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두붓집
하룻밤 콩을 불리는 동안 너는 내내 울었겠다
숨죽인 울음이 묵었던 눈꺼풀, 설거지하던 손가락, 식은
팥죽이 담긴 그릇, 불어터진 것들은 모두 슬픈 것이라는 걸
나는 알았지만
네가 다시는 찬물에 손을 담그지 않겠다고 했을 때는 너
를 설득하지 못하였다
두붓집 양철 간판을 돌아보지도 않고 너는 집을 떠났겠다
네가 탄 버스는 신작로에 바큇자국을 남겼고 그 바큇자국을
벗겨 나는 나를 때렸다
너의 두붓집 굴뚝 위를 바라보는 일이 몇년간 나의 직업
이었고
뒤늦게 콩물과 비지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너의 아버지는
반듯했지만 물렁해서 일찍 늙는 것 같았다 하나 나는 죽어
도 김이 오르는 두부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눌러야 단단해지는 것이 어디 두부뿐이랴 보고 싶다는
말 참는 동안 때로 바다를 두부처럼 칼로 자를 줄도 알게 되
었다
해변 비탈의 콩밭 칠백평 네 몫으로 남겨두라 했다
콩을 품고 있던 콩깍지의 빈방에 두부가 끓고 있다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안도현, 창비시선 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