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 내리는 빗물이 건물을 때리는 사이 나 혼자 학교 조리실에 남아서 뒷정리하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이미 떠난 지 오래였고 아직 저녁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늘 위에 낀 먹구름은 밖을 어둡게 해주었다.
"휴우..."
한숨을 푹 쉰 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나 혼자 학교에만 남은 듯했다. 나머지 애들은 벌써 집으로 가고. 선생님들도 퇴근하셨는지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삐리리리-
"또 뭐..."
지겨워 라고 작게 말하면서 전화기를 켜보니 똑같은 수신자, 같은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너 어디인데 이리 안 와? 오늘은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지?-
나는 한숨 푹 쉬면서 메시지를 보낸 당사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조리실 뒷정리를 하고 있어요. 조금 늦게 올지 몰라요-
메시지를 보낸 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더니...
-쓸데 없는 짓 그만하고 당장 와.-
라는 메시지가 보내진 뒤 다시 주변은 침묵으로 쌓이게 되었다. 고요함으로 가득 찬 빗물 외에는 들려오는 소리가 없는 교실 안은 왠지 모르게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아무런 방해도 없어서 그런가? 평소 같으면은 애들 요리하는 소리를 비롯해 선배들이 대뜸 군기 잡는다면서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등......
정리 하던 중간에 나는 테이블에 놓인 프라이팬을 바라보았다. 아직 치우지 않았네. 재료나 도구들은 대충 다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손목시계의 시간을 바라보니 아직 버스가 오기까지 시간이 있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출출해지고 있었고.
원래는 돌아가는 도중에 포장마차에서 하나 사 먹을까 했다. 비도 오는데 따뜻한 오뎅 국물도 마시면서.
"간단한 요리 정도는 괜찮겠지."
틱-틱-
가스에 불을 붙이는 소리와 함께 열기가 느껴졌다. 너무 뜨겁지도 약하지 않게 중간 불로 맞춘 뒤 프라이팬을 올려놓은 뒤 떡과 비엔나소시지를 꺼내었다. 원래는 집에 오자마자 먹으려고 사 놓은 것들이지만. 길거리에 파는 음식 중 하나이자 내가 주로 먹는 것 중 하나를 말이다.
"여어 이게 누구야-아직도 집에 안 갔어?"
"!?"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길래 고개를 돌려보았다. 패거리들이 언제 왔는지 뒤에 서 있었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한 피어싱을 한 건장한 크기의 남자애와, 딱 봐도 모자르게 생긴 비만 체형의 남자애 그리고 얼굴은 뽀얗게 해서 원숭이와 같이 생긴 껄렁한 애 한명...
"너 왜 혼자 남아 있냐? 또 애들이 너에게 일거리 다 넘겼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잖아 나 바쁘니까 저리 꺼-"
"애들에게 따돌림당했다가 또! 또! 혼자 남고!"
"남자 여자애가 자기 따돌린 지는지 모르겠지 우호호홋-"
마지막으로 말한 말이 내 몸을 움찔하게 해주었다. 저 원숭이같이 생긴 애한테 하마터면 주먹 날아갈 뻔 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면서.
"야 그만 해라 듣는 애가 불쌍하잖아."
이들 중 붉은 머리로 염색한 그 애가 내 앞에 다가오면서...
"지 소꿉친구에게 차여서 고통받는 와중인데."
"!?"
말이 끝남과 동시에 키키키키키키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자란 애도 원숭이처럼 생긴 애도 같은 시간에 웃는 모습 빗물 소리가 저 기분 나쁜 웃는 소리로 인해 가려졌고.
"네가 직접 만든 요리로 고백하려 했는데 그 무시하고 지나쳤다면서? 그리고 다음 날 톡에서 네 이름 지워졌고 말이야."
"등신! 등신!"
"저거 완전히 등신 아니야. 쟤 바보다 바도 키키킥."
"얘기 끝났어?"
가스레인지의 불을 끈 뒤 프라이팬을 들었다. 저것들하고 엮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거대한 시간 낭비였다. 무엇보다 지금 누구랑 얘기할 기분도 아니었다. 당분간 누구랑 특히 저것들하고 더욱더 엮이기 싫고.
"어디서 그런 얘기 들었는지 알 바 아니지만 얘기 끝났으면 나간다. 나 슬슬 돌아가야만..."
퍼억-
내 몸이 무언가로 인해 힘껏 밀려지면서 걷어차는 느낌이 들었다.
"야 찐따!"
