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두 사람, 정확히는 블레이즈라 불리던 레드 드래곤 셋이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블레이즈는 키스 머리 위에 날아다니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칠흑으로 뒤덮인 복도를. 키스가 허공 위에 야구공 크기만 한 불로 길을 비추었지만, 눈앞에 있는 순수한 어둠 덕분인지 몰라도 보기만 해도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무언가가 튀어나올 듯한 분위기? 뿔 토끼보다 더 무서운.
"흐흥-"
그 와중에 키스는 한 손에 책을 보면서 여유롭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흐흥-하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보통 여자애들 같았으면 무서워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거나 최악이었을 경우는 주저앉아서 자기 머리를 감쌀 텐데, 쟤 분명히 박쥐 무리가 나타나도 태연히 걸어갈 기세였다.
파닥 파닥-
"꺄악!"
아닐 수도 있고.
천장 위에 있던 박쥐 서너 마리가 키스의 머리 곁을 스쳐 지나가자 읽고 있던 책으로 자기 머리를 가렸고, 날아가던 박쥐들을 향해 블레이즈는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입에서 작은 불을 내 뿜었다.
"에헤헤..."
키스는 머리를 가린 책을 내려놓은 뒤 얼떨떨하게 웃었다.
"사나운 꼴을 보이고 말았네?"
"괜찮아 나 같아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거치고는 성운이는 참 조용했는데-의외로 담력이 있네?"
"아하하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나도 놀래서 소리치기 일보 직전에 입을 가린거지만...키스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고.
"너는 여기 으스스하거나 그런 느낌이 안 들어?"
"음 딱히? 오랫동안 던전을 돌아다녀서 그런지 그저 그런 느낌이야."
말을 잇기 전에 싱긋 미소를 지은 뒤 책을 펼치면서 깃털 펜으로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써 내려갈 때마다 띠링-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미약하게 파란색 불빛이 보이는 듯했고 들려오고.
"처음에는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돌아다니다 보면 서서히 눈에 익숙해져서 괜찮아. 이런 어두운 던전속에서 오히려 무섭다고 겁먹었다가는 몬스터들에게 나 잡아먹어 주세요 라고 말하는 격이거든."
"그 몬스터들 말인데 이런 어두운 곳에서 급습당하기 좋지 않아? 혼자 돌아다니기에는 좀 위험할 거 같은데?"
"훗 이 천재 미소녀 연금술사가 몬스터들에게 쉽게 당할 수가 없지. 그럴 때일수록 언제나 여유를 가지고 웃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무엇보다."
키스가 팔을 뻗자, 하늘을 날던 블레이즈가 그녀의 어깨 위에 앉은뒤 그대로 그녀의 하얀 볼을 비비기 시작했다. 키스도 옳지 옳지 하면서 블레이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내가 왜 혼자야? 블레이즈랑 같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렇지, 우리 블레이즈?"
"캬아악-"
우쮸쮸-하면서 쓰다듬는 키스 덕에 블레이즈도 기분 좋은 듯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쟤네 둘 생각보다 사이가 좋나 보네. 포켓몬스터의 한지우와 피카츄를 보는 거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 성운이는 던전 돌아다니는것이 이걸로 처음이겠지?"
"뭐 당연하지. 한국에는 이런 던전 같은곳이 없었으니까."
웃으면서 말하는 키스를 따라 하듯 나 또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비슷한 고대 유적이나 동굴은 있었지만, 거기에는 사람들이 철저히 관리해서 우리 같은 일반인이 오갈 수 있는 게 가능하거든."
"사람들이 오고 간다는 것은 던전을 관광 장소로 쓰인다는 의미이기도 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관광 장소로 놀러 가거나 그러거든."
"와아-한국인들 정말 강하구나? 던전을 사람들이 놀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버리다니."
강하다라...지금까지의 얘기를 들으면서 키스는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던전안의 위험한 몬스터들을 죄다 전멸시키고 그곳을 가족 캠핑 장소로 만들어 버린 무적 한국인들.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온갖 총기와 전차로 무장한 한국군이 마왕 군과 싸우는 장면을. 으아아아-살려줘 라고 외치는 마왕 군을 축풍낙엽처럼 휩쓸어 버린 뒤 던전 중심부 태극기를 꽂아 넣는 모습이 보였고.
"그 뜻은 괴물들을 비롯한-"
키스가 발밑을 보자 자기 주인 따라 하듯 블레이즈도 내 발밑을 바라보았다.
