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서 검광이 빛을 뿌린다. 거친 쇳소리가 허공을 때리며 갖가지 방향으로 날이 움직인다. 챙. 하는 소리가 수십 여 합을 맞부딫히며 서로 공명한다. 차가운 금속성이 연이어 울리려는 찰나, 검이 허공에서 구부러지듯 회전하며 신속하게 틈새를 파고든다. 경악한 눈빛이 날을 거둘 새도 없이 칼끝이 목울대를 찢는다.
아니, 찢었다고 느꼈다.
"...연무는 여기까지하자."
검무관의 직전제자. 케인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검을 거뒀다. 칼끝을 타고 흘러내릴듯한 예기가 아직 목젖을 에는 것만 같다. 다인은 그런 착각을 느끼며 허물어지듯이 검을 거두었다. 등을 돌린 케인의 미스트 블레이드가 짙은 예광을 흩뿌리며 허리춤으로 돌아갔다. 연무장에 다시금 정적이 찾아들고, 다인은 이를 악물었다. 케인이 아니라 자신의 무력함을 향해.
케인은 천재였다. 그 이상 그를 묘사할 수식어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대단한 인재였다. 10살에 검무관 제자가 시비를 걸었다는 이유로 현판을 부수고 찾아와 보상을 요구하는 당돌한 고아소년이었다. 당시 검무관의 총관, 베이루스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발을 두 발자국 이상 움직이게 한다면 그리 하겠다고 말했다.
베이루스의 시답잖은 생각은 예상 밖의 상황으로 흘렀다. 케인은 이전에 검무관의 문턱에 발을 들인 적이 있었다. 창문 너머로 베이루스의 수련을 지켜보며 제 나름대로의 검로를 파악한 것이다. 베이루스의 일검이 휘둘러진 순간, 케인은 땅을 박차고 바닥을 향해 치닫는 목검을 발판삼아 그대로 베이루스를 향해 헤딩을 하고 말았다.
베이루스는 딱 한 발자국 움직였다. 단지 그 뿐이었다. 허나 대결은 베이루스가 의도한 대로 끝나지 않았다. 마침 본관에 들어온 관장이 대결을 눈여겨보고 있던 것이다.
그 날, 케인은 검무관의 제자가 되었다.
"천재라."
늦은 시각. 다인은 잠자리에서 케인의 전설적인 일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검무관에서 5년 넘게 칼밥을 먹어온 자신도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할 기행이다. 검날을 타고 뛰어올라 상대를 향해 날아오른다. 만약에 허공답보, 등보경공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가 있다면 케인의 기행을 보고 어떤 이름을 붙여줬을까?
다인은 생각을 접고 다락 밑의 종이를 꺼내 오늘 연무에서 보여준 케인의 검로를 하나하나 기록하기 시작했다. 케인의 검로는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괴랄했다. 검무관에서 사사하는 기본적인 검법에 자신만의 검로를 넣은 변칙적인 기술이 섞여있었다. 그는 이미 자기만의 검법을 창안할 수준이 된 것일까?
'...제길.'
치밀어오르는 열등감을 애써 삭이며 다인이 침상에서 일어났다. 복도를 나서는 그의 발걸음이 연무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베기.'
허수아비를 눈앞에 둔 다인이 검로를 떠올렸다. 손에 든 목검이 횡으로 선을 그으며 허수아비의 어께를 갈랐다.
'찌르기.'
눈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칼끝이 허수아비의 가슴을 꿰뚫었다. 검을 뽑는 순간 다인의 가슴 속에 치민 생각은 군더더기였다. 쓸모없는 동작이 들어갔어.
'흘리기.'
허수아비의 모습이 케인의 환영처럼 보인다. 미스트 블레이드가 허리춤에서 뽑힌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발도. 피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를 악물고 목검을 기울여 막는다. 그리고 신음이 터졌다.
"큭...!!"
그저 이미지파이트일 뿐인데, 충격이 손목을 파고들었다. 바닥에 박아넣은 뒷꿈치가 얼얼하다. 물러서야했다. 허나 케인의 검이 그보다 더 빨랐다. 내리치는 검광을 향해 다인이 목청껏 기합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검광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흘린 몸이 케인의, 아니 허수아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케인의 무덤덤한 얼굴이 한 순간 굳은 것처럼 보였다. 지금이 찬스다. 다인은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턱.
