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워줬던 그녀들은 모두 하나둘씩 쓰러졌다.
딱히 내 지휘에 문제가 있던 것도, 철충의 공세가 예상보다 더 강력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세력의 암살 기도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그녀들을 쓰러뜨린 건, 세월의 무게였다.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만들어졌다.
기억은 공유하고 있다. 이전의 자신은 사명을 다하고 사라지기에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그녀들은 아니었다. 유전자 씨앗이 있다면 바이오로이드는 얼마든지 양산할 수 있고, 기억 또한 공유한다.
하지만, 기억도, 유전자도 완전히 같다고 해서.
내가 느끼는 감각까지도 같을 수는 없었다.
제일 먼저 쓰러진 것은 그리폰이었다.
그녀는 험한 말을 쏟아내곤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아마도 점점 늙어가는 자신을 견디지 못한 것이었을테고,
본심을 숨기기 위한 언행을 토해냈던 것이겠지.
그렇기에, 그런 그녀를 존중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우린 그녀를 찾으러 가지 않았다.
십여년 후 그녀의 인식번호가 적혀진 기체 파편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 다음은 콘스탄챠.
그녀는 자신이 늙어감에도 불구하고 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세월을 함께한 그녀가 마침내 수명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을 때.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것 이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고맙다고, 이제까지 고마웠다고. 그 말만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어두워져가는 귀로 어떻게든 들은 걸까.
그녀는 마지막에 웃어주었다.
그 뒤로도 무적의 용, 불굴의 마리, 미호, 홍련, 뽀끄루, 쿠노이치 자매, 살라시아, 엠피트리테, 요안나……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쓰러져갔다.
그녀들과 같은 웃음을 짓고, 같은 말을 건네는 자매들이 그녀들의 자리를 채웠기에 삶이 조용해지지는 않았다.
……이 방 안의 침묵은 그러니까, 그런 주변과는 상관없는 것이리라.
"인간..."
조용한 방 안에 그녀의 목소리가 갸날프게 퍼졌다.
이미 나를 만나기도 전부터 100여년 간 살아온 아이다.
오히려 지금까지도 살아있던 게 대단한 거겠지. 어쩌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조금이나마 더 수명이 긴 걸지도 모른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아이는, 안대를 끼지 않은 쪽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가 미안해? 그렇게 물어보는 듯한 눈빛.
내가 무능해서 아직도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고, 그렇게 답하고 싶었다.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말은 LRL에게는 실례일 것이다.
아냐, 아무것도. 마음에도 없는 말이 대신 튀어나왔다.
노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앳된 모습이지만, 이미 기능이 다해가는 신체는 그녀를 옥죄이고 있었다.
언제 기동을 정지할 지 모른다고, 두 번째 닥터가 말했다.
세번째의 에이미는 LRL을 걱정했지만 나는 같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왠지, 같이 들어온다면 LRL이 마음 아파할 것만 같았다.
"응...어쩐지, 오늘은 더 이상해."
어제까지도 이상했지만 오늘은 더. 그 말을 덧붙일 기운도 없는지 삼켜버렸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사념이 되어 내 귓가에 울렸다.
어쩌면 내가 착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소리를 할 LRL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나 스스로가 자각할 정도로 최근 몇 년의 내가 이상할 뿐일지도 모른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어두운 방 안, 최소한의 조명 속에서 그 모습은 금방 꺼져버릴 것처럼 보였다.
나는 무릎 위에 놓여있는 손을 꽉 움켜 쥐었다.
"저기, 그렇게 슬퍼하지 마."
…그래. 어린아이의 모습과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어도, 그녀는 이미 ■■■년의 가동시간 동안 쌓인 경험이 있다.
내가 슬퍼하는지 아닌지 정도는 금방 알아챌 것이다.
나는 억지로라도 밝은 척을 했어야 했다. 한심하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그리폰도, 콘스탄챠도. 그런 모습을 보고 싶은 게 아냐, 사령관."
인간이 아니라, 사령관. LRL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런 모습은, 내가 당신을 만나기 전에 있던 등대에서, 거울 안에서 매일 보던 모습인 걸."
이번에는 사령관이 아니라, 당신.
그 호칭의 변화을 이성이 눈치챘지만, 감각이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손을 뻗어 LRL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자매들이 당신을 깨우러 온 것처럼, 당신은 이제 우리를 깨워줘. 이번에는, 당신의 세상에서……."
어떤 의미였을까. 나중에 다시 만나자?
기억을 가진 그리폰을, 콘스탄챠를, 그리고 LRL의 '새로운 자매'를, 모든 전쟁이 끝난 세상에서 눈 뜨게 해달라는 거였을까?
지금 당장 달려가, 이 기억을 가진 LRL의 유전자 씨앗으로 새로운 LRL에게 대답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발이 바닥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내 눈을 멀게한 건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잠수함은 바닷 속이지만, 어쩐지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LRL. 소라고둥 속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려."
"짐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다 알고 있느니라! 그건 소라고둥 속에 바다의 보물이 들어있기 때문이 아니더냐!"
"땡, 그건 귓속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류의 소리가, 소라고둥 안에서 증폭되어 돌아오기 때문이야."
…언젠가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저 꿈 속에서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소라고둥이 들려주는 파도소리에 심취하여, 자신의 추억 속에서 헤엄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평화로워진다면.
이 추억조차도 다시금 그녀들과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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