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04689?
전편젤다입니다.
전편 젤다 모음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85592
칸 단편 2부 겸 3부입니다. 두 챕터 분량이니 느긋하게 즐겨주십시오.
손가락아파요
초간단 인물소개
사령관
의회의 늙은이들이 하도 개소릴 해대서 제대로 화가 난 모습. "이 새끼들은 나보다 한참 어린 것들이 말버릇 좀 보소"
그래도 명색이 '높으신 분'인 만큼 주먹을 쥐고 두들겨패진 않는다. 명분 없는 경질 역시 하지 않는다.
상상도 못한 독설로 정신을 갈아버리기는 하겠지만. 명분이 있다면 경질시키겠지만.
가족들 중에서는 그나마 마음을 놓고 함께 다닐 수 있는 칸을 만나게 되어 내심 안도한 상태.
좋아하는 것은 평화로운 밤. 싫어하는 것은 (자체검열)당하는 것.
신속의 칸
[이 시대의 참된 지도자상] 설문조사에서 영광의 1위를 달성한 트루리더. 투표는 탈론페더가 기획했다. '인간' 부하들 사이에서의 인기도 상당하다.
정작 본인은 인기에 대한 자각이 없기 때문에 왜 다들 자신만 보면 웅성거리는지 의문.
최근 한 남성 군인에게 고백받은 적이 있지만 부드럽고도 정중하게 거절해 상처를 주지 않아 전설이 또 하나 늘었다. 특무부대 대령.
좋아하는 것은 전우들과의 잡담. 싫어하는 것은 딱히 없다.
레이(짤은 대충 줏어옴)
20대 중반즈음 되니 어른스럽다는 말이 슬프게 들리는 사령관과 칸의 아들.
칸의 아들인 만큼 미청년이라고 불러도 좋을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체격이 하도 굴강해서 얼굴과 미스매치. 본인에게도 고민거리다. 근육량을 줄여야 하는 건가...
좋아하는 것은 (자체검열) 싫어하는 것은 딱히 없다.
세이렌
사령관이 몹시도 예뻐해 주는 소녀. 순수한 시골 처녀 같은 심성을 가진 마음씨 착한 부함장님.
과거 용이 자신의 옷을 빌려갔을 때 몰래 용의 군복을 입어 본 적이 있다. 소매가 많이 남았다...
레이와 같은 함에서 근무한다. 이래저래 챙겨주는 듯.
좋아하는 것은 사령관님의 칭찬. 싫어하는 것은 갑자기 갑판에 뛰어든 날치.
탈론페더
사이트 운영자. 무슨 사이트인지는 말할 수 없다. 사실 사령관 직속 정보실장이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근무를 팽개치고 사령관을 도촬하다 걸려 징계를 먹은 횟수는 이미 셀 수도 없다. 일은 잘하는데...
좋아하는 것은 촬영. 싫어하는 것은 원인불명의 고장.
------------------------------------------------------------------------------------------
칸과 시간을 보낼 때면 신기하게 편안하다.
아, 절대 다른 아이들과의 시간이 불편하단 의미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유독 칸 옆에 있을 때면 몸에서 힘이 빠진다... 그런 느낌이라는 거다.
그런 거 있잖나.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
나도 모르게 어께를 바짝 펴고 목을 뻣뻣이 굳히고 그럴 때가 있다는 말이다.
칸과 있을 때를 비유하자면, 그래.
다정한 큰누나 내지는 어머니와 있는 그런 느낌.
군대에 있을 땐 누구보다 듬직한 동료 중 하나인 늠름한 대장님이지만, 바깥에서는 신기하게 분위기가 일변한다.
요즘들어 이런저런... 의회에 호출당해 나보다 한세기는 덜 살았을 어린애 주제에 쫑알쫑알 떠드는 의원의 헛소리를 듣거나 신뢰하는 호위에게 목 졸려 죽을 뻔 하거나 옛날에 날 죽이려는 계획을 짠 주모자가 사실은 누명을 쓴 거였다거나, 2대놈 즉 내 제자에게 sos요청을 받아 일을 돕는다거나 하는 등 지쳐버린 내 등을 토닥여 주는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빤히 보고 그러나?”
“응? 어.. .미안.”
아무래도 생각하느라 나도 모르게 칸 쪽을 응시했던 모양이다.웃으며 얼버무리고 새삼스럽게 말했다.
“... 벌써 초여름이네. 4월 말이라... 작년 크리스마스 파티가 엊그제 같은데.”
“그러게 말이다. 최근 들어서는 매일매일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
“아, 나 그런 말을 봤는데. 10대 때는 인생이 시속 10킬로미터로 느껴지고, 20대는 20킬로미터, 30대는 30킬로미터... 그렇게 느껴진다고.”
“하하, 그럼 우린 모두 과속운전 중 아닌가?”
그렇게 되는 건가 하며 킥킥 웃고는, 흘끗 칸의 옆모습을 보았다.
칸은 슬슬 여름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날씨 탓인지 평소 잘 입고 다니는 모래색 트렌치코트 대신 하얀색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여름으로 넘어가면 아까 본 티셔츠에 숏팬츠 차림으로 들어가겠지?
아무튼. 다른 대장들과 비교해도 스타일이 좋은 편인 칸은 원래 뭘 입어도 잘 어울린다.
...다들 미인이라 뭘 입어도 예뻐 보인다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유난히 옷발이 잘 받는단 말이다.
한데 묶어 뒤로 넘긴 갈색 머리카락이 걸음에 맞춰 흔들거리는 걸 눈으로 ↗다가, 문득 칸의 회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음흉한 시선이 느껴지는군.”
“엑.”
즉시 날아드는 날카로운 안광에 움찔한 것도 잠시,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음흉하다니. 하필 비유해도 곡 그런 비유를...”
“그럼 끈적끈적하다고 표현하도록 할까.”
“...”
너 그럴 거야, 자꾸?
물론 가끔 특정부위에 시선이 가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가끔일 뿐 지극히 건전한 생각만 했는데 말이야.
“농담이다. 그대가 날 보겠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어디 있나.”
“농담을 좀 농담처럼 해 줄래?”
웃지도 않고 목소리도 냉담하면 착각할 수밖에 없거든?
