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니! 언니!"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천근만근 아래로 가라앉는 눈꺼풀을 안간힘을 다해 들어올린 그녀는 옆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을 향해 간신히 웃어주었다.
"언니! 일어났어? 몸은 어때? 괜찮아? 움직일 수 있어?"
"응. 피피는 괜찮아?"
아직도 몸에 붕대가 잔뜩 감겨있었다.
서툰 솜씨를 보아하니 피피가 자신에게 감겨준 모양이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붕대로 친친 감겨진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보다 언니가 아프지! 날 감싸고서……! 내가 실수한건데!"
"아냐. 언니는 이제 금방 일어날 거니까."
"피피 언니. 레야 언니 더 쉬게 우리 나가자."
옆에 있던 로니가 피피의 팔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덩치가 차이가 있어서 팔만 잡아당기는 시늉만 낼 뿐이었다.
레야는 빙그레 웃으면서 어서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피피와 로니가 밖으로 나가자 레야는 조심스럽게 붕대를 약간 풀어보았다.
그곳에는 상처가 없었다.
2.
상처는 거의 다 나았지만 고열과 미칠 것만 같은 고통이 계속 됐다.
마치 내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레야는 식은땀을 흘리며 허덕였다.
로니와 피피는 걱정이 되어 몇 번이고 찾아왔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둘은 테라나이트를 나르는 일을 하러 가고 레야는 혼자 남는 일이 잦아졌다.
"몇 끼나 굶었는데."
이상하게 로니가 가져다주는 밥에 손이 가지 않았다.
먹으려고 해도 구역질이 났고 먹어도 토해내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뭔가 먹지만 않는다면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고 점점 사그라들었다.
테라나이트 폭발로 인한 영향일까.
그날 상처를 입은건 레야 자신뿐이었고 피피와 로니는 무사했다.
그러니 영향은 받은 것은 분명 자신뿐일 것이다.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몸을 일으키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자신의 몸에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동안 식사도 굶고 계속 누워만 있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몸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어째서?"
테라나이트의 영향으로 이런 것도 되는 걸까?
레야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 안에서 테라나이트의 영향을 받은 존재들은 전부 괴상한 형태로 뒤틀리고 말았다.
레야는 자신도 그렇게 될까 두려워졌다.
그녀는 진심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동생들이 아무 일이 없기를.
3.
"언니? 이제 좀 괜찮아?"
"아아, 로니야, 괜찮아. 과일 좀 먹을래?"
메트로시티의 빈민가에는 먹을 것이 귀했다.
그래서 오늘 과일을 얻은 것은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아마 센트럴파크에서 돌풍에 휘말린 과일이 근처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이름 모를 과일을 칼로 깎던 레야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 칼로 손을 살짝 베고 말았다.
"아야!"
레야는 자신도 모르게 칼로 베인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뭔가 묘한 향과 맛이 느껴졌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그녀를 유혹하는 냄새였다.
"언니? 뭐해?"
로니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레야는 그제야 자신이 피가 난 손가락을 맹렬하게 빨아대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나 피를 짜냈는지 손가락은 새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변해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냐."
핏기가 없어서 저려 제대로 깎지 못한 과일을 로니에게 내밀며 그녀는 문득 동생의 목덜미가 눈에 띄었다.
하얗고 연약한…….
부드러우면서도 맛있어보이는…….
'어머,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동생의 목덜미를 물고 피를 빨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미친게 아닌가 싶었다.
레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잠자리를 폈다.
이불이라고는 그저 얇은 돗자리 같이 풀로 엮은 것뿐이었어도 자매들에게는 안락한 집이었다.
그리고 레야는 로니가 잘 때까지 메트로시티에서 전해져오는 민담을 엮어서 들려주곤 했다.
도로롱 도로롱 코를 골며 잠든 로니의 이불을 목덜미까지 올려주던 레야는 다시 로니의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피다.
피를 마시는 거다.
'내가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자고 있는 동생의 피를 먹고 싶다.
목덜미를 거칠게 물어뜯고 경동맥에서 샘솟는 피를 마시고 목을 축이고 싶다.
배가…….
"아니야!"
레야는 거칠게 자신의 뺨을 양 손으로 후려쳤다.
따끔한 아픔과 함께 정신이 조금이나마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무서웠다. 동생의 피 맛이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이 너무 무서웠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날 밤, 레야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졸립지 않았다.
