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게시글은 페이트 사무라에 렘넌트 및 기타 페이트 시리즈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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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년 프랑스 를 다스리던 카페왕조 의 국왕 샤를4세가 후사없이 눈을감으면서 사건은 시작되었습니다.
프랑스 왕좌를 두고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를 요구하기 시작하자 프랑스 귀족들은 샤를 4세의 사촌인 필리프 백작이 섭정이 되어
프랑스를 통치하다 카페왕조의 방계 가문인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를 즉위시키면서 점차 영국과 프랑스 간의 긴장이
촉발되었습니다. 그러다 1337년 프랑스 와 영국은 가스코뉴 지방의 분쟁을 시작으로 충돌이 일어나게되니 이것이 1337년 부터 1453년 까지
무려 116년간 싸웠다고 하여 훗날 100년 전쟁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 대천사 미카엘과 성녀 카타리나 와 마르가리타가 잔에게 하느님의 계시를받고있는 잔 다르크 ) (루이 모리스 부테 드 몽벨 1900년작 )
양측 치열간 전쟁 은 차츰 왕위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아닌 게임으로 변질되어가고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랜전쟁을 하다보니 귀족들이 포로로
잡히고 몸값을 내는 일이 반복되기 일수 였지요 그렇게 전쟁이 차츰 지루한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을무렵 1412년 (*이때 잔다르크가 출생한것
으로 추청하는 년도입니다. ) 프랑스 시골마을인 동래미 (* 오늘날 프랑스 그랑테스트 레지옹 보주 주 동레미 라 퓌셀 코뮌 ) 에서 말단 관리인
자크 다르크의 막내 딸로 태어났습니다. 1425년 잔 다르크가 13세의 나이 무렵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대천사 미카엘 과 성녀인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와 안티오케이아의 마르가리타가 나타나 잔에게 말하길 영국군을 몰아내고 샤를 왕세자 를
랭스( 오늘날 프랑스 북동쪽 그랑테스트 레지옹 마른 주 ) 로 데리고 가서 대관식을 치루도록 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내려주기 위해 잔을 찾아
왔다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잔 다르크는 보클뢰르 지방으로 떠나려 하자 아버지인 자크는 대노하여 잔느의 오빠들에게 잔을 묶고
돌을 던지라고 했을정도로 엄청 분노했다고합니다. 후에 잔을 다시만나게되었는데 그때는 화가 누그러졌다고 하네요
(샤를 왕세자를 알현하는 잔 다르크 ) (루이 모리스 부테 드 몽벨 1896년 삽화 )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잔 다르크 는 사촌인 듀랑에게 부탁하여 보쿨뢰르 지방의 영주 로베르 드 보드리쿠르 (1400~1454) 에게 자신을 시농
(* 오늘날 프랑스 상트라발루아르 앵드레부아르 데프르타망 코뮌 ) 에 있는 샤를 왕세자를 알현해줄것을 부탁하게됩니다 그러나 로베르는
왠 촌 아가씨가 다짜고짜 자기를 찾아와서 왕세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 처음엔 그녀를 의심하여 사제를 보내 그녀가 마녀인지 아닌지를
확인코자 보냈으나 잔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고해상사를 하며 의심을 풀게되었고 차츰 르베르의 부하인 장 드 메스 와 베르트랑 드 플
리뉘 등이 잔 다르크의 뜻에 동조했고 그렇게 르베르 영주는 시농에 있는 샤를 왕세자에게 연통하여 잔은 샤를왕세자를 만나게됩니다.
하지만 샤를 왕세자 역시 처음 잔 다르크를 의심하여 시종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왕세자 인척 하고 꾸미게 한다음 자신은 시종의 옷을 입어
알아보지 못하게끔 하였는데 잔은 시종복장을 입은 샤를 왕세자를 단번에 알아보고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게 됩니다 이에 측근들은
잔 다르크가 마녀라고 의심하여 성직자 들을 보내 심문을 하였으나 잔은 거짓없는 답변으로 심문을 통과하게 되었다고합니다.
(* 영국군에게 포위당한 오를레앙의 포위에서 구원하는 잔 다르크 ) (쥘 외젠 르네프뵈 1890년 작 )
그녀에게서 이단 이나 마녀 등의 거짓 없는 모습을 알게 된 샤를 왕세자는 잔 다르크에게 군사를 내어주고 그녀를 보좌할 질 드 몽모라시발
(질 드레 ) 와 에디엔 드 비뇰 (라 이르 ) 등의 기사를 붙여주어 영국군에게 포위당한 오를레앙 을 구하라는 임무를 내리게됩니다
이때 잔 다르크는 예수와 성모마리아 가브리엘 사도 요한 등이 그려진 깃발을 과 천사들이 알려준 생트 카트린 드 피에르부아 성당에서 발견한 검
을차고 다녔다고합니다. 그렇게 오를레앙으로 출발한 잔은 프랑스군 지휘관인 장 드 뒤노아의 홀대에도 군대와 사람들을 설득했지요
그렇게 치열하게 싸운 결과 오를레앙 을 포위한 영국군을 패퇴시킬수 있었지요 당시 오를레앙 전투가 끝나고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집니다.
