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제로
검고 검은 광경. 모든 더러운 것을 쓸어버려 한 점 오탁도 남기지 않는 세심한 땅. 그 땅에겐 사람들 또한 오탁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삶은 사라지지 않는 곰팡이 마냥 그곳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마계의 극녘 어떤 열도 빛도 도달하지 못하는 곳. 사람들은 오래전 마물과 독기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운 ‘사람’들을 피하여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매섭다는 말만으론 한참 부족한 땅에서 살아가기에 그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드물게 태어나는 아이의 태반은 첫 울음을 내뱉기도 전에 얼어붙은 어둠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에겐 이름 또한 없었다. 그들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서로를 서로의 몸처럼 대하며 살아갔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었기에.
“오늘은 수확이 나쁘지 않군.”
“많이 잡았어..”
호리호리한 남자는 자신의 손 안에 뭉쳐있는 푸른빛 덩어리들을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그의 목소리에선 절제된 감정만이 흘러나왔고, 그에게로 다가온 작은 소년의 목소리 역시 그러했다. 어딜 보나 뭉뚱그려진 어둠만이 펼쳐져있는 대지에서 그들의 모습은 있어도 없으나 매양 똑같을 뿐이었다. 어떠한 생명도 살지 못하는 극녘 땅에서 존재하는 건 그들과 냉기의 정령들 뿐. 그들은 냉기의 정령들을 사냥해 그 에너지를 흡수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몸은 이미 극녘에 익숙해져 있었다. 한 점 빛도 없는 땅 성장한 이들의 눈은 빛을 감지하는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가자. 우리 몫은 채웠어.”
“....”
등 돌려 떠나려 하는 남자와 달리 소년은 발걸음을 떼지 않은 채 그곳에 남아있었다. 따라오는 발소리를 듣지 못한 남자는 몇 발자국 나아가다가 뒤돌아 소년 쪽을 향하였다. 소년의 얼굴은 그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저거....”
소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남자에게 선명히 와 닿았다. 소년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이 향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곳엔 한 열기가 서 있었다. 남자는 그 열기를 쳐다보더니 눈매를 살짝 찌푸리곤 서두르지 않는 발길로 그러나 빠르게 소년의 곁에 가 섰다.
“외부인이다.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죽거나, 떠나겠지. 가자.”
남자는 소년의 한쪽 팔을 붙잡고 거칠게 잡아당겼다. 소년은 별다른 저항도 않은 채 남자에게 끌려갔지만 그의 눈길은 계속해서 처음 보는 상대에게로 향하였다. 그리고 소년은 처음 보는 이상한 열기가 처음 보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 열기의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쪽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둥글게 휘는 듯 한 열기의 이동. 소년은 이제 제 발로 남자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며 무표정하게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가 살짝 한쪽 눈만 깜빡이며 입을 살짝 열어 이리저리 모양을 내보았지만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소년은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날의 구분은 없었다. 언제나 어둠뿐인 땅에 그런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관념조차 얼어붙어 멈추어 버린 땅에서 그들에겐 순간순간이 매양 똑같을 뿐이었다. 소년은 모든 사람들이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에너지 흡수를 끝낸 뒤 시간을 틈 타 조용히 움직였다. 그 기묘한 열기를 보았던 곳 어렴풋한 기억에 의지해 소년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년은 열기를 보았다.
“올 줄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저를 보았죠..? 아 보았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소리에조차 열기가 담겨 있구나..’
소년의 머릿속에 든 감정은 신기함과 호기심 뿐. 소년이 다가가자 그곳에선 소년이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격렬한 열의 폭발이 일어났다. 소년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이었다. 그의 빛을 모르는 두 눈을 강타한 열과 빛이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강렬했기에 소년은 순간 자신이 받은 충격을 못 이겨 고개를 숙인 채 바들바들 떨 뿐이었다.
“어라. 아! 미안해요. 익숙하질 않았죠. 음 미안해요 정말. 당신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 그만... 자 자 되었죠? 빛 없앴어요. 괜찮아요?”
화들짝 놀라긴 남자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들 주변에 피어났던 빛과 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곤 안절부절 하며 손을 뻗어 소년을 어루만지니 그의 손에서 전해진 뜨거움에 소년은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아, 이런.”
그 반응을 느낀 남자는 서둘러 손길을 거두려 했지만 순간 그의 손을 꼭 붙잡은 차가운 손길에 멈춰서고 말았다.
“...따뜻해..”
