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체인저 토크쇼 (1)
“이봐.. 괜찮아?”
“으으.. 죄송해요.. 그만 폐를..”
“아니, 무심코 네 앞에 술이 든 잔을 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하필이면 네가 그 술을 모르고 마셔서 난리가 났었지만. 그렇지, 고블린 슬레이어?”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다, 제모. 그래도, 네가 미성년이든 아니든 술에 약해서 그런 주정을 부리는 건 이해한다, 네기.”
“으으..”
술을 잘못 마셔서 크게 오열한 네기를 데리고 고블린 슬레이어와 같이 뒷골목으로 간 나는 네기가 술을 토하게 해줬고, 잠시 대화를 나눴다.
“.. 옛날 생각이 나네요.. 10살 때에 술을 모르고 마셔서 스트레스를 막 풀었던 그 날이..”
“그때 넌 병아리 같은 신입이었으니까.”
“... 제모, 너는 네기의 이야기를 알지?”
“내 세계에선 네기는 캐릭터야. 잘 알지.”
“네기는 언제부터 영웅이 된 거냐?”
“10살. 이야기는 생일이 안 지난 9살에 시작했지만.”
“혈통으로 물려받은 재능을 너무 일찍도 폈군.”
“멀티버스에선 흔한 일이기도 해, 고블린 슬레이어. 너도 어렸을 적에 늙은 레아에게 훈련을 받아서 너만의 재능을 펼쳤잖아.”
“그랬지.”
“에? 그랬나요?”
“아마.. 고향과 가족을 고블린에게 ‘빼앗긴’ 이후일걸. 그 레아는 고블린 슬레이어를 엄격하게 훈련시켰어. 그때의 감상은?”
“이런 말이 나오는군. 너도 해봐.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을걸.”
“이럴 정도. 네기 너도 에바와 라칸을 비롯한 여러 스승들에게서 수많은 지식과 무술을 배웠잖아.”
“그렇긴 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10살 때에 영웅이 된 게, 네로 씨와 녹트 씨와 만나기 위한 준비였겠네요.”
“게임 체인저가 되는 게 숙명이라서겠지.”
“그럼 제모 너는?”
“나?”
“네. 제모 씨는 귀족이면서도 잘 싸우시잖아요. 어떻게?”
“아~.. 그거 제대로 말하지 않았네. 나도 훈련을 받았어. 그것도 군사훈련을.”
“에?”
“정규군에 복무한 적이 있었군.”
“덕분에 고블린 슬레이어 만큼 싸울 수 있게 됐고.”
“하지만 그게 제모 씨의 재능은 아니잖아요.”
“‘시빌 워’는 영웅들의 내전. 즉, 영웅들이 서로 싸우는 건데, 그걸 유도하기 위해선 엄청난 정보 수집과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하지. 그건 존경스럽군.”
“저도요. 그 내전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성공하신 거예요?”
“그거.. 말하기 창피하네.”
그래서 내가 감옥에 들어간 거고..
“주로 배경을 활용했어. 당시 내 세계에선 ‘초인등록법안’이라는 협정이 생겨서 영웅들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누어졌거든.”
“분단될만하네요.”
“정체를 감춰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 상황을 찬스로 여긴 나는 본격적으로 영웅들이라는 ‘제국’을 내부에서 무너뜨리기 위한 정보들을 모았어. 그러다가 각 팀의 수장들만큼은 반드시 서로 싸우게 만들 정보를 얻게 됐거든.”
“무슨 정보에요?”
“찬성파의 대표 토니 스타크의 부모가 반대파의 대표 스티브 로저스의 친구에게 살해당했다는 정보.”
“!!!”
“스타크의 부모를 죽인 캡틴의 친구의 이름은 ‘윈터 솔져’ 제임스 뷰캐넌 반즈. 히드라라는 악의 조직의 세뇌를 받아서 스타크의 부모를 죽였거든.”
“하지만 살인자가 억울하든 아니든 유족은 그 분노를 살인자에게 쏟아붓기도 하지.”