4.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그녀가 여태껏 살아온 메트로시티의 빈민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야 했다.
도저히 이성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로니의 목을 물어뜯으려고 하는 자신이 있었다.
피피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은 충동이 밀려오는 것을 억누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마을을 떠나야 했다.
몸에 흐르는 이 충동과 무시무시한 힘은 단숨에라도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킬 것만 같았다.
레야는 두려웠다.
너무 두려웠다.
어디로 가야할 지도 막막했다.
집 말고는 갈 곳이라고는 아무곳도 없었다.
그저 정처없이 떠돌고 또 떠돌 뿐.
그때 문득 센트럴파크에 있다는 그 아이가 떠올랐다.
마법에도 정통한 그 아이라면 무언가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레야는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돌풍지대가 문제였다.
거대한 회오리 바람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발구르.
이것을 전부 뚫고 가기에는 레야의 능력이 턱없이 모자랐다.
마법이라도 배웠으면 넘어갈 수 있었을까.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재능 탓에 초급 마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그녀로서는 무리였다.
5.
"아!"
또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나가던 작은 동물을 물어뜯어 입가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향긋한 냄새에 다시 정신을 잃을뻔했다.
레야는 손에 들고 있던 동물의 사체를 집어던지고 엉엉 울었다.
점점 미쳐가는 자신이 두려웠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것이 공포의 은신처였다.
그 안으로만 들어간다면…….
차마 입에 담기 참렬할 정도로 흉악스러운 괴물들이 사는 그곳이라면…….
그녀가 미쳐버리더라도 나가지 못하게 막아주리라 생각됐다.
무작정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새빨갛게 타오르는 듯한 수인 셋이 보였다.
그녀는 멍하니 걸음을 옮기다가 그녀들과 마주치자 질문을 던졌다.
"공포……의…… 은신……처는……."
"엥?"
"뭐라는 거지?"
"잠깐만 있어봐!"
셋이 투닥거리는 사이, 레야는 간신히 그녀들을 물어뜯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며 질문을 끝마칠 수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쪽 방향으로 쭉 가시다가 커다란 나무에서 동쪽으로 꺾으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레야는 힘겹게 그녀들에게서 등을 돌려 알려준 방향으로 걸어갔다.
"미쳤나봐?"
"어딘가 돌았나?"
"테라나이트 중독현상인거 같은데 불쌍하다."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레야는 그저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6.
얼마만에 정신을 차렸을까.
벌써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마계의 계절은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레야에게는 그런 변화조차 느낄 여유가 없었다.
옆을 보니 그동안 자신이 써온 일기장이 있었다.
한글자를 쓰고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한글자를 또 썼다.
로니가 보고 싶어.
피피가 보고 싶어.
마을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만 갈 수 없다.
가면 안된다. 절대로 가면 안된다.
처음에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한손만으로도 마을 사람을 찢어버릴 수 있다.
모두 죽여버리고 그 피를 마실 수 있다.
이곳에 온다면 괴물들이 그녀를 막아주리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그녀가 테라나이트 폭발의 영향으로 받은 저주는 그녀의 상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이런 괴로움. 이런 고통. 이런 슬픔. 이런 외로움. 이런 그리움.
차라리 죽여줘. 죽여줘.
누군가가 날 죽여줘, 제발.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이름이 괴물의 이름이 된다고 생각하니 피조차 먹고 싶지 않을 정도로 소름끼쳤다.
예전에 애들이 놀면서 내 이름의 철자를 섞어서 뭐라고 했었는데…….
그 이름이 떠오르면 이제 내 이름으로 써야겠다.
은신처의 주민들이 원래 이름을 부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잊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도와줘.
피를 마시고 싶어.
누군가 날 좀 도와줘.
피를 마시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피를 마시고 싶어.
제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줘.
"난 아직 살아있어, 제발……."
하지만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7.
가고싶어.
집에 가고 싶어.
하지만 가면 안돼.
하지만 가고 싶어.
가면 안 돼. 가고 싶어. 가면 안 돼.
집에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집에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집에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
안돼안돼안돼안돼가면안돼가면안돼가면안돼가면안돼안돼안돼가면안돼가면안돼안돼안돼가면안돼안돼.
안돼.
안된다고…….
안돼…….
……….
…….
….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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