. 그것은 물리적인 외로움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말을 할 사람들은 주변에 차고 넘쳤지만, 정작 진중하게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좀 더 생각해보면 진중하게 터놓고 이야기 하면 들어줄 사람은 많았다. 결과적으로, 이유야 어찌되었던 간에 결국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것은 민하준 본인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누군가 자신에게 물어봐주기를 간절히 바랬을 지도 모른다. 제 아무리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안 좋은 일이 겹경사로 생기면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우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주위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잘 캐치한다. 그렇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또한 단 한 번도 무슨 일 있냐는, 지나가면서 흔히 건넬 수 있는 안부의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조차 아니하였다. 말하지 않은 사람들의 잘못도 있겠지만, 방관하는 자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가장 잘못인 건 그러한 자신의 사정을 말하지 않고서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입 꾹 닫고 있었던 민하준이 가장 큰 잘못이겠지만. 하준도 이제와서야 그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듯, 칸에게 말하였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 먼저 알아차려줄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 참 이기적이지 않나.”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자네도 참 덜 컸구만.”
“덜 컸다라...”
“...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군.”
“부모에게 제대로 된 사랑 하나 받아본 적 없었고, 사랑을 받아야 할 때에 그 사랑 마저도 동새에게 주느라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기회가 없었다.”
“... 그래서 겁이 났다.”
“부인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이루고 나니, 그것이 행복하기보다는 겁부터 났다.”
“죽은 동생을 두고서 내가 이렇게 가정을 꾸려도 되는가 하는 죄책감이 앞섰다.”
“그런 죄책감이 들고 난 후에는, 과연 내가 제대로 된 사랑을 가족에게 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준...”
하준은 그러고 나서 한 숨을 푹 쉬고 난 뒤 말이 없었다.
그가 다시 말을 꺼냈을 때에는 그의 목소리에서 떨림과 약간의 물기가 조금 묻어나는 것 같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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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세이브 원고를 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챕터가 안 끝납니다!!!!!!!!!!!!!
하지만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보려고 합니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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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2.02 21: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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