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버워키: LP 8000, 패 5장]
[위저드: LP 8000, 패 5장]
듀얼 개시가 이루어진 직후, 피부에 전해져오는 듯한 감각을 위저드는 놓치지 않았다.
저것은 자신이 전한 냄새. 재버워키가 본인의 디젠이 아닌, 자신이 선물한 디젠을 그대로 쓰고 있는 모양이다.
성의를 받아준 것을 고마워해야 할까. 아니면 다르게 생각해야 할까.
자신의 정체가 까발려지기 전까지의 적들을 상대했듯이, 뒤집어쓴 가면을 벗어보이지 않은 채 여전히 정체를 숨길 생각이라면. 그러니까 자신 말고 그 다음 상대를 염두에 둔 행동이라면.
이 자리에서 이긴다면야 그대로 이 게임이 끝이라는 건 변함없겠지만, 이래서야 마치 자신이 이 무대의 마지막 상대가 될 수는 없다고 하는 것만 같다.
'역시 환영 못 받는 건가요. 생각이 바뀌셨으면 좋겠는데.'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버워키가 대본을 읽어나가듯 패의 카드 사용을 선언하기 시작한다.
"그럼, 이 자리를 찾아주신 하나뿐인 관객을 위한 오늘의 첫 무대, 그 시작은 속공 마법, '낙인개막'! 패를 1장 버리고, '데스피아' 몬스터 1장을 서치하거나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할 수 있어. 소개할게, '데스피아의 도화 알베르'!"
[데스피아의 도화 알베르: 천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0]
요란스런 소개 문구와 함꼐 재버워키의 필드(무대)로 나선 것은, 이름 그대로 거추장스러운 망토와 가면으로 모습을 가린 어릿광대처럼 보였다.
'알베르'라는 이름의 광대는 하나 뿐인 관객에게 인사하듯 몸을 숙이며 팔을 뻗는다.
"알베르의 ①의 효과, 여기에 방금 버린 '비극의 데스피아안'의 효과를 체인. 덱에서 다른 '데스피아' 몬스터 하나를 패로 가져온다. '데스피아의 대도극신(드라마트루기아)'을 서치. 체인 있어?"
"없습니다."
"고마워. 그럼 '알베르'의 효과를 처리. 특수 소환에 성공했으니 덱에서 '데스피아' 마법, 함정 하나를 가져올게."
카드를 발동하느라 소모된 패를 다시 채워보인다. 이로서 더 원활한 전개가 가능해졌다.
재버워키는 가져온 카드를 잠시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듀얼 디스크에 세팅함으로서 그 카드를 피로해보였다.
"배우가 나왔으니 무대도 있어야겠지. 첫 무대는, 필드 마법 '낙인극의 성 데스피아'!"
무대가 세팅되면서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이윽고 검은 선이 교차하는 문양이 떠오르더니, 네모난 건물들 사이로 커다랗고 시커먼 기둥 하나가 떠올랐다.
창문으로 보이는 구조물들을 보면 그 또한 하나의 건물인 듯 보였다.
기둥 꼭대기에 위치한 첨탑은 플라즈마 구슬 안에서 번쩍이는 번개와도 같은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마왕의 성같은 분위기가 풀풀 풍겨온다.
이를 보며 위저드는 가벼운 박수와 함께 나지막히 감상을 내뱉는다.
"전보다 더 재미있는 승부가 되겠네요."
"그래? 그럼 새로운 등장을 맞이할 차례야. '낙인극의 성'의 ①의 효과. 패와 필드의 몬스터를 소재로 레벨 8 이상의 융합 몬스터를 불러낸다. 그럼 필드의 '알베르', 그리고 패에 있는 '드라마트루기아'를 융합."
소재가 될 '데스피아'를 수용한 성의 첨탑이 더 강렬한 에너지를 산포하기 시작한다. 소재 중 하나로 지정된 '알베르'는, 일단 인간이라 알아볼 수 있을 법했던 그 모습을 다른 무언가로 서서히 바꾸어나갔다.
"심연에서 태어난 자, 그 가면을 벗어라. 빛을 조롱하고, 어둠조차 기만하기 위하여! 레벨 8, '혁작룡 마스카레이드'를 융합 소환!"
[혁작룡 마스카레이드: 악마족 / 어둠 / 레벨 8 / ATK 2500 / DEF 2000]
[재버워키: 패 3장]
그렇게 탄생한 것은, 붉고 검은 배색으로 뒤덮인 용 한 마리. '알베르'이던 순간의 몸가짐을 잊지 않은 듯 용은 필드로 얌전히 안착했다.
"그리고 융합 소재가 된 '드라마트루기아'는, 자기의 ②의 효과로 특수 소환할 수 있지."
[데스피아의 드라마트루기아: 천사족 / 어둠 / 레벨 8 / ATK 3000 / DEF 1500]
최상급 몬스터가 벌써 둘이나 갖춰진 것은 현 듀얼판에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위저드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무언가를 더 꺼낼 수 있다는 것을.
"카드 2장을 세트. 턴 엔드야."
그럼에도 그는 굳이 턴을 넘기기를 택했다. 아마도 세트한 리버스 카드에 더 재미난 것이 담겨있으리라.
"그럼 제 턴이네요."
[위저드: 패 6장]
[재버워키: 패 1장]
"'마스카레이드'의 ①의 효과. 그럼…
"효과 한 번 발동하는 데 600 LP를 지불하란 거죠? 알겠습니다."
말을 끊어버린 것이 못마땅한 듯 재버워키가 시큰둥한 표정을 보인다.
"그럼 먼저 패에 있는 '드래그마의 성녀 에클레시아'의 ①의 효과. 엑스트라 덱에서 특수 소환된 몬스터가 필드에 있으면, 자신을 특수 소환합니다."
[드래그마의 성녀 에클레시아: 마법사족 / 빛 / 레벨 4 / ATK 1500 / DEF 1500]
[위저드: LP 8000 → 7400]
"체인 있습니까?"
"없는데."
"그럼 LP를 더 지불하고, '에클레시아'의 ②의 효과를 사용. 특수 소환에 성공했으니, 덱에서 다른 '드래그마' 카드 1장을 패에 넣겠습니다. '드래그마의 기사 플루르드리스'를 가져오죠."
[위저드: LP 7400 → 6800]
"그것도 체인 없어."
"잘 됐네요. 계속해서 '플루르드리스'의 ①의 효과. 이 카드 역시 엑스트라 덱 출신의 몬스터가 필드에 있으면 특수 소환이 가능합니다."
[위저드: LP 6800 → 6200, 패 5장]
[드래그마의 기사 플루르드리스: 마법사족 / 빛 / 레벨 8 / ATK 2500 / DEF 2500]
하급 몬스터에게 직접 공격을 맞은 수준의 LP 손실이 찾아왔음에도 위저드는 태연히 카드의 효과를 사용해나간다.
"추가로 제 필드에 '드래그마' 몬스터가 있다면, 필드의 앞면 표시 몬스터 1마리의 효과를 무효로 만들죠. '마스카레이드'를 지정."
비장한 표정으로 전장에 먼저 나와있던 금발의 소녀를 곁에 두고서, 견고해보이는 백은의 갑주로 무장한 기사는 왼팔에 있던 방패를 지정한 적에게 겨눈다.
둥근 방패가 빛을 내뿜으니, 천사의 광배를 연상시키는 하나의 광륜이 되어 눈을 자극해왔다. '마스카레이드'조차 눈이 부신 듯 그 자리에서 움츠러든다.
"사악한 용을 상대로 기사라. 노린 거야?"
"글쎄요. 어쨌든 왕도적인 전개니까 좋지 않나요? 당신은 그걸 피하고 싶으시겠지만."
이렇게 성가신 적을 무력화시켜준 덕분에 LP가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일은 막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꺼낼 카드를 꺼내기로 한다.
"그럼 LP도 충분히 지불했으니, 저도 무대를 마련할 차례겠죠. 필드 마법 '폭주마법진'. 덱에서 '소환사 알레이스터'를 가져옵니다."
성 주변을 감싸듯, 바닥에서 붉은 기운을 내뿜는 마법진이 나타나 확산된다.
"그리고 '알레이스터'를 통상 소환."
[소환사 알레이스터: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800]
"①의 효과로 덱에서 '소환마술'을 가져올게요. 체인 있습니까?"
"응. 세트한 속공 마법 '혁의 낙인'을 발동."
"어이쿠."