"어?"
기껏 내지른 검이 허공에서 거짓말처럼 굳어버렸다. 이게 무슨 조화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들자 허수아비의 얼굴이 어느새 케인으로 변해 있었다.
"...늦은 밤에 뭐하고 있나?"
허수아비가 아니라, 진짜 케인이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손을 뻗어 목검을 제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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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
다음 날 아침, 다인과 케인은 헨돈마이어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원래 슈쥬의 사람이었던 케인은 커피가 입맛에 맞지 않았는 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자네는 왜 내 말투가 어눌하다고 생각하나."
"말투가 어눌하다고? 무슨 소리. 자네가 언제 대화를 꺼낸 적이 있었던가?"
케인이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난 원래 말이 짧아. 천성적으로 어눌한 말투를 감추기 위해서지."
"...그랬던가? 난 그저 성격이 차가운 줄로만..."
"난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죽여."
뜻밖의 대답에 다인은 꺼낼 말을 찾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케인이 말했다.
"자네가 나를 천재라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시답잖은 이야기 때문인가?"
"글쎄, 그것도 없잖아 있겠지. 허나 그 뿐만은 아니야."
다인은 그 날 연무장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자신이 이미지파이트 중에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그의 천재성을 토로했다. 그것은 자신의 열등감을 표출하는 방법이기도 했고 케인의, 소위 천재들에 대한 토로와 한탄이기도 했다. 케인은 어느 순간부터 차를 마시지 않았다. 대화를 들으며 어떤 추임새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눈높이를 맞추며 눈빛을 교환했을 뿐, 이야기를 끊거나 의견을 피력하지도 않았다.
"...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거야. 그래서 말인데, 자네는 자기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나?"
"글쎄."
케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식은 찻잔을 들어올려 커피를 머금고는 잠시 여유를 두고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내가 도 이외의 무기를 드는 걸 본 적이 있나?"
"글쎄... 목검 말고는 모르겠는데."
"목검이 아니라 목도일세."
케인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자네의 말을 쭉 들으면서 생각해봤는데, 자네가 말한 대로면 나는 천재가 맞겠지. 검의 천재는 아니겠지만."
"검이 아니라면... 도라는 말인가?"
"그래."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처음 검무관에 들어왔을 때, 난 목검을 휘두르다 손아귀가 찢어졌어. 그래서 며칠 간 입원했었네."
"그래서?"
"치료를 마친 후로는 별의 별 무기를 다 잡아봤지. 둔기, 소검, 대검, 도... 심지어는 흑요정들이 쓰는 단검까지 휘둘러봤지. 그리고 결심이 굳었네."
"결심?"
"나는 검에 소질이 없다고 말야."
케인이 허리춤에서 미스트 블레이드를 검집 채로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이 칼을 잘 봐. 칼의 모양이 보통 칼과 조금 다르지 않은가?"
다인이 눈을 똑바로 뜨고 케인의 칼을 관찰했다.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점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특출난 차이점을 찾지는 못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걸."
"바로 그거야. 이 칼은 철저히 내 검로와 입맛에 특화되어있는 도구야. 다른 사람이 잡았다가는 그저 다른 흉기와 다를 바 없지. 하지만 나는 이 칼과 다른 사람의 무기가 어떻게 다른 지 수 백가지를 들 수 있네."
한번 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어눌하다는 케인의 입에서 이야기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도의 방향성과 추구하는 것, 도의 경지와 그에 얽힌 이야기... 다인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만 주억거릴 뿐, 공감할 수 없었다. 새삼스럽지만 이것이 천재와 범인의 차이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케인이 미스트 블레이드를 허리춤에 끼우고는 물었다.
"자넨 이해할 수 없을거야. 자넨 도에 특화된 사람이 아니거든. 하지만 자네 역시 천재야. 난 알고 있어."
"천재라고? 어떤 면에서 말인가?"
