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사다. 오늘ㅇ
"용사님! 땅끝마을 높은 산자락에 100년간 잠들었다 깨어난 마족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젠장, 수도권 거주 우선권에 탄력 근무제란 말을 믿고 용사가 되었더니 쉴 날이 없군 그래."
"지금 바로 땅끝마을로 가주셔야겠습니다."
"맨 입으론 못 가지. 여행 경비는 얼마나 챙겨줄 건가?"
"용사님. 지금 매직-포탈을 연결했으니 여행 경비는 챙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우리 마법사 박=에드워드 군은 놀랍도록 유능하군 그래."
"칭찬 감사합니다."
"어쩔 수 없지. 자, 일할 시간이다. 움직이자고! 왕국의 정규직들이 움직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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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까진 점심이었는데 여긴 해가 지려하는군."
"아무래도 땅끝마을이니까요. 시차는 5시간에서 6시간 정도 차이 날 겁니다."
"이렇게나 땅덩어리가 넓다면 주변 이종족에게 좀 떼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야드-파운드 법을 쓰는 야만인들에겐 1제곱미터의 땅도 넘길 수 없단 국왕님의 말씀입니다."
"그건 그렇지."
"오오, 용사님! 저는 마을 촌장 곽=페르난데스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왕국의 용사입니다. 마족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하셨는데?"
"100년만에 깨어난 마족, 모르소울이 이 마을을 시작으로 인류를 멸망시킬거라 말했습니다!!"
"용사 파티의 성녀 최=힐데입니다. 그 사악한 마족의 인상착의를 알고 싶군요."
"여기 사진을 보시면 알 겁니다."
"타오르는 주홍빛 눈동자, 4장의 날개..."
"섹시한 눈매, 오똑한 코, 굵은 턱선에 얼굴과 상반되는, 가느다란 선에 담겨진 날카로워 보일 정도의 딱딱한 근육..."
"복식은 시대착오적이지만 엉덩이를 꽉 잡는, 그렇기에 핫해보이는 상탈 스키니진..."
"최=힐데 양? 웃음이 나오십니까?"
"흐흡, 내 정신 좀 봐, 어우야 미쳤다 얘."
"성녀님도 푹 빠지셨군요, 왕국 용사 파티에겐 15% 할인한 가격으로 모르소울 사진집을 드릴 수 있습니다만?"
"촌장님, 마족의 사진집이 잘 팔리는 겁니까?"
"인근 마을에서 매일같이 사려고 문전성시입니다. 모르소울이 우리 마을 효자상품이에요 아주."
"저작권 문제는?"
"더러운 마족 새끼에게 줄 돈 따윈 한 푼도 없습니다."
"참된 왕국인의 자세군요."
"그렇지만 모르소울이 침략 활동을 시작한다면 이 마을은 끝장날 겁니다."
"안심하십시오 촌장님. 이 용사와 마법사 박=에드워드군, 성녀 최=힐데양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부디 우리 마을을 지켜주십시오 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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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냐? 최후의 마족 아우다=모르소울의 절규를 들으러 온 것이냐?"
"진정해라. 난 왕국의 용사다. 용사로써 마을 사람들을 해치우고 인류를 절멸시키겠다는 너의 야망을 막으러 왔다."
"웃기지 마라. 네놈 따위가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나의 슬픔과 분노는 인간인 너희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해는 대화로부터 나오는 법. 먼저 대화로 네 안에 맺힌 응어리를 토로해보는 것은 어떻겠나? 인류 멸망은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실로 옳은 말이군. 그렇다면 나의 신세 한탄을 듣고 너희가 절대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아라."
"술이 필요한가?"
"아니, 그렇게까진 필요 없다. 우리가 술잔을 나누기엔 아직 어색한 사이인 것을 잊지 마라 용사."
"내가 주제넘었군. 그럼 네가 이야기할 것을 풀어보아라."
"내 이름은 아우다=모르소울, 최후의 아카지아다."
"아카지아라 함은?"
"마족의 종족 중 하나입니다. 지난 마왕과의 전쟁 때 마왕이 진격하다 떼로 밟혔던 애들입니다."
"그랬지. 거대화 마법은 본진에서 쓰는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반면교사였어. 소름 끼치는 기억력이야 박=에드워드군."
"칭찬 감사합니다."
"최후의 아카지아라 함은 네가 아카지아의 희망이 될 수 있단 얘기인 것 아닌가? 무엇이 널 괴롭게 하고 분노케 하는 것이지?"
"나 아우다 모르소울, 그 어떤 아카지아도 남지 않은 이 현재에선 나와 사귀어줄 여자친구 따윈 없단 현실에 절망한 것이다."
"여자친구?"
"손잡고 공원을 거닐며 도시락을 나눠 먹다 흘린 빵 조각을 손으로 훑어 밀어 넣어줄 그런 여자친구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단 말이다!"
"여신님께서 말씀하시길, 그의 영혼은 탐이 날 정도로 순결하다고 이 성녀 최=힐데에게 속삭이십나이다."