"배역 소개는 내 쪽이 먼저야. 그럼 묘지에 있는 '비극의 데스피아안'을 회수. 그리고 패의 '비극'과 필드의 '드라마트루기아'를 융합 소재로서 제외하고, 레벨 8 '데스피아안 쿠에리티스'를 융합 소환!"
[데스피아안 쿠에리테스: 악마족 / 어둠 / 레벨 8 / ATK 2500 / DEF 2500]
[재버워키: 패 1장]
이미 하늘에 자리잡고 있던 것들보다 더 큰 격자무늬가 펼쳐지더니, 그 사이의 붉은 공간에서 무언가가 출현한다.
'플루르드리스'의 갑옷이 일그러진 나머지 곤충의 외피를 뒤집어쓴 듯한 모양새의 검은 마수였다. 날카로운 이빨을 품은 채 다문 입을 연상시키는, 오묘한 조형의 창끝을 가진 붉은 창을 휘두르며 내려왔다.
"제외된 '비극'의 효과로 2장째 '알베르'를 서치. 융합 소재가 된 '드라마트루기아'는 이번에도 즉시 필드로 귀환."
[데스피아의 드라마트루기아: 천사족 / 어둠 / 레벨 8 / ATK 3000 / DEF 1500]
[재버워키: 패 2장]
"흠, 그럼 계속해서 '알레이스터'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1 '마기스토스 메이든 아르테미스'를 링크 소환."
[마기스토스 메이든 아르테미스: 마법사족 / 빛 / LINK-1 / ATK 800 / 링크 마커 ↑]
"그리고 '소환마술'을 발동. 혹시…"
'폭주마법진'을 깔아놓은 이상 '소환마술'이 무효화될 걱정은 없다. 그럼에도 이 타이밍에 무엇이 끼어들지 짐작은 가능했기에 위저드는 절차대로 체인을 질문한다.
그리고 그 짐작은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그래. 여기서 '쿠에리테스'의 ①의 효과를 사용할게. 레벨 8 이상의 융합 몬스터가 아닌 모든 몬스터의 공격력을, 턴 종료시까지 0으로 하지."
[드래그마의 성녀 에클레시아: ATK 1500 → 0]
[드래그마의 기사 플루르드리스: ATK 2500 → 0]
[마기스토스 메이든 아르테미스: ATK 800 → 0]
[데스피아의 드라마트루기아: ATK 3000 → 0]
아직 전력을 다 꺼내지 않은 이 상황에서 발동하는 것은 선뜻 성급해보이기 쉽지만, 그 또한 역시 자신이 무엇을 꺼낼지 빤히 짐작했던 것이다.
"그럼 '소환마술' 처리에 들어가죠. 묘지의 '알레이스터', 필드의 '아르테미스'를 제외. 레벨 9 '소환수 메르카바'를 융합 소환."
[소환수 메르카바: 기계족 / 빛 / 레벨 9 / ATK 2500 / DEF 2000]
[위저드: 패 4장]
마법진의 인도에 따라 기이한 기갑 말이 이끄는 전차를 탄 거인 기사가 행차한다.
만약 '메르카바'를 꺼내고 난 뒤였다면 '쿠에리테스'의 효과가 발휘될 새도 없었을 터. 공격력이 0이 되어서라도 필드에 남아버린 몬스터는 소재로 써서 치워버리라고 강요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묘지에 있는 '소환마술'의 ②의 효과. '알레이스터'를 패로 되돌리고, 이 카드를 덱으로 되돌리겠습니다."
"체인, 함정 카드 '낙인추방'을 발동. 묘지에서 '데스피아' 몬스터를 특수 소환하지. 체인할 거야?"
"…안타깝지만 그럴 수가 없군요."
"잘 됐네."
[데스피아의 도화 알베르: 천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0]
여기서 '알베르'의 효과를 쓸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단념하기로 한다. 대신 그 직후에 다른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낙인추방'의 효과는 계속되거든. 필드에 있는 소재를 묘지로 보내서 레벨 8 이상의 융합 몬스터를 불러낼 수 있어. 아, 내 것 뿐만 아니라 당신 필드도 포함해서 말이야."
"그렇다는 건?"
"그래, 당신의 '메르카바', 그리고 내 '알베르', '마스카레이드'를 소재 삼아 새로운 등장을 맞이할 시간이야."
'알베르'가 도발을 하듯 손짓을 보내자, '메르카바'가 그에 넘어갔는지, 아니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힘으로 인해 몸체가 억지로 이끌려가는지 그 거체를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달려드는 '메르카바'를 향해 '알베르'와 '마스카레이드'도 뛰어들기 시작했다.
크기가 제각각인 몬스터들이 서로 부딪히는 모습은, 단순히 충돌이라 표현하기엔 어딘가 달랐다.
"무대는 갖춰졌으니, 빛의 신기(神機)를 매개로 삼아 모습을 드러내라. 만물을 포용하는 그 위용에 갈채를! 레벨 11, '데스피아안 프로스케니온'을 융합 소환!"
[데스피아안 프로스케니온: 악마족 / 빛 / 레벨 11 / ATK 3200 / DEF 3200]
[위저드: 패 5장]
사라진 몬스터들의 빈자리를 채우듯이, '낙인극의 성'을 무대삼아 무언가가 또 나타났다.
이를 중심으로 비늘이 가시처럼 뾰족하게 뒤덮인 두 커다란 뱀이 기어나와 똬리를 튼다.
특이한 조형의 기둥이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인 그 물체의 중심에는, 악마의 형상을 한 조각상이 세워져있다.
상대를 견제할 수 있었던 융합 몬스터를, 대책의 수가 모자라 그대로 빼앗기고 말았다.
"역시 실망을 시키지 않네요. 질 수 없죠. 마법 카드 '영의융합(섀도르 퓨전)'. 혹시, 여기서도 체인하실 겁니까?"
"물론이지. '프로스케니온'의 효과. 상대 묘지의 융합 몬스터 1마리를 내 필드로 특수 소환한다. 방금 묘지로 간 '메르카바'를 내 필드로 불러오도록 할게."
[소환수 메르카바: 기계족 / 빛 / 레벨 9 / ATK 2500 / DEF 2000]
적에게 빨려들어가며 사라진 '메르카바'가 적진으로부터 나타나버렸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엑스트라 덱에서 나온 몬스터가 여전히 당신 필드에 있으니까, 덱에 있는 융합 소재를 쓰도록 하죠. '섀도르 리저드', '초전자 터틀'을 묘지로 보내겠습니다."
"어머나."
"하늘에서 내려온 그림자, 그 손길은 세계를 이끌 무수한 실이 되리라. 융합 소환, 레벨 8 '엘섀도르 네피림'!"
[엘섀도르 네피림: 천사족 / 빛 / 레벨 8 / ATK 2800 / DEF 2500]
'메르카바'에 이어 어지간한 건물, 심지어는 '낙인극의 성'보다도 훨씬 거대한 스케일의 무언가가 내려왔다.
그저 서있는 여인의 모습을 한 그것은 단순한 조형물이라기엔 비상할 정도로 거대하고, '데스피아' 테마와도 이질적인 분위기의 그림자 또한 안고 있다.
그럼에도, 그 얼굴만큼은 성녀의 온화한 분위기를 모사하 듯 차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붉게 물든 채 기이한 검은 문양이 수놓은 하늘 아래의 영역은 현실로부터 괴리된 묵시록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로써 각자 필드 마법의 도움을 받아 최상급의 융합 몬스터를 둘씩 불러내는 데에 성공했다.
몬스터들의 몸집은 위저드가 불러낸 쪽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아직 전력의 차는 크지 않은 상태.
"'네피림'의 ①의 효과, 체인해서 '섀도르 리저드'의 ②의 효과. 둘 다 각자 다른 '섀도르' 카드를 묘지로 보내게 해주죠. 체인은?"
"'방금 융합 소환했으니까, '드라마트루기아'의 ①의 효과로 체인. '네피림'의 효과를 무효로 하지."
"그럼 '리저드'의 효과만 처리하겠습니다. 덱에서 '섀도르 비스트'를 묘지로. 그리고 묘지로 간 '비스트'의 ②의 효과로 1장 드로우. 그 다음 속공 마법 '긴급텔레포트'를 발동해서 덱에 있는 레벨 3 이하의 사이킥족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합니다."
