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에? 너 요리사였어? 그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정확히는 학생이었어."
긴장의 피로함을 풀 겸 잠시 한숨 돌리는 사이 나는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키스는 내 가방 속에 든 식칼과 프라이팬을 신기하듯 쳐다보았고.
"완전히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원 다니면서 틈틈이 배워둬서 요리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
"맛있는 밥도 많이 먹었겠네?"
촤라락-하면서 키스는 가방 안에 들린 요리책을 읽고 있었다. 정확히는 책에 적히신 글씨가 키스의 모국어가 아니라 못 읽으니, 페이지마다 인쇄된 음식 사진들을 감상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겠지만.
"여기 책에 그려진 음식들도 마음껏 먹었을 테고. 이 누나가 좀 부럽다?"
"그럴 여유가 거의 없다시피 했어."
"에?"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키스는 책을 든 손을 내려놓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요리사라고 했잖아? 시간 나면 맛있는 거 자주 먹지 않았어? 요리 실력 좀 늘릴 겸 말이야."
"아주 못 해 먹은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가방 안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혹시나 해서 토끼 무리에게서 습격받을 때 가방이나 혹은 도구들에 흠집이 났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양호했고.
"그런 날도 거의 없다 싶이 했어. 요리뿐만 아니라 다른 학원도 다녀야 해서 시간이 빠듯하더라고. 간단한 요리조차도 말이야.."
"맛있는거 만들어 먹는 여유라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
정리하던 손이 멈추었다. 가방안에 넣으려던 프라이팬을 쥐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키스가 자신의 분홍색 머리카락을 비비 꼬는 모습이 보였고.
"나도 정식 연금술사 증표를 받아냈지만 시간 날 때마다 카페테리아 가서 홍차와 케이크를 즐기는데. 힘든 시간을 보낸 뒤 입으로 들어가는 단맛은 하루 종일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도 남거든-"
"거긴 그래야 하니까."
고개를 내리니 어수선했던 가방의 내용물들이 어느 정도 정정리되었다는 알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가방 안에 있던 빨간 소스가 담긴 병을 집어 들었고.
"아무리 잘해도 백종원 같은 스타 쉐프가 되는 것은 10명 중 한 명이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래. 잘못 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닐 수도 있다면서......"
“맛있는 밥을 만들 줄 안다면 어디든지 환영일 텐데? 식당에서도 여관에서도 심지어 모험가 파티에서도. 맛있게 배를 채우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까.”
“그건……”
한숨 푹 쉬면서 키스를 바라보았다.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오케아나라는 국가에서는 그러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러지 않으니까. 장래성이 없는 직업이라느니 백종원처럼 되는 사람은 10명 중 1명이 될까 말까, 한다느니 시간 낭비하지 말라느니……
무엇보다…
돈이란 것이 없으면 실력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으니까.
"성운아"
어깨 위에 따스함이 느껴지길래 고개를 둘러보니 키스가 윙크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소를 지은 체.
그뒤...
"뭐하는거야 뜬금없이?"
"흐음-"
핑거리스 장갑을 낀 양 검지 손가락으로 내 입꼬리를 올렸다.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 뒤...
"역시 넌 웃는 얼굴이 어울린다."
"...뭐?"
키스에게서 나온 말은 나의 눈꼬리를 올라오게 해주었다. 조금 전 쟤 나한테 웃는 얼굴이 어울린다고 말하였나?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했지만...
"지금 막 깨어나서 정신없을 텐데 나중에 네가 편해졌을 때 얘기해. 괜히 슬픈 표정 지어서 잘생긴 얼굴 망치지 말고. 알았지?"
마치 잘못 들은 게 아니에요-라고 알려주는 듯 미소를 짓자, 내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안 그래도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지자, 매력이 더욱더 돋보여졌고 동시에 주변이 환해지는 듯 했다.
"나 처럼 예쁜 미소를 지어. 남자애가 예쁜 소녀 앞에서 음울한 모습을 보이면 쓸까 말까?"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그렇지?"
얼굴이 서서히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부드러운 숨결이 크게 들려오면서, 그녀에게서 나오는 매혹한 향기는 내 정신을 서서히 잃게 만들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분홍색 입술 또한 다가오고 있...
파닥-파닥-파닥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박쥐 날아오는 소리인가 했지만, 키스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내 양 볼을 잡은 손을 뗀 뒤 팔을 뻗자...