고갤 들어 올려보는 소년의 감은 두 눈은 허리를 살짝 숙인 채 손을 붙잡힌 남자의 눈길과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주변엔 어떠한 빛도 없었지만 두 사람은 똑똑히 서로를 인지할 수 있었다. 남자는 잠시 놀란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살짝 미소 지으며 붙잡힌 손을 들어 소년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싫지 않다니 다행이네요. 아까는 너무 강렬했으니까 이번엔 아주 살짝만 불을 켜볼게요. 괜찮겠죠?”
부드럽기 짝이 없는 목소리는 소년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것. 이 생소한 울림에 소년은 매혹된 듯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 흔들어댈 뿐이었다. 그리고 남자가 살짝 불을 켜자 소년은 두 눈을 꾹 감았다가 살짝 뜨며 바라보았다.
“당신의 모습이 보이네요. 하얗고 예뻐요.”
예쁘다는 말이 무엇인지 소년은 알지 못하였다. 단지 그 단어의 울림이 전해주는 감각에 부르르 몸을 떨며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엉거주춤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아주 천천히 조금씩 조금만 더 눈을 떠가려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는 저 열기 덩어리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소년은 눈동자를 찌르는 격통을 버텨가며 눈을 떴다.
“아....”
눈을 뜨고 그가 본 광경은 아주 작은 불빛과 그것이 비추는 남자의 얼굴. 보고자 했던 것을 보았어도 소년은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가 목도한 형체의 덩어리 그 자체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만은 소년도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얼굴에 떠오른 그 이상한 열기의 이동이 무엇인지 소년은 드디어 알 수 있었다.
“제 소개부터 할까요? 전 카쉬파의 상급 연구원 모아라고 합니다. 사실 앞에 붙은 건 몰라도 되고 그냥 모아라고만 알아주시면 돼요.”
“...모...아....”
“네 맞아요. 당신 이름은 무엇인가요?”
빛이 있는 곳에서 두 눈을 뜨고 있는다는 게 생각보다 아프고 힘들었기에 소년은 계속해서 두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년은 결코 눈을 감을 생각은 없었다. 그의 두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그를 둘러싼 냉기정령의 에너지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 얼음 결정이 되어 흩뿌려지고 있음에도 그는 꿋꿋하게 두 눈을 떴다.
“이름..? 몰라.. 그런 건...”
소년에게 이름 같은 건 없었다.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고 자신의 이름을 원하는데 자신이 그 기대에 부응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소년은 덜컥 겁을 먹고 있었다. 이 따뜻한 사람이 가버리는 건 싫은데 이대로 있으면 가버릴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소년을 사로잡아 소년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의 양은 점차 늘어가고 있었다.
“아, 아뇨 아뇨. 괜찮아요. 없을 수도 있죠. 세상엔 이름이 없는 사람들도 꽤 많답니다. 어, 이름이 없으면 제가 지어드려도 될까요? 당신은 마치 빛에 비친 이 땅처럼 하얗고 순수하군요. 그리고 역시 이 땅처럼 변함없을 것만 같은 느낌.. 그래요 이터니아 이터니아 어떤가요?”
“...이..터..니아..?”
소년은 살짝 고개를 들어 자신이 들은 소리의 울림을 따라 말하였다. 그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던 눈물은 서서히 잦아들었고, 남자가 당장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그를 품었다.
“이터..니아.. 이터니..아.. 이터니아...”
소년은 자신이 받은 이름을 계속해서 되뇌며 스스로에게 새겼다. 되새기고 되새길수록 새로운 느낌이 샘솟는 것 같은 기분에 소년은 미소가 무엇인지 모름에도 저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모아는 그런 소년의 모습을 보며 가만히 미소 짓다가 왼손을 들어 검지만 든 채로 소년의 코앞에 가져다 대었다.
“그렇게 감격스러웠나요? 당신의 마음에 들었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이제는 이터니아란 이름을 가진 소년은 그런 남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하고 움직였다. 이제는 완연히 동그랗게 떠진 소년의 눈동자에는 한 점의 의심도 불안도 담겨 있지 않아 그 너른 공간엔 온전한 호기심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아는 그런 소년의 모습을 보게 되어 기뻤다. 그가 이 극녘의 땅까지 왔던 이유에 가장 부합하는 개체를 만났음에 그는 너무나도 기뻤다. 순수하고 어린 개체.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의 기운을 한껏 머금은 최고의 육체. 거기에 반항이라곤 생각조차 않는 태도까지. 그야말로 그가 원하던 이상적인 대상이었다.
“그래요 저도 정말 기뻐요.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말이지요.. 자 그러니까 말이죠. 당신은 혹시 알고 있나요 어비스를?”
“어비스..?”
모아가 짓고 있는 미소는 이제 그 모습을 사뭇 바꾸어 지각 있는 이가 본다면 경계심을 품을 비릿함을 풍기고 있었지만 소년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의 말에 이끌리고 있었다. 그는 이 남자가 알려줄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제 이터니아에게 이 남자는 커다란 정령 에너지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였다.