"발밑에 있는 그것도 없다는 의미겠지?"
"발밑?"
쟤네 둘이 왜 저러나 해서 고개를 내려보았다. 혹시 전갈이나 거미가 발 위로 올라가나 했는데...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었다.
자세히 보니 오래전부터 방치되었다는 듯 거미줄과 먼지로 뒤덮인 가죽 갑옷과 헬멧을 쓴 체 누워 있...
"으아아악!!!"
심장이 맥박이 크게 뛰어지는 느낌과 함께 나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앉는 순간 해골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대로 멀리 좀 떨어졌고.
해골이었다. 과학실에서나 볼 수 있는 해골 모형이 아닌 진짜 해골....사람의 유골을 실제로 보게 되었고.
"우리 성운군 많이 놀랐어요?"
키스는 다가와 양손으로 무릎을 짚은 뒤 미소를 지은 채 쓰러진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등 뒤에는 블레이즈도 캬악-하고 울음소리를 냈고.
"비명 한번 정말 컸네?"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키스?"
"으응 딱히. 이런 곳을 한두 번 돌아다니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라서."
혀를 쏙 내밀면서 윙크하는 키스는 핑거리스 장갑을 낀 한 손을 내게 내밀었다. 처음에는 왜 저러나 해서 키스와 그녀의 손을 바라보다가...
"일어나."
라고 키스의 입에서 들려오면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기다렸다는 듯 키스는 줄 잡아당기듯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고.
일으켜 세운 뒤 키스는 유골 앞에 무릎을 꿇은 뒤 기도 하듯 양손을 모았다. 몇초간의 침묵 뒤, 유골의 손안에 있던 활을 빼낸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막 가져가도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남의 거인데."
"이미 주인이 세상을 떠났으니 가져가도 상관없어."
호오-하고 입바람을 불자 휘날리는 먼지로 인해 콜록-콜록-몇번 기침을 한 뒤 키스는 활시위를 당겨보았다. 활시위를 놓자 띵-하는 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 뒤 그대로 나한테 건네 주었다.
"가지라고?"
"응 너 가져. 이제부터 네 거."
키스에게서 활을받자, 양손에서 묵직하면서 낯선 감각이 내 손으로 전달되었다.
"나 활 쏴본 적이 없는데?"
"그렇다고 너 검이나 창을 다뤄본 것은 아니지? 식칼 제외하고는."
"에…. 그렇긴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설프게 다루면은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어. 활은 그래도 연습만 하면 화살을 쏠 수 있으니까."
내 손에 들린 활을 한번 흩어 보았다. 주로 인터넷이나 책 혹은 박물관 같은 데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활을 키스 따라 하듯 활시위를 당겨보았다.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뒤 활시위를 당기는 오른손은 서서히 당겨질수록 활이 서서히 휘어지면서 활의 모양은 탄성으로 인해 서서히 모습이 바뀌어져 가고 있는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활시위를 당기는 오른손이 서서히 떨림이 심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부들부들-사시나무 떨듯이.
활시위를 놓자, 탄성으로 인해 모습이 변한 활은 한순간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놓았을 때의 반동으로 인해 왼손이 크게 떨렸고.
"오오-"
그 와중에 키스는 손뼉을 치면서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블레이즈도 캬악- 하는 울음을 내뱉었고. 왠지 표정을 보니 어쭈 제법인데?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착각이겠지?
"성운이 너 활 쏠 줄 알았어? 기본자세는 배운 거 같네?"
"아니 뭐..."
인터넷에서 봤던 것을, 기억을 토대로 따라 해 본 거다-라고, 말하려 했지만, 키스가 인터넷에 대해 알 리가 없고 무엇보다 인터넷에 관해 얘기하면 얘 아까 전 만화 얘기했을 때의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인터넷이 뭐야!? 라면서.
"양궁장에서 사람들이 활 쏘는 것을 어깨 넘어 구경한 것을 따라 한 거뿐이야."
"헤에 네가 살던 곳에도 활을 쏘는 사람들이 많구나? 양궁장이 있다는 것은 활을 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잖아."
"우리나라가 활을 워낙에 좋아하는 곳이라-"
저벅-
"....응?"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저벅-
한 발짝씩 리듬을 맞추면서 다가오는 소리가 내 귓가로 들려오는 와중에 키스 또한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너도 들었어 성운아?"