[리섀도르 웬디: 사이킥족 / 바람 / 레벨 3 / ATK 1500 / DEF 1000]
[위저드: 패 4장]
필드의 몬스터를 계속해서 꺼내고도 위저드의 패가 줄어들 생각을 않는다. 더구나 위저드는 어느새 또다른 전력을 꺼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소환 조건은 카드명이 다른 몬스터 3장. 그럼 전 '에클레시아', '플루르드리스', 그리고 '리섀도르 웬디'를 링크 마커에 세트. 지켜보시죠,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카오스의 힘을! 링크 3 '혼돈의 전사 카오스 솔저'를 링크 소환!"
[혼돈의 전사 카오스 솔저: 전사족 / 땅 / LINK-3 / ATK 3000 / 링크 마커 ↙↑↘]
링크 마커가 자아내는 빛으로부터 검푸른 갑주를 두른 전사가 나타난다. 한손에는 마수의 머리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한 손에는 예리함과 육중함을 겸비한 곡도를 쥐고 있는 그 모습은 벌써부터 심상찮은 전투력을 이야기해오는 듯 했다.
[위저드: 패 5장]
"패에 있는 '알레이스터'를 묘지로 보내고, ①의 효과로 융합 몬스터인 '네피림'의 공격력과 수비력을 턴 종료시까지 1000 올리겠습니다. 이어서 다시 '소환마술'. 묘지의 '알레이스터'와 '플루르드리스'를 제외하고, 2장째 '메르카바'를 융합 소환."
[엘섀도르 네피림: / ATK 2800 → 3800 / DEF 2500 → 3500]
[소환수 메르카바: 기계족 / 빛 / 레벨 9 / ATK 2500 / DEF 2000]
[위저드: 패 3장]
"배틀. '혼돈의 전사'로 상대의 '메르카바'를 공격."
레벨 7 이상의 몬스터인 '플루르드리스'를 소재로 삼은 '혼돈의 전사'에게 카드 효과는 통하지 않을 터.
그러니 전사가 휘두르는 예리한 칼날이 적이 된 전차의 몸체를 빠르게 도륙하고 지나간다.
[재버워키: LP 8000 → 7500]
"전투로 몬스터를 파괴했으니 '혼돈의 전사'의 ②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필드의 카드 1장을 제외하죠. '낙인극의 성'을 폐막할 시간이군요."
전투를 마친 '혼돈의 전사'가 검을 하늘로 들어올리자, 벼락이 치듯 빛이 번쩍하면서 공간에 변화가 생긴다. 불길한 기운을 풍기던 성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원래의 도시 풍경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로써 융합 소환은 물론 벽이 될 몬스터도 마련해주는 카드를 사전에 치워버렸다.
"이어서 '네피림'으로 '프로스케니온'을 공격."
뒤이어 거대한 인형이 자신만큼이나 기이한 외형의 구조물 '프로스케니온'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자 인형의 몸체 뒷편에서 살랑이던 무수한 실들이 뻗어나와 상대의 커다란 몸체를 감싼다. 실뭉치는 사정없이 상대를 속박시킨 끝에, 조이고 얽매이며 적을 형체도 없이 으스러뜨렸다.
[재버워키: LP 7500 → 6900]
"아직입니다. 속공 마법 '엘새도르 퓨전'. 필드의 '네피림'과 패에 있는 물 속성의 '넬섀도르 에리얼'을 소재로, 레벨 9 '엘섀도르 아노마릴리스'를 융합 소환."
[엘섀도르 아노마릴리스: 악마족 / 물 / 레벨 9 / ATK 2700 / DEF 2000]
언뜻 '네피림'의 얼굴과 몸체를 유지하고 있는 듯한 그 모습에는 어느덧 얼음으로 이루어진 장갑이 덧씌워져 있었다.
"묘지로 보내진 '엘섀도르 네피림'의 효과. 여기에 '넬섀도르 에리얼'의 효과를 체인. 당신 묘지의 카드 3장을 제외합니다. 이어서 묘지의 '섀도르' 마법 카드 1장을 회수하죠. '섀도르 퓨전'을 회수."
'에리얼'의 제외 효과로 묘지에서 소재로 쓰일 몬스터를 조금이나마 치우는 것은 물론, '낙인개막'도 지정해서 치워버렸으니 재버워키의 융합 몬스터가 파괴로부터 보호받을 우려를 덜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노마릴리스'로 '쿠에리테스'를 공격."
'네피림'과 같은 방식으로 '아노마릴리스'가 뽑아낸 실들이 훨씬 작은 크기의 '쿠에리테스'를 감싸버린다.
[재버워키: LP 6700 → 6500]
[위저드: 패 1장]
"'메르카바'로 '드라마트루기아'를 공격."
또다시 나타난 전차의 기사가 상대에게 검을 겨누자, 순간 쏟아져나오는 눈부신 빛이 악령을 내쫓듯이 마지막으로 남은 흰 망토의 사제를 격퇴시켰다.
이로써 재버워키의 몬스터는 전멸.
"시시한 무대는 당신한테도 별로일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쇼는 무대 자체보다도 배우가 더 중요하니까."
전개를 해낸 것치고는 그렇게까지 LP를 깎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상대의 플레잉을 옭아맬 견제 수단이 제법 마련된 참이다.
'메르카바'의 효과로 마법 발동 1번은 무효로 할 수가 있고, '아노마릴리스'의 효과로 인해 마법이나 함정 효과에 의한 패 / 묘지에서의 특수 소환도 막혔다. 조금 더 빨리 꺼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터.
여기에 전력 중 하나인 '혼돈의 전사'에게는 웬만한 효과도 통하지 않는다.
허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칫하면 남은 LP마저도 바닥나버릴 수가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재버워키는 딱히 동요도 뭣도 내비치지 않았다. 이 정도야 예삿일도 아니라는 듯이.
위저드 역시 이 자의 태도가 허세가 아니기를 빌었다. 이 정도로 꺾여버릴 상대나 맞이하려고 돌아다닌 것이 아니니까.
"역시 기대가 돼요. 그럼 턴을 넘겨드리죠."
"좋아. 그 전에, 상대 필드에 융합이나 링크 몬스터가 있으니까 묘지에 있는 '마스카레이드'의 ② 효과를 사용. 체인 있어?"
"안 되겠군요."
'메르카바'의 효과를 위해 바로 패에서 묘지로 보낼 몬스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마스카레이드'는 몬스터 효과이므로 '아노마릴리스'의 효과로 막을 수도 없다.
[혁작룡 마스카레이드: 악마족 / 어둠 / 레벨 8 / ATK 2500 / DEF 2000]
[재버워키: 패 3장]
"이제 내 턴이야. 먼저 마법 카드 '융합파병'. 엑스트라 덱에 있는 융합 몬스터 1장의 융합 소재 하나를 덱에서 특수 소환할 수 있지."
덱에서 특수 소환하는 마법 효과는 '아노마릴리스'로 막지 못한다. 다른 대응이 필요했다.
"패에 있는 '섀도르 퓨전'을 묘지로 보내고, '메르카바'의 효과로 체인합니다. 마법 카드의 발동을 무효로."
무슨 카드를 꺼내올지는 짐작이 갔기에 '섀도르 퓨전'을 희생해가며 대응할 가치는 있었다.
그러나 '메르카바'의 효과는 1턴에 1번밖에 쓸 수가 없으니 다음에 오는 마법은 막을 수가 없다.
"고마워. 몬스터 효과를 써줘서. '삼전의 재'를 발동해서 2장 드로우."
[재버워키: 패 3장]
그런 위저드의 대응이 소용없다는 듯 재버워키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뭐가 나올지 예상은 했나 본데. 그래도 놓치면 섭하잖아?"
"그 말은?"
"맞아. 두번째로 등장할 주역. 그 이름하여 '알버스의 낙윤'!"
[알버스의 낙윤: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0]
재버워키가 새롭게 꺼낸 것은 거칠어보이는 어두운 피부와 백발, 그리고 애꾸눈 등이 돋보이는 무뚝뚝한 인상의 소년.
위저드가 사용하고 있는 '드래그마' 테마와 함께 소개된 동시에, 재버워키가 사용하는 '데스피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특수한 카드였다. 본인 역시 몇 장이나 확보해둔 카드였기에 성능은 익히 알고 있다. 애초에 '융합파병'으로 불러올 카드가 저것이였으리라는 것 쯤은 이미 예측했으니까.
재버워키의 덱은 아직까지는 시중에서 구하려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카드들로 구축되어 있는 듯 보였다.
"'패를 1장 버리고, 소환된 '알버스'의 효과를 발동. 자신을 포함하는 소재를 필드에서 묘지로 보내고 융합 소환을 실행할 수 있지."
