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힐F 분석 칼럼-6 : 작은 아씨들
반갑습니다.
지난 한 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사일런트힐F 4회차를 플레이하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이제 그 재미도 끝내고, 좋은 감정을 안고 현실로 돌아갈 때가 되었군요. 다만, 아직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남은 것 같습니다. 바로 남겨두는 일 말이죠.
여러분들은 사일런트힐F의 스토리를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궁금하군요. 이 게임의 스토리는 '해석의 여지'라는 말을 아주 폭넓게 응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스토리를 해석하는 과정이 없으면 제대로 즐기기가 어렵죠. 아무 생각하지 않고 진행하면 이야기의 앞뒤가 하나도 안 맞으니까요. 제작진들은 일부러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고 이야기했으며, 엔딩 역시 각자가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나름대로 해석하며 각자의 정답을 찾아 안개 속을 헤매이게 되었죠. 물론 저도 그 헤매는 사람들 중 하나였고요.
그리고 이제, 저는 4회차 플레이를 통해 저 나름의 답을 찾아냈고, 제가 찾은 답을 정리해 이곳에 남겨두려 합니다. 제가 게임을 하며 찾아냈던 것, 해석했던 것, 그리고 고찰했던 것에 대해 정리해 남겨두는 이 몇 개의 칼럼은 사일런트힐F에게 바치는 제 작별 인사이며, 이 커뮤니티의 다른 분들께 바치는 선물입니다.
* 추가로, 이 글은 원래 레딧에 게시하기 위해 작성했던 글이며, 영어로 썼던 글을 다시 한국어로 수정한 것이기 때문에 어투나 어순, 혹은 일부 용어가 어색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최대한 다시 다듬기는 했지만, 보시면서 혹시 말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시더라도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서론을 살짝 길게 쓰고 있사오니 양해바랍니다. 이제 본론인 "사일런트힐F 분석 칼럼-6: 작은 아씨들”편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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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키누타 준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 준코, 사랑의 형태
(2) 사랑은 언제 억압이 되는가?
(3) 애정과 집착의 차이
(4) 부모의 사랑, 그리고 형제의 사랑
(5) 애정의 한계선
(6) 누구를 위하여 방울은 울리나
(부록) 방울소리
2. 니시다 린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1) 악당의 조건
(2) 전하지 못한 진심
(3) 불쌍한 비호감
3. 이가라시 사쿠코, 캐리
4. 어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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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키누타 준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저 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묻지 말지어다. 그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고 있나니."
- 존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 준코, 사랑의 형태
이 게임의 모든 등장인물은 저마다 히나코에 대한 욕심과 타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녀의 친부모인 시미즈 부부조차도. 시미즈 부부는 히나코가 부잣집에 시집가서 편하게 살길 바라는 선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에는 분명히 히나코의 결혼값으로 자신들의 빚을 갚고 수술비를 마련하려는 계산 또한 깔려 있습니다.
부모조차 그러하니, 하물며 타인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죠. 좋게 말하면 애정, 나쁘게 말하면 성욕으로 히나코를 바라봤던 슈와 고토유키, 질투심으로 히나코를 대하던 린코, 히나코를 도구로 취급한 여우신, 그나마 가장 순수한 친애에 가까운 사쿠코의 감정조차 결국은 히나코를 의존 대상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 게임에서 오로지 순수한 선의로만 히나코를 대하는 인물은 없어요. 단 한 사람, 준코만을 제외하면. 준코는 히나코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녀가 바라는 것은 히나코의 행복 뿐입니다. 그래서 준코의 '사랑의 형태'는 사일런트힐F에서 가장 독특합니다. 계산없는 사랑, 대가를 원하지 않는 사랑, 상대를 위하는 사랑이니까요.
거기다 준코에게는 특별한 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그녀가 현실의 히나코와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를 동시에 긍정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이들의 경우:
(A) 슈는 고토유키와 결혼하려는 현실의 히나코를 '비정상'으로 간주해 ㅁㅇ으로 없애려 했고
(B) 고토유키는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를 '마귀'로 인식해서 필살기 급급여율령으로 퇴치해버렸으며
(C) 다른 인물들은 애초에 히나코의 두 측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준코는 두 히나코를 모두 인식하고, 동시에 긍정하며, 둘 모두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 점만 봐도 그녀는 정말로 좋은 언니이고 또 좋은 사람입니다. 설령 형제자매 사이라 해도, 한 사람의 양가적인 측면을 동시에 긍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또한, 여기에는 마음이 훈훈해지는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준코는 처음부터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를 감지할 수 있었어요. 준코에게 초능력은 없으니까, 그녀는 현실 히나코의 상태를 보는 것만으로 그 안에 숨어있던 또다른 히나코를 알아챈거죠.
그 또다른 히나코,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는 사이코패스의 ㅁㅇ에 의해 해리된 인격이라 아주 불안정합니다. 애초에 현실의 히나코도 그리 멀쩡하지 않은, 심각한 커뮤니케이션 장애자이자 중증 ㅁㅇ중독자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가 주도권을 잡았을 때의 히나코는 '정말로 이상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코는 그 '이상한 상태의 히나코'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마치, 현실에서 미숙한 동생이 이상한 구석이 있거나, 멘탈이 무너져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일탈을 저질렀을 때도, 형제자매는 어떻게든 그를 도우려 노력하는 것처럼.
(2) 애정은 언제 억압이 되는가?
< "오늘 이때까지 수도 없이 했던 말이지만, 한번만 더 말할게. 삶은 네가 선택하는 거야. 남의 의견 들을 필요 없어. 네 뜻대로 선택하란 말이야." >
안타깝게도, 두 히나코를 동시에 긍정하고, 히나코의 선택을 중요시하는 준코의 태도는, 게임이 진행될수록 점차 기울어지더니 결국 모순으로 귀결됩니다. 준코는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에게 사다리를 던져 그녀를 살려주는 것으로 이야기에 등장하고, 중학교에서 나올 때도 그녀에게 부드럽고 사근사근하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될수록 준코의 태도는 점차 차가워지고, 끝내는 현실의 히나코에게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를)죽여."라고 명령합니다. 심지어 그 명령은 히나코에게 '스스로 선택할 것'을 권고하던 준코 자신의 말과도 모순되죠.