그런 내 변명은 가볍게 묵살당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했다면 그 정도는 눈치로 알아차려야 정상 아닌가?”
“...”
깨갱.
꼬리를 내린 내 옆에서 시원스러운 걸음걸이로 걷는 칸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 걸 보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나저나 여기, 진짜 오랜만에 들어오네.”
“음.”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옛날 내 부탁을 받은 세레스티아가 특별히 만들어 준 산책로였다.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조성된 커다란 호수, 그 주위를 둘러싼 생명력 넘치는 산책로, 호수 한가운데로 비쳐드는 햇살이 일렁이는 수면에 비쳐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이곳은 옛날 칸과 내 사이에 경사가 났을 때 자주 찾아오던 곳이었다.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며 수많은 절경을 보아 온 내가 열 손가락 안에 꼽는 경치이기도 하다.
지금도 경치를 즐기는 노부부나 휴가를 만끽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는 가운데, 나는 옛날 일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옛날엔 정말 많이 걸었는데. 기억나? 저기 저쪽에 우리가 새집 만들어 놓은 것도 있을 텐데.”
“그게 벌써 20년도 더 전인데 남아있을까?”
“그것도 그런가? 아, 맞아, 여기서 저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우리가 정원 만들어 놓았었잖아. 기억나?”
“어떻게 잊겠나? 내가 직접 해 보자고 했던 건데. 아직도 남아있나?”
“응. 그 뒤로도 정성들여서 관리해 줬대. 여기 산책로는 보이는 대로 관광명소가 되어버렸지만, 거기는 가는 길도 찾기 힘들잖아? 그래서 아는 사람이 없다나 봐. 비밀의 정원 같고 낭만적이지 않아?”
“흐음... 그래? 하긴 우리도 찾기 힘든 길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더하겠지. 흐음... 한 번 가 볼까, 오랜만에.”
칸 역시 추억이 가득한 정원에 들러 보고 싶었는지, 말을 꺼내자마자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나는 “좋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산책로에서 조금 벗어나 지금 위치를 체크하고,
“어디 보자... 여기서 좀 더 올라가서...”
두리번거리며 이정표를 찾는 나였지만, 나보다 칸이 더 빨랐다.
“찾았다. 이거지?”
“응? 오. 맞아. 이거다. 어디... 이쪽이네.”
이정표라는 건, 땅에 박힌 조그마한 갈색 말뚝이었다. 주위에 무성한 나무줄기들과 색이 비슷해 잘 눈에 띄지도 않고, 무엇보다 하나를 찾았다고 나머질 찾는 게 쉬운 것도 아니다.
당시 ‘비밀의 정원’ 이라는 단어에 묘한 집착을 가졌던 내가 떠올린 골치 아픈 이정표였다.
이정표에 새겨진 화살표를 따라 다음 이정표를 찾고, 다음을 찾고... 그러길 약 15분 정도.
“다 와 가는 모양이네.”
가까워질수록 색이 갈색에서 적갈색으로 바뀌어 간다는 걸 떠올리고 선명한 적갈색을 띄기 시작한 이정표를 따라 차박차박 숲 속을 건너갔다.
그리고 눈앞에 정원이 있음을 알리는 하얀 간판-관리를 정맖 잘 해 두었는지 때가 전혀 타지 않은 색이었다- 을 본 직후,
“!”
“왜 그러나?”
순간 귀를 종긋 세우며 멈춰선 날 본 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똑같이 표정을 굳혔다.
“...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나에게도 들렸다만...”
울음소리.
이곳은 나와 내 가족들 외의 아는 사람이 지극히 한정적인 곳이다.
최소한, 내가 목소리를 외울 정도로 친근한 상대가 아니라면 이곳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꼭꼭 숨겨져 있는데다, 이정표를 따라 오지 않으면 곳곳에 놓인 출입금지 팻말이 대신 반겨 주기 때문에 굳이굳이 들어오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칸, 누군지 알겠어?”
“아니, 나도 모르겠군.”
...지금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내가 기억하는 누구의 것과도 달랐다.
어린아이 같은, 톤이 높은 울음소리였지만... 안드바리도 LRL도 코코도 아니고... 누구지?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울음소리가 흘러나오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용히 다가가 누구인지 확인하려 풀숲 너머로 고개를 들이민 순간.
“꺄악!!”
“커흑?!”
울고 있던 누군가가 비명과 함께 내 뺨에 풀스윙 따귀를 날렸다!!
내 가족들의 따귀보다 아프면 아팠지 결코 덜하지 않은 그 불시의 일격에 내가 나가떨어지건 말건, 칸은 멈칫하고는 아이의 양옆에 선 누군가를 보았다.
직후, 내가 오해할 리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뭐 하세요?”
“...엥?”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짙은 암갈색 머리카락과 눈동자. 전체적으로 어머니를 따라간 외모의 미청년이었으나, 장대한 골격에 더해 반팔셔츠 아래 드러난 다부진 팔과 옷 너머로 선히 보이는 단련된 근육들의 라인이 평범한 청년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레이.
올해로 24살. 해군 중령. 고작 20대에 영관급에 ‘제 실력만으로’ 올라선 나와 칸의 자랑거리.
즉, 현세대의 장남이었다.
처음에는 날카로워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상냥한 인상을 주는 눈매를 살짝 늘어뜨린 레이에게, 나는 당황해 말했다.
“...레이? 넌 지금 항해 도중 아니었냐?”
“저~기 한 1300킬로쯤 떨어진 바다 위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긴급호출 거셨잖아요.”
아.
레이도 특무부대지, 참...
“어, 거... 미안하다.”
“아뇨, 뭐.. 사실 전 할 일도 없었고. 아무튼 그 뒤에 휴가 낸 사람들 많은데, 모르셨어요?”
“아니아니, 그걸 물어본 게 아닌데.”
게다가, 레이 옆에는 내가 무시할 수 없는 소녀의 모습까지 있었으니.
“...사령관님?”
일렁이는 긴 생머리는 저녁노을에 물든 금발.
일전에 내가 선물해 주었던, 꽃 장식이 달린 챙 넓은 밀짚모자 아래서 깜빡이는 홍옥색 눈동자.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하늘색 원피스까지 합쳐져 호수의 요정님 같은 분위기를 내는 소녀.