"상대 필드도 포함하는 거였죠?"
"그럼. 잘 아네."
'알베르' 대신에 굳이 패 1장을 또 희생하며 저걸 꺼낸 것에는 이유가 있어보였다.
마법 카드의 도움 없이 몬스터 효과만으로 융합 소환을 실행해온다. 그것도 자신의 카드까지 빼앗아가면서.
역시 막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남은 빈틈을 이 자는 놓치지 않고 기어들어와버리는 것이다.
"그럼 '알버스의 낙윤', 그리고 빛 속성인 '메르카바'를 소재로 융합 소환. 묵시록의 전초가 될 붉은 용, 레벨 8 '낙인룡 알비온'!"
[낙인룡 알비온: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8 / ATK 2500 / DEF 2000]
"쇼는 이제 막 시작한 참이야. 융합 소환에 성공했으니까, '알비온'의 ①의 효과를 사용. 묘지에서 '알버스의 낙윤', 그리고 융합 몬스터인 '쿠에리테스'를 제외하고, 엑스트라 덱에서 또다른 레벨 8의 융합 몬스터를 불러올 수가 있어. 그 이름하여 '빙검룡 미라제이드'!"
[빙검룡 미라제이드: 환룡족 / 어둠 / 레벨 8 / ATK 3000 / DEF 2500]
붉게 타오르는 용과 푸른 얼음으로 뒤덮인 검은 몸체의 용이 나란히 나타난다.
"엑스트라 덱에서 2장째 '알비온'을 묘지로 보내고, '빙검룡'의 효과를 발동. 필드의 몬스터를 1장 제외시킨다. '혼돈의 전사'를 고를게."
막 등장을 마친 '빙검룡'이 포효를 내지른 직후, '혼돈의 전사'의 발 밑이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한다. 이를 피할 새도 없이 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냉기의 흐름이 '혼돈의 전사'의 몸 전체를 빙결시켰다. 그렇게 생겨난 얼음 기둥은 곧바로 산산조각나며 그 자리를 허공으로 만들어버린다.
대상 지정 내성. 그리고 효과 파괴에 대한 내성. 그 모두를 피해가는 제거 효과가 '혼돈의 전사'를 휩쓰는 것이다.
"그럼 배틀. '빙검룡'으로…"
"묘지에서 '초전자 터틀'의 효과를 발동. 제외하고 배틀 페이즈를 종료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럼 엔드 페이즈에 묘지로 간 '알비온'의 효과를 사용. 덱에서 '낙인' 마법이나 함정을 패에 넣거나 세트할 수 있어. 2장째 '낙인추방'을 세트. 그리고 '알버스의 낙윤'의 패 코스트로 버려진 '낙인의 심판'도 필드에 세트한다."
아쉬움이 드러나는 표정이지만 이미 예측은 했으리라.
어찌 됐든 남은 몬스터라도 전투로부터 지키는 것에는 성공했다. 재버워키의 필드에 세트 카드 2장이라는 장애물이 세팅되어버리기는 했지만.
[위저드: 패 1장]
[재버워키: 패 1장]
"제 턴. 묘지에 있는 '소환마술'을 덱으로 되돌리고, 제외된 '알레이스터'를 패로 귀환. 그리고 '알레이스터'를 소환합니다."
[소환사 알레이스터: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800]
"그 효과로 덱에서 '소환마술'을 추가. 물론 바로 발동해서, 이번엔 '알레이스터'와 당신 묘지의 융합 몬스터 '프로스케니온'을 소재로 레벨 9 '소환수 아우고에이데스'를 융합 소환하겠습니다."
[소환수 아우고에이데스: 천사족 / 빛 / 레벨 9 / ATK 2000 / DEF 2800]
"특수 소환된 '아우고에이데스'의 ①의 효과. 당신 필드의 '빙검룡'을 파괴하죠."
효과 발동 선언 직후 '아우고에이데스'의 금속으로 된 손가락 끝이 광선을 내뿜어 '빙검룡'의 전신을 산산조각냈다.
"괜찮겠어? '빙검룡'이 파괴된 턴이 끝나면 네 몬스터는 전멸일 텐데?"
"저도 오히려 고맙죠. '빙검룡'의 효과를 발동하셨으니까 '삼전의 재'를 발동. 2장 드로우하겠습니다."
[위저드: 패 2장]
"그리고 '아우고에이데스'의 ②의 효과. 융합 몬스터인 '네피림'을 제외하고, 그 공격력만큼 자신의 공격력을 올리겠습니다."
[소환수 아우고에이데스: ATK 2000 → 4800]
그 때까지 별다른 조치가 없는 것을 보고서, 위저드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상대의 꾐에 그대로 걸려주기로 한다.
어차피 지금 필드에 있는 몬스터들의 운명은 정해진 상태니까.
"배틀로 들어가죠."
"그래, 그걸 기다렸어. 함정 카드 '낙인의 심판'을 발동. 이걸로 내 융합 몬스터 한 마리보다 공격력이 높은 네 몬스터를 전부 파괴한다."
파괴 행위를 되돌려주듯이 '알비온'의 주둥이에서 뿜어져나오는 벼락이 자신보다 높은 공격력을 가진 '아노마릴리스'와 '아우고에이데스'의 전신을 산산조각낸다.
사이좋게 파괴된 몬스터들의 잔해가 잠시 반짝이며 필드 사이로 흩날렸다.
"'아노마릴리스'의 ②의 효과. 묘지로 가면 '섀도르' 마법 하나를 패로 회수합니다. '섀도르 퓨전'을 다시 챙겨오죠. 그럼 메인 페이즈 2로 가서 '섀도르 퓨전'을 발동. 덱에서 2장째 '섀도르 비스트'와 '섀도르 리저드'를 묘지로 보내고 융합 소환합니다. 그것은 바람을 타고 그림자의 뜻을 퍼뜨리는 자, 레벨 5 '엘섀도르 미도라시'!"
[엘섀도르 미도라시: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5 / ATK 2200 / DEF 800]
[위저드: 패 2장]
위저드가 새로 불러낸 몬스터는, 뒤로 묶은 긴 머리를 흩날리는 소녀가 지팡이를 쥔 채 날개달린 용을 타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봐도 소녀와 용은 모두 관절이 하늘에서 뻗어내려온 실로 이루어진 꼭두각시 인형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심지어 소녀의 묶은 머리마저도 관절로 마디가 나누어진 딱딱한 덩어리일 뿐. 그런 가운데 진짜 사람처럼 정교한 얼굴만큼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평온한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다.
"그럼 묘지로 간 '섀도르 리저드'의 효과로 '새도르 고슴도치'를 묘지로. '섀도르 비스트'의 효과로 드로우. 그리고 '고슴도치'의 효과로 다른 '섀도르' 몬스터인 '리섀도르 웬디'를 가져오겠습니다."
[위저드: 패 4장]
"'미도라시'는 효과로 파괴되지 않는 몬스터. 그거라면 '미라제이드'의 잔류 효과도 끄떡 없겠지."
공중에 떠오른 '미도라시'의 몸체는 눈보라가 닥치더라도 흔들리는 기색조차도 없이 여전히 평온한 표정은 유지하고 있을 것이 자명하다. 더구나 특수 소환의 횟수도 턴당 1번씩으로 제한시켜버리니 미덥지만은 못한 능력치만 커버한다면 나쁜 선택은 아닐 터.
"근데 잊은 거야? 함정 카드 '낙인추방'! 이걸로 묘지의 레벨 8 이상의 융합 몬스터를 특수 소환한다."
[빙검룡 미라제이드: 환룡족 / 어둠 / 레벨 8 / ATK 3000 / DEF 2500]
"'미도라시' 때문에 추가 효과는 못 쓰지만, 어쩄든 다음 턴이 되면 바로 '빙검룡'의 효과를 써버릴 수가 있어. 뭐 할 게 더 남았어?"
"카드 1장을 세트. 턴을 넘기죠."
예고된 눈보라가 필드에 불어닥치지만 예정대로 '미도라시'의 부유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재버워키: 패 2장]
[위저드: 패 3장]
"그래. 그럼 스탠바이 페이즈에 바로 '빙검룡'의 효과를 사용하지. 엑스트라 덱에서 '심연룡 알버 레나투스'를 묘지로 보내고, 필드의 '미도라시'를 제외."
그러나 또다시 불어닥친 냉기는 '미도라시'마저 피해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역시 얼음덩어리로 변하여 산산히 부서지면서 빈 자리만을 남기게 되었다.