“맞아. 그래서 스타크가 살인자인 캡틴의 친구를 죽이려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그 정보를 퍼트렸고, 내 예상대로 스타크가 제임스를 죽이려 하자 캡틴이 그런 스타크를 막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어. 그렇게 두 대표들은 각자 이끄는 세력까지 동원해서 대규모 내전을 벌였지.”
“그랬군요..!!”
“그럼, 그 제임스는?”
“‘시빌 워’는 캡틴의 반대파가 승리했고, 살아남은 버키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잠들어있어.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네. 캡틴만이 알고 있을 거야.”
“다행이네요!”
“그래. 그 후 스타크는 정신을 차려서 자기 부모와 캡틴을 위해 제임스를 죽이지 않기로 맹세를 했고, 캡틴을 설득해서 협정을 좋게 수정할 정도로 캡틴과 화해했어.”
“그걸로 괜찮은 거였나?”
“어디까지나 내 분풀이였어, 고블린 슬레이어.”
“그런가..”
“그렇게까지 상세한 계획을 실현시키다니..!”
“놀랐지?”
게임 체인저 토크쇼 (2)
“우유 감사합니다, 소치기 소녀 씨.”
“이걸로 해장 됐을 거야, 네기.”
“갑자기 달라고 해서 미안하다.”
“아냐아냐~, 너의 동료들인걸. 그것보단.. 친구?”
“.. 그런가..?”
“아하하, 확실히 친구가 된 것 같네요. 그렇죠 제모 씨?”
“뭐, 그렇겠지.”
난 거리를 약간 두지만..
“그럼, 잘 자.”
“너도.”
소치기 소녀의 목장에 돌아가 마구간에서 잠시 소치기 소녀에게 우유를 받아마신 우리들은 자기 전까지 대화를 나눴다.
“고블린 슬레이어 씨.”
“뭐냐?”
“혹시.. 소치기 소녀 씨와 약혼하셨어요?”
“? 아니다. 왜지?”
“여기에 오래 머무시고, 여기로 오실 때의 소치기 소녀 씨는 셔츠에 팬티만 입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를 신경 안 쓴다 쳐도 고블린 슬레이어 씨 앞에서 그 차림으로 나왔다는 건.”
“사이가 좋은 거다. 그것뿐이지.”
“그럴까?”
“? 뭐가 더 있어요, 제모 씨?”
“있어, 네기. 너처럼 고블린 슬레이어에겐 여러 여자들이 있거든.”
“있긴 있지.”
“누가 있으세요?”
“음.. 내가 아는 걸로는 다섯 정도? 여신관과 엘프 궁수, 접수원 아가씨, 소치기 소녀, 검의 처녀.”
“...”
“그런데 각자의 호감은 다르잖아요.”
“맞아. 먼저 엘프 궁수는 단순히 호감에 머물러 있지만 다른 넷은 연심을 품고 있어.”
“... 어떻게?”
“훗. 여신관과 검의 처녀는 목숨과 정신을 구원받았어. 그건 네가 직접 해서 알잖아.”
“기억한다.”
“그럼 접수원 아가씨는요?”
“루키(초보)부터 지녔던 죄책감과 고단함을 쟤가 해결해줬어. 게다가 쟤 외모는 호감형이고, 고블린 외에는 신경도 안 쓰면서 금욕적이고 규칙적인 성격이라 더욱더 끌렸고. 트라우마에 괴로워하는 고블린 슬레이어 쟤를 걱정하면서도 이겨낼 거라고 응원하고 있어.”
“그런가..”
“마지막으로 소치기 소녀는 소꿉친구가 큰 충격을 받은 것에 이유 없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고, 그런 쟤를 위해 돌아올 곳을 지키고 싶어해.”
“그렇군요. 그럼 순위로 매기자면 소치기 소녀 씨가 1위고, 접수원 아가씨가 2위, 여신관 씨와 검의 처녀 씨가 공동 3위, 엘프 궁수 씨가 5위네요.”
“맞아.”
“그렇다면 그쪽은? 너 말이다, 네기.”
“에? 저요, 고블린 슬레이어 씨?”
“이 시대에서 훗날의 일이지만, 자기 학생과 약혼을 했다며? 게다가 아이까지 낳았고.”