다름아닌 세이렌이었다.
...왜 둘이 같이 있지? 하고 눈을 일자로 가늘게 뜬 내가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왠지 침대 밑에 숨겨둔 보물상자를 들킨 것 같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인 세이렌이 선수를 쳤다.
“사령관님, 좋은 아침이예요! 별 일 없으셨죠? 아, 칸 대장님도 안녕하셨어요?”
“으음? 세이렌인가. 나야 늘 똑같지. 자네야말로 잘 지냈나?”
“저도 별 일 없었죠. 레이를 신경쓰느라 조금 일이 많긴 했지만.”
“하하. 그러고 보니 레이와 같은 배였지? 새삼스럽지만 늘 폐만 끼치는 것 같아.”
“어머니... 저 모범군인 표창 받았습니다...”
...끼어들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세이렌을 꼭 끌어안아 줄 타이밍도 놓쳐버렸다.
쓰읍.
마구 쓰담쓰담해줄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멍하니 하는 나였지만, 셋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시선을 다시 아래로 돌리니 ‘엥?’ 하고 얼빠진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으, 으으으...”
“...에엥?”
나이는 7,8살 정도일까. 작은 체구. 선명한 금발에 청록색 눈동자를 가진, 신인류의 피가 섞였는지 벌써부터 주위의 시선을 끌 만한 단아한 외모의 소녀였다. 작게 떠는 가녀린 몸은 무언가 두려움을 느끼듯 자잘하게 떨고 있었고. 청록빛 눈동자에 맺힌 눈물은 소녀가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잠깐, 아까 그 따귀를 얘가 날린 거야, 혹시?
내가 따귀를 맞은 왼뺨을 매만지며 소녀를 보자, 소녀는 내 시선에 작게 ‘히익’ 하고. 몸을 움츠렸다.
“어이, 아들.”
상황설명을 하라는 뜻을 담아 쭈그려앉은 자세 그대로 고갤 들어 레이를 부르자, 레이는 ‘아’ 하고 소녀 옆에 쭈그려앉았다.
“미아예요. 어머니와 같이 왔다는데, 아무래도 중간에 떨어져 버린 것 같아요. 어~ 겁내지 않아도 돼. 이 분은 그러니까...”
내가 바깥에서는 눈에 띄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아는 레이가 말을 고르기에, 나는 잽싸게 말했다.
“안녕. 이 오빠의 아빠란다.”
“아빠?”
어라?
한순간. 정말 짧은 한순간이지만, 소녀의 표정이 스치듯 바뀌었다가 돌아왔다.
바로 옆의 레이는 눈치채지 못한 건지, 부드럽게 웃으며 소녀를 다독였다.
“그래. 우리 아버지셔. 무서운 분 아니니까 겁낼 필요 없어.”
“안 무서워?”
“응. 안 무서워.”
소녀가 따라하듯 되묻자, 웃으며 대답한 레이 옆에서 세이렌이 빙긋 웃었다.
“언제나 다정하시고, 챙겨 주기 좋아하시는 분이세요. 이 언니가 존경하는 분이시죠. 인사할까요?”
세이렌이 부드럽게 말하자, 소녀는 주저하면서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방금 그 표정은 내가 잘못 본 거였나?
머릿속 한구석에 방금 본 표정을 치워두고,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예의 바른 아이구나. 이름을 물어봐도 괜찮을까?”
그러나 내 웃음은, 순식간에 깨졌다.
소녀는 눈치를 보듯 주저하며 말한 것이다.
“리코리스. 예요.”
자신의 이름을.
“-”
내 표정이 많이 무너졌는지, 칸이 움찔하고는 나의 안색을 살폈다.
“그래... 리코리스... 잠깐만.”
표정을 되돌릴 수 없어 황급히 아래쪽 풀잔디에서 꽃을 찾는 척 하며 고개를 숙이고 표정을 숨겼다.
리코리스.
왜 그런 이름을?
굳이 딸에게... 아니, 자기 자식에게?
동요라기보다는 당혹에 가까운 잠깐의 시간 이후, 표정을 다잡은 내가 그 사이 엮은 꽃팔찌를 주며 빙긋 웃었다.
“리코리스. 로구나. 알았어. 리코라고 불러도 되겠니?”
“네? 네에...”
리코리스, 리코를 제외한 셋은 내 이상을 알아차렸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손을 내저어 자중에 물으란 뜻을 전했다.
“그래서... 레이, 세이렌. 너희는 어쩌다가 이 애를...”
“아, 그게... 세이렌 씨하고 잠깐 산책 중이었는데, 이 애가 울고 있는 게 보여서... 어머닐 찾아주려 했는데 말이죠. 아직까지 찾질 못해서. 울기 시작한 이 애를 다시 달래 주려고...”
“아하.”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예를 들어 왜 세이렌과 산책을 하고 있었는지 등등. 하지만 분위기상 묻지는 않았다.
“으음. 미아란 말이지... 리코. 혹시 어머니를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하니?”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난감하군.
원래 미아가 되었을 때의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는 것인데...
“으음... 리리스~”
무의식중에 그녀를 불렀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 맞다. 리리스도 휴가 중이지. 지금.
거의 모든 면에서-이런 상황에서도-의지되는 그녀지만 하필 곁에 없을 때...
“?”
“응? 아. 대단한 언니를 부르려고 한 거야. 그 언니라면 금방 리코의 어머니를 찾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정말요?”
내 말을 듣고 소녀의 표정에는 화색이 감돌았지만, 이어진 말을 듣고 다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근데 미안. 그 언니는 지금 올 수가 없어...”
“...”
“지, 진짜 미안. 리코? 꼭 어머니에게 데려다 줄 테니까...”
울먹이기 시작하는 소녀. 나에게 집중되는 눈초리들. 몇 년을 살아도 긴장되는 ‘어린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 상황에 내가 초긴장상태에 돌입하자, 그런 날 보다 못한 칸이 나섰다.
“리코리스.”
자연스럽게,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던 소녀를 안아올리곤 조용히 다독여 준다.
“저 남자는 보이는 것보다 대단한 사람이란다. 분명 네 어머닐 꼭 찾아 주실 거야.”
“...정말요?”