그 순간도 얼마 가지 않았지만.
"메인 페이즈겠죠. 그럼 지속 함정 '섀도르크'! 묘지의 '넬섀도르 에리얼', '엘섀도르 네피림'을 제외하고, 새로운 '섀도르' 융합 몬스터를 불러내겠습니다. 레벨 6 '엘섀도르 아프카로네'를 융합 소환."
[엘섀도르 아프카로네: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6 / ATK 2500 / DEF 2000]
"이어서 불러낸 몬스터와 같은 속성의 상대 몬스터를 묘지로 보냅니다. '아프카로네'는 어둠 속성. 따라서 같은 어둠 속성인 '빙검룡'을 보내도록 하죠."
이번엔 하반신이 날카로운 이빨의 물고기로 이루어진 소녀 인형이 지팡이를 쳐들며 나타난다. 그 인형과 동반하며 나타난 그림자는 이내 바닥을 스며들며 퍼져나가더니 적진에 위치한 '빙검룡 미라제이드'의 발 밑으로 옮겨갔다.
곧 그림자는 실체를 가지며 바닥없는 수렁으로 변해간다. 그것은 '빙검룡'의 거체를 끌고 들어가기에 충분한 위력이었다.
"'빙검룡'의 효과가 또다시 터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아프카로네'는 전투로는 파괴되지 않죠. 적어도 턴이 끝나기 전까지는 버틸 듯 하네요. 뭐 따로 하실 게 있으신지?"
"그럼 '알베르'를 소환."
[데스피아의 도화 알베르: 천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0]
"'알베르'의 효과로 '낙인' 마법이나 함정을…"
"안됐군요. 패의 '이펙트 뵐러'를 버리고 무효로 하겠습니다."
[위저드: 패 2장]
"칫. 할 수 없네. 카드 1장 세트. 엔드 페이즈에 묘지로 간 '알버 레나투스'의 효과 덕분에 '융합'이나 '퓨전' 마법 카드 1장을 패로 가져올 수 있어."
[재버워키: 패 1장]
재버워키가 챙겨온 카드를 확인한 위저드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만한 카드도 없을 테니.
비록 새로운 전개에 필요할 카드의 보급이 완전을 막아내는 데에는 실패했어도 턴은 이미 끝났다. 그 동안 속성, 레벨, 융합 몬스터 카테고리라는 점까지 겹치는 몬스터가 아직 둘 남아있음에도 뭔가를 더 전개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자신처럼 융합 소환에만 특화된 덱을 선택했기 때문이겠지. 역시 참가자 사이에 섞여들기 위해 조정되었을 이 자의 덱은 명확한 한계가 있는 듯 하다.
이전의 만남도 그랬다. 페어 플레이를 고수하겠답시고 한계가 있는 덱을 사용해왔기에, 결국 가까스로나마 자신에게 패배한 셈이다. 모습과 행동을 바꾼다 한들 그런 도전 의식이라는 본질을 바꿀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자신 같은 성가신 상대를 마주하고 힘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다. 아무리 불멸이라 해도, 모든 것에 끝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 세상에 있다 보면 언젠가 수습하지 못할 한계는 찾아올지 모른다.
본질이나 다름없는 사명을 제 손으로 이루지 못한다면 태어난 의미도, 찾아온 의미도 없을 텐데. 그런 위기 따위를 고려할 필요조차 없는 힘이 분명히 있을 텐데.
남들보다도 전지전능에 한 발짝 앞서있을 자가 '유희'라는 이유로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이, 위저드로서는 불합리로밖에 다가오지 않았다.
정말로 그런 힘이 어울리는 자인가 하는 의혹마저 품어버릴 지경이다.
"저런. 보여주실 게 아직 남았을 텐데. 어쨌든 턴을 끝내셨으니 '아프카로네'는 작별의 시간."
'미도라시'와는 달리 전투 파괴 내성을 가진 대신 효과 파괴 내성이 없는 '아프카로네'는 또다시 불어닥치는 눈보라에 속절없이 휘말리며 퇴장한다.
물론 이조차도 위저드는 상정한 일이었다.
"대신에 이별 선물을 받아야죠. '아프카로네'가 묘지로 가면 덱이나 묘지에서 '섀도르' 카드 1장을 패에 넣습니다. '섀도르 퓨전'을 다시 회수하고, 패에 있는 '리섀도르 웬디'를 묘지로. 그리고 이 순간 묘지로 간 '웬디'의 효과로 덱에 있는 '섀도르' 몬스터 1장을 뒷면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합니다. 그럼 제 턴이네요."
[위저드: 패 3장]
자신도 이 자와의 승부에 재미를 더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준비한 카드 중 하나가 아직도 패에 잡혀주지 않았음에 아쉬움을 느낀다.
그래도 지금 있는 패만으로도 비슷하게 꾸며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그는 이번에도 전개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제외된 '알레이스터'를 회수하고, '소환마술'을 덱으로. 그리고 '알레이스터'를 소환해서 덱에 있는 '소환마술'을 서치."
[소환사 알레이스터: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800]
"그 다음 '섀도르 퓨전'. 이번엔 덱에서 '섀도르 고슴도치', 그리고 화염 속성의 '하루 우라라'를 묘지로 보내고, 레벨 7 '엘섀도르 에그리스타'를 융합 소환합니다."
[엘섀도르 에그리스타: 암석족 / 화염 / 레벨 7 / ATK 2450 / DEF 1950]
"묘지로 간 '고슴도치'의 효과로 '네프섀도르 게니우스'를 서치. 이번엔 '소환마술'로 필드의 '알레이스터', 묘지의 '하루 우라라'를 제외. 역시 레벨 7의 '소환수 푸르가트리오'를 융합 소환합니다. '푸르기트리오'의 효과로 당신 필드의 카드 1장당 공격력을 200씩 상승."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악마족 / 화염 / 레벨 7 / ATK 2300 → 3100 / DEF 2000]
[위저드: 패 3장]
"그리고 세트된 2장째 '에리얼'을 반전 소환. 리버스 효과로 제외된 '섀도르' 몬스터 하나를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합니다. '네피림'을 되살리고, 그 ①의 효과로 '섀도르 드래곤'을 묘지로'. 여기에 묘지로 간 '섀도르 드래곤'의 ②의 효과로 당신의 마법이나 함정 1장을 파괴하겠습니다."
[넬섀도르 에리얼: 사이킥족 / 물 / 레벨 4 / ATK 1000 / DEF 1800]
[엘섀도르 네피림: 천사족 / 빛 / 레벨 8 / ATK 2800 / DEF 2500]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ATK 3100 → 2900]
파괴한 카드는 '낙인흉명'. 발동 타이밍이 마련되지 않았으니 현 시점에서는 블러핑이나 다름없는 카드다.
어찌 됐든 그럴 기회를 마련해줘서 위저드에게 좋을 것은 없으니 파괴한 보람은 있었다.
"이번에도 '섀도르크'의 효과를 사용하죠. 묘지의 '아프카로네', '섀도르 드래곤'을 제외하고, 2장째 '미도라시'를 융합 소환. 추가 효과는…, 이번엔 패스."
[엘섀도르 미도라시: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5 / ATK 2200 / DEF 800]
어차피 '섀도르크'의 효과로 불러낸 융합 몬스터는 직접 공격이 불가능하다. 전투 데미지를 더 주기 위해서라면 몬스터를 일부러 남겨놓는 것이 나으리라 위저드는 생각했다.
적어도 메인 몬스터 존을 꽉 채우는 몬스터의 대량 전개는 위저드 쪽이 먼저 성사시켰다. 그 고양감과 함께 위저드는 움직일 수 있는 몬스터들에게 공격을 지시한다.
"그럼 배틀. '푸르가트리오'로 '마스카레이드'를 공격."
[재버워키: LP 6500 → 6100]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ATK 2900 → 2700]
"'푸르가트리오'는 상대의 모든 몬스터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알비온'을 공격."
[재버워키: LP 6100 → 5900]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ATK 2700 → 2500]
필드의 카드가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푸르가트리오'의 공격력도 점점 내려갔지만 남은 몬스터들을 해치우기에는 충분했다. 두 몬스터가 내뿜는 열기와 화염에 필드에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던 한기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알베르'를 공격."
[재버워키: LP 5900 → 5400]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ATK 2500 → 2300]
"'에그리스타', '에리얼'로 다이렉트 어택."
