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언더풋이나 시궁창 쪽을 배회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뿐이었다.
마계로 가는 길이 개척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굳이 열성적으로 손을 빌려 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림시커라는 인간들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협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도 붙잡거나 밀쳐내는 일은 없고 내가 선택해서 하는 일이었지만, 도망쳐나왔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언더풋에 머물며 교단의 지원을 받아 노이어페라에서 위장자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까지 끌리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위기에 떠밀려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같은 병에 두 번 걸리지는 않으니까.
이미 저주에 걸린 사람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그곳에서 지겹도록 본 것이 그림시커라는 단체의 만행이었다.
그렇게 많은 위장자는 차원의 틈에 의해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기엔 수가 너무 많았으니까.
그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거의 죄책감 없이 베었다. 저주받을 이 수백명을 미리 베어버린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영혼이 안식에서 깨어나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그 참상이 잊혀지지 않아, 아젤리아 로트라는 여자를 믿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본 진실이 그 여자가 하는 말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녀의 목적까지 올바르다고 믿어 줄 이유가 되지 않는다.
사도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들의 손에 넘기면 죽이느니만 못한 재앙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내게 검은 성전은 그랬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끝난 전쟁에서 뿌려진 저주가 이 땅에 남아 아직도 많은 이들과 나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피해를 남겼다.
오즈마를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되었다.
너무 편히 죽었어.
항구 쪽, 수송기 반대편에 쇼난으로 가는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잡아탔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뭔가 계획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이 탄 모험가들의 표정이나 속삭임을 평소보다 훨씬 적게 의식하고 있었다. 한 명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시란이 웃고 있지 않았던 것은 본 것 같다.
정신을 차려 보니 검은 성전의 전장 한복판에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가며 시간의 문 안쪽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낫에 묻은 피는 어느 쪽일까, 같은 쓸데없는 걱정은 애써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이곳에 오면 환청이 몇 배로 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쪽은 어차피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해도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니, 죽여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
다른 한 쪽은 이곳에서는 그들이 진짜라고, 넌 사람을 죽이려는 충동을 느끼고 있을 뿐이라고 인정하라 한다.
너는 이제 이것들을 죽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동시에 말해온다.
압박감에 짓눌려가면서까지 이곳에 있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화풀이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그 상황을 빠져나간 뒤였지만.
그래, 여기서는 무슨 짓을 해도 역사가 바뀌는 일은 없다.
위장자 수백 마리를 죽였다. 아니, 수백 명.
하지만 이들은 마법이나 무언가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베리아스의 갑옷을 너무나도 쉽게 찌그러뜨렸다.
이곳은 다른 시간을 살아가던 이들의 시간에서 비틀려 뜯겨나간 조각이다.
티아매트의 창을 빼앗아 그 주인을 꿰뚫어 매달았다.
그렇다면 아무 의미 없는 일도 아니다. 나아간다.
강적을 끝내 해치웠다며, 자신들을 도운 이라면 위장자에게도 감사를 아끼지 않는 이들. 형제들.
이들은 실존한다. 이 시간의 틈 안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 속에 실존한다.
이들이 미카엘라에게 바치던 감사 또한 순수한 것이었으리라. 성자는 아무도 속이려 한 적 없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도 환영을 베는 것이 아니다.
아스타로스를 죽인다.
내가 겪어 왔던 고통을 일부분이라도 돌려준다. 숨이 끊겨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까지는.
이것이 올바른 일인지, 이런 짓을 해서 내가 무엇을 얻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받을 때마다 수백번, 수천번을 곱씹으며 생각해오던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찍고, 긋고, 베고, 나중엔 낫조차 부르지 않고 맨손으로, 손톱으로, 계속해서 두들겨팼다.
반격이 점차 약해지다 미세한 떨림마저 멈춘 뒤에도 한동안 계속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신이 든 것은 환청이 조용해진 걸 알아차렸을 때였다.
눈앞에 보이는 오즈마의 봉인을 부수고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곧바로 든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나 자신의 생각이었다.
그대로 행동에 옮기지 않은 건 그런 생각을 했다는 데 대한 죄책감 탓이 아니었다. 이 세계가 시간의 문 안에 있는 세계더라도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가려고 하면서 이번엔 똑똑히 보았다.