“그럼. 당연하지. 으음... 아저씨란 호칭으로 괜찮겠나?”
마지막 말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인정사정없는 그 호칭에 내가 ‘어저씨...’ 하며 고개를 탁 꺽으며 힘없이 웃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리코는 황급히.
“오, 오빠... 오빠라고 할게요.”
하고 내 눈치를 살폈다.
“...그렇다는군. 저 오빠는 얼빠진 것처럼 보여도 항상 철두철미한 사람이야. 분명 지금도 어디서 어떻게 찾아 줄지 전부 생각하고 있을 걸?”
...나는 황급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이는 ‘아, 그러고 보니’ 하며 말했다.
“아버지, 처음 발견한 곳은 산책로 중간이었어요.”
“그래?”
산책하다가 아이에게서 시선을 땐 사이 잃어버린 건가?
하지만 이 호수 주변의 산책로는 외길이다. 다른 곳으로 셀 가능성은 없다.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호수를 한 바퀴 돈다는 생각을 먼저 할 텐데...
“레이, 호숫가는 다 돌아 봤어?”
“4바퀴는 돌았죠.”
근데 그 사이에 찾지 못했다는 건 호숫가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이야기일 텐데.
나는 살짝 표정을 찡그리고 잠시 생각하다, 칸에게 안겨 있는 소녀에게 물었다.
“어머니 전화번호랑 주소 같은 건 기억하니?”
“...모르겠어요.”
...모른다고?
나는 혹시나 싶어 아이가 걸고 있는 목걸이나 팔찌가 있나 확인해 보았지만, 방금 전 내가 주었던 꽃팔찌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곤란하군.
“혹시 오늘 어디어디 돌아봤는지 기억하니?”
“어, 음. 여기랑, 꽃밭이랑, 새가 많은 곳이랑...”
여기를 빼면 전부 어디에나 있는 것들인데...
이럴 때 리앤이 있었으면 상상도 못 한 추리로 어디가 어딘지 알아냈을 텐데...
음...
나는 리앤의 흉내를 내듯 소녀의 옷소매나 신발 등 사소한 부분을 주의 깊게 살폈다.
“...혹시 하얀 꽃이 많았니?”
“으음...”
“음... 이렇게 생긴 꽃이야.”
알기 쉽게 수첩을 꺼내 끼적끼적 프리지어 그림을 그려 보이자,
“아! 맞아요! 이게 엄청 많이 피어 있었어요!”
“오케이. 서족 화단.”
하나 건졌군.
평소에 리앤에게 이런저런 수업을 들어 보길 잘했어.
아무튼, 칸의 꽤 한다는 듯한 시선을 받아 의기양양해진 내가 말했다.
“새가 많았던 곳이라... 이 근처에 있는 새라면.. 음...”
몇 가지 더 물어보며 얼추 이런저런 장소 파악을 마치고,
“일단 미아보호소 쪽으로 가 보자. 방송을 내보내도 되니까 한 1시간 정도 기다려 보고...”
“으음, 하지만 방송이 닿지 않는 곳도 있지 않나요? 숲 쪽은 동물들도 있고 해서 스피커가 없잖아요.”
“짧은 간격으로 보내다 보면 듣겠지. 그래도 못 찾으면 이쪽에는 탈론페더도 있고.”
아마 그 전에 찾을 수 있겠지 하고 어깨를 으쓱한 나였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다.
레이가 발견했다는 이 미아가 우릴 얼마나 휘두르고 다닐지.
-----------------------------------------------
“저기~ 리코리스 어머님~ 리코리스 어머님 안 계십니까~?”
“미아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미아보호소로...”
“이분이야? ...아니야?”
“...흑.”
““““아아아앗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꼭 찾아줄거니까!””””
얼추 이런 소동이 수십 번씩 반복되는 오후가 지나고...
“일났다...”
그로부터 약 7시간.
나는 어느새 뉘엿뉘엿 져버린 해를 원망하며 이마를 감싸쥐었다.
거의 반나절 넘게 매달렸는데도 어머니를 찾아주기는커녕 어머니의 머리카락도 찾지 못했다.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나에게, 레이가 걱정스레 말했다.
“어쩌죠? 벌써 해가 져 버려서 더 찾기 힘들어질 텐데.”
“그러게...”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야경을 보러 오는 인원도 상당하다.
“칸, 탈론페더는 아직도 연락 안 돼?”
“미안하다. 뻗어 있는 모양이야.”
이럴 때 가장 든든한 녀석은 아직도 기절 상태고.
대체 얼마나 마셔댔길래 심야도 아니고 벌써 뻗어?
지끈거리는 머리를 끄으응 소릴 내며 부여잡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하아...”
나는 칸에게 업혀 잠든 소녀를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7시간 가까이 돌아다닌 피로가 쌓였는지, 아니면 그냥 긴장이 풀려 버린 건지. 칸의 손을 잡고 오종종 따라다니던 소녀는 이젠 업혀서 잠든 상태였다.
찾아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이 꼴이라니... 아니, 7시간을 찾아헤맸는데 아직도 찾질 못했다고? 아무리 이곳이 넓다지만 그게 가능한가?
루피너스는 하나의 도시인 동시에 하나의 마을이다. 시골마을의 이장 아저씨가 아침 방송을 하듯 어디선가 방송이 울리면 도시 전체에 같은 방송이 울린다.
게다가 미아의 경우, 관광지라는 특성과 맞물려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발생하기 때문에 방지 대책도, 발생시 대처 매뉴얼도 훌륭하게 짜여 있다. 루피너스에서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만에 하나 잃어버렸다 해도 1시간 내로 찾을 수 있을 텐데.
...엇갈렸다 해도 이렇게까지?
게다가 이 아이는 부모의 주소도 전화번호도 자신이 묵을 숙소도 모른다고 했다.
“사령관님, 어쩌죠? 방송도 몇 번이나 내보냈지만, 찾아오시는 분도 없었잖아요.”
그렇다. 우리는 3시간 가까이 보호소에 앉아 리코리스를 달래며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러나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직원이거나 다른 아이의 어머니들뿐. 결국 우리는 방송을 듣지 못하는 지역에 있는 건가 생각하고 다시 나오게 된 것이다.
...아니,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렇다..
