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타 도시가 화제로 불타고 있을 무렵,벨릭성 내부는 지진으로 인해 엉망이 된 미관을 정리하며 수습하고 있었다.
어째서 인지 벨릭성 내에 사람들에겐 광기의 파장이 미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여진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며 신중하게 행동했다.
아리아와 레아는 괜찮을까?
연구실에 틀어 박혀 있는 이브가 걱정된 화랑은 그녀에게 문자를 넣어 봤지만 그 어떤 답도 오지 않았다.
@이브 괜찮아?다친데 없지?
@야!괜찮냐고!!대답해!
@나 연구실로 간다?어?
난 서둘러 이브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그녀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이내 걱정이 앞선 난 어수선한 만찬장을 벗어나 복도에 줄비한 수많은 침실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곳엔 사람이 없어,바로 저장한 후 그대로 이브의 연구실로 포탈을 열어 뛰어 들어갔다.
이브의 연구실 내부는 엉망진창이었지만 이브는 보이지 않았다.
닫혀있는 비밀방에 존재를 알 리 없는 화랑은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지도를 눌러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페페 시장으로 포탈을 열었다.
포탈 밖으로 나온 화랑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수많은 여성들의 시체와 피를 뒤집어 쓴 남자들이 살아있는 여성에 사지를 찢고 목을 날려버리는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된다.
“하아... 하아.... 하아....”
남성들은 화랑을 한차례 노려봤고 그때서야 위협을 느껴 무기를 집으려 할 때 검을 벨릭성에 맡겨 두고 온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카악!크웃! 후다다다닥
마치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인간 마냥 행동과 호흡이 거친 이들은 화랑에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떼거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페페 시장은 온통 피 범벅이었고 여성들의 시체가 발 디딜 곳 없이 난잡스럽게 흩어져 있었다.살면서 처음 피 비린내를 진하게 맡아봤다.
그리고 눈에 뛴 거대한 탑은 이제까진 본 적 없는 그런 종류에 건축물이었다.
대체 뭐야 저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어린 아이.. 노파.. 중년 여성 할 것 없이 끔찍한 형상으로 힘 없이 거리에 쓰러져 있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괴한들은 여성에 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해서 칼로 몸을 쑤셔댔다.
그것도 남성 여럿이서 말이다.
단지 부랑자들의 폭동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은 요리사,경비대,용병 할 것 없이 하나 같이 미친 사람마냥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그 살벌한 분위기는 모두 똑같았다.
그때 문득 아리아와 레아가 떠오른 난 그녀의 침실로 포탈을 열었다.
아리아의 방도 엉망인 것은 마찬가지 였고 하녀들의 시체들이 방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난 드레스 룸 문을 열고 그 안을 확인했으며 장롱과 침대 밑을 샅샅이 뒤진 후 열린 문을 빠져나와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때 내 눈에 들어 온건 하녀의 복부에 칼을 찔러 넣은 루카스 에이먼이 붉은 피를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크으흑... 아악...”
괴로움에 신음하는 하녀의 복부를 걷어차며 칼을 빼든 루카스는 탁한 신음을 내뱉고 쓰러진 하녀의 심장을 향해 정확히 칼끝을 꽃아 넣었다.
말릴 세도 없이 일어난 일이고 무기 역시 가지고 있지 않아 어찌 할 바가 없었다.
“어이 이봐.. 대체 왜 그러는 거야?아리아는 어디 있지?”
루카스는 넋 빠진 사람 마냥 천천히 비틀거리며 걸어 나갔고 난 아리아를 찾기 위해 저택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살해당한 하녀들 시체뿐이었다.
혹시 이브가 아리아와 레아를 피신시킨 건 아닐까 싶어 다시금 이브에게 문자를 보내며 전화를 걸었지만 그 어떤 답신도 오지 않았다.
답답함이 이루 말할 길이 없었다.
왜 벨릭성에 사람들은 멀쩡했는데,벨리타의 사람들은 이렇게 변해 버린 걸까?
혹시 에텔 도시도 벨리타처럼 이런 끔찍한 징후가 발생한 것은 아닌가 싶어 곧바로 에텔 도시에 헤레 시장으로 건너가 봤지만 그곳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활기차고 생기 있는 시장에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엔 영향이 없어?”
그 다음 우리 집으로 포탈을 열었고 실내를 돌아봤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이브는 이곳에 오지 않았다.
지체 없이 서둘러 이동한 곳은 엘시노어 영지에 로이드 저택이었지만 그곳도 어느때처럼 평화로워 보일 뿐이었다.
