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화랑을 위해 아리아는 종이와 잉크를 갖다놓고 만반에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다.
화랑이 나타나면 고급스러운 찻잔에 따스한 홍차를 타서 대접해 주는 것으로 수업은 시작 되었다.
헤베테는 모두 익혔다.종종 한 두개 까먹긴 하지만 그것은 보충을 통해 간간히 외우고 있었고 현재는 바슘을 터득하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발음과 쓰기를 1시간 가까이 반복하면 어김없이 아리아의 질문이 이어졌고 난 명쾌하게 그 답을 불러냈다.
갈수록 이해력이 높아지는 화랑의 학습 능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아리아는 오늘도 어김없이 쿠키 봉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귀찮을 법도 한데 매번 이런 수고를 자처했다.
“그리고 이것도 같이 좀..”
아리아는 가르시아 공작가의 밀랍 인장이 찍힌 편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난 그것을 받고 아리아를 조용히 응시했다.
“혹시 나한테 쓴 사랑의 편지?”
능청스러운 내 말에 아리아는 살며시 손으로 입을 가리곤 상큼하게 미소지었다.
“푸흣!아니요.. 레아한테 이 편지를 전해주셨으면 해요...어제 레아한테 편지를 받았는데.. 화랑님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놀러오고 싶다고 하네요.. 부탁 좀 드릴 수 있을까요?”
“뭐 다른 사람도 아닌 아리아의 부탁이라면 기꺼이~!”
아름다운 아리아의 꾸밈없는 수수한 미소는 언제부턴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진짜 확 보쌈이라도 해버릴까?그리고 엘시노어 영지에서 조용히 숨어서 살까?그런 생각도 가끔은 해본다.
하지만 아리아의 정략결혼이 불행할거란 확신이 없으니 그런 행위는 할 수 없다.
어쩌면 휴이같은 귀공자 녀석이 짠~!하고 나타나 아리아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릴지도 모른다..
혈통의 법도가 존재하는 이곳에서 나 같이 신분이 낮은 인간이 감히 아리아를 넘봤다가 그녀의 삶이 불행해지기라도 한다면..
아리아는 내 볼을 살며시 건드리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냐고 질문했고 난 아리아와 어딜 놀러갈까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둘러대 보았다.
그러자 아리아는 탁자에 팔꿈치를 기대 양손으로 턱을 괴며 나를 싱그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마을 축제에 가보고 싶긴 한데..뭐~ 화랑님과 함께라면 사실 어디든 상관없어요..”
“그러니깐 마을 축제에 가고 싶다는 말씀?”
“음~그건 제 사심이구요.. 본심은 나중에 한말이 진짜라죠~!?”
나와 아리아는 또다시 실없이 미소를 교환했다.
아리아는 로즈와는 만났냐고 질문했지만 난 씁쓸한 표정을 짓고서 살며시 고개를 저어 보였다.그러자 나를 격려라도 하듯 곧 만나서 오해를 풀 수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위로해주었다.
“고마워.. 그만 가 볼게..”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혹시 내일도 오시나요?”
“음.. 아마도?”
표정이 밝아진 아리아는 고개를 살짝 틀며 양손을 모아 가락지를 끼고선 내게 시선을 보냈다.
“그럼 쿠키를 구워놓고 기다리고 있을께요.. ”
“쿠키.. 잘 먹을께.. 항상 고마워”
수제 쿠키 만세다.
시중에 팔던 쿠키보다 1만배 맛있었다.
오직 나를 위해 굽는 아리아의 정성이 깃든 쿠키가 맛이 없을 리 없고 실제로도 맛있었다.
난 포탈을 열고 아리아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며 작별 인사를 보냈고 그녀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쳤다.
부엌에 앉아 아리아가 구워준 쿠키를 모두 먹어치우고는 찬장을 열어 잘 접은 쿠키 봉지를 그곳에 보관했다.
어느덧 8장이나 모였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싶긴 한데,이 세계엔 그곳에 남겨놓은 것 이상으로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겨 버렸다.
사랑스러운 벨벳과 붉은 오크,조용한 성격을 가졌지만 의지가 되는 이브,아름답고 차분한 성격을 가진 아리아,마음이 잘 맞는 친구 휴이.. 모두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다.
엘리샤와 미야 그리고 로즈와는 이제 만날 수 없으니 슬슬 마음에 정리를 하도록 노력해 봐야 할 것 같다.마크와 페이 그리고 미레는 에텔 도시에 머물다보면 언젠가 만나는 날이 오겠지..
부디 잘 지내줬으면 좋겠다.
어제부터 로제타는 로이드 저택에서 지내게 되었다.
릴리와 배니랑 방을 함께 쓰며 생활하기 시작 한 것이다.약은 더 바를 필요가 없어졌을 만큼 건강을 되찾고 성격도 다소 밝아진 상태였다.