그런 준코의 변화는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현실의 히나코가 무너지면 어차피 그 안에 있는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도 무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준코 입장에서는 과정이야 어쨌든 최종적으로 현실의 히나코를 선택할 수밖에 없죠. 물론 제일 좋은 것은 두 히나코가 모두 살아남는 것이었습니다. 준코도 둘 모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사다리를 던져주고, 시간을 벌어주고, 말로 설득하는 등 무진 노력을 기울였지만, 최종적으로는 실패하고 둘 중의 하나를 골라야만 했던 거죠. 그리고 준코는 현실의 히나코를 선택해서, 그녀에게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의 말살을 명령하는 거고요.
그리고 그 지점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 수 있어요: 준코는, 이 게임에서 유일하게 히나코에게 명령형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등장인물들은 어떨까요? 친구 관계인 린코와 사쿠코는 말할 것도 없고, 코토유키도 게임 내내 "함께 갈까?"라는 식의 청유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슈는 "그 붉은 알약이 네 두통을 줄여줄거야."라고 말하지, 결코 그 붉은 알약을 먹으라고 지시하지 않아요. 심지어 그 강압적이던, 가정폭력을 숨쉬듯 일삼던 시미즈 칸타 씨조차 "너에게 고토유키와의 결혼 이상의 행복이 어디 있어?"라면서 히나코를 설득하려 하지 "당장 결혼해!"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준코만은 달라요. 그녀는 단호하게, 주저없이 히나코에게 명령합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억압, 애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억압이죠. 그 억압으로 인해 드러나는 질문이야말로 준코의 핵심 테마 중 하나입니다. 좀 직설적으로 풀자면, "애정은 언제 억압으로 변하는가?" 혹은 "애정이라는 목적은 억압이라는 수단을 어디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눈치채셨겠지만, 이 또한 앞선 칼럼에서 누누이 짚었던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오래된 담론에 기초한 화두죠.
이 게임에서 무차별로 던져지는 수많은 주제가 그러하듯, 게임 내에서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이나 고찰이 제시되지는 않습니다. 준코의 애정어린 억압은 끝내 히나코를 억제하지 못했고, 작중 상황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어요. 그 점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 질문에 고찰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애정과 집착의 차이
앞서 짚었던 이 게임의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는 화두는, 조금 더 정확히 풀자면 "애정은 억압을 정당화하는가?"에 가깝습니다. 시미즈 씨, 슈, 고토유키, 사쿠코 모두 히나코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사실 그 애정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사랑하는' 히나코에게 나이프 쓰로잉, ㅁㅇ투여, 세뇌광선, 강제납치를 시도했으며, 게임의 스토리가 그런 그들의 행동을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정당화하고 있다는 거죠.
심지어 이 사람들, 말로는 히나코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실제로는 그 각자가 결정한 정답에 히나코를 끼워넣기 위해 여러 끔찍한 수단을 쓰고 있으면서 말이죠. 그들은 자신의 정답에 히나코가 맞지 않으면 그 맞지 않은 부분을 잘라내서 맞추려 해요. ㅁㅇ으로, 주술로, 제도로, 폭력으로. 마치, 종이 인형의 삐져나온 테두리를 가위로 잘라내는 것처럼. 그 과정에서 무시되는 히나코의 의사, 그 과정에서 히나코가 겪을 고통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죠.
제가 보기에 그런 슈나 고토유키가 보여주는 '내 마음에 드는 모습만 사랑한다'는 식의 조건부식 사랑도, 시미즈 씨나 사쿠코가 보여주는 '사랑하니까, 내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강제할 수 있다'는 식의 도구화된 사랑도 올바른 사랑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준코는 달라요. 그녀는 위 사람들과는 반대로 히나코에게 무척 강압적으로 명령합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히나코를 억압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러나 그녀는 히나코가 행동하도록 말로 설득하거나 명령할 뿐, 히나코를 억압하기 위해 말 이외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아요. 즉, 준코는 히나코라는 사람을 바꾸려들지 않아요. 달래거나, 설득하거나, 명령을 하면서도, 준코는 최종적으로는 히나코가 하도록 합니다. 바로 그 부분이 다른 거에요.
저는 준코가 보여주는 사랑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랑과 집착의 차이는, 상대의 모습을 존중하느냐, 아니면 상대의 모습 중 일부를 존중하느냐에서 비롯된다."
(4) 부모의 사랑, 그리고 형제의 사랑
준코의 태도는 진정한 사랑의 형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미즈 부부의 행동과 대비되어 ‘부모의 강압적인 사랑’과 ‘형제의 공격적인 사랑’이 어떤 공통점과 차이를 지니는지도 잘 드러냅니다.
공통점부터 보자면, 부모든 형제든, 가족이 차도에서 춤을 추거나 정체모를 풀뿌리를 씹고 있으면 당장 달려가 등짝을 후려갈길 것입니다. 강력하고 폭력적인 억압이죠. 이처럼 즉각적인 위험에 대해서는 둘 다 반응 방식이 같습니다.
하지만 장기적 위험이나 취향의 차이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깔끔하게 입어라”,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같은 문제들이죠.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에게 단정한 옷차림을 원하지만, 자식이 끝까지 거적떼기를 입겠다고 버티면 결국 어느 정도 허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강력하고 속박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정 강압’으로 갈 수가 없어요.
형제자매는 다릅니다. 형제는 동생에게 “야, 너 미쳤어? 그 거적떼기 당장 벗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어요. 형제자매의 억압은 보통 잔소리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이는 강력하지도 속박적이지도 않지만, 대신 거의 무한정 반복될 수 있습니다. 물론 동생은 무한정 반항하겠죠. 그래서 형제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잦은 다툼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 제가 짚고자 하는 점은, 그 잦은 다툼이 관계 파탄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입니다. 서로에게 최소한의 선과 존중이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아무리 반항을 해도 서로를 해치거나 일부러 나쁘게 만들 의도는 없습니다. 그래서 동생은 언니의 거친 명령을 듣고도 큰 상처는 받지 않고, 반대로 언니도 동생의 반항에 크게 무너지는 경우는 많지 않죠.