오를레앙 성 앞에 큰 강이 흐르고 있어 배를 타고 가야하는데 문젠 바람이 불리한 방향으로 불거나 심지어 불지 않는 일이 일어나자
잔 다르크가 기도를 드리자 거짓말 처럼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전합니다. 1462년 에는 1420년 영국의 헨리 5세 의 프랑스 왕위계승을
인정하는 조약인 트루아 조약 을 지지해서 발루아 왕조의 의심을 사고있던 아르튀르 드 리쇼몽 백작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엔 리쇼몽 백작은
잔을 믿지 않았으나 이후 잔을 믿게 되면서 잔 다르크의 편에 서게되었지요 수많은 전투를 치루면서 잔 다르크는 석궁에 가슴 윗부분을 맞거나
대포의 포탄을 머리에 정통으로 맞는등 여러 목숨이 위험한 일들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전장의 선두에 나서서 활약하였습니다.
이렇게 잔 다르크가 여러모로 전세를 뒤집은것은 프랑스의 국가의식과 국민의식을 심어줌으로서 지루하게 공방전 치루던 전쟁을 성전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전세를 뒤집어놓기 시작한것입니다 거기다 파테 전투에서 영국의 아킬레우스 또는 프랑스의 공포 라고 불린 영국군의 명장
존 탈보트 장군과 여러 고위층을 포로로 잡고 렝스 지방을 탈환하는등 눈부신 전과를 내기 시작했고 이에 샤를 왕세자는 랭스 에서 대관식을
열어 샤를 7세 로 등극하게됩니다. 샤를 7세는 이러한 잔 다르크의 공적을 치하하고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될때까지 조세면제구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차츰 샤를 7세 와 발루아 왕조는 점점 잔 다르크를 위험한 존재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럴만한것이 성녀라고 믿는
잔 다르크 의 말 한마디에 잔을 양한 지지가 높아질것이 뻔했고 발루아 왕조 로 부터 의심을 받는 리쇼몽 백작 역시 잔 다르크의 편이였기에
의구심과 적대감은 나날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프랑스의 왕도 인 파리 탈환이 실패 와 함께 라샤리테 전투에서도 조력을 받지 못해
패배하였고 샤를 7세 는 점차 전쟁의지를 잃고 있었습니다. 1430년 부르고뉴 의 선량공 필리프 가 군대를 키우고 콩피에뉴 지방을 침공하자
잔은 소수병력만을 이끌고 콩피에뉴 공방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콩피에뉴 방어는 성공했지만 잔 다르크는 그만 브르고뉴군에게
잡히고 맙니다. 하지만 잔은 이에 포기하지 않고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고 그녀를 포로로 잡은 리니 백작은 발루아 왕조 에게 잔느의
포로 몸값을 제시했으나 이미 용도가 다 된 잔 다르크에게 돈을 쓸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리니 백작은 잔을 영국군에게 그녀를 넘기게 됩니다.
(이단 재판을 받고 있는 잔 다르크 ) ( 루이 모리스 부데 드 몽벨 1869년작 삽화 )
잔은 파리로 호송되어 영국 과 브루고뉴 의 이단 심문관들의 재판을 받았는데 이 재판을 위해 피에르 코숑 (1371~1442) 과 70명의 신학 전문
가를 구성한 이단 심문팀을 꾸려 잔 다르크를 몰아붙이려 했으나 오히려 몰린것은 피에르 코숑과 이단심문관 들이였습니다. 처음엔 공개재판으로
나갔으나 이후엔 비공개 재판으로 나갔는데 워낙 잔 다르크이 언변과 논리정연한 대답으로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피에르 코숑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잔 다르크를 궁지로 몰려고 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했고 오히려 일부 이단 심문관들은 잔 다르크를 살려주는쪽으로 돌아서기 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잔 다르크를 살려주지 않으려 했고 결국 그녀를 이단으로 판정하고 1431년 5월 루앙 거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당시 19세 젊은 나이에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살아간 인생이였습니다
화염의연기로 질식사 하여 숨을 거둔걸 안 영국은 불을 끄고 잔 다르크의 옷을 벗겨 사람들에게 전시한후 화장을해서 타고 남은 유해는 센강에 버
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잔 다르크를 죽인죄책감은 당시 그녀를 사형집행을 지켜본 모든이들에게 큰 죄책감을 지어주었으며 오히려 민중들
의 잔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지는 계기를 만들고말았습니다. 그렇게 잔은 25년뒤에야 다시 신원을 회복할수 있었습니다. 잔의 신원을 회복을 꾀한
건 잔 다르크의 어머니 이사벨 로메 가 있었습니다 로메는 남편인 자크가 죽고 오를레앙으로옮긴뒤였는데 그녀는 죽은 잔 다르크의 명예를 회복하
고자 늙은 몸을 이끌고 로마까지 가서 니콜라스 5세 교황에게 재심을 요청을 하는등 죽은 딸의 회복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샤
를 7세 까지도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여1456년 이 되서야 잔 다르크의 명예는 회복되었고 그녀
의사후에도 프랑스 왕조에서 그녀를 존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1849년 프랑스 펠릭스 뒤팡루 주교의 노력으로 1920년 교황 베데딕토 15세는 잔
다르크를 성인으로 시성하게되었습니다.
