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0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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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리가 늦진 않은 모양이군요”
“놈들, 딴 데 돌아보고 오느라 늦는 모양이지. 정찰대니깐 여기저기 둘러보고 다니고 있을 거야”
“흠, 그렇더라도 이 정도로 숨겨져 있으면 잘 하면 지나칠 수도 있겠는데요”
애니가 말한 마을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계곡 사이에 숨겨진 작은 해안 거주지는, 원래는 광산 시설이거나 어떤 장비를 제조하는 공장단지인 듯했다. 꽤나 절묘하게 가려져 있어서, 아우로라나 발키리도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칠 뻔했다.
“여긴 옛날에 탄광이었어. 난 이 시설의 보안관이었고.”
“‘그때는’ 말이지, 전(前) 보안관 현(現) 노상강도 양”
아우로라의 차가운 말투에 애니는 툴툴거렸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털털거리는 - 그렇다. 아우로라는 결국 현가장치를 수리하지 못했다 - 쉐보레가 마을로 진입했다. 조용하던 듯하던, 버려진 멸망 전의 시설물들에서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리더니 하나, 둘, 사람의, 아니 바이오로이드의 형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략 쉰여 명쯤 되는 인원수였다. 대부분 더치걸들이었고 거기에 일부 다른 기종의 바이오로이드들도 섞여 있었지만, 군용 바이오로이드는 없었다.
‘꽤나 관리가 잘 되어 있네’
그것이,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이 작디작은 마을을 살펴본 아우로라의 첫인상이었다. 멸망 후에 남겨진 자그마한 거주지 치고는, 잘 숨겨져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꽤나 멸망 전의 옛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한 켠에는 아마도 시설을 수리하기 위한 예비 자재였을 철봉 더미와 벽돌들이, 그리고 마을 끝자락 저편에는 석탄을 액화하는 시설과 그렇게 만든 액화석탄을 저장하는 사일로가 보였다.
“더치걸 애들이 석탄을 캐오면 저기서 바로 액화했었지. 굳이 운송비를 들일 필요는 없었으니까.”
“오. 지금도 남아 있어?”
“꽉 차 있어.”
“흠 안전 문젠 없고?”
“매일매일 주민들이 관리해. 질좋은 연료는 지금 세상에서도 필요하니깐....”
애니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아우로라는 여기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액화시설 상태가 꽤나 괜찮은 걸로 봐서는 아직도 작동하는 것 같다. 잘 하면 트렁크에 그득그득 연료를 담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흠, 좀 어수선하긴 해도 갖출 건 다 갖췄네”
“그치? 우리 모두가 가꾼 마을이라구...우체국에, 내가 지은 교회에, 으음, 사실 저기 쌓여 있는 철봉들은 처치곤란이지만...”
“되게 자랑스럽게 설명해주는 건 고마운데, 너 지금 우리에게 잡혀 있는 거거든?”
“아차”
액화시설과 가스를 저장하는 사일로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본래는 마을이 아니고 탄광 시설물들이었을 테고, 그래서인지 군데군데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산업장비나 공사판에서나 볼 법한 자재들이 흩어져 있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 여기는 꽤나 번듯한 거주지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아마도 과거에는 탄광시설의 기계장치를 수리하는 기계실이었을 정비소를 보자 아우로라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감추기 힘들어졌다. 운전대 건너편의 주민들에게 그런 표정 지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일단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곤 있었지만.
“자아, 그럼 어쩐다...”
“저분들이 공격적으로 나올 것 같습니까?”
“글쎄. 일단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고”
일단은 난데없이 쉐보레를 타고, 자기들 보안관을 몪어 온 이 불청객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보다는, 이 생소한 손님에 대한 당혹과 걱정이 섞인 작은 웅성거림이 섞여왔다. 그 태도에 아우로라가 의외라는 듯 어꺠를 으쓱했다.
“마을 보안관이란 양반이 강도여서 여기도 도둑소굴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우리 애들을 모욕하지 마!”
얌전하던 애니가 격앙된 어조로 으르렁거리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차 아래에 숨겨둔 모신나강을 쥐고 있던 발키리가 돌아보았다. 그런 그녀들에게 애니가 시선을 피하며 - 어쨌든 그녀가 떳떳지 못한 무장강도였던 건 변하지 않으므로 - 작게 중얼거렸다.
“나...난 썩어빠진 강도일진 몰라도...나머지는 상관없어. 다들 좋은 녀석들이야.”
“하. 어지간히 정이 깊은 모양이네. 어디 당신 친구들이 하는 거 보고 말하자고”
자기들끼리 불안하게 조곤거리며 웅성대는 더치걸들 사이로, 그 아이들보다는 더 어른스럽고 키가 큰 형체가 걸어나왔다. 배달 일을 사실상 그만둔지는 꽤 여러 해 된 것 같은 차림새였지만 여전히 모자에 미국 우체국 마크는 달고 있는 익스프레스76이. 이 난데없는 불청객에 당황한 티가 역락한 채 마을에 다다른 쉐보레 앞을 막아섰다. 아무래도 그녀가 애니가 없을 때는 마을을 책임지는 부촌장쯤 되는 것 같았다.
“....맞아. 원랜 그냥 마을 우체부였지만.”
자기 짐작이 맞아떨어지자 아우로라는 씨익 웃었다. 그런 그녀 앞에서 익스프레스가 어물거리다가, 마침내 자동차 유리판 건너편에서 부루퉁하게 양손이 묶여있는 애니를 발견했다.
“어...대장? 거기서 뭐해? 당신들은 누구야?”
아우로라가 빙긋이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래서야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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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처에 대한 이야기
1) 삽입된 곡은 게임 '엔들리스 레전드(Endless Legnd)' (2014)의 OST, "Nomadic city"입니다. 서부풍은 아니지만, 황야의 조용한 마을을 표현하기에 적절하겠다 싶어 가져왔습니다.
1. 잡담
1)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신 길게 썼으니 오늘(금요일)은 발키리 편을 두 편 올리겠습니다.
제 서투른 글들을 항상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덧글과 추천이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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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이 시리즈는 서부극 분위기(원안에서는 발키리도 워울프였을 정도로요 ㅋㅋㅋㅋㅋ)를 내려다 보니...애니가 빠질 수가 없죠. 실제로 북미가 주 활동무대였으기도 했고. | 21.07.16 12:5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