다인이 미심쩍다는 눈빛을 하며 물었다. 케인이 다인의 손을 붙잡고는 다그치듯 말을 이었다.
"자네는."
"응."
"무기의 천재야. 웨펀마스터."
"...뭐?"
다인의 되묻는 말에 케인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다인은, 두 번 다시 케인을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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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불타고 있었다.
건물마다 세워 놓은 차양막이 찢어지고, 도로는 괴물들의 세상으로 변했다.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불타는 소리와 몬스터들의 포효에 삼켜지고 있었다.
"팔 검수. 집결하라!"
다인은 불길에 휩싸인 거리 속에 남아서 검수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검무관이 키워낸 검수 한 명이 몬스터 백 마리를 베고 죽으면 천 마리의 몬스터가 검수의 사지를 뜯고 몸에서 목을 뜯어냈다. 십 년에 걸친 수련 끝에 키워낸 검수가 처절한 비명을 흩뿌리며 목이 달아나는 광경은 눈으로 보았음에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제길."
바로 앞에서 달려오는 타우의 목을 한 번에 가르며 욕설을 뱉었다. 요정의 숲을 불태운 대화재 이후 검무관의 검수들은 머리맡에 베게 대신 죽음을 베고 잠에 들었다. 검수들의 지휘자인 다인도 예외일 수 없었다.
"팔 검수. 집결하라니까!"
아락바락 고함을 내지르며 쏟아져나오는 몬스터들을 가른다. 한 번 발도의 검광이 번뜩일때마다 칼집이 피로 물든다. 토막난 몬스터들의 머리를 허공에 내던지고 부딫히는 놈들은 모조리 찢어버렸다. 검광이 터지고 남은 자리에는 피에 젖은 다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팔 검수!"
팔 검수를 부르짖는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울리고, 함성에 신경이 곤두선 몬스터들만이 다인을 뒤쫓았다. 벌써 몇 번째 발도인지도 모르겠다. 몬스터가 시야에 비칠 때마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팔은 한계를 넘어설 만큼 혹사하고 있었다.
발도를 하려고 허리춤에 검을 집어넣는 순간, 그는 황당하게도 칼집 안에 피가 물통처럼 가득 차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칼집이 발도에 왜 필요한지조차 잊어버린 채 뒤통수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고블린의 주둥이에 칼집을 쑤셔넣었다.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피가 폐부를 덮쳐 고블린은 땅 위에서 익사당하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리더를 찾아야 해.'
한계에 달한 몸이 발걸음을 멈추자 순간 판단력이 돌아왔다. 팔 검수는 전멸했다. 다인을 제외하고는. 지금 이 순간 거리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다인과 죽어가는 시민들 말고는 없었다. 주변을 살피며 시선을 돌리던 중, 타우 가드의 덩치가 도끼를 들이밀고 자신의 대가리를 쪼개려는 것이 보였다. 다인은 무덤덤한 얼굴로 발도, 도끼째 몸을 이등분하고 좌우로 찢어지려는 놈의 시체를 걷어찼다. 시야가 확 트이자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놈이 눈에 들어왔다.
놈은 지금까지 다인이 봤던 어떤 타우들보다 거대했고, 흉폭한 놈이었다. 팔을 내뻗으면 지진이 되어 건물을 쪼갰고, 고함을 치면 태풍이 되어 도로를 휩쓸었다. 평소같았다면 위압감에 질려 주춤거렸을텐데, 지금의 다인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문득 그는 조금 전 자신이 검집도 없이 어떻게 발도를 했는지 궁금했다. 아니, 그 전에 자신이 어째서 살아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몇 놈이나 죽였지? 수 백, 아니, 수 천? 모르겠다. 숫자가 중요했던가? 고개를 숙여 들고 있던 칼을 바라보니 검신은 반으로 토막났고 이가 빠져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칼로 싸웠단 말인가?
'자네는 무기의 천재야.'
무기의 천재. 그 날 이후 머릿속에 진득하니 맴돌았던 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그가 처음에 자신을 비웃는 줄만 알았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어쩐지 이해할 수 있는 듯도 했다.
'무기가 중요한가?'
