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소설은 거울단계 이벤트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해당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으셨거나 진행중이신 유저분이 계시다면 추후에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마이나! 마이나! 저녁 먹어야지!”
언니의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동시에 바로 옆에서 같이 숨어있던 친구의 튀어나온 머리도 같이 눌러버렸다.
‘아파, 마이나!’
‘쉬잇! 큰 소리 내면 들킨단말야!’
눈치 없이 불만을 토로하는 친구 녀석을 힘으로 제압하고 난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서성거리는 언니를 흥미롭게 관찰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흔들리는 보라색 눈동자가 아주 볼만했다. 평소처럼 잘난 척하는 범생이는 온데간데없다. 단지 시장 한복판에서 갈 곳을 잃은 가녀린 소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래. 좀 더 네 솔직한 모습을 보여달란 말이야, 언니. 땅을 치면서 후회하고 더 망가지라고. 그런 다음 극적으로 네 앞에 나타난 내 치맛자락을 붙잡고 엉엉 울면서 용서를 구하는 거야! 기왕이면 하르쉬 초코 쿠키 박스와 함께!!
하지만 내 원대한 계획은 다소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아악! 진짜 아프다고오! 언니! 마이나 여기 있어!!”
바보같이 멋대로 망상하면서 머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친구 녀석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나 버린 것이다. 눈물이 맺힌 보라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고, 난 뛰어가는 친구와 함께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순순히 언니의 뒤를 따라갔다.
“노는 것도 좋지만 식사 시간은 제대로 지켜야지, 마이나. 엄마가 걱정하잖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입바른 소리. 언니는 항상 똑같았다. 시간 엄수. 약속 준수. 걸어 다니는 시간표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나 약속 지키는 게 좋으면 군인이나 하는 게 어때? 언니한테 정말 딱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장난하는 거 아니야, 마이나.”
솔직히 나도 알고 있다. 작년에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엄마의 어깨가 상당히 무거워졌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서 대게는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돌아오신다. 물론 오늘처럼 저녁 시간 전에 퇴근하시는 날도 있다. 한 달에 딱 하루다. 우리 자매도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이웃집 일거리를 도와주며 적은 돈을 받거나 집안일을 도맡아서 해놓고는 한다.
하지만, 난 겨우 10살이다. 집 안 청소보다 구슬치기가 좋고 바느질을 하면서 어딜 꿰매야 할까 고민하기보다 술래잡기하며 어디에 숨는 편이 좋을까 머리를 굴리는 게 더 재미있을 나이란 말이다.
“그렇겠네~ 그래서 오늘 빵가게 알바 시간에 늦으셨던 건가요? 시간 지키는 걸 좋아하는 마흐리안씨?”
“그, 그건 네가 내 침대 밑에 잼을 뿌리고 갔으니까!”
당황하며 화를 내는 언니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나는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나오는 식탁. 의자 3개. 접시 위에 올려진 잡곡빵 3조각. 가운데에 놓인 산딸기 잼. 그리고,
“왜 이리 늦었니?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났잖아.”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앉아있는 엄마의 모습. 한 달 만에 일찍 퇴근한 날이면 좀 밝게 있을 수 없겠냐는 말이 목 언저리까지 올라왔지만 침과 함께 삼켰다.
“죄송해요. 중간에 오늘 도와드렸던 빵 가게 브라운씨하고 얘기하느라 좀 늦어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언니. 난 알고 있다. 저건 거짓의 얼굴이다. 언니는 거짓말을 하는 데 결코 능숙한 사람이 아니다. 무언가를 숨겨도 항상 티가 나고, 뭘 해도 어설프다. 하지만 언니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성실함은 모든 단점을 상쇄시킨다,
“그러니? 알았다. 손 씻고, 식사 전에 기도하자꾸나.”
내가 했다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법한 말을 그냥 넘어가는 엄마. 왠지 모를 불공평함에 속으로 한숨을 쉬며 나는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손을 모았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달그락.
“......”
“......헤헤.”
항상 이렇다. 엄마는 식사 전 기도문이 끝나고 나면 잠시 쉬시고 길고 긴 자유 기도를 덧붙이신다.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식기에 먼저 손을 대다가 엄마의 따가운 눈총 세례를 받곤 했다. 오늘, 아니 이번 달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한 달에 한 번 있는 일인데 솔직히 좀 봐줬으면 좋겠다.
“잘 먹겠습니다.”
