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을 호소하며 밤새 끙끙거리던 로제타에게 바이올렛 포션 100g를 먹이고 간신히 재웠다. 나도 입을 헹구느라 물약을 거의 다 써버렸는데 매우 귀한 물약이라고 했건만 또다시 이브에게 부탁해야만 할 것 같았다.
새벽 3시에 침대에 앉은 난, 옆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휴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놀의 시야를 가진 덕분에 침을 흘리며 자고 있는 녀석에 면상을 느긋하게 구경 할 수 있었다.
슬슬 나도 자야지 하며 베게를 베고 눈을 감았는데 그대로 골아 떨어져 버렸다.
휴이는 오전 10시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양동이에 받아둔 물로 세수하며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서둘렀다.
침대를 바라보니 화랑이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것을 본 휴이는 가볍게 미소 짓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로제타와 난 어제 하루에 피로를 완전히 씻어내듯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12시나 되서야 눈을 뜨게 되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스마트 폰으로 시계를 살펴보니 어느덧 12시 20분이었다.난 로제타를 깨우기 위해 방문을 열었지만 아직도 그녀는 취침 중이었다.
새벽에 고생이 많았으니 더 재워두기로 하고 1층으로 내려와 부엌으로 향했는데,휴이가 차려 놓은 간편한 아침겸 점심을 보고서 주린 배를 채워나가고 있었다.탁자 위에는 백금화 3개가 놓여져 있었다.난 그것을 집어 내 주머니 속에 돈과 합쳤다.그럼 이 집을 170금화에 샀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괜찮은 가격에 구입한 생각이 들었다.
휴이에게 이번에 진 신세를 반드시 갚아줄 생각이다.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난..
말린 사슴 고기가 들어간 버터 발린 빵과 우유를 음미하며 주린 배를 채워나가고 있었다.휴이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난 이브에게 연락이 올 때 까지 딱히 할 일이 없어 게임을 실행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붉은 오크의 알은 옛날에 부화가 된 상태였다.
단지 집밖으로 쫓겨나 숲에서 배회하고 있던 붉은 오크는 밥도 먹지 못해 거의 탈진 상태에 놓여 있었다.
매정한 벨벳 녀석!그래도 남동생인데 잘 좀 돌봐주지... 난 메시지함을 열어 밀린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랑은 이제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거야?]
[알에서 돼지 새끼가 태어났어!저게 동생이라니 난 인정 못해!애완동물이라고 해도 싫어!]
[화랑 내가 잘못했어.. 보고 싶어.. 사랑해..]
[오늘 나 100층을 돌파했어!나 쬐금 커졌거든 가슴 말이야 헤헤!조금만 더 기다려!]
벨벳도 나름 열심히 게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란디아가 0원이다.벨벳이 동생 주지 않으려고 돈을 모두 숨겨 놓은 모양이다.
배고픈 붉은 오크의 이름은 홍피그라고 지었고 난 은화를 사용해 녀석에게 고기와 빵을 주고 도끼와 방패 그리고 간단한 장비를 사서 장착 시켜 주었다.
꿀꿀꾸륵
홍피그는 힘이 불끈 불끈 솟는지 무기를 가지고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래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많이 사먹으렴...
난 벨벳에게 [동생 좀 사랑해줘라..그리고 나도 사랑해.. ] 라고 쪽지를 주었다.
점심을 다 먹고 이브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언제 출발할거냐고 물어보자 3시쯤 헤레 시장에서 만나자고 답장이 왔다.
난 카피한 마법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큐어와 라이트 마법을 틈틈이 사용하며 숙련도를 올려갔다.더욱이 아르슬란에게 카피한 아스트랄 소드를 반복적으로 시전하여 카피된 용량을 조금씩 줄여나갔는데 이건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스트랄 소드를 유지하는 시간은 길어봐야 1분 남짓이었다.
오후 1시가 넘자 로제타도 눈을 뜨게 되었다.