언니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로제타는 여자력을 키우고자 그녀들과 생활을 하기를 자처했다.
난 외출하는 시간이 길었고 체력이 약했던 로제타는 나를 따라 브록실그로 이동하는 것 자체에 무리가 따랐다.
그렇기에 집에 혼자 노는 시간보단 릴리와 배니랑 같이 있는 것을 택한 것 같았다.
내 입장에서도 그게 더 마음이 놓였다.
조용한 집안에 홀로 여유를 만끽하며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요즘은 일기를 보지 않아 너무 마음이 편하다.매번 잠들기 전에 더러운 일기 내용을 접해야 했고 기분은 매우 불편하기만 했었다.
그리고 94일 후에 또다시 새로운 상대가 나타나고 일기를 공유하게 된다.이번엔 이브가 기지를 발휘해 무사히 위기를 모면했지만 다음 상대는 어떨까?
화이트 톡을 설치하려면 백금화 300개가 필요하다.3000금화... 이 큰 돈을 어디서 벌어오냐?
쉐도우1 녀석은 막시무스 공작의 재산을 손에 넣자마자 방탕하게 돈을 써가며 뽑기도 25번이나 하고 1성- 3성 몬스터를 모조리 지워 버린 결과가 4성 2마리 3성 1마리다.. 거기다 이성에 호감도를 보는 어플도 깔아 놓은 것 같던데.. 어째든.
정보를 얻기 위해선 화이트 톡이 필요하지만 당장은 무리다.
이브 폰에 깔린 다크톡에 기대를 걸어 볼 수밖에 없지..
난 침대에 눕자마자 금세 잠이 들어 버렸다.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의미도 되겠지..
왕도 벨리타를 깨우는 아침 햇살이 도시를 비추기 시작했다.
작업 거치대에 엎드려 잠을 자던 이브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로즈가 눌러 앉은 덕분에 연구실 밖으로 나가지 못한 이브는 잠도 연구실에서 불편하게 자야만 했다.
비밀 방을 바라보니 로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의아함을 느낀 이브는 비밀 방 내부로 들어갔고 죽은 시체 옆에 웅크리고 누워 잠을 자는 로즈를 보게 된다.
화랑의 대한 로즈의 마음이 거짓이라면 저러기는 어려웠다.아니 아무리 사랑해도 죽음을 함께 맞이하려는 이는 드물고 자신도 이해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브는 시체 옆에서 잠을 자는 로즈에게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깊게 사랑해 본 일이 없는 이브로썬 로즈의 행동이 이해가 어려웠다.
같은 시각..
로즈를 찾아 용병주점을 포함해 사방을 뒤지기 시작한 벨터와 안젤리카는 화랑을 찾았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진지하게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녀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클라우디아 가문의 가주 바란 번 클라우디아에게 목숨을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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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오전 10시가 지나고 있었다.
알람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고 난 눈을 뜨고서 몸을 뒤척였다.
간밤에 수학여행에서 베게 싸움을 하며 선생님 몰래 맥주를 따먹은 꿈을 꿨다.단지 거기엔 로즈와 엘리샤도 사복을 입은 모습으로 나와 어울렸다는 것이 꿈같은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내 고교 시절은 연애보단 우정과 스포츠로 더 많은 추억을 할애했다고나 할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 좀 더 청춘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지금은 지금에 청춘에 충실하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선선한 바람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갔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오늘 에텔은 맑음이지만 왕도 벨리타엔 비가 내리고 있는 모양이다.
난 이브에게 아침 문자를 건네줬다.
그러자 이브로부터 뜬금없는 내용에 답장이 날아왔다.
이브@이제 일어났구나..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못 만날 것 같아..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 만약 로즈가 너를 구하려다 죽게 되면 넌 어떨 거 같아?
화랑@무척 슬플 거야.. 내 목숨 하나를 던져버리고 그녀를 살리려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로즈와 난 이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아
이브@로즈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에?
화랑@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이브@그냥 궁금해서.. 한 3일 정도 연구실에 틀어박혀 작업할 생각이니깐 드워프들을 만나면 그렇게 전해줘..
이브는 그렇게 문자를 마무리하고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로즈에게 걸어갔다.
로즈는 시체를 꼭 끌어안고 꼼짝을 하지 않았다.
“변소에 가고 싶지 않아?”
“가고 싶지만 참고 있는 거야.. 끝까지 참으로면 어떻게 되나 궁금도 하고...”
“그건 나도 궁금하긴 하지만 널 대상으로 결과를 얻고 싶지 않아.. 내 전용 간이 변소를 빌려 줄테니 그곳에다 일을 보지 그래?”
로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브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건네며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브는 빵과 고기가 담긴 접시를 시체 위로 올려놓았고 그걸 본 로즈는 이마에 빗발을 세우며 음식들을 내동댕이 쳐버렸다.