게임 속 준코와 히나코의 관계도 정확히 이렇습니다. 작중 준코는 등장하는 장면마다 히나코에게 잔소리를 하고, 히나코는 매번 그 잔소리를 무시합니다. 때로는 준코가 화가 나서 날카롭게 말하기도 하고, 히나코가 준코에게 반항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 순간조차 두 사람 사이에는 애정과 존중이 공존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폭력적으로 보이는 명령과 반항도, 사실은 서로를 포기하지 못하는 자매만의 과격한 의사표시에 가깝습니다. 현실의 많은 형제자매처럼.
작중 상황이 워낙 상식 밖의 사태로 흘러갔기 때문에 결말이 좋지 못했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저는 이 두 사람의 우애야말로 게임 내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또한 가장 가슴 따듯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가슴의 따듯함, 서로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공유하고 있다면, 누구의 어떤 행동이 억압인지 반항인지 따위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도 있습니다. 아니, 분명히 그래요. 그것이 바로 "애정은 언제 억압으로 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입니다.
(5) 애정의 한계선
즉, 준코는 여동생의 일탈을 따끔하게 지적하고, 때론 강압적으로 명령하면서도, 결국 마지막까지 형제를 존중과 애정으로 보듬는 착한 언니입니다. 비록 작품에서 준코의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누가 그 결과로 그녀를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준코도 단지 한 명의 사람, 명백한 한계를 지닌 사람일 뿐인걸요.
그 '한계', 그러니까 준코의, 애정의, 존중의, 선의의 한계는 이 작품에서 크게 세 가지 축으로 다루어집니다. 현실적인 한계, 사회적인 한계, 감정적인 한계죠.
(A) 현실적 한계
현실적인 한계를 먼저 보자면, 준코의 가장 큰 한계는 히나코가 단순히 심리적 병리증상을 앓고 있다고 오판한 것입니다. 준코가 붉은 알약을 인지한 것은 최종전 직전의 일이고, 그 때는 이미 준코가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었어요. 반대로, 히나코가 붉은 알약을 끊는 과정에서도 준코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모르니까.
하지만 그 오판을 준코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준코의 그 오판은 여동생의 소꿉친구가 여동생을 속여 장기간 ㅁㅇ을 먹이는 미친 놈이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발생한 거니까요. 오래 전 결혼해 집을 떠난 준코가 그 사실을 눈치채기는 어렵죠. 심지어 히나코와 같이 살던 시미즈 부부도 슈의 정체를 몰랐고, 시미즈 씨는 아예 슈를 '좋은 놈'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애초에 결혼해 아이도 낳고 바쁘게 살던 준코가 슈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런 식으로 시미즈 부부나 히나코가 한두마디씩 말해주는 것 뿐입니다. 그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선량한 견습약사처럼 보이는 슈의 정체가 사이코패스 ㅁㅇ상이라는 사실을 추측해내는 것은 불가능해요. 누군가의 언니라는 사실이나, 누군가를 깊게 사랑한다는 사실이 그 사람에게 초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또한 준코는 평균적인 신체를 지닌 평범한 여성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도 히나코를 도울 수 없었어요. 그녀는 어떤 엔딩에서든 슈에게 가차없이 제압당하는 형태로 극에서 퇴장합니다. 일말의 반항조차 묘사되지 않을 뿐더러, 준코가 어떻게 제압당하는지조차 비춰지지 않아요. 마치 길가의 낙엽이 바람에 날리듯 한쪽으로 휙 내팽개쳐질 뿐. 그 슈가 고토유키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아주 공들인 기습을 걸었고, 심지어 제압 후에도 방심하지 않고 확인사살하려 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준코의 가차없는 퇴장은 현실적이면서도 입맛이 쓴 부분이 있습니다.
(B) 사회적 한계
사회적인 한계는 어떨까요? 준코는 히나코 세대면서도 결혼을 통해 어른 세계로 진입한 인물이죠. 그래서 준코는 아이의 생각도, 어른의 사정도 이해할 수 있고, 그 사이의 간극을 메꾸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히나코의 치기어린 생각을 부정하지 않지만,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히나코를 설득하는 것도 멈추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녀는 결국 시스템을 바라보는 히나코의 시각을 바꾸려 했을 뿐, 시스템을 바꾸려 시도하거나 히나코를 탈출시키거나 혹은 또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준코는 명백히 가부장제의 억압에 의한 피해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가부장제의 가해자이기도 해요. 히나코가 가부장제에 억압되는 결말을 당연시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준코는 히나코의 자유분방한 기질과 선택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좋게 평가하면서도 "아직은 시대가 이르다, 나중에 그런 시대가 되면 좋겠네."라는 말로 잘라내버립니다. 시대상의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 가해자가 되는지 함축적으로 표현한 장면이죠.
그러한 준코의 한계가 시사하는 점은, 가부장제처럼 권위로 작동하는 제도의 가장 큰 단점, 바로 행동만이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고방식까지 예속해버리는 강력한 억압입니다. 그 억압은 현실적으로 제도를 벗어날 수 있는가 이전에 '벗어난다'라는 발상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어요. 마치 코끼리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목줄의 말뚝을 뽑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듯이. 사실, 그 말뚝은 코끼리가 조금만 힘주어 당겨도 쑥 하고 뽑혀버릴 테지만, 힘주어 당길 생각을 하지 못하니 뽑을수가 없는 거죠.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 본문과는 별개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의 예시에서 등장한 코끼리, 말뚝에 매여 있는 그 코끼리는, 어떤 계기가 있다면 그 말뚝을 당겨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코끼리는 자신을 속박하던 것의 정체가 절대적인 힘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 언제든 벗어날 수 있고 극복할 수도 있는 기억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겠죠. 그것을 깨닫는다면, 이제 코끼리는 서커스 천막 밖의 세계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천막 밖으로 나가더라도 목줄과 말뚝의 기억은 평생 사라지지 않겠지만, 괜찮아요. 얽매여 있지 않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억일 뿐입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부장제, 가정폭력, 실패, 이별, 고난, 그 이외 우리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어떤 트라우마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지금 그런 것에 얽매여 있다면, 나중에 시간이 남을 때 한번 힘주어 당겨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어쩌면, 그것은 저 코끼리의 말뚝처럼 쑥 하고 뽑혀나올지도 모릅니다. 그 '단순한' 기억 따위에 괴로워했던 날들이 허무할 정도로.