말이 그렇지 솔직히 잘 먹을 것도 없다. 잼을 빵 가장자리에 먼저 바를지, 빵에 박혀 있는 곡물 알갱이에 먼저 바를지 고민하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니는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웃는 얼굴로 빵을 먹으며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걸까? 대화 내용도 하나같이 영양가 없는 것들 뿐이었다. 날씨 이야기, 꽃 가꾸는 법, 목이 좁은 병 안쪽을 깨끗하게 닦는 법.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두 사람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그렇게 먹는 둥 마는 둥 빵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자?”
빤히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말을 건다. 그리고 당연한 대답이 들려온다.
“아니. 왜?”
“아까 저녁 시간에 말야. 왜 그런 거야? 왜 엄마랑 그런 쓰잘데기 없는 대화만 계속하는 거냐고.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가.”
말을 꺼낸 뒤에 잠시나마 직설적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언니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고, 궁금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돌려서 말할 재주 따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질문법이었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뭐지? 대답하기 곤란한 건가? 혹시 내 질문에 상처를 받은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나라는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성질이 더러웠다.
“항상 언니는 그런 식이야. 남들 앞에선 착한 척이나 하고. 나한테는 알 수 없는 소리만 하고. 범생이인 척. 어른인 척. 왜 계속 나만 혼나야 되는 건데? 나도 칭찬받고 싶단 말야. 나도...... 잘 할 수 있다고.”
감정이 순간적으로 북받쳐 오른 나머지 한쪽 눈에서 눈물이 살짝 흐른다. 들키지 않으려고 겨우겨우 소매 끝부분으로 훔쳐내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미안해, 마이나.”
언니의 입에서 제일 듣기 싫은 단어가 들려왔다. 돌아가신 아빠가 우리 자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 항상 나는 그 말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열이면 열, 그 뒤에는 공허한 울림만이 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도 알고 있는걸. 마이나가 항상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활발한걸. 그런 마이나가 난 항상 부러웠어.”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놀란 나머지 몸을 돌려 언니를 돌아보았다. 언니는, 줄곧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솔직히 언니도 너처럼 나가서 놀고 싶어. 하고 싶은 말도 마음껏 입 밖으로 뱉고 싶고. 하지만, 언니니까.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시면 어쨌든 내가 그다음이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적어도 10살의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닌가? 왜지? 엄마가 집에 안 계신 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인 건데?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머지 나는 멍하니 언니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보라색 눈동자가 밝게 빛나며 나를 쳐다본다. 잠시 후, 가만히 있는 나를 언니는 꽉 하고 안았다. 그리고 내 어깨를 잡고 조용하게, 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일도 힘내자. 알았지?”
“......응.”
그 말을 끝으로 언니는 눈을 감았다. 결국 내 궁금증은 해결하지 못했다. 저녁 시간의 대화는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다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언니는 눈을 감으면 바로 잠에 빠져드는 편리한 체질이기 때문이다.
“정말. 끝까지 자기 할 말만 하고.”
항상 나는 침대 안쪽에서, 벽을 보고 잔다. 왠지 그렇게 해야만 잠이 잘 드는 느낌이라서 일부러 억지를 부려서 언니와 자리를 바꿨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는 언니의 모습을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잘자, 마흐리안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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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거울단계 스토리를 꽤나 감명깊게 즐긴 후 첫 글을 씁니다 ㅎㅎ
첫 글이 소설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변태스럽지 않나 싶긴 합니다만;;
루리웹을 안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구분 탭을 따로 검색할 수 있다는건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ㅋㅋㅋㅋㅋ;;
각설하고.
그런데 아마 1화를 보신 분들께선 이런 의문을 가지실겁니다.
마흐리안은 동생이 없는데? 님 설정 잘못 쓰신거 아닙니까??
미리 답변을 드리자면,
1. 일단 제가 처음 설정을 짤 때 스토리를 잘못 알고 집필을 한 게 맞긴 합니다 ㅠㅠ (ㄹㅇ 친동생이 있는줄 알았어요...)
2. 하지만 끝까지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팔짱을 끼고 이사람이 이걸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봅시다.)
이렇게 조심스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고로 이 '거미의 집'은 모든 집필이 끝난 상태입니다.
아마 2일에 1화씩 올리지 않을까 싶고 총 4~6화 분량으로 끝날 것 같아요.
만약 시간과 제 에너지가 허락한다면 짧게나마 마흐리안의 이야기도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그럼 다시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본 연재분은 공카에도 같이 업로드 됩니다. 남김말은 살짝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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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감사합니다 :D | 21.02.26 23:5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