"블레이즈!"
"캬아악!"
붉은색의 무언가가 그대로 그녀의 팔 위에 앉았다. 크기는 작은 강아지 크기만 한 전신이 붉은색 비늘로 감싸져 있고 머리 부분에는 작은 뿔이 달려져 있는 도마뱀 비슷한 거였다. 비늘의 색에 맞게 날개가 달린 것을 보니 설마..
“드래곤이야?”
“내 사역자이자 레드 드래곤인 블레이즈야. 블레이즈 인사해. 새로운 친구인 성운이라고 해.”
캬악-하면서 손을 흔드는 새끼 용을 향해 나 또한 손을 흔들었다. 이 녀석 상당히 똑똑하네. 주인 말을 알아듣는 것도 모자라 저렇게 손까지 흔드니.
키스의 하얀 팔 위에 앉아 있던 블레이즈는 검지로 추정되는 손가락으로 복도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는 거라고는 카악-카악-하는 울음소리 정도일 뿐이니.
“수고했어 우리 블레이즈군. 내 팔 위에서 쉬어 이젠.”
“뭐라 하는지 알아들어 넌? 난 못 알아듣는데.”
“사역마하고 계약자는 교감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어.”
키스가 블레이즈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나 또한 따라 하듯 바라보았다. 칠흑과 같이 어둠으로 가득 찬 유적의 복도를 바라보니, 만약 무방비한 상태로 들어갔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이라고 본능이 나한테 말해주고 있었다.
멀리 볼것도 없이 아까 전 뿔토끼보다 더한것들이 나타날지 누가 아나.
“다행히 안에는 하급 몬스터들밖에 없어서 내가 핸들링 할 수 있는 수준인데 아직 출구로 추정되는 곳을 못 발견했대.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지 뭔가 알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잠깐 너도 그럼 길을 잃었다는 거야? 나가는 곳도 모르고?”
“아하하……그렇다고 볼 수 있지.”
키스는 검지로 천정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어갔다.
“다른 파티원들하고 이곳 던전을 돌아다니다가 그만 몬스터들의 습격받아서 나 혼자 낭떠러지로 떨어졌거든. 그래서 어떻게든 일행들과 만나려고 다시 올라갈 길을 찾고 있었거든.”
퀘엑-하고 울음소리를 낸 뒤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른 블레이즈를 바라보며 키스는 책을 펼쳤다. 깃털 팬으로 무언가를 적더니 푸른색 빛으로 만들어진 지도가 책 위에 떠오르면서 지도 중앙 부분에는 하얀색의 점이 빛나고 있었다.
"너도 나 따라와."
"에 나도?"
검지로 나를 가리키자, 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책과 지도를 바라본 체.
"괜찮겠어? 나는 재주가 요리하는 거 외에는 못하는데. 싸움 같은 것은 할 줄 모르는데."
"던전이란것은 한사람이 돌아다니는 것보다 적어도 두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이 낫은 편이야.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은 거의 나 잡아 먹어주세요 라고 말하는거고."
탁-하고 책을 덮은 뒤 키스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책이 덮어지면서 지도 또한 사라졌고.
"그러니 나하고 같이 다녀. 그러면 적어도 몬스터들의 위협에는 안전할거야. 너도 지금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잖아."
"그건…그렇네..."
부정할수 없었다. 뜬금없이 웬 던전이란곳에 들어와서 어두운 복도를 혼자서 돌아다니지 않나, 뿔 토끼에게 습격당하지 않나…. 키스 말마따나, 한 사람의 도움이라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다 좋은데 이젠 어떻게 할 거야? 나가는 쪽도 모르고 네 말대로라면 우리는 맨 아래쪽 깊숙한 곳으로 빠져든 것인데.”
“연금술사는 안 된다고 말하면 안 된다. 늘 진리를 탐구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연금술사다.”
앞으로 나아가던 키스는 뒤돌아본 뒤 윙크와 함께 혀를 쏙 내밀었다. 옆에서 날던 블레이즈도 퀘엑-하고 외쳤고.
"우리 연금술사들의 이념이야. 교수님께서 늘 신신당부 말하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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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부터는 본격적인 던전 탐사가 될것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본문
[연재] 이세계에서 미소녀 두명이랑 같이 던전 돌면서 요리합니다-1화 Par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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