긴 간격도 아니고 짧은 간격으로 3시간 동안 반복된 방송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방송설비가 제대로 되어 몇몇 숲 속을 제외하면 어디서든 들리는 그걸?
아이가 사라져서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있을 어머니가?
단순히 방송이 들리지 않는 위치에서 머물며 아이를 찾았나?
아니면 소릴 듣지 못하는 다른 요인이 있었나?
그게 아니라면...
아니, 아니다. 섣부른 판단은 내리지 말자.
끄응 하며 신음한 나에게, 칸은 등에 업은 소녀가 불편해하지 않게 자세를 바꾸며 말했다.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나. 어머니 쪽이 걱정하고 있긴 하겠지만 이 애도 많이 피곤해하고 있잖나. 탈론페더 녀석을 깨워서 찾아봐도 될 거다. 게다가 저택에는 그레이스도 있잖나? 아이를 잘 봐 줄 거야.”
“음... 어쩔 수 없지. 시간도 늦었으니, 일단은 그렇게 하자. 레이, 세이렌. 너희는 어쩔래?”
“...뭐어... 사실 3시간 전부터 친구들이랑 약속이 잡혀 있었지만요... 이미 늦기도 했고. 그냥 따라갈게요.”
“저도요. 이제 와서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없고요.”
레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세이렌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레이는 피했지만- 칸에게 말했다.
“일단 깨우자.”
“그래... 리코리스?”
“...응...”
칸은 업혀 있던 소녀를 슬쩍 몸을 틀어 안는 자세로 돌아간 뒤, 아이를 어르듯 말했다.
“리코리스. 미안하지만 우리하고 하루만 더 있어야 할 것 같구나.”
“...엄마는...?”
“미안하다. 아직 찾지 못했어.”
잠깐만.
방금 그 표정. 뭐야.
한순간이지만, 아까와는 달리 착각이라고는 여길 수 없을 정도의 시간...
레이와 세이렌은 눈치채지 못한 듯 했지만, 칸은 움찔하더니 시선을 돌려 날 보았다.
뭐지?
그 표정은 뭘 의미하는 거야?
한순간의 의문은 소녀가 울먹거리기 시작하면서 날아가버렸다.
“...우... 흐끅...”
“지...진정해, 리코! 못 찾는다는 말이 아니니까!”
“일단 저희랑 같이 가요. 걱정 말아요. 곡 찾아 줄 테니까요! 꼭!”
울먹이는 소녀를 레이와 세이렌이 다급히 달래고, 칸은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하늘도 어두워졌고... 게다가 리코리스, 배가 고프진 않나? 많이 피곤하기도 할 거고. 하룻밤만 우리와 쉬었다가, 내일이 되면 어머니께 가자. 괜찮겠나?”
“...진짜? 정말?”
“물론이죠!”
“당연하지!”
쓴웃음지은 내 눈앞에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세이렌과 레이.
마찬가지로 쓴웃음을 지은 칸은 리코리스를 달래듯 말했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리코리스가 먹고 싶다고 하는 걸 만들어 줄 수 있을 거야.”
“...정말요?”
“당연하지. 가능하겠지?”
“음? 어어. 소완이 따라오긴 했지. 부탁해볼게.”
리코리스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주저주저하다가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난 돈가스 먹고 싶어.”
“오케이 접수.”
“정말로 해 줄 거야?”
“걱정 마.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일 거야. 요리사 언니가 한 명 있는데, 진~짜 잘 하거든.”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였지만...
‘...너무 얌전해.’
라고. 한편으로는 조용히 소녀를 관찰하고 있었다.
원래, 어머니와 떨어졌다는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울며불며 난리를 피워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게 더 당연한 반응이리라.
그런데 이 아이는...
‘...포기가 빨라.“
어린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집을 피우는 일이 없다.
게다가 소란을 피우는 법이 없고 얌전하며, 무엇보다... 아니,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라...
아니...
아니야. 너무 나갔어.
“아버지.”
“응?”
문득 레이가 말을 걸어, 나는 순식간에 생각을 접고 고갤 돌렸다.
레이는 가까이 붙어서는 리코리스가 듣지 않게 하려는 듯 작게 속닥였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어머니 쪽이 찾고 있을 텐데요. 괜찮을까요?”
“아...”
나는 잠깐 고민했다가,
“...레이, 내 생각일 뿐인데...”
내 추측을 조심스레 말해 주었다.
레이는 순간 당혹이 다분히 섞인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입술을 깨물고 무언갈 고민하는 듯 하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예상하셨다면... 그럼 문제없겠죠.”
“예상이라기보다는 억측에 가깝겠지.”
“어머니께는 말씀드리셨나요?”
“아니. 하지만 칸은 이미 나보다 더 정확하게 예상하고 있을 거야. 네 어머니잖냐.”
내 말에 레이는 ‘그건 그렇겠죠’ 라며 뒷통수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 예상대로라면 내일...”
“거기까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레이의 말을 막고 말했다.
“억측은 좋지 않아. 지레짐작일 수도 있어.”
“...지레짐작이길 바라는 건 아니고요?”
“레이.”
나는 고개를 다시 한 번 저으며 말했다.
“이 이상 생각해 봤자 의미 없어. 탈론체더 녀석을 깨우면 오늘이건 내일이건 어머니를 찾을 수 있으니 그때 알아보면 되겠지. 자, 저택 갈 준비 해.”
나는 뒤로 물러서는 레이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생각을 전환하듯 손뼉을 짝 쳤다.
“자자, 그럼 일단 돌아가자.”
-------------------------------------------------
“다녀왔습니다.”
숙소를 겸해 쓰고 있는 세레스티아의 저택으로 돌아가 현관을 열자,
“다녀오셨어요~ 어? 큰오빠!”
누군가 반갑게 외치며 레이에게 달려들어선 힘차게 엎어지며 안겼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선명한 백금색과 연한 풀잎색이 섞인 머리카락. 부드러운 미모와 ‘축복받았다’ 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몸매를 자랑하는 소녀였다. 부드럽게 처진 눈매는 보는 사람에게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고, 산들바람이 부는 듯한 몸동작이 숲 속에서 춤추는 요정을 연상시켰다.
“그레이스? 오랜만이야아아악?!”