"바글바글한 인간은 절대로 모를 것이다! 언제든 짝을 짓고 하하호호 결혼식과 행복한 가정을 누릴 인간들!! 난 그 광경을 눈뜨고 볼 수 없다!!!"
"한심한 녀석이로군."
"뭐야?"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니 너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차례다 모르소울."
"어째서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것이냐? 네가 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조건 아니었나?"
"대화는 서로 오고 가는 것이다. 너의 차례 다음엔 응당 나의 차례가 있어야 하는 법."
"어쩔 수 없군. 날 한심한 녀석이라 부를만한 이유가 너의 이야기 속에 있단 말이겠지. 좋다! 들어주겠다."
"최후의 아카지아 아우다=모르소울, 너는 너 하나만 남았기에 솔로로 남는 것이 슬프고 화가 난다는 말을 했었다."
"그렇다. 그것이 날 슬프게 하는 이유지."
"반대로 득시글거리는 인간들 사이에서 짝이 없는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지?"
"...!!!"
"네 생각대로다. 난 모쏠이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건...결론일 뿐이다! 너는 언제든 새로운 인간과 짝을 맺을 ㅅ..."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내 얼굴을 보고?"
"...크윽!"
"박=에드워드군? 모르소울의 사진집을 구매한 여성들을 이 자리에 불러와 줄 수 있나?"
"5분이면 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무엇을 부탁한 것이지 용사? 사진집은 또 무슨 얘기란 말이냐?"
"조금만 기다려보아라. 네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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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ㅏㅏㅏㅏㅏㅏ!!!!!"
"오빠 여기 봐주세요ㅛㅗㅗㅗㅗㅗㅗㅗㅗㅗ!!!!"
"진심미치겠다 ㅠㅠㅠㅠㅠ"
"이것은...?!"
"널 사랑하는 소녀들이다. 5분이면 될 줄 알았는데 수백명이나 되다 보니 좀 시간이 걸렸지."
"내가...사랑받고 있다고?"
"그래. 무엇이 최후의 아카지아란 말이냐. 너에겐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건...생각치도 못했다. 설마 나 같은 추남에게 열광할 줄이야."
"미추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법. 그런 너조차도 내 외모를 보고 내 얼굴은 못생겼다 느꼈지?"
"그건..."
"그런 거다. 너의 분노와 슬픔이 내가 지고 있는 얼굴에 비하면 초라한 것을 깨달았으면 하는군."
"...고맙군 용사. 오늘 귀중한 사실을 깨달았어."
"무엇을 말이지?"
"내 외모가 인간들에게 먹힌단 사실을 말이지. 난 모델이 되겠어."
"좋은 생각이다. 모르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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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님 대단합니다. 오늘도 사건 해결이군요."
"너무 띄워주지 말게 박=에드워드군. 게 좋게 끝냈으니 우리도 이만 왕궁으로 돌아가자고. 벌써부터 침대가 그립군."
"시차적응 때문일 겁니다."
"용사님? 여기 사진집 경비 처리 가능한가요?"
"언제 봐도 탐욕스러운 성녀로군. 몇 권이나 산 거야?"
"아무래도 교구 자매들에게도 나눠줘야하니까요!"
"이런이런 성녀님. 박애의 정신이군요."
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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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본명 불명
수도권 거주 우선 분양권과 탄력 근무제라는 말에 용사를 지원.
토끼 같은 고블린과 돼지 같은 오크, 곰 같은 오우거를 잡고 무고한 드래곤을 둥지에서 쫓아내 금품을 갈취한 이력으로 왕국의 용사로 발탁되었다
마왕 되파리.더.리쉘러를 사지절단 후 효수하여 일부 상품을 빠르게 산 뒤 비싼 가격에 파는 악한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근무시간이 주 80시간인 것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무쌩겼다
마법사
본명 박=에드워드
리쉘러 효수사건 이후 매직-아이템의 가격이 정상화 된 것으로 용사를 존경하여 왕궁 마법사로 취직했다
용사에게 최적의 컨디션을 위해 식사 선정부터 침구류 세탁까지 모두 도맡아 일하고 있다.
주 80시간을 일하는 용사를 위해 용사캐어를 하느라 본인은 100시간 가량 일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안경미남
그의 유능함과 잘생김에 용사는 사실 좀 꺼림칙해한다
성녀
본명 최=힐데
미와 사랑의 여신을 섬기는 성녀
왕국의 주 종교로 보석과 광택이 나는 금속을 여신의 성력을 담아 폭탄으로 만들어 최전방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예술품을 가공하는 것도 종교행위로 인정되며 타국에 비싼 값에 팔아 왕국과 교단의 자금수단을 확충한다
최=힐데는 1캐럿 다이아로 드래곤을 터트릴 수 있다(폭발 또한 예술이라 여신님께서 말씀하셨다)
용사는 폭탄마인 성녀가 두려워 그녀의 포교활동을 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