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맛
마녀는 잡혀온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을 맛보았다. 그 맛을 보고 그녀는 그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영주들은 물증이 없는 죄인이나 그들의 배우자와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남정네들을 마녀가 사는 산 중턱의 집으로 데려왔다.
영주의 명을 받은 기사들은 마녀의 집에 오는 것을 불명예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퇴폐적인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곤 했다. 특히 그녀가 벌벌 떠는 죄인들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뱀 같은 혀로 핥는 모습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관능적이었다.
물론 당대의 도덕적 관념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추악한 행위였지만 그들은 머릿속에서 그녀를 탐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소문에 따르면 그녀는 이미 80살을 넘겼다고 하나 주름 하나 없는 상아빛 피부에 이마에서 매끄럽게 떨어지는 콧날을 지녔다.
칠흑처럼 어두운 눈동자는 평소에는 도자기 인형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튀어 오르는 불꽃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강렬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래서 기사들은 그녀가 감히 다가설 수 없는 고결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불결한 의문을 가슴 속에 품었다.
기사들에게 그녀는 창부이자 성녀였고 악마인 동시에 천사였다. 그러나 그들 모두 그녀를 마녀라 불렸다.
가슴에 붉은 백합 문양의 가죽을 두른 기사가 죄인을 데리고 마녀의 집을 찾아왔다. 시종이 밧줄에 묶인 죄인을 마룻바닥에 무릎 꿇렸다. 앞니가 부러진 젊은 남자였다. 이미 흠씬 두들겨 맞은 게 분명했다. 마녀는 식탁 바구니에 담긴 포도 알맹이를 하나씩 음미하며 피투성이가 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백작님께서 이 놈이 마님을 범했는지 확인해보라 하셨소.”
붉은 백합 기사가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기사는 짧고 검은 머리에 독수리처럼 또렷하고 강인해 보이지만 무미건조한 눈을 지닌 사내였다.
“진실을 맛보려면 시간이 필요해.”
마녀는 단물이 빨린 포도껍질을 마룻바닥에 떨어뜨리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진 못합니다. 백작님께서 이 놈을 내일 교수형에 처할 생각이시니까요. 그러니 오늘 밤 안에 판결을 내려주셔야죠.”
하얀 두건을 쓴 시종이 가슴에 손을 모으며 투덜대듯 말했다.
“놈이 결백해도 어차피 죽을 운명이란 뜻이군.”
“그렇소. 하지만 백작님께선 당신의 의견이 궁금하다 하셨소.”
그녀는 기사의 담담한 태도에 미소를 머금으며 내일이면 망자가 될 불쌍한 남자를 훑어보았다. 그의 차림새는 상류층과는 거리가 멀었고 푸른색 튜닉과 회색 바지는 떼가 탄데다 이곳저곳 구멍이 나 있었다. 평범한 농노처럼 보였지만 그의 눈에서 결연한 태도가 엿보였다.
마녀는 시종을 시켜 죄인을 의자에 앉힌 뒤 아궁이에 데운 물그릇을 가져와 손끝으로 죄인의 얼굴을 천천히 닦았다. 물이 얼굴의 상처에 닿을 때 마다 그는 신음을 참아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마녀는 물그릇을 내려놓고 죄인의 귀에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구름이 달을 삼킬 수 없듯, 우거진 숲이 강이 흐르는 소리를 막을 수 없듯, 거짓은 진실을 가릴 수 없다. 네게 묻겠다. 백작의 배우자를 범했느냐?”
그녀의 속삭임에 죄인은 부들부들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모습은 심문당하기 보단 유혹에 굴복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성문의 빗장이 서서히 열리듯 그의 입술에서 떨리는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리고 결국 그 숨소리는 하나의 단어가 되어 허공에 던져졌다.
“아..니요.”
그녀는 높게 손을 뻗더니 깃털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처럼 유려한 몸짓으로 죄인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죄인의 귓가에 대고 또다시 속삭였다.
“네가 막 태어날 때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구나. 넌 그때 이 차가운 세상에 던져진 사실을 원통해하며 작은 주먹을 움켜쥐었지. 기억하니? 시몽.”
자신의 이름에 불리자 죄인은 질끈 감았던 눈을 뜨며 숨을 헐떡였다. 그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으나 이미 그의 눈시울은 노을빛에 물든 마을처럼 붉어지고 있었다. 기사와 시종은 그 기묘한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그들 역시 마녀가 사람을 홀리는 솜씨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는 아무런 죄가 없어.”
그는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나뭇가지처럼 손을 떨며 말했다.
“이 세상에 죄란 존재하지 않아. 처벌당하는 자만 있을 뿐이지.”
결국 죄인의 눈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녀는 긴 혀를 내밀고 뺨에서 입가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끌어올리듯 핥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천정을 향해 젖히고 침대에서 절정에 이른 여인처럼 눈의 흰자를 드러내며 가슴을 활짝 폈다. 모습을 지켜보던 기사의 가슴속에서 욕정이 타올랐지만 그는 어금니를 깨물며 찬물을 끼얹으려 노력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아.”
그녀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중얼거렸다.
“뭐라굽쇼?”
두건을 움켜 쥔 시종이 물었다.
“녀석의 말은 진실이야. 불쌍한 운명이구나.”
“그럴 리 없을 텐데.”
그때, 기사가 큰 걸음을 내딛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곧 묵직한 건틀릿이 마녀가 입은 숄을 움켜쥐었다.
“무슨 짓이지?”
“거짓말쟁이! 내 눈으로 똑바로 봤네. 내 배우자와 놈이 한 침대에서 놀아나는 모습을 말야. 당신의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하고 싶어 기사행세를 하고 이곳까지 찾아왔지만... 예상대로 넌 요부에 불과했어.”
“그래서 네 아내를 죽였나?"
그 말에 기사는 놀란 듯 눈의 초점이 풀렸다.
“어떻게 알았지?”
“어떤 이들은 눈물을 맛보지 않아도 그 공허한 눈을 통해 모든 사실을 토해내지. 앞으로 넌 평생 울지도 웃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될 거야. 마른 장작에게 남은 건 이따금 불을 지펴줄 욕정뿐이지.”
본문
[연재] 드렁크 타이핑 16화 - 눈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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