그렇다. ‘어머니를 따라갈게요’ 라고 말한 날에 내가 펑펑 울었을 정도로 내 귀여움을 받은 사랑스런 막내딸. 세레스티아와 나의 딸, 그레이스였다.
레이의 인삿말 끝이 절규로 변해버린 것은 말했다시피 그레이스의 보디블로... 아니, 포옹이 작렬... 아니, 착탄... 아니아니 격렬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보디블로... 아니 포옹의 기세를 제대로 죽이지 못하고 뒤로 넘어간 레이는 깔끔하게 대리석 바닥에 머릴 부딪혔지만, 다행히 금방 일어나는 걸 봐선 다치진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 미안해요. 오빠.”
“괘..괜찮아...”
가족들 중, 어머니와 나 다음으로 좋아하는 큰오빠를 보아서인지 잔뜩 들뜬 모양이다. 포옹이 격투기 기술이 될 정도로.
...그리고 나를 뒷전으로 미뤄둘 정도로.
...나도 자세 잡았는데.
아무튼, 어머니를 닮은 성격 탓인지 스킨십을 좋아하는 성격답게 나는 물론 칸과 세이렌까지 꽉 안아 주며 환영한 그레이스는, 칸의 손을 꼭 쥐고 그녀 뒤에 숨은 리코리스를 보곤...
“어? 세이렌 언니 딸이예요?”
“네엣?!”
세이렌을 당황시켰다.
싱글싱글 웃는 표정으로.
“어? 아니에요? 그럼 숨겨진 동생? 저도 동생이 생긴 건가요?”
“아니야.”
두근두근 기대하듯 날 보는 그레이스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자, 그레이스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동생이 생긴 걸까 기대했는데...”
“...”
쓴웃음을 지은 내가, 아직은 키가 덜 컸는지 세레스티아보다는 작은 그레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말했다.
“미아야. 어머니를 찾아 주려고 했는데, 시간이 많이 늦어서 일단 하룻밤 보호하기로 했어. 이름은 리코리스. 8살이고.”
“헤에.”
그레이스는 지금도 겁먹은 듯 칸의 뒤에 숨어있는 작은 소녀에게 관심이 생겼는지, 쭈그려앉고는 예의 그 싱글거리는 웃음으로 인사했다.
“안녕, 리코리스~ 언니는 그레이스라고 해요. 언니라고 불러 줄래요?”
“...”
음... 경계를 산 모양인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그레이스를 무서워하듯 칸의 손을 더 꽉 쥐는 리코리스를 보고, 나서서 경계를 풀어 줄까 생각했지만, 괜찮겠지. 그 세레스티아의 딸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어머나, 낮을 가리나? 자자, 이리 와 보세요~”
“흐규윽?!”
리코리스를 꽉 껴안는 그레이스. 그리고 품 안에 파묻히다시피하며 바동거리는 리코리스.
처음에는 발버둥치듯 버둥버둥 움직이던 리코리스였지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관뒀다.
조금 뒤 ‘파하’ 하고 포옹에서 풀려난 리코리스의 눈에 그레이슬르 향한 경계심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언니예요~”
“그레이스 언니?”
“귀여워!”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한 리코리스를 다시 한 번 꽈악 끌어안는 그레이스... 를 보며, 칸은 감탄하듯, 탄식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볼 때마다 놀랍군. 대체 무슨 원리인지... 나도 1시간 동안 데리고 다닌 뒤에야 마음을 열었는데.”
“안겨 보면 알 거야.”
뭐랄까... 봄기운 가득하고 조용한 어느 시골 언덕의 나무 밑에서, 아무 걱정 없이 봄바람을 맞으며 산새의 노랫소리와 함께 한순간의 낮잠을 즐기는... 그런 극도의 편안함...
그런 이유 모를 안정감이라고 하나... ‘역시 세레스티아의 딸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느낌이 들어, 순식간에 무장해제되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세뇌나 최면의 영역 아닌가?”
“이해하려 들지 마. 그레이스니까.”
극도의 마이페이스인데 더해 늘 상식을 벗어난 짓만 저지르는 소녀를 이해하긴 불가능하다.
칸의 신기해하는 듯한 목소리에 쓴웃음으로 대답한 나는 ‘귀여워~ 귀여워~’ 하며 리코리스의 머리카락을 쓰담쓰담 중인 그레이스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우리랑 같이 다녀 줄래? 어린애들은 널 잘 따르니까.”
“네에? 저야 좋지만요, 큰오빠가 저보다 저 나을 텐데요?”
어릴 적 레이가 많이 놀아주었기 때문인지 그렇게 말하는 그레이스였지만, 그 말을 들은 레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난 군인이야. 그레이스. 애들 돌보는 건 적성이 아니거든...”
“에이~ 놀아 달라고 그러면 엄청 잘 놀아 줬으면서~”
“그거야 너희가 하도 보채니까...”
그러고 보니 그레이스와 레이가 만나는 건 꽤 오랜만인가?
옛날에는 다들 저택에 살았지만, 커 가면서 독립해버렸으니...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는 둘을 보고 살짝 웃고는, 계속 잡고 있던 손이 허전한 듯 쥐었다폈다 하는 칸에게 말했다.
“칸, 애들 데리고 씻고 와 줄래?”
“으음? 그대는 어쩌려고?”
“탈론페더에게 가 보려고. 레이! 따라와!”
네! 하고 즉시 따라오는 레이를 보고, 칸은 의아한 듯 물었다.
“나도 같이 가는 편이 좋지 않겠나?”
“리코리스가 지금은 칸을 제일 잘 따르잖아. 떨어져 있으면 불안해할 것 같아서 그래. ...오래 걸릴 것 같거든.”
“...”
내가 한쪽 눈꼬릴 세우며 말하자, 칸은 잠깐 생각하듯 흐음.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은 같이 먹겠지?”
“아마도.”
“알았다. 조금 뒤에 보지.”
돌아선 칸이 아이들에게 가서 ‘일단 씻고 오도록 하지’ 하며 데리고 가는 걸 보고, 나는 옆에 선 레이가 뒷모습을 바라보는걸 보곤 말했다.
“왜, 따라가고 싶냐.”
“네? 하하하. 제 나이가 몇인데요.”
