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부끄러움도 모른 채
1
어느날 당신은 당신이 가진 것들이
견딜 수 없이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순간, 몸에 달라붙은 것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새처럼 가벼워지고 싶었을 것이다.
직장을 버리고 동료를 버린다.
집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아내를 버린다.
사랑을 버리고 세상을 버린다.
뱀 허물 벗듯 몸까지 벗어버리고 나니
마침내 당신은 새처럼 가벼워져
지하철역 입구에 나와 둥지를 틀고 앉았다.
당신의 손에 동전과 지전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길은 새처럼 맑다.
2
가진 것들을 모두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친구를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몸까지 훌훌 벗어버리고 가벼운 새가 되어
그래서, 당신처럼 지하철역 입구에 나와 앉지만.
내 때 묻은 손에 많은 다른 내가
동전과 지전을 떨어뜨리는 순간,
그것들과 함께 선망의 눈길을 떨어뜨리는 순간,
나는 안다, 내가 버린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거짓과 허영을 하나씩 더 챙긴 채
나는 날개 부러진 무거운 새가 되어서
뒤뚱뒤뚱 당신 앞을 걸어나온다.
당신을 흉내낸 것을 부끄러워도 않으면서.
사진관집 이층
신경림, 창비시선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