(C) 감정적 한계
마지막으로 감정적인 한계를 봅시다. 준코는 히나코와 같은 세대이면서, 동시에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어른입니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자신은 자기동일성을 지닌 단일한 개체이므로 양측 모두의 중간에 서있는 자신의 양가적인 위치에 모순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히나코와 함께 깔깔대던 어린 준코도, 결혼해서 히나코에게 따끔하게 말하는 어른 준코도, 그녀에게는 똑같은 자기 자신일 뿐이니까.
그러나 히나코의 입장에서 준코를 보면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요컨대, 히나코에게는 준코가 '자신을 내팽개치고 어른이 되어버린 배신자', 표리부동하고 믿지 못할 사람으로 느껴질 수가 있어요. 먼저 결혼해서 떠나는 형제에게 남은 동생이 '멀어졌다는 소외감, 배신당했다는 서운함, 버려졌다는 슬픔'을 느끼는 것도 일반적인 일이니까요. 물론 보통은 시간이 흐르며 그런 치기어린 감정이 서서히 희석되겠지만, 희석되기 전까지가 문제입니다. 그 감정이 희석되지 않은 상태의 히나코에게, 준코의 말은 이성 이전에 감정의 영역에서 즉각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위험성이 있으니까요. 실제로 작중 스토리도 그런 식으로 흘러갔고.
(6) 누구를 위하여 방울은 울리나
앞선 챕터에서 짚었듯, 준코에게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이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한계는 그녀가 품은 사랑과 존중의 가치를 조금도 퇴색시키지 못했어요.
이 게임의 스토리는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그 메시지를 조심스럽게 드러냅니다. 사일런트힐 엔딩의 마지막에서 나무에 매달린 준코의 방울이 울리는 부분 말이죠. 그 수많은 우여곡절과 현실적 한계, 최종적인 실패와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끝내 준코는 다시 방울을 울려 히나코의 앞길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타인을 향한 순수한 애정과 선의가 꼭 좋은 결말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습니다. 때로는 왜곡될 수도 있고, 거부당할 수도, 결말이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설령 가족관계, 형제자매 관계라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애정과 존중만 있다면, 설령 좋지 않은 결말에 다다랐더라도, 다시 한 번 희망을 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히나코가 준코를 위해 선물했던 그 방울, 준코가 자기 몸의 한 부분처럼 다루던 그 방울,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고 울리던 그 방울소리처럼.
결국 그 방울은 누구를 위해 울렸을까요? 그 방울은 준코를 위해, 히나코를 위해, 애정을 위해, 방울소리를 듣는 사람 모두를 위해 울렸습니다. 이 챕터의 제목인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그랬듯.
그 울림이야말로, 이 게임이 제게 건넨 가장 고귀한 가치였어요.
(부록) 방울소리
* 위 파트에서 준코에 대해 할 이야기는 다 했지만, 준코의 방울소리에 대한 문화적 맥락을 꼭 짚고 싶어서 부록을 추가합니다.
일본 문화에서, 방울소리는 여러 가지를 상징합니다.
(A) 인도의 의미
사실, 애초에 방울이라는 물건 자체가 소리로 위치를 알리거나, 선두가 방향을 인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죠.
아래 사진은 교토 히가시야마 화등로(東山花灯路)의 이벤트로 하는 고다이지(高台寺)의 '여우의 혼례식' 이벤트를 찍은 기사에 첨부된 것인데, 이 기사 중 방울소리가 행렬을 인도하는 부분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단락이 인상적입니다.
< 방울소리가 여우의 혼례 행렬을 인도한다. >
원문은 "チリンチリンと鈴が鳴り、どこからともなく金の人力車に乗った妖しい雰囲気の狐の嫁入り行列が祇園を静かに通りすぎていく。"로, 번역하자면 "짤랑짤랑 방울이 울리고, 어디선가 금색 인력거에 탄 요사한 분위기의 여우의 혼례 행렬이 조용히 지나간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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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일본 아오모리현(黒石市)에서 개최된 쿠로이시 코미세마츠리(黒石こみせまつり, 쿠로이시 시 상가 축제)의 여우의 혼례식 퍼레이드의 인도자 사진입니다. 무늬가 그려진 예식용 검은 기모노, 방울, 가면. 딱 보기에도 준코와 아주 흡사하죠. 저 손에 들린 방울달린 제구의 이름은 카구라로, 저렇게 카구라를 흔드는 춤인 카구라마이는 신토 행사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입니다.
< 신에게 방울소리를 공양하는 무녀의 춤이 인간의 행렬을 인도한다. 카구라마이 >
참고로 저 행사는 올 2025년 9월 15일에 벌어진 행사인데 올해가 딱 40주년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오랜 전통이니만큼, 저 행사 이외에도 비슷한 행사가 일본 여기저기에 있을 가능성 또한 유추해볼 수 있죠. 물론, 그런 행사들이 게임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사실도요.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저 방울소리는 단지 현실의 사람들을 이끄는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을 신에게 인도하거나, 신을 인간의 장소로 초대하는 인도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저 방울을 휘두르는 무녀와 신관이 원래 그런 역할을 맡은 직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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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가 현실 히나코의 내면 깊숙히 있을 때, 준코의 모습은 히나코에게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다리를 던져줄 때는 아예 모습이 비춰지지 않고, 중학교에서는 창문에 비치는 그림자로만 나오죠. 하지만 준코는 게임이 진행되면서 점점 히나코의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직접 말을 걸기도 하죠. 작중 상황을 생각해보면 현실의 준코가 현실의 히나코 마음 속으로 들어간 건 아닐테고,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가 그만큼 현실 가까이, 그러니까 현실 히나코 의식의 전면 쪽으로 이동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 부분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쩌면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는 준코의 방울소리를 따라 의식의 바닥에서 전면으로 올라가고 있던 것 아닐까요?