너털웃음을 짓는 레이에게 한 번 웃어 보였지만, 이내 나는 표정을 굳혔다.
“가자.”
-----------------------------------
“일어나! 어이구, 아주 그냥 낮술을 제대로 하셨구만?! 워울프! 거기서 자지 말고 침대로 와, 인마!”
“아이... 뭐야. 야밤에 짜증나게... 엥? 사령관? 레이도 왔어?”
“안녕, 누나.”
호드에게 배정된 방. 들어가자마자 폭발하는 술 냄세에 내가 으휴 하며 한숨을 내쉬건 말건 제일 먼저 깬 워울프가 한명한명 기절해 있는 아이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얀마. 일어나.”
“컥... 으.. .뭐, 뭐야...”
“너도 일어나.”
“아야! 으... 뭐야? 어라, 사령관... 레이? 웬일이래?”
“안녕, 누나. 낮술 좀 그만 마셔.”
다소 거친 방법으로...
...몇 번이나 생각한 거지만 저래도 되나?
아무튼, 칸의 말대로, 호드 아이들에게 배정된 방에서 다 같이 사이좋게 뻗어 있던 탈론페더를 반강제로 깨워 사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된 거거든. 그래서 말인데 좀 찾아 줄 수 있을까?”
“아니 뭐, 상관은 없어요. 위성 하나만 써도 되겠네.”
음음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정보국 위성 하나를 ‘빌린’ 탈론페더가 말했다.
“어디... 그 애 이름이?”
“리코리스.”
“나이가 8살이랬죠? 그러면 어... 이 애 맞아요? 4월 28일생.”
“음? 어.. 맞는 것 같지?”
“맞는 것 같은데요?”
아무렇지도 않게 출생신고 기록을 뒤져 1분도 안 돼 어머니의 신상을 알아낸 탈론페더는, 어디어디 하며 태블릿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흘끗 어깨너머로 훔쳐보니...
...음. 난 절대 바람피면 안 되겠다.
사각지대가 전혀 없는 본인의 정보망을 자각 없이 과시한 탈론페더가 말했다.
“찾았다. 이 사람이예요? 아침에 이 애랑 같이 왔네.”
“어... 아. 리코리스 맞네.”
“네. 맞네요. 누나, 이 사람 지금은 어디에 있어요?”
“잠깐만. 레이. 어디 보자... 지금은... 어? 뭐야?”
...응? 왜 저러지?
막힘없이 태블릿을 두들기던 탈론페더가 당황한 듯 조작을 멈추고는 ‘...으음?’ 하며 확대하는 듯한 동작을 반복했다.
“왜 그래?”
설마 하며 탈론페더에게 묻자, 탈론페더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요...”
이어지는 말을 들은 나와 레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
“...리코리스?”
저택 대욕탕 한켠 탈의실에서, 셔츠를 벗고 건강미 넘치는 상반신을 드러낸 칸이 당혹스러운 목소릴 냈다.
칸뿐만이 아니라 세이렌과 그레이스도 옷을 벗다 말고 멈춘 채였다.
“...”
“이게... 뭐냐, 리코리스?”
한사코 옷을 벗길 거부하는 소녀를 어르고 달래 겨우 웃옷을 벗겨 준 직후였다.
칸의 떨리는 눈동자는 소녀의 피부를 응시하고 있었다.
“...”
“세상에...”
세이렌은 놀라 굳어버렸으며, 그레이스는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멈춰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녀의 등에, 온몸에 새겨진 흔적은, 소녀가 감당할 수 있었을지가 의심되는 수준이었으니까.
수많은 멍자국과 흉터.
근시일에 생긴 듯 보이는 것도, 한참 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모두 옷을 입었을 때 보이지 않는 위치에만...
“누가 그랬지? 누가 그런 거냐, 리코리스?”
“...”
칸은 알면서도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애처롭게 떨리는 손이 소녀의 팔을 쓰다듬자, 리코리스는 몸을 살짝 떨었다.
고개를 돌려버린 리코리스에게, 칸은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맟추고 다그치듯 말했다.
“리코리스, 날 봐라.”
“...”
“말해다오, 누구냐? 누가 이런 짓을 했지?”
칸 역시 알고 있다. 소녀에게 이런 짓을 할 만한 이가 누구일지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러나 믿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소녀는, 칸의 애원하는 듯한 시선과 떨리는 손길을 외면하지 못한 듯, 작고 볼품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우리. 엄마.”
---------------------------------------
“없어요.”
그게 탈론페더의 첫마디였다.
“뭐?”
“없다고요. 이 도시에. 오히려...”
탈론페더는 태블릿을 들어 지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도시에서 이미 한참 멀어져 있네요. 뭐지? 닮은 사람인가...?”
아니.
닮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 예상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에 탄식하며 이마를 짚었다.
“어? 잠깐, 그게 무슨 말이예요? 없다니? 이미 멀어져 있다니? 그럴 리가...”
“레이.”
그럴 리 없다는 듯 당황하는 레이에게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걸로 확실해졌어. 아까도 이야기했잖아.”
“...”
나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애는 버려진 거야.”
------------------------------------
“그럴 수가!!”
칸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눈앞의 소녀는 움찔하지도 않았다.
마치 고함에 익숙하기라도 한 듯.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왜 말하지 않았나! 우리는 뭣 때문에 네 어머닐...”
“...그야...”
소녀는 고개를 저으며 슬픈 듯 말했다.
“...난 아빠도 없단 말이야...”
“?!”
“아니, 있긴 한데... 날 싫어해... 그래서, 엄마가 쫒겨났댔어...”
그럴 리가.
칸은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기 자식을 싫어하는 부모. 있다는 건 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런 인간을 보지 못했냐고 물어본다면 고개를 저으며 있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도 수없이 많이.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건.
칸의 떨리는 눈동자는 리코리스의 온몸에 남은 끔찍한 흔적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다.
누가 봐도 어린아이에게 할 짓이 아닌, 설령 싫어한다 해도 주저할 만한 만행.
멍만 남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충격을 받진 않았겠지.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멍자국은 애교로 보일 정도였다. 화상이 남은 여린 피부는 하얗게 변해버려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무정히 알렸고, 길다란 선처럼 남아버린 흔적은 분명 칼자국이었다. 거친 전장을 넘나든 전우들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흔적이 8살짜리 어린아이에게 남아 있었다.