남은 하나의 적마저 사라졌으니 공격을 지시받은 몬스터들의 직접 공격이 상대 플레이어를 일제히 덮쳐온다.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붉은 에너지를 내뿜으며 은은한 빛이 나는 구슬들을 관절로 박아넣은 거인 인형은, 이전의 다른 거대한 '엘섀도르' 몬스터들처럼 등 뒤를 날개처럼 뻗고 있던 실가락들을 촉수처럼 상대에게 뻗쳤다.
뒤이어 진공관에 갇혀있는 소녀는 잠에서 깨지 못했는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지만, 대신 양손에 가지런히 든 지팡이가 빛나기 시작한다. 이를 신호삼아 진공관 주변에 스며들어 있던 그림자가 안개처럼 형태를 갖추더니 역시 촉수처럼 뻗어나갔다.
두 몬스터가 자아낸 여러 갈래의 선은 미사일처럼 적에게 내려꽂히며 충격을 안긴다.
[재버워키: LP 5400 → 1950]
먼지가 걷히자, 위저드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별다른 반응 없이 버티고 있을 뿐인 상대의 모습. '고작 이거냐'고 조롱해오는 것만 같다.
면목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직접 그 생각을 떠보고 싶었기에 그는 도발로밖에 들리지 않는 말을 건넸다.
"충분히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었나 싶네요. 슬슬 폐막이 머지 않은 듯 합니다만."
"모르지. 내 라이프도 생각보다 많이 남은 것 같고, 덱도 남았잖아. 끝이라 단언하는 건 섣부른 게 아닐까?"
"더 기대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뒷내용을 모르니까 체험하는 재미가 있는 법이라고."
LP가 0이 되는 순간까지 생각을 바꿀 기미는 없나보다. 저 자신감이 턴을 마치기 전에 가져온 '그 융합 카드' 덕분인 것이라면.
융합 소환은 보통 마법 카드의 효과로 특수 소환하는 경우가 많으니 웬만해서는 '에그리스타'의 효과로 막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필드에 카드가 없어도 덱에서 소재를 마련할 수 있는 카드라면 패의 카드를 굳이 소모할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경제적이다.
그런 걸로 '낙인룡 알비온'을 융합 소환한다면 분명 아까처럼 융합 몬스터들의 행렬이 이어지겠지. 납득이 갈 수밖에 없는 선택인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걸 쓸 수 있을 때의 이야기.
"어디, 그럼 카드 1장을 세트. 당신 턴입니다."
"좋아."
재버워키는 잠시 차고 있는 듀얼 디스크를 내려다본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 잠시 심호흡을 하고서, 다루고 있는 손가락으로 홀로그램으로 된 카드를 뽑아들었다.
[재버워키: 패 2장]
[위저드: 패 2장]
패를 확인한 재버워키가 또다시 한 마디.
"인생이란 원래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거든."
이 서론의 의미는 무엇일지 벌써부터 흥미가 동한다.
단순히 패배를 앞둔 신세 한탄일까. 그렇다면 위저드에게 더없이 이로운 상황이겠지만, 이미 그럴리 없다는 생각이 위저드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재밌는 거 아니겠어? 계속 시련 뿐인 인생이면 즐기는 게 곧 답이라 생각하는데."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뭔가요?"
"마침 잘 나와줬다 싶어서. 슬슬 절정의 때가 온 셈이야. 마법 카드 '컵 오브 에이스'."
발동한 카드의 이미지가 공중으로 출력되더니 시곗바늘처럼 회전하기 시작한다.
위저드는 한 순간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선택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자이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니까.
금지 카드로 지정된 '욕망의 항아리'처럼 다른 어드밴티지 소모 없이 패를 확보할 수 있는 카드. 물론 그 이득을 사용자가 취하기 위해서는 운이 따라줘야 한다.
"멈춰서 정위치면 당신이, 역위치면 제가 2장 드로우란 말이죠. 네, 어디 결과나 봅시다."
1/2 확률로 사실상 승패가 갈린다. 시련을 제 손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위저드에게 예측하지 못할 결과에 흥미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자신이 갈구해오고 경외해 마지 않았던 힘. 그것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이 자도 자신의 운명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힘까지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있어도 '재미없다'는 이유로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든, 예나 지금이나 재버워키는 자신을 승패라는 도마에 올려놓는 행위조차 재미를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이런 게임을 열고 자신이 직접 나섰다는 사실부터가 그것이 진심임을 암시하고 있으니까. 그 진심을 한 두 번 이기는 걸로 바꿀 수 있으리라는 데에는 본인조차 회의를 품고는 했다.
그런 이유라면 무슨 생각을 품게 되든 이상하지 않겠지. 어쩌면, 제 본질을 내던지겠다는 마음마저 품어버릴지도 모른다.
정말로 이를 구제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스톱."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짧은 한 마디와 함께 카드의 회전이 멈춘다.
그 결과, 눈앞에 보이는 그림은 물 위를 반듯하게 버티고 서있는 컵이었다.
"당연히 정위치. 드로우는 내 차지네."
[재버워키: 패 3장]
운명의 선택을 자신하고 있던 저 반응에 위저드는 벌써부터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어둠의 유혹'. 덱에서 2장 드로우하고, 패에 있는 어둠 속성의 '비극의 데스피아안'을 제외. 그리고 제외된 '비극'의 효과로 3장째 '알베르'를 서치."
[재버워키: 패 4장]
"그 다음 '무한포영'. '미도라시'의 효과를 무효로 할게."
'미도라시'가 갑작스럽게 주변에 일렁이는 거품에 휩싸이며 감전되듯이 움찔거린다.
이것으로 대량전개를 방지하는 수단은 손쉽게 대처되었다.
"그 다음 '알베르'를 소환."
[데스피아의 도화 알베르: 천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0]
[재버워키: 패 2장]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ATK 2300 → 2500]
"'알베르'의 ①의 효과를 쓸게. 체인 있어?"
"진행하시죠."
"좋아. 이번에 가져올 카드는…, 이게 좋겠지."
견문을 통해 쌓아온 위저드의 직감이 이야기해온다. 운명은 벌써부터 돌이킬 수 없을만큼 기울어 있다는 것을.
"가져온 지속 마법 '실낙인'을 발동. 융합 소환하는 효과는 무효화시킬 수 없어. 융합 소환 성공시에 카드 효과를 쓰는 것도 불가능해. '폭주마법진'하고 겹치네."
"그렇단 말이죠…."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ATK 2500 → 2700]
쓴 웃음을 지으며 위저드는 방금 전에 세트한 '신의 경고'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이것 역시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신세다.
행운이 안겨준 패는 이미 자신이 마련한 비장의 수단을 전부 막아버릴 카드를 갖춰준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운명을 자랑할 가치는 있다.
그 운명은 단순한 운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니면 역시 그 '힘' 덕분에 가능한 것일까.
어쨌거나 드디어 예고된 그 카드가 힘을 선보일 차례다.
"그럼 마법 카드 '낙인융합'. 패 / 덱 / 필드에서 정해진 몬스터 2장을 소재로 삼아 융합 소환할 수 있어. 체인은?"
"여전히 짖궂으시네요."
서로의 미소가 교차한다.
한 쪽은 실없는 웃음. 다른 한 쪽은 방금 전까지 내비치던 무료함을 거두고서 내보이는 천진난만한 웃음.
손발을 묶어놓고 저항할 수 있으면 저항해보라니. '유희'를 목적으로 이런 게임을 벌이는 자다운 악취미가 아닐 수 없다.
"그럼 처리 들어갈게. 덱에서 '알버스의 낙윤', 그리고 빛 속성의 '혁의 성녀 카르테시아'를 묘지로 보내고, 3장째 '알비온'을 융합 소환."
[낙인룡 알비온: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8 / ATK 2500 / DEF 2000]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ATK 2700 → 2900]
"'알비온'의 ①의 효과, 여기에 '실낙인'의 ②의 효과를 처리. 융합 소환했으니까, 덱에서 '알버스의 낙윤'과 관련된 카드를 가져올 수 있어. 2장째 '혁의 낙인'을 서치. 계속해서 '알비온'의 효과를 처리할게. 묘지의 '알버스', '알버 레나투스'를 제외하고, 레벨 8 '신염룡 루벨리온'을 융합 소환."
[신염룡 루벨리온: 드래곤족 / 빛 / 레벨 8 / ATK 2500 / DEF 3000]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ATK 2900 → 3100]
이번에 불러낸 것은 은갑처럼 번들거리는 비늘과 붉은 날개를 드러내보이는 사나운 인상의 드래곤.