(B) 정화와 경계의 의미
실제로 방울은 신토와 불교 양측에서 모두 정화와 경계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외부의 마귀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소리로 된 결계를 친다는 의미도 있고, 자신 내부의 번뇌를 씻어낸다는 의미도 있어요. 일본에서는 새해가 시작되면 제야의 종(除夜の鐘)이라 해서, 커다란 종을 108번 치는 행사가 매해 치뤄집니다. 작년의 번뇌를 씻어내고 올해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는 행사죠.
왜 108번이냐면, 6의 제곱인 36을 다시 3번 반복한 수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의미는 이래요:
* 육근: 인간의 여섯 가지 부분, 눈, 귀, 코, 혀, 몸, 의식
* 육경: 색, 소리, 향, 맛, 촉감, 마음
* 육식: 육근이 육경과 마주쳐 일어나는 작용
즉, 인간의 여섯가지 번뇌를 감각기관(6)x실제 대상(6)=감각기관이 대상에 접촉하면서 일어나는 작용으로 풀어서 36의 숫자가 되고, 이 36을 과거, 현재, 미래의 3시점으로 봐서 그 세 배인 108개가 되기 때문에 108이 번뇌의 수인 것입니다. 동양철학적으로 보자면 108은 시간의 완전수인 12와 공간의 완전수인 9를 곱해서 만드는 수이기도 하기 때문에, 무결한 완성이나 완전의 의미도 가지고 있어요. 불교에서 스님들이 들고 다니는, 나무로 된 구슬을 여러 개 꿰어 만든 목걸이인 '염주' 있죠? 그것도 보통 108개의 구슬이 이어져 있습니다. 작은 것은 보통 12개 구슬로 이루어져 있고요. 사실, 원래는 인도의 힌두교에서 다루던 개념이었는데, 이후 인도에서 불교가 탄생하며 영향을 받은 것이죠.
여담으로, 아주 유명한 만화인 원피스에 보면 롤로노아 조로라는 주인공 캐릭터가 '삼십육 번뇌봉!'이나 '백팔 번뇌봉!'이라고 외치면서 검기를 날리는 기술을 쓰는데, 그것도 이 108 번뇌를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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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과거를 씻어내고 현재를 맞이하는 종소리는 '과거의 정화', 혹은 '과거와 현재를 나누는 경계' 등을 상징합니다. 오컬트적으로 보면 현실과 이계의 경계를 상징할수도 있고.
실제로 이 게임에서, 방울소리를 울리는 준코는 시공간 지표 그 자체입니다. 공간적으로 보자면, 그 방울소리는 항상 현실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그 소리가 이면세계까지 울려퍼지긴 하지만 발생하는 지점은 명백히 현실이므로, 소리를 듣고 따라가면 현실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의 '인도의 의미'와도 맞닿아있죠.
시간적으로 보자면, 그 소리가 울리는 시점 또한 명백히 현재의 시점이므로, 여러 시점 사이를 방황하는 이 게임에서 '현재로 수렴하는 경계의 지표' 역할도 수행하고 있고요. 실제로 저도 칼럼 1편에서 전체 시간대를 정리할 때, 준코의 방울소리를 힌트로 전체 시간순을 정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간적, 시간적으로 동시에 기준이 되는 시공간 지표는 인지과학 쪽에서 깊게 다루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특히 작중 준코는 '모순을 통해 경계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녀는 히나코와 같은 세대면서도,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어른입니다. 히나코의 선택을 존중해주다가도, 그녀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하기도 하죠. 가부장제의 피해자면서 동시에 가해자인데다, 키누타(너구리) 일족 사람이면서도 정작 쓰고 있는 건 올빼미 가면이에요. 결국 준코는 항상 양 쪽의 가운데,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녀의 방울소리가 '경계의 상징'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죠.
(C) 보호의 의미
준코가 기모노의 허리띠에 매달고 있는 그 방울은 오마모리 스즈(お守り鈴, 수호의 방울)라는 이름의, 착용자를 보호하는 기원을 담아 선물하는 부적입니다. 특히 사고, 액운, 악령, 병마로부터 안전하기를 빌면서 선물하는 물건이죠.
현실에서 보자면 방울소리는 온갖 짐승들, 특히 일본에서 가장 위험한 맹수 중 하나인 곰의 습격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합니다. 준코가 매단 오마모리스즈는 황동(브라스, 구리+아연 합금)으로 되어있는데, 황동+방울 구조에서 나는 소리는 대략 3,000~4,000hz의 고주파입니다. 이 고주파는 고순도의 금속성 파열음이라는 특성상 굉장히 멀리까지 울려퍼지죠. 일반적인 환경에서 사람의 고함소리가 채 100미터를 가지 못하는 것에 비해, 방울소리는 보통 300미터 이상까지 안정적으로 도달해요, 심지어 조용한 산속에서는 1km 너머에서 인식했다는 사례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특이하고 강한 소리라 자연음을 압도해버리고, 그래서 범위 내 모든 야생동물에게서 착용자를 보호할 수 있는 거죠.
물론 방울소리가 곰을 놀라게 해서 쫒는 건 아니고, '여기에 사람이 있다'고 인식시켜서 다가오지 않도록 하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곰이 배고프거나, 이미 인간을 추적중이거나, 새끼가 있거나, 흥분했을 때는 방울소리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어요. 물론 그 경우, 방울소리뿐만 아니라 총을 포함한 거의 모든 안전 방책의 효과가 떨어지지만요. 그 상황에서 효과를 잃지 않는 안전 방책은 탱크, 장갑차, 화염방사기, 트로잔 갑옷, 곰스프레이 정도일 겁니다. 어쨌든, 흥분한 곰에게 추적당하는 등의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곰 방울은 꽤 효과적인 안전책이라고 합니다. 곰이 많이 출몰하는 야마기타 현 등의 관광 가이드에서는 실제로 곰 방울을 적극 권장하고 있어요.