어색한 미소를 내짓는 릴리와 쌀쌀한 표정을 지은 배니 그리고 나를 향해 살갑게 미소 짓는 로제타에게 이브가 찾아오지 않았냐며 질문 했지만 그녀들은 고개를 가볍게 저어 보였다.
띠리리리리릭 띠리..
그때 이브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난 서둘러 전화를 받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거야!!!걱정되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고!!어디야!!
#여긴 루비어 저택이야.. 레아 공녀가 부상을 당했지만 다행히 아리아 공녀는 무사해..
넌 어때?괜찮은 거야?
전화상에서 들려오는 이브의 목소리는 상당히 지쳐 있는 목소리였다.
거기다 다양한 사람들의 심각한 고성이 잡음에 섞여 날 긴장 시켰다.
#난 괜찮아.. 거리에 사람들이 미쳐 날뛰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설명해 줄 수 있어?
#콜록 콜록.. 아니..
#너야 말로 괜찮은 거야?포탈을 열어봐!!
벨터의 예리한 칼날를 피하긴 했지만 옆구리를 베인 이브도 힘겹게 치료에 힘쓰고 있었다.
레아의 상태는 더욱더 심각했다.
루카스의 공격으로 어깨에서부터 옆구리까지 대각선으로 깊은 상처를 입고 정신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화랑.. 내 말 잘 들어.. 지금 당장 벨릭성으로 가서 세릴 폰 아르세 왕녀를 데리고 나와 줬으면 좋겠어.. “
#뭐?!
벨릭성에 들어간 세릴 왕녀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드워프들에게 알려지면 비공정 제작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것이 분명했다.
이브는 화랑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들을 우선으로 구한 다음,화랑으로부터 세릴 왕녀를 구해 올 것을 부탁하고자 연락을 취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브 본인은 부상을 입어 벨릭성으로 갈 수 없는 상태다.
#부탁해..콜록 콜록”
#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내가 큐어를 걸어 줄테니깐!어서 포탈을 열라고!!아니면 당장 루비어 저택으로 찾아가겠어!”
#그럼 난 널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거야
이브의 그 한마디가 화랑에 망설임을 바로 잡아 주었다.
그녀는 화랑과 많은 것을 공유한 유일한 인물이다.그런 이브를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지?!믿는다 그럼!!
#무리하진 말고 조심히 다녀와
이제 목표는 뚜렷해 졌다.세릴 왕녀를 구출하는 것이다.
난 서둘러 벨릭성으로 포탈을 열었다.
다급하게 포탈을 빠져 나와 문을 열자 복도에는 여성이 아닌 근위대와 귀족들의 절단난 시체가 끔찍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콰ㅡ앙
우측에서 들려온 폭음 소리...
저 곳은 분명 왕실부가 위치한 곳이었고 난 서둘러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근위대에 시체는 갈수록 늘어났고 훼손 상태도 점차 심해져만 갔다.
난 바닥에 떨어진 바스타드 소드를 집어 들고 두 번째 폭음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똑바로 달려갔다.
왕실부 내부는 이미 피바다로 변한지 오래였다.
레이몬드 바랏사 쉐퍼 국왕과 4명에 공작 그리고 세릴 왕녀를 지키는 근위대와 총사들은 눈 앞에 불길한 오라를 뿜어내는 마도사와 건장한 체격에 검사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미 이 둘에게 많은 근위대와 귀족들의 목숨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희생된 상태였다.
“설마 막시무스까지 왕도에 도달해 있을 줄이야... 왕가 최후의 날로 손색이 없어 보이는 구나.. 흐흐흣”
줄곧 음산한 분위기로 조용히 미소 짓던 남자는 후드를 벗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정체를 들어내 보였다.최초로 그를 알아본 것은 휴즈 매튜 로링턴 공작이었다.
“자...자네는....”
엘베록의 명예 마법사이자 수호자 바로 케빈 마샬 본인이었다.
드래곤 정벌을 떠난 후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가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휴즈 매튜 로링턴 공작은 입술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저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이오!휴즈 공!”
오레오 갈테 가르시아 공작의 질문에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던 휴즈 공작은 케빈을 향해 불쾌함을 들어내며 언성 높였다.
“어째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에드워드 바랏사 쉐퍼 선왕전하께서 그대를 총애하고 아껴주셨거늘!!”
케빈은 가소롭다는 듯 한 얼굴로 입꼬리를 올리며 실소를 내지었다.