“우릴 내버려 둬!”
“여긴 내 연구실이자 집이야.. 죽은 내 남자 친구 사정은 정말 딱하지만 네가 이런다고 그가 기뻐하거나 행복해 하지 않을 것 같은데?더욱이 사귄지 얼마나 된 대단한 사랑인지 몰라도 남자를 따라 죽겠다니 미련한 것도 정도가 있어”
이브의 설교가 끝나자 로즈는 뜸을 들이고는 그대로 입을 열었다.
“.......나 같은 년 좋다고 고백한 남자는 처음이었다고.. 거기다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녀석이었는걸.. 그런 착한 녀석을 믿지 않고 내 멋대로 그를 상처주고 외면했어.. 그 결과가 이렇다니..결국 나 때문에 화랑은 이렇게 된거야.. 난 그와 똑같은 최후를 맞을 생각이거든..그러니깐 내버려 둬!배속에 똥통이 터져 죽던 오줌보가 터져 뒈지던 신경 쓰지 말란 말이야!”
이브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싫어.결국 치우는 건 내 쪽이잖아?굶어 죽겠다면 속에 있는 건 깨끗이 비우고 죽던가.. 빌려준 방은 깨끗이 써야하지 않을까?네가 죽으면 조임근이 이완되서 배설물이..”
로즈는 얼굴을 붉히고는 이브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알았어!!알았다고 이년아!!거 얌전한 얼굴로 더러운 말은 서슴없이 내뱉네?내놔 오줌통!시원하게 갈겨 줄 테니깐!”
이브는 마법을 이용해 간이 변소를 어두운 구석한 곳에 내려놓고는 깨끗한 수건도 가지런히 놓은 후 자리를 비켜주었다.
로즈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간이 변소에 서서 반바지를 내리고 속옷을 내린 다음 그대로 주저앉았다.
“세상에 남자는 많아.. 네가 조금만 노력하면 금세 새로운 짝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혹시 저 남자와 관계를 가진거야?”
“아이씨!오줌 싸는데 말 걸지마!”
“그래.. 천천히 일 보록 해”
로즈가 볼 일을 다 끝낼 때 까지 기다린 이브는 한결 홀가분해 보이는 로즈와 시선을 맞추었다.
“가질 껄 그랬어!후회 된다구!침대에서 껴안고 잔 걸로 만족한 내가 병신 같다고!”
“그럼 화랑이 다시 살아나면 할 거야?”
“말장난이 취미니?아니면 남에 슬픔을 지켜보는 악취미가 있거나?관심 꺼 달라고 했거든!”
쌀쌀 맞은 로즈의 반응에 이브는 무덤덤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들을 줍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본 로즈도 내심 미안한 감정이 앞서 음식물 줍는 것을 도와주었다.
“방을 어질러서 미안.. 하지만 네가 접시를 화랑 얼굴이나 가슴에 올려놓은걸 보니 화가 치밀었다고.. 앞으론 주의해줘.. 그리고 굶어 죽으려는 사람한테 음식을 건네 주다니?내 결심이 내 눈엔 장난처럼 보였어?”
“그렇게 저 남자가 너한테 소중해?서로 서약도 하지 않았는데도?”
점차 표정이 부드러워진 로즈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이브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도 운명이니 사랑에 눈이 멀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 따위 믿지 않았지만 화랑을 만나고 그런 것을 느꼈다며 솔직한 심정을 이브에게 털어놔주었다.
이브는 저쪽 세상에 자신에게 흥미로운 메시지를 받았다.화랑을 만난 시간은 자신이 더 길었지만 사랑을 느낀 것은 되려 저쪽 세상에 자신이 있었다.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그쪽 세상에 자신은 화랑에게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언젠가 자신도 화랑과 지내다 보면 그것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진 이브는 로즈로부터 그 답을 구하고 싶어 했다.
화랑이 싫지는 않으며 지인으로써는 더 없이 좋은 인물인 것은 인정하지만 호감 이상에 사랑이란 감정까진 아니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삶에 불필요한 요소임을 진즉에 깨달은 이브는 평생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 신념을 관찰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저쪽 세상에 자신은 화랑을 사랑하게 되었다.
대체 그녀와 자신이 공유하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이브는 그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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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이미 240편까지 완성된 상태입니다.기대하신 내용으로 진입하기엔 기존에 틀이 이미 잡혀 방향을 꺾긴 힘들 것 같습니다.거기다 너무 적나라한 묘사까지 허용될지 몰라,ㅅㅅ씬은 요약하고 삽입씬은 모두 들어낼 계획입니다.단지 요청은 받았으니 비슷한 소재로 상/하 두편은 별도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 23.10.13 0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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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예 | 23.10.13 13:4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