곰마저도 그럴 정도니, 더 작고 약한 야생동물들은 방울소리가 가까워지면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기 바쁘죠. 그럼 당연히 방울을 달고 있는 사람이 사고를 당할 확률, 각종 질병이나 전염병에 걸릴 확률 등도 같이 내려갈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여러 곳에서 오랫동안 쌓여 "방울소리에 인간을 보호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라는 주술적 의미가 태어나게 됩니다. 원래 문화든 오컬트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식이란 것은 이런 식으로 현실에 기반해 태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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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아주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이 방울 문화의 기원에 가까운 인도-티벳 등지의 문화권에서도 비슷한 용도로 몸에 방울을 매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보호하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사람에게 밟히거나 채일 수 있는 작은 동물과 곤충을 보호하려는 의미가 강해요. 그래서 아래쪽 옷자락이나 발찌 등, 하체 부분에 방울을 매다는 형태가 일반적입니다. 즉, 곰 방울과 같은 인식에서 기원했으면서도 목적이나 사용법은 완전 정반대인거죠. 여러 창작물에서 힌디 문화권 인물이 방울이 달린 발찌를 착용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그런 문화적 맥락의 영향을 받은 거고요.
또한 사람을 사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울을 다는 경우도 역사적으로 흔한 일이었습니다. 유명한 소설인 '레미제라블'에 보면, 장발장을 도와주는 포슐르방 노인이 수녀원에서 잡부로 일하면서 몸에 방울을 매달고 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그가 수녀원들 돌아다닐 때 수녀들이 놀라지 않도록 접근 신호를 내는 용도죠. 이외에도 전염병자에게 격리의 의미로 방울이나 그 비슷한 물건을 매다는 경우도 많았어요. 문화와 역사적 맥락이란 이렇게, 지역과 문화권을 가리지 않고 인간종 특유의 정합성과 논리를 통해 수렴진화한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생각하다보면 아주 재미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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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여담으로, 일반적으로 일본 신사의 정문 근처에는 긴 끈에 매달린 커다란 액막이 방울이 있습니다.
< "비나이다, 비나이다. 소원을 비나이다." >
사람들이 신사에 들어가 이 커다란 방울을 흔들어 액을 씻어낸 후 박수를 치는 모습은 일본 전역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일상적인 광경입니다. 또한 앞서 설명한 방울이 달린 제구 카구라와, 무녀가 카구라를 흔들면서 신에게 바치는 춤인 '카구라마이'도 신토 행사가 벌어지면 으레 볼 수 있고요. 재밌는 점은, 이 두가지 요소가 이 게임 내에서는 전혀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게임에서 액막이 방울과 카구라마이가 다루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준코의 방울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이 상징물들은 준코의 방울이 가지는 의미, 즉 준코의 안전을 비는 히나코의 기원, 히나코를 보호하려는 준코의 결의 등과 의미가 겹치기 쉬우니까요. 그리고 그 사실에서, 게임 내에서 준코의 방울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것도 알 수 있죠.
(D) 결론
정리하자면, 작중 울려퍼지는 준코의 방울소리는 인도, 경계, 그리고 보호라는 세 가지 의미를 모두 품고 있습니다. 이 세 의미는 곧, 현실의 준코가 히나코에게 지녔던 마음이기도 하죠.
그렇게 해석하면, 사일런트힐 엔딩에서 사라진 준코 대신 나무에 매달려 마지막까지 울리는 방울소리의 의미 또한 명확해집니다. 히나코의 곁에 끝까지 남아 그녀를 응원하는 준코의 마음인거죠. 히나코가 다시는 헤매거나 아파하지 않기를 바라는, 언니의 마음.
< 작은 새를 보내며 방울은 울린다. 조용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
2. 니시다 린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때 바로, 큰 소리로 말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 순간은 그냥 지나가버리니까요."
- 줄리안,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솔직히 말해, 이 6번 칼럼의 핵심은 준코입니다. 준코는 마음 따듯한 서사와 문화적 맥락이 탄탄하게 채워진 인물이라 다룰 부분이 많거든요. 그에 비해 린코나 사쿠코, 다른 여자들의 감정선은 다룰만한 부분이 많지 않아요. 감정선은 너무 소소하고, 게임 내 비중도 애매하고.
다만 그들의 이야기에도 생각해볼만한 부분이 있어서, 부록으로 그 부분만 가볍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아래부터는 메인인 준코 파트와는 톤이 좀 다른데, 부록이라서 그런 것이니 모쪼록 양해부탁드립니다.
(1) 악당의 조건
이 게임의 스토리에 대한 제 평가는 "소재는 좋았지만, 전개가 엉망이라, 결론이 허탈했다." 입니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 각 주제 간 연결 고리의 허술함, 해석의 다양성을 위한 흐릿한 핵심사항 등의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빌런이 없기 때문이죠.
모든 이야기에 반드시 빌런이 등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의 스토리처럼 끔찍한 대사건과 피해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결과가 이미 있으므로 반드시 그 원인도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인과가 연결되지 않고, 그럼 설득력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빌런이 될 만한 인물'은 잔뜩 있는데 정작 빌런의 자리에 도달하는 인물이 없어요. 나쁜 짓을 한 인물조차도 "의도는 좋았다, 착각이었다,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같은 면죄부를 주니까.