“파이어 로드 아간드라 아젤카의 먹이로 던져 준 것이 충의에 대한 보답인가!!!우리 원정대는 모두 전멸했어!유리아는 아간드라의 제물에 불과했다고!우릴 속이다니 이 빌어먹을 왕가 놈들!!”
케빈 마샬은 양손에 강력한 불과 바람을 만들어 냈고 존 스니퍼경과 켓 브라운 경이 선봉에 서서 검을 뽑아 들었다.
“괴한 놈이 말이 많구나!!죽어라!!”
“세릴 폰 아르세 왕녀님을 위하여!!”
수인 특유에 재빠름은 인간이 가진 민첩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지만 아더 켈 클라우디아의 육중한 대검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두 명에 총사의 검과 더불어 상반신을 단 두합으로 잘라버렸다.
촤아아아아 슈웅 촤아아아
“크아아악!!”
“끄아아아옹!!”
미슈미드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로얄 계급에 총사 두 명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아더는 짙은 썩소를 내지으며 대검에 묻은 피를 혀를 내밀어 맛을 보고는 침을 뱉었다.
“피 맛은 역시나 짐승의 것이군... 크크크큭.. ”
세릴 왕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 않아 버렸고 배리얄 프론 후작은 이 절대 절명에 순간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를 고심하기 시작했다.
후다다다다다닥
후방에서 달려온 근위대 7명이 곧바로 아더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리치 거리가 남다른 대검을 단 한번 휘둘러 6명이나 되는 근위대를 일격에 두 동강 내버렸다.공중으로 붕 떠버린 근위대에 상반신은 피를 뿌리며 그대로 순백의 카펫트를 붉게 물들였다.
“어이 어이.. 베는 맛이 없잖아!더 강한 놈을 불러오라고..”
아더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근위병의 표정을 음미하며 잡아먹을 듯이 천천히 거리를 좁혀 가고 있었다.
복수의 칼을 가는 케빈 마샬이 던진 헬 파이어는 제임스 폰 라이언 공작을 뒤덮었고,그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나자빠졌다.
다른 한손으론 윈드 커버를 만들어 휴즈 매튜 로링턴 공작의 목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꺄아아아아아ㅡ
세릴 왕녀 치마 자락에 떨어진 휴즈 공작의 목에선 시뻘건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배리얄 프론 후작은 세릴 왕녀를 일으켜 세우고는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쳤는데,이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엘베록의 귀족일 것이란 확신 아래 잘하면 살아서 돌아 갈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두 명에 공작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얼굴로 해치운 케빈은 공포에 질린 오레오 공작과 레이몬드 국왕 앞을 지키는 막시무스 공작을 여유로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막시무스.. 이런 상황에서 조차 그런 무서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네 기사들은 전부 죽은데다 저 나약한 근위병들은 우리 적수가 되지 못해...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으신가?”
케빈 마샬의 외형적 특징을 뒤늦게 떠올린 막시무스 공작은 이를 악물며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
“아.. 생각났다.. 네 이놈.. 케빈 마샬이로구나... 놀랍군.. 100살을 훌쩍 넘긴 노인이 아닌 그 시절 모습 그대로라니”
“신기하고 놀랍나?나 역시 그러하다!아간드라와 난 마지막까지 싸웠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유리아의 시체를 동결시키고 그 괴물과 20일이 넘도록 사력을 다해 싸웠다!!그때 아간드라 아젤카가 나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 놨지.. 우린 재물을 운반한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이다... 유리아를 포함한 원정대에 처녀로 엄선된 여사제들 모두 아젤카의 재물이었고 우린 희생되어 사라져야 했단 사실을 말이다!”
레이몬드 바랏사 쉐퍼 국왕은 국가 극비 문서를 검토한 적이 있어,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젤카의 무차별적인 폭주를 막기위해 미슈미드 왕국에서 1차적으로 처녀들을 재물로 받친 후 그 다음은 엘베룩 왕국에 차례가 왔지만 순순히 재물을 넘기면 성군이라 칭송 받는 에드워드 국왕 명성에 흠이 날 것을 우려해,원정을 빙자한 재물 운반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 변수가 발생했다.재물 명단엔 유리아 알렌시아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녀와 은밀히 사랑을 속삭이고 있던 대상이 바로 케빈 마샬이라는 부분을 말이다.
사실상 케빈 마샬은 국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드래곤 원정을 떠났고 그길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엘베록의 영웅으로 남아야 했던 케빈 마샬의 이야기는 다소 과장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퍼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