곧이어 마치 굶주린 개들이 쓰러진 나에게 몰려들어 그대로 나를 짓밟기 시작했다. 퍼억-퍼억! 하는 소리가 귀로 들려오면서 그들이 나를 구타하는 것을 온몸으로 막으면서 저 할 일이 없는 것들에게서 말이 들려왔다.
"우헤헤헤헷!!! 재밌어!!! 너를 패면 기분이 좋아!"
"얼굴은 여자애처럼 곱상하게 생겨서!"
"오늘 스트레스 쌓였는데 마침 잘됐어!!"
통증을 느끼면서 내 몸의 뼈가 하나씩 부러질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귀로 들려온것은 듣기만해도 구역질이 나는 웃는 소리와, 나를 밟을때마다 들려오는 구타소리 뿐이었다.
"야 야 비…. 비켜!!"
간신히 얼굴을 들어보니 돼지 한 마리가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식칼을. 그것도 부엌칼을...
"내가 얘! 죽일 거야!"
"오오!"
"이걸로 얼굴! 조각내서! 무슨 얼굴 되나! 궁금했어!!!"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본능이 느껴진다고 했던가. 본능이 스스로가 나한테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아니 단순히 큰일 날 정도가 아니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치이이이익!
"꿰에에에에엑!"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돼지의 얼굴은 막 달구워진 후라이팬에 의해 달궈지고 있었고, 주변의 두명은 예상치도 못한 일에 놀란 듯 뒤로 물러섰다.
"엄마! 엄마! 내 얼굴이 내 얼굴이!"
"너-뭐한 거야!"
"이 계집애 같은 ㅅㄲ가!"
곧바로 얼굴 뽀얗게 한 원숭이와 같이 생긴 애가 내 목덜미를 잡았다. 이 원숭이 같은 새끼 입을 자세히 보니 침을 뱉으려는지 침거품이 보였었고. 캬아악-하는 소리와 함께 역겨운 냄새를 내면서.
"혼자 있길래 놀아 주려 했잖아! 이 남장여자에 같은 새끼야! 이 썩어 빠진-"
치이이익!!!"
으아아악!!! 하는 비명이 교실 내로 퍼지면서 그 역시 돼지처럼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옆에 있는 붉은색 염색한 애도 이 상황만큼은 기겁했는지 뒤로 물러섰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걸로 고작..."
부웅-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을 나한테 날렸다.
"겁을 먹을거 같-"
치이이!
기분 나쁜 비명과 함께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주먹질한 주먹을 한 손으로 잡은 뒤 나는 한 손에 프라이팬과 조리용 가방을 등에 멘 뒤 그대로 밖으로 뛰어갔다. 그 일진은 자기 주먹을 붙잡은 체 이 ㅅㄲ 너 오늘 죽었어! 라는 외침을 들은 체.
"허억...허억..."
얼마나 뛰었을까.
정신 없이 뛰고 뛰다 보니 어느새 육교 위로 올라와 있었다. 내 한 손은 여전히 프라이팬을 쥐고 있었고, 도망치면서 빗물을 맞아서 그런지 낸 몸이 으슬으슬한 느낌이 들었다. 한겨울이 아닌 여름인데도 입이 딱딱-하는 소리를 내면서 떨리고 있었고.
손에 쥔 프라이팬을 바라보았다. 빗물로 인해 달구어진 프라이팬의 온도는 내려간 지 오래였다.
이건 요리하기 위함인데…. 내가 이걸로 사람을...
탁탁탁탁-
"드디어 따라잡았다."
발소리가 들려옴과 함께 뒤를 돌아보니 세 명의 패거리가 그대로 내 뒤를 따라잡은 것이다. 이것들은 내가 어디 도망 못 가게 내 주변을 감쌌고, 나는 아까 전처럼 프라이팬 잡은 채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사냥감을 궁지에 몰리게 하려는 듯 서서히 패거리들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나는 뒤로 물러서면서 육교 난간의 밑을 내려보니, 수많은 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었다. 뒤로 더 움직였다가는 분명히 떨어지겠지.
"왜 대답을 안해!!!!"
퍼억!!
시야가 180도 뒤집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끌-하는 빗물에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난간을 잡을 틈도 없이.
"야! 야!"
위에 패거리 세 명이 난간 위에 고개를 내밀어서 떨어지는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들이 했다고 믿어지지 않다는 듯 놀라움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그들의 외침이 내 귀로 들려온 뒤-
"정성운!"
내 의식 역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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