린코가 게임 내내 싸가지없이 행동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슈에 대한 짝사랑과, 슈가 좋아하는 히나코에 대한 질투죠. 충분히 있을 법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폭력과 ㅁㅇ이 다뤄지는 이야기'의 빌런이 가질 만한 동기는 아니죠. 스케일이 너무 다르잖아요. 그러다보니 린코는 악당조차 되지 못한, 단순히 재수없는 인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2) 정직하지 못한 진심
린코의 서사는 결말조차 어정쩡합니다. 린코가 신관복 차림의 보스로 등장해 퇴치되는 과정에서 다뤄지는 주제는 히나코와 린코의 관계, 그리고 솔직한 소통의 중요성 뿐입니다. 그 보스전은 결국 '소통할 줄 모르는 철없는 여자애들의 첫 진심어린 감정다툼'으로 귀결되죠. 린코의 가장 큰 핵심 동기였던 슈에 대한 짝사랑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슬그머니 사라져버려요.
심지어 그 부분에서 둘이 나누는 '솔직한 이야기'조차 앞뒤가 안 맞습니다. 보스전 대사는 이런 식입니다:
<괴물 린코와 히나코의 대화 >
- 린코: 자꾸 속이고, 히나코가 미워! 내 앞에서 사라져! 이 거짓말쟁이! 저주할거야, 너만 행복한 꼴은 못 봐! 슈 옆에서 꺼져!
- 히나코: 린코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어! 네 행복도 불행도 네 책임이야! 난 속인 적 따위 없어! 행복해지고 싶으면 노력해서 운명을 바꿔!
(A) 린코가 히나코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이유는, 히나코가 슈와 사귀지 않는다고 말한 것 때문이죠. 근데 둘은 진짜로 사귀지 않았잖아요.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B) 린코가 히나코를 질투한 이유는 슈가 히나코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근데 히나코는 고토유키와 결혼식을 치르고 있잖아요. 이미 '슈 옆에서 꺼진' 상태입니다.
(C) 히나코는 린코에게 "행복해지고 싶으면 노력해서 운명을 바꿔!"라고 일갈하죠.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멍때리다가 휩쓸려 자기 결혼식에 끌려간 사람이잖아요. 심지어 그녀는 그 결혼식을 한참 치르는 도중에 그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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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린코는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반복하고 있고, 히나코는 자기에게도 해당되는 비판을 설교조로 되돌려주고 있습니다. 대사가 서로 어긋난 채 흘러가다 보니, 둘의 말에는 설득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말 자체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맥락과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죠.
이처럼 린코의 서사는 표면적으로 '전하지 못한 진심의 무게'나 '진심어린 소통의 중요성'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진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아요.
(3) 불쌍한 비호감
앞서 말했듯, 이 게임에서 린코의 진심은 정말 애매하게 다뤄딥니다. 심지어 그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조차 애매하죠. 그녀는 슈에 대한 호감을 너무 빙빙 돌려서 표현하고 있고, 히나코에 대한 질투도 어정쩡하게 드러내요. 그 주저주저하는 부분은 린코를 '사악한 빌런'보다는 '음습하고 싸가지없는 인물'로 만들어버립니다.
중학교 교실에서 퍼즐로 등장하는 비밀 상자가 대표적입니다. 그 퍼즐에서 린코는 온갖 상징과 은유를 통해 비밀을 겹겹이 쌓고, 마지막 층에 '좋아한다'는 말을 숨겨둡니다. 근데 슈는 그걸 못 봤어요. 심지어, 결국 그 편지를 읽은 사람은 린코가 그토록 질투하는 히나코입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진심을 전해지 못해 애달팠던 경험이 있습니다. 거기다 그 마음을 담은 편지를 질투하는 사람이 제멋대로 읽어버린다면 너무나 괴롭겠죠. 린코가 당한 일이 그거에요. 그렇게 보면 좀 불쌍한 면이 있죠.
하지만 단순히 불쌍하다고 결론짓기에는 린코의 말과 행동이 너무 비호감이었어요. 자기를 구하러 온 히나코를 대놓고 무시하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걸 보고도 비웃고, 뒷담화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죠. 그녀가 친구들의 따돌림, 슈에 대한 짝사랑, 히나코에 대한 질투심, 내면의 우월감 등 여러 감정을 가진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감정이 있든간에, 너무 싸가지가 없으니까 다 묻히고 '비호감'이라는 측면만 부각되어버려요.
결국, 린코는 자기 마음의 파편으로 남을 찌르는 인물이었습니다.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 한마디 못하다가 관계가 무너지는 사람" 말이죠. 솔직한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없어 매번 주저하고, 상대가 알아주길 바래서 뱅뱅 돌려서 애매하게 표현하다 혼자 상처받는 사람. 나쁜 사람이라기에는 악의가 너무 약하고, 착한 사람이라기에는 너무 싸가지가 없는 사람. 자기 안에 들어찬 울화를 어쩔 줄 몰라하는, 불쌍하지만 다가가고 싶지 않은 사람.
3. 이가라시 사쿠코, 캐리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빛의 주님에게서 받은 건지, 어둠의 주님에게서 받은 건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오랫동안 짊어져왔던 거대한 짐이 어깨에서 빠져나간 듯한 말로 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 스티븐 킹, 캐리
이 게임에서는 수많은 모호한 요소가 있습니다. 이 모호한 요소를 분류하자면 크게 세 종류인데:
(A)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모호한 요소
- 오컬트 요소가 대부분 여기 해당합니다. 대표적으로 여우신의 정체가 그렇죠. 여우신은 사일런트힐 엔딩에서는 고토유키의 할아버지로, 다른 엔딩에서는 고토유키를 홀리거나 고토유키와 융합한 혼령으로 다뤄집니다. 뭐가 정답인지 하나로 정해주는 것도 아닐 뿐더러, 각 정보끼리 명백히 충돌하기 때문에 모호한 요소들이죠.
(B) 스토리와 따로 놀아서 모호한 요소
- 마유미나 박피 전문가처럼 이야기에 직접 등장하지 않고 언급으로만 드러나는 요소들이 여기 해당합니다. 마유미나 박피 시술가들은 여기저기 흔적들이 있고, 이 흔적끼리 조합하면 대략 어떤 사람인지까지는 알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사람이 게임의 스토리와 연결된 부분이 애매합니다. 게임 내 스토리나 다른 정보들과 떨어져 혼자 돌아가기 때문에 모호한 요소들이죠.