“그래요. 뭐 복잡하게 설명할 필욘 없겠죠. 당신과 이 땅에 살아가는 음.. ‘사람‘들은 말이죠. 신기하게도 자연적으로 어비스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직접 와봤더니만..”
모아의 오른손이 소년의 가슴팍에 닿자 소년은 몸의 중심으로 전해진 열기에 들이쉬던 숨을 멈추고 부르르 떨었다.
“정말로 가지고 있군요. 그 성질이 오직 냉기로만 이루어졌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네요.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순수한 어비스는 정말 흔치 않은데 이걸 어쩌지? 지금 당장 해부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너무 무지한 짓거리야 호기심에 이끌려 그런 멍청한 짓을 해선 안되죠. 그럼 어쩌죠? 그냥 살짝 아주 세심하게 이리저리 영향만 줘보고 그 반향을 연구해 볼까요? 하지만 그러려면 계속 이 땅에 머물러야 하는 데다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지요. 외부 요인의 개입을 제가 조절할 수가 없으니까요. 아 그럼 역시 일단 그냥 가져가서 보관부터 해둘까요? 그게 가장 안전한 길일 것 같긴 한데 어비스의 성질이 그 동안 변화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이거야 원!”
모아는 분명히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길은 소년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쉴 새 없이 빠른 속도로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에 소년은 섬뜩함을 느꼈지만 자신에게 전해지는 이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해석하지 못하여 혼란만이 가중되었다. 그동안에도 끊임없이 중얼거리던 모아는 한 순간 입을 닫더니 얼굴에 그나마 남아있던 미소마저 싹 거두어들인 뒤 왼손을 소년의 머리 위로 가져다 대었다.
“뭘 어떻게 하든 위험 요소를 배제한다는 건 불가능 하죠. 당연한 소릴! 너무 오랜만에 너무 맘에 드는 걸 찾았더니만 살짝 흥분했었나 보네요. 이렇게 귀한 대상을 두고 위험한 도박을 벌일 수는 없는 법...”
소년은 갑작스레 두 눈이 감김을 느꼈다. 잠들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쏟아지는 잠결에 소년은 당황했지만 그런 자그마한 생각 따위는 폭풍우와 같이 몰아치는 수면욕 앞에서 무기력했다. 소년의 마지막 기억은 그곳에서 끊어졌다. 그리고 소년이 다시 한 번 눈을 떴을 때 그는 열기로 가득 찬 곳에 있었다.
스스로를 빙결사라 칭하는 소년은 누군가 이름을 물어보거든 자신에겐 이름이 없다고 답하였다. 소년은 말수가 없었지만 아주 가끔 그의 고향 이야기를 할 때면 한 점 빛도 열도 없는 땅에 대하여 이야기하곤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아라드로 왔느냐고 물었을 때 소년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어버렸다. 사람들은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않는 소년에게 이내 흥미를 잃고 떠나갔지만, 소년은 진지했다.
그 때 그 기억 열기가 없는 땅에서 눈이 감겼던 그는 열기로 가득 찬 곳에서 눈을 떴었다. 그리고 텅 빈 기억 너머로 자신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살려주겠다고 했다 새 삶을 주겠다고 했다. 소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억지로 짜 맞춘 조각으로 간신히 유추할 수는 있었다. 그는 죽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따라 눈을 떴을 때 그는 아라드에 있었다.
“야 너....”
그가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마계에서 함께 전이해 온 소년은 말문이 막힌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언제나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자기 고향이라는 할렘에 대해 이야기 하던 그였으나 극녘에서 온 소년의 이야기 앞에선 입을 닫고 조용해 졌다. 소년은 그 반응에 의아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년은 여전히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 새로 발견한 것에 대해서 솟아오르는 궁금증을 느꼈지만 그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표출하려고만 하면 알 수 없는 고통이 그의 머리를 휘감았고, 한 가지 이름이 그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모...아...”
이상했다 분명 그에게 남아있는 기억에서 모아는 친절한 사람이었고, 자신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 사람이었으며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떠올릴 때면 항상 고통이 뒤따랐다. 알 수 없는 열기가 몸속에서 피어올랐다. 그가 붙여준 이름을 소년은 소중하게 여겼지만 다른 이들에게 밝히려고만 하면 거부감이 느껴져 말할 수가 없었다. 소년은 생각했다.
‘소중해... 그래서, 말 할 수 없어... 이..터니아.. 내, 이름...’
함께 마계에서 전이해 온 소년이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터니아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는 그저 언제나 그러했듯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대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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