오즈마는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요즘은 언더풋이나 시궁창 쪽을 배회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뿐이었다.
마계로 가는 길이 개척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굳이 열성적으로 손을 빌려 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림시커라는 인간들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협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도 붙잡거나 밀쳐내는 일은 없고 내가 선택해서 하는 일이었지만, 도망쳐나왔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언더풋에 머물며 교단의 지원을 받아 노이어페라에서 위장자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까지 끌리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위기에 떠밀려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같은 병에 두 번 걸리지는 않으니까.
이미 저주에 걸린 사람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그곳에서 지겹도록 본 것이 그림시커라는 단체의 만행이었다.
그렇게 많은 위장자는 차원의 틈에 의해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기엔 수가 너무 많았으니까.
그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거의 죄책감 없이 베었다. 저주받을 이 수백명을 미리 베어버린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영혼이 안식에서 깨어나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그 참상이 잊혀지지 않아, 아젤리아 로트라는 여자를 믿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본 진실이 그 여자가 하는 말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녀의 목적까지 올바르다고 믿어 줄 이유가 되지 않는다.
사도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들의 손에 넘기면 죽이느니만 못한 재앙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내게 검은 성전은 그랬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끝난 전쟁에서 뿌려진 저주가 이 땅에 남아 아직도 많은 이들과 나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피해를 남겼다.
오즈마를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되었다.
너무 편히 죽었어.
항구 쪽, 수송기 반대편에 쇼난으로 가는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잡아탔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뭔가 계획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이 탄 모험가들의 표정이나 속삭임을 평소보다 훨씬 적게 의식하고 있었다. 한 명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시란이 웃고 있지 않았던 것은 본 것 같다.
정신을 차려 보니 검은 성전의 전장 한복판에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가며 시간의 문 안쪽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낫에 묻은 피는 어느 쪽일까, 같은 쓸데없는 걱정은 애써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이곳에 오면 환청이 몇 배로 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쪽은 어차피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해도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니, 죽여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
다른 한 쪽은 이곳에서는 그들이 진짜라고, 넌 사람을 죽이려는 충동을 느끼고 있을 뿐이라고 인정하라 한다.
너는 이제 이것들을 죽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동시에 말해온다.
압박감에 짓눌려가면서까지 이곳에 있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화풀이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그 상황을 빠져나간 뒤였지만.
그래, 여기서는 무슨 짓을 해도 역사가 바뀌는 일은 없다.
위장자 수백 마리를 죽였다. 아니, 수백 명.
하지만 이들은 마법이나 무언가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베리아스의 갑옷을 너무나도 쉽게 찌그러뜨렸다.
이곳은 다른 시간을 살아가던 이들의 시간에서 비틀려 뜯겨나간 조각이다.
티아매트의 창을 빼앗아 그 주인을 꿰뚫어 매달았다.
그렇다면 아무 의미 없는 일도 아니다. 나아간다.
강적을 끝내 해치웠다며, 자신들을 도운 이라면 위장자에게도 감사를 아끼지 않는 이들. 형제들.
이들은 실존한다. 이 시간의 틈 안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 속에 실존한다.
이들이 미카엘라에게 바치던 감사 또한 순수한 것이었으리라. 성자는 아무도 속이려 한 적 없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도 환영을 베는 것이 아니다.
아스타로스를 죽인다.
내가 겪어 왔던 고통을 일부분이라도 돌려준다. 숨이 끊겨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까지는.
이것이 올바른 일인지, 이런 짓을 해서 내가 무엇을 얻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받을 때마다 수백번, 수천번을 곱씹으며 생각해오던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찍고, 긋고, 베고, 나중엔 낫조차 부르지 않고 맨손으로, 손톱으로, 계속해서 두들겨팼다.
반격이 점차 약해지다 미세한 떨림마저 멈춘 뒤에도 한동안 계속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신이 든 것은 환청이 조용해진 걸 알아차렸을 때였다.
눈앞에 보이는 오즈마의 봉인을 부수고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곧바로 든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나 자신의 생각이었다.
그대로 행동에 옮기지 않은 건 그런 생각을 했다는 데 대한 죄책감 탓이 아니었다. 이 세계가 시간의 문 안에 있는 세계더라도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가려고 하면서 이번엔 똑똑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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