"응...
캬아악-하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블레이즈는 곧이어 이빨을 드러내더니 날개를 퍼덕이면서 공중에 날아오르면서 키스 역시 자신의 사역마의 반응을 보고 책을 펼친 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몬스터야..."
"아까 전 봤던 그 뿔 토끼들이야?"
"블레이즈가 저렇게 이를 드러내면서 경계한다면 좀 더 레벨이 높은 괴물일 수도 있어 뭐 불까지 내 뿜지 않은 것을 보면 토끼들보다 조금 더 센 거일 수도 있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활기찬 분위기였던 키스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묻어나 있었다. 오른손을 자세히 보니 푸른색의 빛이 그녀의 오른손에서 빛을 내고 있었고.
"Fire Bolt"
이윽고 그녀의 손에서 야구공 크기만 한 불이 날아감과 동시에 멀리서 키익!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아까부터 들려오던 걷는 소리가 더욱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칠흑의 어둠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몸집에 머리에 버섯과 같은 갓을 쓴 사람처럼 걸어 다니는 무언가가.
"버섯?"
버섯과 같은 게 아니라 버섯이었다. 사람처럼 걸어 다니는,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 그리고 여러 색을 가진 10마리? 정도 도는 무리들이 천천히 우리에게로 걸어 다니고 있었고.
"내 약재료들이네."
"약재료?"
"버섯은 우리 연금술사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약재료지. 이것들로 만들 수 있는 포션들이 얼마나 많은데."
키스는 자기 엄지를 자신의 분홍색 입술에 쓱 스쳐 가면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포션 좀 부족 했는데 저것들이 나타나 주었네. 마치 호박이 넝쿨째로 들어온 격이랄까?"
히히히-하면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눈빛은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와 비슷했다. 그것도 모자라 혀까지 날름거리면서. 뭐야 쟤 무서워…. 아까 전까지만 해도 미소 천사였던 키스의 모습은 어디 가고. 내가 알던 키스를 돌려줘.
"성운아 활 쏠 준비."
"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는데, 어느새 가방 속에서 화살들이 담긴 화살통을 꺼내는 키스의 모습은 곧 제대로 들은 거라고 간접적으로 알려주었다.
"나 화살 처음 쏴 보는데?"
"나하고 블레이즈가 서포트 해줄 테니까 너는 그냥 쏘기만 하면 돼."
"하지만..."
활과 화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키스는 나한테 분명히 이렇게 말하였다. 자신이 서포트해 줄 테니 쏘기만 하면 된다고.
그런데...
동시에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오고 갔다.
야 여기 놀러 오는 곳이 아니니까 저리가-
너 정말 약해 빠진 녀석이야.
우리는 너를 환영 안 해. 패배자.
패배자.
패배자...
패배--
따악!
"응!?"
"정신 차려."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내 머리를 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옆을 보니 키스는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몬스터들에게 절대 약한 모습 보이지 마. 마치 나 잡아 먹어주세요-! 제발요! 라고 외치는 거와 비슷하니까."
그녀의 손이 내 양손을 감싸니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마치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는 듯 내 손을 꽉 쥐면서.
"이렇게 예쁜 미소녀 연금술사하고 블레이즈가 있는데 무서워질 게 뭐 있어?"
"캬아악-"
"봐바 블레이즈도 응원하잖아. 해줄 수 있지?"
해줄 수 있지...
키스가 분명히 이렇게 말하였다. 해줄 수 있냐고. 누가 들으면 별거 아닌 말이겠지만 그녀의 입에서 말한 단어는 내 손의 떨림을 멈추게 해주었다.
한번 긴 호흡을 내뱉었다.
화살을 활 절피에 꽂으면서 천천히 잡아당겼다. 아까 전처럼 팔의 떨림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아까 전보다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부터 마법을 시전 할 테니까 쏘라고 할 때 쏴. 지금의 너라도 충분히 맞출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알았어.
한 손에 들고 있던 키스의 책에 감싸진 푸른색 빛이 그녀의 오른손으로 감싸지면서 허공에 바람이 모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었다. 소용돌이처럼 돌고 다는 바람은 서서히 커지더니 거의 축구공 크기만 한 크기가 되자...
"Cyclone!"
파앙!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강력한 바람이 그대로 버섯 무리들을 날려버렸다.
"성운아, 활 쏴!"
"응!"
팅!