여기서 끝이 아님을 위저드는 알고 있었다. 퍼레이드는 아직도 남았으니까.
"패를 1장 버리고, 융합 소환된 '루벨리온'의 효과를 발동. 제외된 '알버스'를 덱으로, 그리고 '빙검룡 미라제이드'를 엑스트라 덱으로 되돌리고, 엑스트라 덱에서 다른 '빙검룡'을 융합 소환."
[빙검룡 미라제이드: 환룡족 / 어둠 / 레벨 8 / ATK 3000 / DEF 2500]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ATK 3100 → 3300]
[재버워키: 패 1장]
'루벨리온'의 부름에 따라, 해치웠나 싶었던 얼음의 용이 기어이 귀환한다.
"이번에도 '빙검룡'의 ① 효과로 엑스트라 덱에 있는 '철구룡 스프린드'를 묘지로 보내고, 당신의 '네피림'을 제외할게."
그리고는 어김없이 난적이 되는 상대를 싸움에 들어서기 전부터 치워버린다. 제외라는 방법으로 필드에서 퇴장되었으니 '네피림'의 효과가 발동하는 일은 없었다.
"이어서 속공 마법 '혁의 낙인'. 묘지에 있는 2장째 '알베르'를 회수하고, 필드와 패에 있는 '알베르' 2장을 제외. 2장째 '쿠에리테스'를 융합 소환!"
[데스피아안 쿠에리테스: 악마족 / 빛 / 레벨 8 / ATK 2500 / DEF 2500]
드래곤들의 뒤를 이어 검은 갑옷의 기사가 다시 현현한다.
위저드는 직감할 수 있었다. 퍼레이드의 마지막은 그가 차지했다는 것을.
이 퍼레이드야말로 재버워키가 준비했을 클라이맥스일 터.
"이번에도 '쿠에리테스'의 ①의 효과. 레벨 8 이상의 융합 몬스터가 아닌 몬스터의 공격력을 이번 턴동안 0으로 만들지."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ATK 3300 → 0 → 1000]
[엘섀도르 에그리스타: ATK 2450 → 0]
[엘섀도르 미도라시: ATK 2200 → 0]
[넬섀도르 에리얼: ATK 1000 → 0]
위저드의 융합 몬스터들은 전부 레벨이 8에 미치지 못했기에 '쿠에리테스'의 손길을 피해가지 못한다.
그나마 '푸르가트리오'가 다시 상대의 필드 카드 수만큼 공격력을 강화하기는 했지만 이들의 행렬을 막아보기에는 역부족일 뿐.
이것으로 자신이 마련해둔 모든 수단은 무의미해졌다.
"당신 말이 맞아. 벌써 폐막 시간이잖아. 그래도 그것마저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어?"
자신의 표현을 되돌려주는 그 발언에 위저드는 헛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그 반응에 재버워키가 뿌듯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즐거워보여서 다행이네. 그럼 피날레!"
하츠카의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와 함께, 절정은 비로소 결말로 향한다. 그 과정은 일방적인 유린의 시간이었다.
'쿠에리테스'가 건방지게 힘이 남아있던 '푸르가트리오'를 제압해버리고, '알비온"은 마찬가지로 붉게 달아오른 몸뚱아리의 '에그리스타'를 연소시킨다.
그 마침표를 찍는 것은 '빙검룡'의 공격. 검처럼 세공된 얼음덩어리가 마지막으로 남은 '미도라시'의 몸체를 박살내고, 뒤이어 그대로 주인인 위저드와 충돌한다.
[위저드: LP 6200 → 0]
냉기를 품은 무거운 충격에 힘없이 떠밀린 끝에 위저드의 몸은 바닥을 구른다. 온몸과 함께 머리가 얼얼해져온다. 몸에 찾아드는 격통조차 자신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여전히 귀에 들려오는, 다른 곳에서 치뤄지는 격전의 소리는 그저 다른 곳의 일일 뿐이다.
안경이 떨어져나간 상태에서 보이는 풍경은 역시 흐릿하다. 그러나 여전히 구름 한 점 없는 뿌연 하늘은 안경을 쓰든 안 쓰든 똑같이 보일 뿐이리라.
불완전한 육체가 접하는 환경이란 결국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끝내 이 육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재버워키는 본인의 본체나 다름없는 디젠을 사용해오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이 자신의 벌칙을 되돌려받는다는 결말을 맞이할 일은 없을지 모른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저런 디젠으로도 그러기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재미없다는 이유로 정말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운명을 내버린 자의 혼, 그리고 가진 모든 것을 가져간다는 혜택을 이 자는 누리지 못한다. 자신이 얻어온 것은 결코 적지 않을 텐데.
그것은 조금 아깝지 않을까. 아니면 그런 것조차 따위로 여겨질 만큼 많은 것을 이미 이 자는 누리고 있다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여지껏 벌여온 유린의 일격을 자신이 받아본다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런 쇼를 펼쳐준 상대를 향해, 위저드는 소감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저한테 당신 '유희'를 막을 자격 따윈 없다는 걸. 무시당해도 할 말 없겠죠."
나름대로 전력을 다하고 싶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든 한 발 전진해나간다면, 이 자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런 선택을 거쳤기에 여기까지 온 것에 보람을 느껴왔다.
그러나 이 자가 근소하기는 커녕 더 높은 곳에서 자신의 위에 서있었던 것이라면. 결코 닿지 못할 하늘에 있음에도 자신은 그 그림자를 따라 쫓아왔을 뿐이라면.
여태까지 자신의 노력이 태양에 다가가기도 전에 녹아내릴 날개에 불과했다면.
정말로 발을 들일 가치는 있었을지 위저드는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오해하지 마. 난 딱히 당신을 무시한 적 없어. 오히려 존중하고 있거든. 꿈에 다가가는 하나의 모습으로서."
"그거 감사하네요."
"그 불만, 집념, 무모함. 그런 게 있으니까 당신한테도 손을 내밀었던 거야. 전환이 가득한 인생이야말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니까. 도중에 시작된 이야기라도 재미만 있다면 지켜볼 가치는 있잖아?"
하츠카의 얼굴은 여전히 히죽이는 미소로 순진한 물음을 던져온다.
"그러니까, 당신도 존중이라는 걸 해보는 건 어땠을까?"
"…당신이 그런 말씀 하시깁니까?"
그에 되물으면서 위저드가 고개만을 힘겹게 올려든다.
어차피 모든 건 끝이라 해놓고, 남의 허락도 없이 일을 벌리는 자가 존중을 논한다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닌가.
역시 자신의 유희를 방해해왔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생각에 위저드는 저절로 다시금 쓴웃음이 지어진다.
"존중의 형태는 여러가지니까. 이해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든."
"그러시군요."
대답을 들은 위저드가 다시 편하게 드러눕는다.
역시 이 자의 본질은 이해를 거부하는 어둠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선택을 망설이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제 흥미에만 몰두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한들 그 사명을 그르치는 일은 없겠지.
그렇다면 독선을 고수할 자격은 충분하다. 구제할 방법도 필요도 없다.
자신이 살펴봤던 그림자가 틀리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후회할 필요 따윈 없는 것이다.
그렇게 안심하고서야 그는 개운한 마음으로 다음 감상을 전한다.
"…뭐, 이번에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변함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쓴웃음에서 평온한 미소로 변해있었다.
만약 이 공간이 역할을 다하고 사라진다면 애매하게 뿌연 하늘은 완전한 어둠으로 돌아가리라.
그 전에 정반대로 태양이든 뭐든 떠서 눈부시게 빛나는 이변은 없을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었다.
"마지막으로 부탁 좀 해도 될까요?"
"뭔데?"
"만약 저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시면, 하다 못해 가져온 것들이라도 살펴보시는 건 어떨지."
재버워키는 그제서야 위저드가 지참해온 짐으로 잠시 시선을 옮긴다.
"충분히 가치있는 선물이 되겠다 싶거든요."
"흐음…, 한 번 살펴볼게."
"네, 잘 부탁합니다. 그럼 먼저 할 일을 하셔야겠죠."
"알았어, 알았어."
"감사합니다. 그럼."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낸 듯 듀얼 디스크를 풀어버린 위저드를 향해, 재버워키는 어둠의 듀얼에 사용한 디젠을 그대로 내민다. 삼각형 한 가운데에 사람의 눈 하나가 박혀있는 문양의 메달.