“자, 잠깐만요!!”
“그러고보니 나처럼 여자가 많다고 그랬지, 제모?”
“맞아. 내가 알기로는 20을 넘었어.”
“... 굉장한 혈통이군.”
“창피하니까 닥치세요!!”
“뭐 어때. 여기에는 우리 셋밖에 없는데.”
“그 한 명을 왜 골랐지?”
“아.. 아아.. 처음에는 저도 몰랐어요.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해서 깊게 생각해보더니.. .. 치사메 양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나더군요. 1위로 좋아하는 사람이 치사메 양이었다는 걸요..”
“그런가..”
“그럼 사고를 친 건? 감옥에 있었을 무렵에 면회해온 네로와 녹티스가 그 부분에는 자세히 말하지 않아서 나도 잘 몰라.”
“아.. 그건 학생분들이 졸업한 후였어요.”
“졸업? 잠깐. 제모, 그 당시 둘의 각 나이는?”
“각자의 생일을 생각한다면 치사메는 네기보다 5살 연상이야.”
“5살 연상.. 그런데?”
“교실에서 치사메 양을 부른 저는 단 둘이 있는 상황에서 고백했어요. 그러자 치사메 양이 선택지를 고를 시간이 많으니 거절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울었고, 치사메 양이 저를 다래다가..”
“아..”
“이봐.”
“... 제가 치사메 양을 덮쳤어요. ‘어른의 계단’ 끝까지.”
“... 용사답지?”
“... 그렇군.”
“고블린 슬레이어 씨마저!!”
“그럼 덮쳐진 치사메는? 당하는 쪽이 거세게 저항하면 네가 논란의 주인공이 되잖아.”
“네가 고블린이냐?”
“그때.. 치사메 양의 저항을 막았거든요. 그렇게 막혀진 치사메 양은 고백을 거절한 것에 사과하고 진심을 말했어요. 자기도 사랑한다고요. 그러니 같이 있어달라고요. 그렇게 둘 다 계단을 다 올랐어요.”
“그래서 애가 만들어졌네.”
“그렇군.. ? 제모, 그게 가능한가?”
“‘돌연변이’가 일어나야 확률이 높아질 거야, 고블린 슬레이어.”
“... 이해가 되는군.”
나도. 아마 ‘술식병장’의 부작용으로 인간을 그만둔 영향 때문이겠지.
“이제 그 얘기는 하지 마세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끝까지 부딪치고, 정 안 되면 덮쳐버리라는 애매한 조언을 따른 내가 바보지! 그럼 제모 씨는요!? 제모 씨는 가족이 있으셨다고 그러셨잖아요!!”
“‘시빌 워’을 일으킬 역린일 만큼 소중했던 가족이 있다고 그랬잖아. 너도 여자관계가 있나?”
“아.. 그건 무리였어.”
“무리?”
“왜죠?”
“내가 살았던 소코비아는 굉장히 가난했거든. 망할 나라였어. 부존자원도 거의 없고 산업도 발달하지 않아서 경제적 능력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떨어지고, 위치가 전략적으로 요충지라서 외세에 시달리는 건 물론 자체적인 내전이 빈번하게 일어서 전란 그 자체였어. 오죽하면 소코비아 집 지어주기 봉사활동단이 전란에 휩쓸려 죽을 정도였거든.”
“귀족인데도..”
“그래서 여자관계가 없군.”
“그런 상황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건 작은 행운이었어. 그런데 그 행운이 초인들의 싸움이라는 큰 불행에 의해 살해당했지..”
“그렇군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울트론이라는 기계가 거기서 영웅들과 싸웠거든. 그 녀석은 생명을 죽이고 기계의 세상을 만들려는 녀석이야. 그런 녀석들 때문에.. 알지?”
“네.. 알겠네요.”
“그래도.. 영웅은 고블린이 아니다.”
“그건 나도 알아.”
게임 체인저 토크쇼 (3)
“그런데 제모 씨.”
“뭔데?”
“초인을 증오하긴 하지만 다 증오하는 건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맞아.”
“뭐냐? 누구를 제일 증오하는 거지?”
