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러브크래프트를 직역한 낚시입니다
타나토스 스킬 중에서도 러브크래프트 소재가 있길래 둘이 엮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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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책, 네크로노미콘.
그 마도서의 존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완전한 판본을 실제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차원의 경계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왔지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파편화된 필사본, 인용문뿐이었다.
일부만으로도 그 마도서의 위대함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몇천년 전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내가 찾아헤매던 차원 너머의 세계를 거의 완벽하게 묘사하였다.
책의 내용 중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조차도 그 책에 묘사된 그대로인 것으로 밝혀져서 몇 번이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 이외에 그것을 연구할 수 있는 존재가 있었는지, 그렇다면 그는 어떤 방법으로 이계의 독기를 견뎌내고 살아서 이 책을 저술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미쳐버려 며칠만에 썼다는 설도 있고, 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고대의 지식을 참고하여 세심하게 저술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모든 소문은 저자가 이 책을 쓴 후 며칠 뒤에 이계의 존재들에게 잡아먹혔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그런 마도서의 완전한 판본, 단 한 페이지도 빠지지 않고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아 그 자체로 마법적인 효과를 지닌 판본이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가지 문제만 제외한다면.
"이봐, 꼬맹이. 또 내 흑마법서 맘대로 가져갔어? 어딨어!"
이 책은 타나토스의 소유라는 것이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이 세상에도 니알리만큼, 아니 그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농담이 아니다.
죽지 못한 망령들이 주변을 떠돌고, 진짜 거미와 사령 거미 두 가지 다 잔뜩 데리고 다니는데다 무섭게 생긴 흑요정 사령이 항상 뒤에 붙어다닌다.
가장 무서운 건 그 모든 게 확실히 나와 같은 차원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무섭게 보이는 것은 수없이 봐 왔다. 일반적인 사람이 준비 없이 본다면 미쳐버릴 만한 것도 아무 느낌 없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차원의 경계를 넘어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벽 안에 있는 뱀과 산에서 마주친 뱀은 똑같이 가깝다고 해도 다르다. 그곳에 유리가 있다는 것만 인지할 수 있다면.
죽은 영혼도 자주 보긴 한다.
하지만 보통은 영혼만 보지, 그걸 짓밟고 부리는 존재까지 보지는 않는다.
그녀의 주변엔 항상 망령이 밀도 높게 모여 있다. 언제라도 사념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게 준비하려는 걸까. 아니면 그녀의 사술이 망령을 불러모으는 성질인 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축복받은 것이다. 그녀가 사령술로 만든 육신만을 볼 수 있으니.
그녀가 만든 좀비들도 충분히 끔찍하긴 하지만, 그 주변에선 차마 묘사할 수조차 없는 지옥도가 시시각각으로 바뀌면서 펼쳐지고 있다.
나조차도 똑바로 보면 소름끼치는 여자를 상대할 정도로 가치있는 정보를 담은 책이다.
그녀 또한 그 책을 읽고 사령술에 응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도서를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 쓰지 않을 때는 읽겠지.
기분 탓인지, 비어 있는 걸 몇 번이고 확인하고 읽기 시작했는데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찐득한 엑토플라즘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게 조금만 더 뻔뻔함이 있었다면 책을 좀 소중히 하라고 화를 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그녀의 소유물을 몰래 읽는 입장을 너무 잘 자각하고 있으므로 그런 짓은 차마 하지 못한다.
잠깐..
창문에...
창문에...!
거미가..!
콰앙- 하고 문이 힘차게 열렸다.
문을 잠가도 소용이 없단 사실은 이미 지난번에 배운 교훈이었다. 잠그든 안 잠그든 똑같이 부수고 들어온다.
"찾았다! 고마워, 니콜라스."
어째서 저런 식으로 찾는 거야!
이번엔 정말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창문을 등지고 있었던 게 패인이었다. 생각보다 니콜라스는 인간의 동선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지금도 거미줄로 몸을 지탱하고 있어서 이 방 창문에서 날 노려볼 수 있는 거고.
"자, 왜 또 가져갔어? 말해봐."
"보는 걸로는 안 닳잖습니까. 그냥 이 마도서의 내용이 연구에 필요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필요할 때 가져가버리면 어떡하니."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까?"
"없지!"
"그 자체를 영혼의 그릇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마도서긴 합니다만, 그런 데 쓰기엔 아까운 물건입니다. 그걸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건 저뿐...."
"하아.. 꼬마야. 최소한, 텔레포트로 집어가지 말고 그냥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때?"
"그러면 빌려주실 겁니까?"
"아니."
"그러면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그래야 거절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지식을 독점하고 있는 건지 알기나 할까.
마도서를 덮기는 했지만. 차마 내려놓고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너 지금 표정 되게 귀여운 거 알아?"
이 여자는 차원 너머에서 태어났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니알리하고 둘이 두면 잘 놀지도.
내가 안전한 장소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이지만.
"직접 거절해야 이렇게 놀리는 맛이 있지. 설마 진짜 영원히 안 빌려 줄 줄 알았어?"
내 볼을 쭈욱 잡아당기면서 싱글싱글 웃고 있다.
타나토스는 올려다보려면 목이 아플 정도로 키가 크다.
"지난번까진 진짜 운 나쁘게 급히 나갈 일 있어서 찾은 거고."
나갈 시간까진 읽게 두고 있었단 뜻인가.
놔주더니, 허리를 굽혀서 그 쪽에서 눈을 맞춰왔다.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놀리는 것도 미안해서 말이야. 빌려줄게, 방에서 편하게 읽어. 내일은 일이 있으니 자정까진 돌려주고."
그리고, 갑자기 뺨에 키스했다.
급하게 손등으로 닦아내고 보니 장갑에 립스틱이 묻었다. 젠장.
난 이제 죽었다.
편하게 읽긴 무슨. 끝까지 괴롭히려고 이러는 거 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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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제목이 100% 낚시는 아닐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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