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읍(鬼泣), 소울브링어의 중국 명칭
아, 뭐라고 말했어? 미안. 주변이 좀 시끄러워서. 우리 둘밖에 없는데 뭐가 시끄럽냐고? 너도 알잖아. 내가 뭘 다루는지. 뭘 보는지. 뭘 듣는지. 원래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은 아닌데, 오늘따라 유독 시끄럽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쫄았냐? …이것들 죄다 누굴 해할 힘도 없는 잡귀들이야. 이따위 것들이 조금 바글거려봤자 사람 어깨만 좀 짓누르고 말걸? 그러니까 쫄지 마셔.
그래서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소울브링어가 된 이유? …거 참 같잖은 걸 물어보네. 그거 거의 '너 왜 모험가 됐어?' 랑 비슷한 질문 아냐? 아닌가? 아니면 말고. 그래서 그게 왜 궁금한데? …그래, 이유는 없겠지. 이유 없으면 안 말해.
참나…말 안 하면 머리라도 가를 기세네. 귀찮은데. …그러니까 말이지….
──
그날은 늘 있는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누구에겐 어제와 다를 바가 없는 날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겐 그 어떠한 날과 비교할 수가 없는 기쁜 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어느 소년에게 있어선 더할 나위 없이 비극적인 날이었다.
사람이 죽었다. 사람을 죽였다. 제 눈앞에 쓰러진 두 명의 사람, 이었던 것. 왼손의 욱신거리는 고통 속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검붉게 뒤틀려버린 저주받은 손. 혹시 나쁜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생각해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년의 눈앞의 참상은 현실이었으니까.
그런 끔찍한 현실 속에서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절망하는 것뿐이었다. 귀신의 손이 무언가. 그걸 가진 이가 세상에서 받는 시선이 다 무언가. 그런 것들을 이해하기엔 소년은 어렸다. 그런 또 다른 현실을 알기엔, 다른 것을 먼저 알아야 했다.
죽은 이들의 시신을 붙들고 울던 중, 소년은 정신을 잃었다. 탈진 따위가 아니었다. 정신을 잃기 전보다 더 부서진 집안. 전보다 더 고통스러운 귀신의 손. 구속구가 없는 상황에서, 귀신은 점점 소년의 팔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허나 의지가 없었다.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귀신이 폭주하면 폭주하는 대로, 쓰러지면 쓰러지는 대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그렇게 죽어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년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기절해 있었을까, 소년이 눈을 떴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흘러가듯 움직이는 땅바닥이었다. 들려온 것은 절그럭거리는 쇠사슬 소리였다. 느껴진 것은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제 몸뚱이였다. 그제야 자신이 누구에게 짐짝처럼 들려있다는 것을 깨달은 소년은 다급히 발버둥 쳤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왜 밖에 나와 있는 거지? 대체 누가 자신을 끌고 나온 거지? 메마른 목에서 소리가 나오기 전, 먼저 무심한 목소리가 소년에게로 던져졌다.
"일어났나? 거의 다 죽어가길래 데려왔다만."
"아, 으, 으우, 으우에, 콜록, 콜록!"
목구멍이 잔뜩 말라붙어 있었다. 무슨 말을 꺼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침조차 메말라버려 어찌하지도 못하고 그저 기침 소리만 낼 뿐이었다. 그런 소년의 눈앞으로,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만한 거리에 물병이 들이밀어 졌다. 마치 소년을 놀리는 듯이.
"목마르냐? 달라고 빌어봐라. 꽤 오래 못 마신 거 같은데, 달라고 빌면 바로 주마."
소년은 물통과 자신을 데리고 나온 의문의 사람을 번갈아 보고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마실 필요 따윈 없다는 단호한 표현이었다. 죽을 셈인 건가? 마치 중얼거림과 같은 질문에도 소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소년의 몸이 그대로 내팽개치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대로 버리고 갈 셈인가. 소년은 내심 안도했다. 제발 자길 두고 가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간절히 바란다고 하여 소원이 이뤄지는 일 따위는 없었다.
소년의 뒤통수가 무자비하게 잡아당겨 졌다. 머리채가 붙들린 고통에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 목구멍으로 물통이 쑤셔박히듯 들이밀어 졌다. 강제로 물이 넘어가는 고통에 몸부림을 쳐도, 채 삼키지 못한 물이 새어 나와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저 무식하게 물을 소년의 입안으로 욱여넣고 있었다.
곧 텅 빈 물통이 치워지고, 그저 연거푸 기침만 내뱉는 소년의 등짝이 짓밟혔다.
"어린놈이 어딜 멋대로 죽으려고 앉았나. 기껏 구해준 사람의 노력을 어딜 시궁창에 처박으려고."
"우윽, 콜록, 콜록."
"내가 마시라면 마시고, 먹으라면 먹어라. 어차피 죽으려고 하는 목숨이면, 주워준 사람이 대신 써줄 테니까, 죽는 것도 내가 죽으라고 한 뒤에 죽어라."