새삼 자신의 선물을 계속 갖고있어줬다는 사실이 위저드에게는 고맙게 느껴진다.
"'회개하여라'."
그 한 마디와 함께 메달이 빛을 내보낸다. 그 직후 위저드의 몸 역시 빛으로 뒤덮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곧 정반대임을 위저드는 알 수 있었다.
"……!!"
몸이 급속도로 뜨거워져 온다.
몸 속을 뚫고 나오는 열기에 그을리듯, 자신의 옷가지며 피부, 근육이 재가 되어 흩어져나가기 시작한다. 연기와 함께 황혼과도 같은 금빛이 그 너머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육체라는 껍데기 속에 담겨있던 것은 뜨거운 빛이라는 듯이. 그것이야말로 내면의 영혼이라고 기만하듯이.
몸 안팎으로 지져오는 고통은 이미 용광로에 뛰어든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점점 더 뚜렷해지는 빛과 함께 경련과 비명이 터져나올 것만 같다.
내장과 뼈가 찬란한 광원 속에서 타들어간다. 피부의 신경은 바스러지기 직전까지, 통각을 전하는 기능을 쓸데없을 정도로 충실히 전해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차라리 빨리 사라지기라도 했다면 이 고통에 시달릴 필요는 없을 터. 얼마나 자신에게 감정이 있었는지 톡톡히 전해져오는 듯하다.
어찌 됐든 자신이 권유한 성의를 통해 그가 자신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니, 이것을 이별의 선물로 받아들이며 감내하기로 한다.
그 동안 위저드는 마지막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해석을 즐겨보았다.
이것은 말 그대로 '회개하라'는 최후의 배려일까. 아니면, 어둠으로 발을 들인 자신에 대한 블랙 조크일까. 그조차 아니면 단순한 살의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어둠의 에너지로 빛을 표현하는 아이러니라니, 마지막까지도 흥미로운 퍼포먼스다.
문득 위저드는 떠올린다. 이와 비슷한 빛을 손에 넣은 소년의 존재를.
어둠이 모사해낸 빛이 아닌, 어둠을 간섭하는 빛. 그 인연을 이 자가 알았더라면 정말로 이곳까지 이르게 했을까. 본인이 차마 감당도 하지 못할 애정을 보내왔을까.
평온의 울타리 속에 있던 인물은 어쩌다 이곳까지 이르렀을지. 무엇이 그들의 선택을 받게 했는지 그렇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리가 있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인연이라도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소년 본인이 그걸 알아내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알아낸다면 그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선택과 생각에 달렸을 뿐이다.
'제가 남겨둔 게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역시, 그걸 직접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은 유감이네요.'
후회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는 주의임에도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기며, 남은 머리부분마저 탈피한다.
그렇게 모든 껍데기를 벗어던지고서 드러난 황금의 빛덩어리는, 알 껍질 밖에서 터져버린 노른자처럼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주변의 풍경에 녹아들며 사라졌다.
"역시 보통이 아냐, 저 정도로도 꿈쩍을 안 하네. 진짜 회개했으려나."
아무도 듣지 않을 소감을 털어놓고서, 재버워키는 먼저 자신에게 내려오는 5장의 카드를 대충 훑어보고 챙긴다. 그리고는 위저드가 서있던 자리에 찾아가 그의 유산을 집어들었다.
빛을 표현하듯 사방으로 뻗은 사선 사이에 위치한 삼각형,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눈 하나가 새겨진 문양이 돋보이는 금박의 책갈피였다. 척 봐도 방금까지 썼던 메달과 세트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 디젠에 담겨있던 에너지가 돌아온다. 한 두명 이긴 정도로는 그에게 간지럼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겠지만, 그런 그에게조차 혈관이 한순간 부풀어오르는 듯한 감각이 흘러들었다. 여기 와서만 해도 얼마나 많은 혼을 집어삼켰을지.
그리고는 다음 유산을 살펴보고자 짐가방을 구석진 곳까지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어우, 무거워. 벽돌이라도 넣은 거야 뭐야?"
아무리 에너지를 얻었다지만, 이런 육체로 이만한 무게를 들고 다닌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 결국 반은 질질 끌다시피 옮기고 나서야 그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방의 빈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꽉꽉 들어찬 내부에서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책이었다. 고전적인 걸작 문학부터 최근의 베스트 셀러, 그리고 외국어로 적힌 고서 등 각종 서적이 빼곡히 끼워져있다. 여기에 카드 컬렉션을 수집하는 앨범까지. 쓸데없이 많이 들어찬 책을 보면 오래 체류할 생각이라도 했던 것일까. 아니, 이 정도는 금세 읽어내는 인물이었던 것도 같다.
그런 그라면 심심풀이 밖에 되지 않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책을 다 들고 다닐 생각을 한다는 건 몸이나 마음이나 제법 강건한 인물이었구나 싶을 정도다.
그 유산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이동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르기에 그냥 다른 유산이나 알아보기로 했다.
재버워키는 다른 칸에 마찬가지로 뻬곡히 채워져있는 나머지 카드들을 주섬주섬 훑어본다.
"흐음……."
활용도나 성능이나 다양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유기적으로 얽힐 수 있는 카드들이다.
이미 그가 사용했던 카드들만 봐도 알 수가 있었지만, 하츠카로서 자신이 챙겨온 덱하고도 상성이 너무나 잘 맞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위저드가 듀얼에서 사용했던 덱을 번갈아 살펴보던 중, 그가 미처 선보이지 못한 카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주도 좋네. 이런 걸 다 어떻게 구했대."
일개 카드라기에는 흉흉한 기운이 풍긴다. 웬만한 에너지를 채운 디젠과도 비견할 수 있을 정도다.
아예 모르는 카드는 아니다. 그저, 이걸 얻기까지의 과정에서 있었을 수많은 이야기가 떠올랐을 뿐이다. 분명 입수하기까지 적지 않은 피를 봐왔으리라.
왜 이런 걸 써보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저 그걸 패에 거머쥘 만한 운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만큼 이 순간을 기다렸겠지. 덕분에 나름 즐거웠어. 이제 만족해?"
목소리로 나오지 않은 그 물음에 대답이 돌아올 일은 없다.
결국 짐가방은 놓고 가기로 하면서 카드 일부만 확보해두는 선에서 끝난다.
전보다 확연히 무거워진 소지품 가방을 진 채로 그녀는 다음 승부를 기대하기로 했다.
결전이 머지 않은 이 순간에도 아직 만남의 순간은 남아있다.
방금 전까지도 누군가에게 단서를 적지 않게 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되도록이면 남이 자신을 찾아주는 전개를 원한다. 하지만 자신이 발견하는 즐거움도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즐거움을 원하는 자신의 마음은 여전히 바뀌지를 않기에, 뭐가 됐든 기대를 품어볼 수 있었다.
'응, 즐거움은 이제부터야.'
이번엔 어떤 만남이 찾아올까. 지금 얻은 선물은 어떤 도움, 혹은 어떤 방해가 되어줄까.
그런 기대를 품으며, 조용한 산책이 다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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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오리카 하나 없이 완성된 듀얼입니다
오리카 쓸려고 만든 팬픽에서 오리카 없는 듀얼이 뿌듯하다니 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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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카없는 듀얼은 그만큼 로그 짜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지 않나 싶은 그보다도 위저드는 결국 껍질 깨진 달걀처럼 주르륵 흘러내리다 녹아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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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왔다 컵 오브 에이스 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데스피아는 성능으로나 컨셉으로나 악역이 쓰는게 훨씬 어울리긴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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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카없는 듀얼은 그만큼 로그 짜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지 않나 싶은 그보다도 위저드는 결국 껍질 깨진 달걀처럼 주르륵 흘러내리다 녹아버렸네요(?)
(IP보기클릭)223.62.***.***
| 23.09.08 18: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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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많이 드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작품도 중요하지만, 건강 챙기면서 하세요!!! | 23.09.08 18:50 | |
(IP보기클릭)223.33.***.***
| 23.09.08 19:01 | |
(IP보기클릭)118.235.***.***
진짜 나왔다 컵 오브 에이스 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데스피아는 성능으로나 컨셉으로나 악역이 쓰는게 훨씬 어울리긴 하군요
(IP보기클릭)58.143.***.***
뒤틀린 황천의 광대라니 빌런 컨셉이 아니면 무엇인 | 23.09.08 19:55 | |
(IP보기클릭)220.83.***.***
??? : 눈치..... 어딘가의 모 망령씨 : 아니 님으 | 23.09.11 04:0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