그는 부러진 검을 쳐들고 자신이 보았던 가장 거대한 타우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피와 강기를 머금은 검이 나선으로 날아가 몬스터들의 무리를 헤집고 거대한 타우의 발에 박혔다. 비명이 터지고 놈이 흉흉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팔을 내리쩍었다.
쾅! 일진 뇌성이 터지며 귀가 먹먹해졌다. 총알처럼 쏟아져내리는 건물과 도로의 잔해 속에서 다인은 유유자적하게 앞으로 걸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파편이 느릿하게만 보였다. 그는 파편 중 무기로 쓸만한 가로등 하나를 집고 바닥을 박차 하늘로 날았다.
'다른 사람이 잡았다가는 그저 다른 흉기와 다를 바 없지.'
불타는 건물의 차양막을 발판삼아 허공을 질주했다. 놈이 괴성을 지르며 다인의 뒤를 쫓았다. 걸음걸음마다 건물이 묵사발처럼 으깨지고 허공으로 튀었다. 다인은 자신을 내리치려는 타우의 팔을 붙잡고 공중제비를 돌더니 대퇴부를 향해 가로등을 박아 넣었다.
"크아!"
고함과 비명이 한데 얶인 목소리. 다인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느리고 조용하게만 느껴졌다. 그는 깨달았다. 무기의 천재가 무엇인지를 자각하고 번민을 버렸다. 만족했다. 천재와 범인의 경계가 허물어지자 머리속이 깨끗하게 비었다. 케인의 말이 맞았다.
"꿈만 같다."
고요히 뇌까리며 텅 빈 머릿속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그것은 검의 우주이자 숲이며, 그가 경험한 모든 무기의 총체였다. 빛나는 무기가 모두 그곳에 있었다. 역사를 새로 쓴 무기들과 신화를 창조한 병장기들. 다인은 그 곳의 주인이었다.
"나와라."
상념 속에서 읊조리자 검이 구체화되었다. 도산검림(刀山劍林)이 시내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내고 타우를 에워쌌다. 그는 짚이는 아무 무기나 붙잡고 타우를 향해 질주했다.
퍽.
검이 살가죽을 가르고 뼈를 으깬다. 토막난 다리 위로 타우의 거체가 붕괴한다. 쓰러지려는 타우를 붙잡으려는 듯 다인이 무기를 가지고 반대쪽으로 내리쳤다. 맥동하는 심장이 으스러졌다. 그 다음 검격은 정강이였다. 다음에는 목. 다음에는 이마.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다인의 얼굴에 기쁨이 어려있었다.
"이거야."
무기를 거뭐진 다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미스트 블레이드. 케인. 보고있는가? 이것이 바로 너가 말했던 천재인가. 열등감과 노력 사이에서 번민하고 되뇌인 범인의 모습이란 말인가. 그는 해맑은 웃음 그대로 타우의 정수리를 향해 짓쳐들어갔다. 두개골, 뇌, 척수, 안구, 치아를 가르고 피범벅이 된 채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한 없이 웃었다. 눈앞에 감도는 회광반조 사이에서 다인이 본 것은 오직 검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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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다.
검에 대한 자질은 동료들의 그것에 비할바가 아니었고,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천재들의 틈에서 나는 철저히 평범했다.
질투, 자괴감, 절망... 휩싸이는 검은 기운은 나의 팔을 더욱 아프게 했고 하루하루 영혼을 잠식해 들어왔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조차도 내 의지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자질이라는 건 언젠가는 꼭 발견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절망의 끝에는 언제나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내 생의 마지막에 서있는 지금, 내게 주어진 자질이란 평범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베어지는 것은 시간이었고 내가 생각했던 스스로의 한계였다. 근육의 고통스런 파열음이 의지였고 살아있음의 증명이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내 모든 무기들과 함께 하늘에서 춤을 추는 꿈을. 그리고 나는 여한이 없다. 자질은 평범했으되 비범한 꿈을 꾼 것을 죄라 여기지 않고 마음껏 검무을 출수 있도록 허락해준 하늘에 감사한다. 최고의 인생이었다.
그리고 검성 여기 잠들다.
- 폭풍의 언덕에 있는 귀검사의 묘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