"케헥! 허억, 허억…흐읍, 시, 싫…우웨엑."
간신히 삼킨 물을 토해내며, 소년은 저를 구해준 이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노려본 것이 그리도 불만이었을까, 아니면 기껏 먹인 게 허사가 되어서 그런 것일까. 자기보다 한참은 어린 소년의 멱살을 틀어쥐고는 다시 한번 강압적으로 말을 꺼냈다. 남의 수고를 시궁창에 처박지 마라.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울상으로 노려보는 것뿐이었다.
"처음부터…처음부터 왜 구해준 거예요…? 그냥 두고 가면 됐잖아요…. 대체 왜?"
"어린놈이 꽤 근본적인 것부터 묻는 거냐. 애초에 사람이 사람 구하는데 이유가 어딨냐? 그냥 구하는 거지. 살아있어서 구했다. 왜? 네 까짓게 불만이라도 있는 거냐?"
"나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으려고, 했었는데."
"어차피 죽은 사람일 뿐인데 뭘 굳이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정 같이 있고 싶다면 지금 당장 땅 파고 들어가라. 한 어른 키만큼 파고 들어가면 10분도 안 돼서 죽겠지. 어차피 어린놈 체력에 할 수 있을 리가 없겠지만."
"끄, 으으, 놔요! 이거 놔! 지금 당장 할 테니까 놓으라고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소년의 몸뚱이는 바닥으로 강하게 내팽개쳐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년을 향해 비웃음 섞인 말이 던져졌다.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라. 그 말에 소년은 곧장 이 악물고 바닥을 파내기 시작했다. 어디 두고 보자는 듯한 표정을 짓고서. 약 1분쯤.
소년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었다. 어린 몸으로 그 공복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내 고통스러운 듯 배를 움켜쥐고 부들거리는 소년은, 비웃는 소리와 함께 다시 짐짝처럼 붙들려져 제 생명의 은인과 함께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저를 구해준 이에게 반강제로 끌려다니며 온갖 고생을 다 겪었다. 맛도 나지 않는 빵조각을 억지로 입에 욱여넣어 지는가 하면, 처음 도착한 마을에서 도망치려 했을 때 도리어 마을 사람들에게 쫓긴다거나. 그래도 어리다는 걸 이용하여, 먹거나 마실 것을 구해오게 시키기도 하였고, 몬스터를 향해 집어 던져지기도 했다.
어찌나 혹사당했는지, 그 어린아이가 이 정신 나간 인간이 곱게 안 죽이고 고통 속에서 말려 죽일 셈이구나, 노예로 쓰려고 데려온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고생 끝에 소년이 간신히 제 몫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 그 한량은 그 작은 손에 검을 들려주었다. 좀 더 잘 움직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먹어도 멀쩡한 음식을 가리는 법을 알려주었고, 식수로 써도 될 물을 찾는 법을 알려주었다.
물론 그것들을 가르쳐주는 이유는.
"더 부려먹을 셈인 거지?"
"당연한 말을."
지극히 눈에 선했지만, 그래도 어떠한가.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지 못할 아이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줌에, 욕지거리라도 내뱉으며 감사할 수밖에.
그리고 그 밑에서 알게 된 것은 단순히 살아가는 법만이 아니었다.
"귀신이 보여? 진짜? 한 번도 못 봤는데? 거짓말하는 거 아냐? 내가 아는 거 하나 없다고 지금 거짓말하는 거지?"
"그건 네가 나랑 같이 다녀서 그런 거다. 저 멀리 가면 보이겠지."
"성질머리 더러워서 귀신도 피하는 거야?"
"내 성질 더러운 만큼, 네 혓바닥도 더러운 거 같다. 말 진짜 아무거나 막 던지지 마라."
"어린놈 하는 말이 아팠나 보네. 말하지 말라는 말까지 다 하고."
"…."
시답잖은 대화 끝에 소년은 꼬박 하루 동안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신세가 되었지만, 마냥 힘들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소년은 매달린 채 생각했다.
정말로, 만약 정말로 귀신을 볼 수 있다면 죽어버린 부모도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아닌가. 다시 만나서 사과의 말이나마 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소년은 귀신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귀신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단순히 그것을 넘어, 귀신 그 자체에 더욱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구속구를 풀고, 귀신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문신을 새겼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 간신히 생긴 소원을 생각하며 견뎌냈다. 도리어 웃어 보일 정도로.
물론, 날이 갈수록 귀기가 강해져 귀신을 보기는커녕 쫓아내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안 것은 제법 시간이 지난 뒤의 이야기다.
──
…생각 그만하고 얼른 말해달라고? 기억 안 나. 뭐. 왜. 뭐. 내가 기억이 안 난다는데 왜? 진짜 머리라도 가르게?
궁금해할 거 없어. 어차피 별거 아닌 이유일 테니까. 그래서 잊어버린 거겠지. 한숨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릴 정도로 쓰잘데기 없는 그런 이유였을 거야.
그러니까…딱히, 궁금해할 것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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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년 전 글 리메이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