활시위가 손에 떠나자, 피익! 하는 파장 음과 함께 화살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아간 화살이 그대로 바람에 밀려가는 버섯 무리 중 한 마리를 맞추었고.
"맞췄다...!"
"잘했어 성운! 지금 리듬대로 나가!"
말이 끝남과 동시에 키스는 또다시 바람을 날렸고 나는 쉬지 않고 활쏘기를 반복했다. 아직 조준력이 익숙하지 않아 놓치는 게 많았지만, 바람에 의해 날아간 몬스터들을 쏘는 거는 여러모로 편했다. 뭔가 놀이공원에 가면 가만히 있는 과녁을 쏘는 듯한 기분이랄까?
"키익!"
괴음과 함께 이들 중 한 마리가 그대로 키스에 날아왔다. 마법 시전 중이던 키스도 당황했는지 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키스!"
퍼억!
그녀의 이름을 외침과 함께 몸을 날려 그대로 달려와 그녀의 앞에 서면서 버섯의 갓이 그대로 내 얼굴하고 부딪혔다. 이마 까지 충격을 받았는지 띠이이-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와중에 키스가 성운아!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 막아!"
피가 나오는 코를 붙잡는 와중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노란색의 안개 비슷한 거로 감싸졌다. 뭐야 저게 라고 말하기도 전에 키스가 내 옷을 잡아당겨 주어서 포자가 내 피부에 닿지 않았고, 키스 역시 한 손으로 코를 막은 채 버섯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저거? 저 기분 나쁜 안개는 대체..."
"버섯 포자. 다행히 하급 개체들이라서 미약하지만 그래도 독성이 있어서 코로 들어가면 엄청 골치 아파져. 저런 식으로 포자를 퍼트려서 천적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
타닥! 타닥!
하지만 저 버섯 몇 개체들은 그대로 다시 달려들어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3~4마리 정도가 달려드는 와중에 나머지들은 계속해서 포자들을 뿌리고 있었다. 키스는 다가오는 버섯들을 책으로 치거나 블레이즈가 작은 불을 뿜어대면서 공격하기도 했고, 나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손에든 화살촉으로 찌르거나 발로 까기도 했지만, 이것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들었다.
"얼른 여기서 나가야 해!"
키스가 자신의 책으로 버섯을 휘둘러 팬 뒤 서서히 다가오는 노란색 안개를 향해 고개를 들어보았다. 블레이즈도 크릉! 하면서 버섯들을 노려보았고.
"저것들 저런 식으로 궁지를 몰게 만든 뒤 포자로 우리를 질식사시키려는 거야!"
"몬스터들 주제에 왜이리 돌아가? 비주얼만 봐도 머리 쓰는 타입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생존 관련이면 네가 말한 비주얼과 관련 없게 돼. 그런 쪽으로는 엄청 무서운 애들인데."
가까이 있는 버섯을 발로 뻥 차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뭔가를 해야 할 텐데...
여기서 바로 뭔가를 해야 했다. 단 한 번으로 흐름을 바꿔버릴 수 있는 무언가로. 여기서 더 지체했다가는 포자들이 우리를 덮쳐 올 것이고 그렇다고 여기서 활 쏜다고 해서 버섯들이 물러서지 않을 테고. 기름이라도 있었으면 불이라도 붙일텐데...
잠깐...
"기름?"
한 손에 든 화살촉을 바라보았다. 내 등에 멘 가방 속에서 하얀색 수건을 꺼내어서 화살촉에 칭칭 감아낸 뒤 가방 속에서 오뚝이처럼 생긴 몸 위에 맛있다는 듯한 표정의 상표와 완두콩이 그려진 황금색의 액체가 들린 병을 꺼내었다.
나는 기름을 화살촉을 감싼 수건에다 젖히게 한 뒤...
"키스!"
나는 키스를 향해 화살촉을 들면서 외쳤다.
"기름에 불붙여!"
"기름!? 알았어!"
타악! 하는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화살촉을 감싼 수건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손에 든 불화살을 버섯들에 가까이 대자 아까까지만 해도 무섭게 대들었던 버섯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이들 중 다가오려다가 횃불 휘두르듯 허공에 휘두르자 다가가지 못하였고.
화륵!
"내가 포션 만들려고 가능하면 태우지 않고 잡으려고 했는데...."