어렴풋이 예상은 했다. 칸 본인이 손을 들어올려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면 몸을 움츠리는 그 반응은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칸은 과거 그런 동작을 본 적이 있다.
티아맷.
인간에게 학대당한 기억으로 사령관의 손길도 무서워하던 소녀.
그러나 이 정도일 거라곤...
“...리코리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나? 선생님이나, 다른 믿을 만한 분이 없었어?”
“...도와달라고 하면, 뭐해.”
칸은 매달리듯 그렇게 물었으나, 소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시 엄마한테 데려가는데.”
세이렌이 숨을 삼키며 주춤하는 것이 보였다.
칸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버린 소녀를 끌어안았다.
다시 데려간다.
한 번 도움을 요청한 적이, 어쩌면 여러 번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음에도 소녀는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말을 이해하고, 그리고 상상해버린 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소녀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뭘.”
“그 어머니 말입니다. 듣자하니 실종신고 냈다면서요?”
“...”
방을 나와 걸어가는 내 옆에서 레이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자세한 건 곧 알게 되겠지만, 그 애가 손을 무서워하는 건 알았니?”
“손을?”
“몰랐어? 가끔씩 움찔하면서 몸을 움츠렸잖아. 반사적으로 아픔에 대비하는 거거든, 그거?”
“그 말씀은, 학대를 당했다는...”
“그럴 거야. 아마. 내가 좀 아는데... 어지간해선 안 그러거든.”
한구석으로 티아맷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지만.”
하고, 나는 내 직감이 보통은 정확하다는 걸 애써 외면하며 말했다.
“그 애는 날 처음 봤을 때, 내가 네 아버지라고 말하자마자 표정을 바꿨어. 적의라고 해도 좋았지. 아버지란 단어에 그런 반응을 보인데다, 이야기할 때도 아버지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어. 부모라고도 말하지 않았지. 그럼 아버지 쪽은 아마 집을 나갔을 거야. 아니... 리코리스의 옷차림이나, 아까 본 그 어머니란 사람이 들고 있는 가방 같은 걸 보면, 아버지 쪽은 상당한 재력가고... 조금 더 억측하자면, 어머니 쪽은 돈 많은 남자의 정부(情婦)일지도 몰라. 이쪽으로 생각하자면, 그 어머니란 사람이 임신한 뒤 집에서 쫒겨났거나, 임신한 뒤 입막음비나 양육비를 남자 쪽이 부담하기로 한 거겠지.”
“너무 나간 거 아닙니까?”
“아까 못 봤어? 어떤 남자랑 같이 있었잖아. 근데 그거 알아? 난 의회 늙다리들 면상을 줄줄이 꿰고 있어.”
“그 말씀은...”
숨을 삼킨 레이에게 그리고 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또 한 가지 짐작을 해 볼 수 있지. 아마 여자는 슬슬 아이가 귀찮아졌을 거야. 아니면 뭔가 위기감을 느꼈거나. 8살이나 되었는데 누군가 알아차리지 않으면 이상하지. 아까도 탈론페더가 기록을 찾아 줬지만, 가정폭력 신고가 한 번 들어왔었어. 아마 아이는 몇 번인가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것 때문인지 뭣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여자 쪽은 아이를 잃어버린 척 하기로 했겠지. 그런데 홧김에 버리긴 했는데, 문득 생각해 보니 양육비가 생각이 난 거야. 아마 꽤 거액일걸? 보아하니 무직 같던데. 그런 여자가 그런 가방을 들고 그런 구두를 신을 수 있을 리 없지.”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고 실종신고를?”
“여자 입장에선 찾으면 돈을 받을 수단이 돌아오는 거고, 못 찾아도 혹 하나 더는 셈이지. 내 감일 뿐이지만 말이야. 제기랄. 실종신고를 했다면 우리가 찾아 줘야 하는데.”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레이는, 네?! 하며 창백해진 얼굴로 외쳤다.
“찾아 줘야 한다니요?! 학대당했을 거라면서요?!”
“하지만 실종신고가 들어온데다, 우리는 오늘 하루 종일 아이를 데리고 다녔어. 난 몰라도 네 얼굴은 꽤나 알려져 있지? 얼마 전에 요란하게 보도됬잖아. 최연소 중령이라고. 누군가 경찰에 찌르면 골치아파져.”
“하지만...”
“나도 우리 쪽에서 보호하고 싶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해. 그런데 리코리스는 계속 집에 가고 싶어 하고 있잖아.”
“하지만, 아버지! 그렇다고...!”
나는 손을 내저어 레이의 말을 막았다.
“생각할 시간을 줘. 나라고 해서 이대로 돌려보내고 싶은 건 절대 아니야.”
“...”
“나도... 나도 아버지야. 그런 걸 용납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착잡한 표정을 지은 레이가 내 말을 수긍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인 레이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일단 오늘이나 내일까지는 우리가 잘 돌봐줘야겠어. 리코리스에게는 이야기하지 마. 찾지 못했다고 해. 일단. 내일쯤 되서 이야기를 하자.”
“무슨 생각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 글쎄. 말했다시피,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이쪽에서 보호하는 건 불가능해.”
“...”
“고민해보자. 너도 싫잖냐. 돌려보내기는.”
내 한숨 섞인 말에, 레이는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저는 왜 항상 일을 크게 벌리는 걸까요?
아무튼 두 번째 칸 단편입니다. 죽겠네요. 옛날 겨울대회 이후로 처음으로 25페이지를 오버했습니다.
2편치 분량이니 느긋하게 즐겨주셨다면 좋겠네요.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내용이었는지는 둘째치고
...죄송합니다. 또 일을 크게 벌렸습니다.
괜찮아요. 잘 수습할게요.
진짜예요! 이번에는 감당 못하고 수습도 제대로 못 하지 않을 겁니다! 진짜로! 플룻 다 짜 놨어요!
칸과 리코리스가 유대를 쌓는 장면을 좀 더 넣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다음 단편은 빠르면 내일 늦어도 이번 주 안에 찾아옵니다. 기대해주십셔
다음 단편에서 뵙겠습니다.
(IP보기클릭)58.227.***.***
(IP보기클릭)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