“음.. 슈퍼 솔져.”
“슈퍼 솔져면.. 캡틴 아메리카 같은 초인이요?”
“그래.”
“왜지?”
“슈퍼 솔져로 만들어주는 혈청 때문에.”
“혈청이요?”
“자세히 말해봐라.”
“... 슈퍼 솔져 혈청은 신체를 강화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성품까지 강화시키는 단점이 있어.”
“성품까지..!!”
“예시로는?”
“착한 쪽으로는 캡틴, 캡틴의 친구인 제임스. 나쁜 쪽으로는 히드라의 수장인 레드 스컬.”
“히드라라면!”
“제임스를 세뇌시켰다는..!”
“응. 처음에 그걸 만든 과학자는 레드 스컬이 그렇게 된 걸 보고는 레드 스컬을 막기 위해 캡틴을 슈퍼 솔져로 만들었지. 그런데 슈퍼 솔져가 되기에는 조건이 더 있어.”
“조건이 더 있다고요?”
“뭐지?”
“선악이 완전하지 않다는 거야. 힘이 절실한 선량한 사람이 슈퍼 솔져라는 힘을 얻어서 타인을 밑으로 보는 우월감을 얻은 듯이. 내가 들은 소문으로는 슈퍼 솔져가 된 누군가가 분노에 사로잡혀서 동의도 받지 않고 항복한 적을 죽인 적이 있데.”
“그런..!!”
“심했군..”
“맞아. 그래서 나는 슈퍼 솔져 혈청을 보기만 하면 부수고, 그걸 만든 과학자를 어떻게든 죽여. 게다가 잘못된 슈퍼 솔져를 내 손으로 죽이고.”
“제모 씨..!”
“거기에는 뭐라고 하지는 않겠다. 얘기를 들어보니 슈퍼 솔져가 되어서 인간성을 건 도박을 하는 것보다, 술식병장을 배워서 인간을 그만두는 게 천국처럼 보이는군.”
“에에.. 그런 말을 하면 마스터가 화를 낼 걸요.”
“마스터?”
“에반젤린 아타나시아 키티 맥도웰. 후천적으로 진조가 됐어.”
“진조? 정령급 흡혈귀?”
“알고 있네. 네기의 술식병장은 에바가 진조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인 힘이 약할 무렵에 살아남으려고 만들었다가 강해진 후에 버린 거야.”
“술식병장은 어느 적과 관련된 기법이라고 그랬는데, 혹시?”
“그래. 그 적이 에바를 진조로 변질시킨 놈이야.”
“그 적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법을 모르는군.”
“그럴지도. 그래서 창조물을 직접 만들어 자기만의 조직을 세운 탓에 조물주라는 별명이 생긴 걸 거야..”
“그래서 술식병장을 얻은 뒤로는 어떻게 했지, 네기?”
“그 뒤에 미완성판인 술식을 제가 독자적인 연구로 완성시켰어요.”
“음.. 그럼 인간을 그만두게 된다는 부작용은? 얼핏 봐서는 인간으로 보이는 데? 제모, 아까 술집에서 말한 대로라면 술식병장을 얻은 사람은 흡혈귀가 되고, 그 적의 혈통을 지녀야 반쯤 불로불사로 끝나서 늙어 죽을 수 있다고 그랬지?”
“그럴 가능성이 있어. 맞다면 슈퍼 솔져 혈청 다음으로 위험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슈퍼 솔져 혈청보다 안전해. 술식병장을 견디지 못하면 마물이 되는 위험성이 있지만.”
“네, 저도 몇 번이나 마물이 되었었어요.”
“그런가.. 불확실한 부작용의 슈퍼 솔져 혈청보다 확실한 부작용의 술식병장이 제일 믿음직하군.”
“그렇게까지 얘기를 하시니 쑥스럽네요.”
“그 정도로?”
“조금은 공감이 가네. 네기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어둠의 힘을 쓴 것처럼, 나도 영웅들의 내전을 일으키기 위해 영웅의 친구를 이용했으니까.”
“세계를 바꾸기 위해 기본을 뛰어넘는 발상을 했으니.”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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