잔 다르크의 초상화 (알베르 뒹슈 1903년 작)
잔 다르크의 생김세는 우리가 아는 금발소녀가 아닌 흑발에 체구도 작고 근육질몸에 거유 였다고 전하는데 대략 키는 156cm로 당시 소녀들체격
치곤큰편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사후 그녀가 사용하던 깃발은 프랑스 혁명당시 전소되어 유실되었고 그녀가 쓰던 검역시 행방을 알수가 없습
니다.
( 잔 다르크 분장을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를렝 수녀 의 모습 )
1920년 성인으로 시성된 이후 그녀는 가톨릭은 물론 성공회 와 프랑스의 성인 으로서 추앙받았으며 여군 과 걸 스카웃의 수호성인이 되었습
니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성인중 한명인 라지외의 테레사 라 불린 마리 프랑수와즈 테레즈 마를렝 수녀는 잔 다르크를 무척 존경하여 수녀원에서
잔 다르크 역으로 연기를 할정도였고 심지어 시까지 지어 그녀를 찬양했다고 합니다 라지외의 테레사 수녀가 남긴 시를 작곡하여 성가로 만들어졌
습니다.
그러나 20세기 ~21세기 들어 잔 다르크 는 또다른 수모를 겪게되었는데 그건 잔 다르크를 정치판에 이용해먹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
프랑스의 극우정당 을 이끄는 장 마리 르펜과 마리 르펜 부녀가 툭하면 잔 다르크 동상앞에서 연설을 해댄 탓에 좌우 정치세력
간 존중받던 잔 다르크는 극우의 상징이 되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 이를 막기위해 니콜라 샤르코지 프랑스 23대 대통령은
동래미로 가서 극우의 상징의 전략이 되는걸 막기위해 노력했으며 우파가 잔 다르크를 독점하는걸 막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1907 년대 들어 잔 다르크의 이야기가 책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때는 " 애국부인전 " 이란 이름으로 한국에 소개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잔 다르크를 성인 혹은 성녀로 보지 않고 구국의 애국자로서 보는 시각이 많으며 만해 한용운 과 소파 방정환 (원조 렉카) 도
잔 다르크 의 이야기를 소개하거나 시에도 언급하는등 당시 애국심을 고취시고자 했던 모습들이 보입니다.
재미있는건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와 공통점이 많은데 둘다 어린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는 점
그리고 유관순 열사가 태어난 날이 잔 다르크가 태어난 590년 때가 되던 해였으며 유관순 열사가 순국한 날이 잔 다르크가 시성된 해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단 어디까지나 재미로 보는것이지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아주세요 ..
심지어는 여해 이순신 장군 과 맞먹는 위인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잔 다르크의 생에 와 이야기를 모두 풀어봤습니다.
다만 잔 다르크의 대한 의혹설 과 많은 이야기 들이 있지만 그걸 다 풀어내기엔 제 필력이 모자르는 관계로 어느정도 요약을 해서
작성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싶으시다면 위키 를 통해 잔 다르크의 행적을 더욱 자세히 알아보시는게 좋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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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이란 근대시대 여성작가분이 있으신데 당시 여성이 글을 쓴다는것 자체가 남성작가사회에서는 용인할수 없는것인지라 여러모로 많은 괴롭힘을 당하셨다고합니다. 김명순 작가를 괴롭힌 사람중엔 소파 방정환도 있는데 그역시 김명순 작가에 대한 유언비어 및 루머가 가득한 글을 잡지에 기고해서 악질적으로 괴롭혔고 이에 김명순 작가는 방정환을 고소했고 다행히도 승소하여 방정환의 글을 연중시켰다고 합니다 없는 말을 지어내고 유언비어와 루머를 퍼트리는게 요즘의 렉카들과 비슷하다고 해야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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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뛰었던 분들이 항상 가슴이 크다고 했다는 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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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이란 근대시대 여성작가분이 있으신데 당시 여성이 글을 쓴다는것 자체가 남성작가사회에서는 용인할수 없는것인지라 여러모로 많은 괴롭힘을 당하셨다고합니다. 김명순 작가를 괴롭힌 사람중엔 소파 방정환도 있는데 그역시 김명순 작가에 대한 유언비어 및 루머가 가득한 글을 잡지에 기고해서 악질적으로 괴롭혔고 이에 김명순 작가는 방정환을 고소했고 다행히도 승소하여 방정환의 글을 연중시켰다고 합니다 없는 말을 지어내고 유언비어와 루머를 퍼트리는게 요즘의 렉카들과 비슷하다고 해야하겠지요 | 23.10.07 17: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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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어린이날 만든 사람으로만 알고 있어서 인성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군요.;; | 23.10.07 18: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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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습니다. | 23.10.08 22: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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