주변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어느새 키스의 한 손에는 불덩어리 하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까 전 바람을 만들 때의 크기보다 더 크게, 손에 들고 있는 책에서 더욱더 진한 푸른색을 내 뿜으면서.
"너희들은 나를 화나게 했어 (별)"
화륵!
한 손에서 마치 화염 방사기에서 나오듯 맹렬한 화염이 한 손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화염의 거셈으로 인해 키스의 핑크색 머리카락이 휘날려짐과 동시에, 화염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버섯들에 두 가지 선택 기회를 주었다.
불길에 휩싸이거나 아니면 도망치거나.
불길이 사그라지면서 눈앞의 광경이 펼쳐졌다. 불길로 그을린 벽과 바닥과 버섯 무리. 그리고....
털썩...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키스가 무릎을 꿇은 체 자리를 앉길래 나는 그녀를 부추겨 주었다.
"괜찮아 키스?"
"에헤헤..."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이네? 물이라도 좀 줘?"
"너무 걱정 마세요 성운군-."
캬아악-하면서 블레이드가 그녀의 어깨 위에 앉자 키스는 쓰다듬어 주었다. 옳지 옳지 하면서.
"마력을 한 번에 너무 많이 사용해서 그런 거니까. 쉬면은 다시 원상 복귀가 되. 그것보다."
그러자 키스는 일어서더니 아직도 콧구멍에서 피가 나오는 코를 이루어 만져보았다.
"나보다 너를 더 걱정해야 할 거 같은데요 성운이 학생?"
"아..."
키스는 방긋 미소를 지으면서 주머니 속에서 수건을 꺼내 내 코를 닦아주었다. 흐흠-하면서 콧 노래를 부르며 여유롭게 닦던 와중에 블레이즈가 날아와 내 머리 위에 앉았다.
"캬악-"
"왜 갑자기 블레이즈가 내 머리 위에?"
"네가 마음에 들었나 봐 성운아."
"내가? 나하고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아까 전 나를 구해주었잖아."
하얀 손으로 코를 이루어 만지면서 키스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몸을 날렸잖아."
"캬악-"
맞았다는 듯 블레이즈는 작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치 어린아이 칭찬해 주는 어른인 것 마냥.
묘한 기분이었다. 살면서 용에 칭찬받게 되네.
키스의 얼굴이 붉어져 갔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상기된 얼굴과 흥분된 듯 한 숨소리는 상당히 요염해서 나 또한 얼굴이 붉어졌다. 심장 맥박이 더 빨라지면서.
"고마워. 나를 구해줘서. 그리고 미안해."
키스는 허리춤에 찬 붉은 약을 코 주변에 발라주면서 말을 이어갔다. 아프지 말라는 듯 정성스럽게 조심스럽게 발라주면서.
"코 다치게 해서. 내가 좀 더 조심해야 했는데."
"아니 뭐 코가 부러지지 않았으니 미안해할 거 없어. 무엇보다."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예쁜 여자애를 구해주는 것은 남자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니까."
"응? 방금 뭐라 했어?"
"에?"
약 바르다 말고 키스는 그대로 얼굴 가까이 댔다. 반짝이는 눈동자로 해 맑게 웃으면서.
"방금 예쁜 여자애라고 했어? 했지? 그렇지!"
"아…. 그게...."
"그뒤 뭐라고 했어? 응? 말해줘!"
"퀘엑! 퀘엑!"
당장 말해! 라고, 외치듯 블레이즈가 내 머리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지금 내 상황을 표현하자면 이렇다. 양쪽에서 공격받기.
분홍색 머리카락의 연금술사 미소녀와 드래곤 한마리에게.
꼬르르르르르르륵-
"에?"
무언가의 소리와 함께 키스의 표정이 얼떨떨해졌다. 한참 동안 머리를 잡아당기던 블레이즈도 손동작을 멈추었고.
"아-그-그게-"
"배고파 키스?"
"그러니까 그게-에헴-우리 성운이 일단 약 먼저 바르-"
꼬르륵-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 키스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묘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 모습에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뻔한 것을 가슴속으로 누르면서 간신히 참았다.)
"....배고파..."
키스의 표정이 변하였다. 마치 인생 사는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밥 먹고 싶어?"
"....응."
나는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지퍼를 열었다. 안에는 식칼, 프라이팬, 그외에 소시지나 떡 그리고 라면 몇 봉지가 있었고.
"무슨 밥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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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만 올리면 에피소드 1 끝이네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