(C)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모호한 요소
- 나기나타처럼, 앞뒤연결 없이 나왔다가 별 의미없이 사라지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각 정보간의 연결성'이 애매한 요소들입니다. 간단히 말해, 왜 등장했는지가 모호한 요소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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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 모호한 요소'의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나기나타와 사쿠코입니다.
나기나타부터 보죠. 이 무기는 다른 정보들과 연결되는 부분이 없어요. 딱히 상징적 요소도 하나도 없고, 놓여있던 위치도 애매하고, 화보집에도 안 나옵니다. 현실 히나코의 무장 중 단도는 현실 히나코와 시로무쿠의 연결고리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고, 성스러운 검은 이야기의 핵심 고리인 것에 비해, 나기나타는 이야기와 연결된 부분이 없어요. 마치 게임이 완성된 후 나중에 추가된 요소처럼.
사쿠코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의 소재, 기반만 잔뜩 있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질 않아요. 설정만 애매하게 떠다니다가 그대로 사라져버립니다. 그녀를 구성하는 핵심 정보들은 다음과 같아요:
(1) 히나코에게 500엔 빚을 졌음
(2) 히나코를 배신자라는 별명으로 부름
(3) 과자가게를 하고 싶어했음
(4) 신사를 잇고 싶어함
(5) 왕따였고, 토끼를 잘 돌봤음+상징 문양도 토끼
(6) 두 명의 신을 감지하는 영능력이 있었음
(7) 히나코에게 같이 달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음
(8) 보스로 나와서도 히나코를 구출하려 함
(9) 그녀를 어둠 속에 완전히 묻어버리는 퍼즐은 '여우'와 '토끼'의 시선을 조정하는 방식
(10) 그녀를 처형하는 두 등갓의 이름은 각각 '속박'과 '갈고리'
이 각각의 정보들은 강한 개성과 상징성, 이야기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이어지거나 스토리에 녹아들지 않아요. 그녀가 히나코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흐름만 희미하게 이어질 뿐입니다. 마치, 사쿠코를 메인으로 하는 스토리 파트가 따로 있었다가 나중에 잘려나간 것처럼.
4. 어머니들
"엄마도 사람이야, 그냥, 사람이야."
- 마리온 맥피어슨, 영화 레이디 버드
이 게임의 전체 스토리에서 유독 날카롭게 불거진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적대적 태도입니다. 2번 칼럼에서 말했듯, 어떤 분들은 진지하게 이 게임이 중국 자본으로 만들어졌고, 저출산 국가인 일본에 반출생주의를 설파함으로써 일본을 몰락시키려는 거대한 문화적 프로파간다라고 주장하시더군요. 물론 저는 그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이 게임의 지닌 '임신과 출생에 대한 적대적 시각'은 곧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적대감으로 이어집니다. 여기 등장하는 어머니는 총 세 명이죠:
(A) 사쿠코의 엄마: 딸을 믿지 않는 어머니
딸의 초자연적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딸과 대화하거나 소통하려 하지 않고, 그저 남들의 시선만 신경쓰면서 딸을 억압하는 어머니.
-> 전형적인 "딸을 무시하는 어머니"
(B) 후지토리 사치에: 엄한 어머니
부잣집 도련님과 불륜을 해서 아이를 낳은 어머니. 가문에 돌아갔을 때만을 생각해서 어린 고토유키에게 엄격한 교육과 압박을 가하는 어머니.
-> 전형적인 "아이를 투자상품으로 보는 어머니"
(+) 시미즈 키미에: 이상한 어머니
남편에게 걸레빤 물을 먹이고,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역할극을 하는 어머니. 딸을 진지하게 "여자는 가축이다"같은 소리를 하게 만드는 어머니.
-> 전형적이진 않지만 "이상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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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게임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항상 자식을 망가뜨리는 요인으로만 기능합니다. 자녀를 존중하지도, 믿어주지도, 보호하지도 않는 어른. 강압하기만 하고, 묵살하기만 하고, 개인적 욕망과 이기심으로 자식을 망가뜨리는 존재.
물론 현실에서 저런 어머니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어머니라도 결국은 한 명의 평범한 인간일 뿐이므로 안 좋은 부분도 있고, 이기심도 있으며, 잘못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등장하는 모든 어머니가 그런 식이라는 건 서사적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입니다. 심지어 이 게임은 아이에게 칼을 집어던지는 아버지나 사람에게 ㅁㅇ을 먹이는 범죄자에게도 "착각이었어, 시대가 그랬어, 좋아하다보니 실수한거지"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면서도, 어머니들에게는 가혹하고 조롱섞인 태도를 유지합니다.
저는 이 칼럼 시리즈 내내, 이 게임의 스토리가 얼마나 성차별적 시각을 기반으로 쓰여졌는지를 비판해왔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성차별적 시각의 절정은 바로 이 '어머니를 다루는 방식'인 것 같군요.
이 6번 칼럼의 메인은 준코인만큼, 다른 부분은 여기까지만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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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위의 해석은 '완전한 정답'이나 '유일한 해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작진들은 이 게임의 스토리가 여러 방식의 해석이 가능하도록 구성했다고 이미 밝혔어요. 그래서 게임의 수많은 요소들이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도록' 굉장히 애매하게 짜여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 제가 해석한 것들은 그 애매한 것들 중 제가 마음에 드는 몇 가지를 골라내어 짜맞춘 결과물일 뿐, 정답이 아니에요. 말투도 굉장히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사실 매번 "~~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를 붙이자니 글이 너무 난잡해져서 잘라낸 거고요.
그러니, 위 해석 또한 읽으시는 분 각자의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재미로 읽어볼만한 여러 생각 중 하나로 여겨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한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정답이고, 각자가 내린 결론이 진실입니다. 제 생각에, 스토리 짠 사람 포함해서 제작진 대부분(혹은 전부)도 하나의 완벽한 정답 같은 건 모를 확률이 높습니다. 하나의 일관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못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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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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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요!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사실 꽤 부담이었어요... | 25.11.24 22:4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