자신의 방이 생긴 것이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던 로제타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세우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신기하게도 은밀한 그곳은 더 이상 간지럽거나 뜨겁지 않았고 움직일 때 조금 쓰린 것 말고는 불편함은 없었다.
어제 새벽 주인님은 더러운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고 불결할 법한 부위에 정성껏 약을 발라주셨다.로제타는 병들고 볼 품 없는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주인님이 너무 좋았다.
주인님이 사주신 실내복을 입은 로제타는 아리아 공녀를 떠올리며 조신하게 행동하는 것을 연습하다 거울을 보고 미소 짓는 연습을 하고서 문을 열어, 맞은편으로 걸어가 주인님 방에 노크했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내 아래층으로 내려와 거실에서 검술 연습을 하는 화랑을 숨어서 몰래 지켜본 로제타는 멋진 주인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다.
화랑이 로제타에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자 그녀는 수줍게 모습을 들어내며 화랑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건넸고 나 역시 가볍게 인사 해주었다.
“부엌에 음식이 있어.. 어서 먹도록 해”
“감사히 먹겠습니다 화랑 오빠 주인님”
“그냥 화랑 오빠라고 부르도록 해”
로제타는 침울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난 로제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혼자 밥 먹는 것은 아무래도 쓸쓸한 느낌이 강해서 별루였기 때문에 옆에 있어주기로 한 것이다.로제타는 서툴게 음식을 먹었지만 먹을 때 모습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그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나왔다.
“화랑 오빠 주인..아니.. 그러니깐.. 같이 먹어요..”
너 먹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것 같아.
여동생이 생긴 기분이다.
하긴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밑에 남동생과 으르렁 댈 땐 이상하게 여동생이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그 바람을 지금 이룬 셈인가?
“난 벌써 먹었는걸.. 그러니깐 부담 갖지 말고 먹도록 해..”
“네..”
“나 이브랑 약속이 있어..미안한데 집 좀 지키고 있어줘..”
돌멩이는 움직이지 않는다.그것만큼은 로제타도 자신 있었다.
“네!열심히 집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집 지키는 일에 너무 기합을 넣은 것이 영 불편했다.
차라리 밖에 돌아다니며 산책하는 것이 더 났지만 자칫 길을 잃어버리면 더 골치가 아프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집을 지키라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여유 있는 때 에텔 도시의 이모저모를 알려 줄 테니 그때 함께 돌아보자”
“네!”
내 제안에 한껏 들뜬 로제타는 기쁜 마음으로 힘차게 대답했고 난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식사를 마친 로제타는 나에게 일거리를 부탁했다.아무래도 공짜로 먹고 자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함께 집안을 청소해 보지 않겠냐고.. 로제타는 시켜달라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렇게 나와 로제타는 대청소를 하게 됐다.
하긴 가구와 물건이 얼마 없어,대청소 라는 표현이 무색했지만 그래도 로제타에게 성취감과 보람을 주기위해 거창한 이유를 갖다 붙이게 되었다.
로제타는 젖은 걸레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고 나 역시 유리창과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2시가 넘어 휴이가 들어왔을 땐 너저분한 집은 어느새 깨끗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거 미안해지는 걸?나도 도와 줬어야 했는데...”
그래도 명세기 영주님인데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은 거 아닌가?
난 휴이에게 엘시노어 영지로 떠나는 것을 2-3일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했고 휴이는 기꺼이 받아드렸다.
에텔도시에서 엘시노어까지 가려면 최소 6일은 걸린다.하지만 왕도 벨리타에서 출발했다면 23일이나 걸리는 만큼 이미 시간적으로 꽤나 앞당긴 셈이니 조바심 낼 필요도 없었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3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난 휴이에게 이브와 약속이 있어 나가봐야 한다고 말했고 그는 이브 아반트 패트리샤와 만나 대화해 보고 싶다고 부탁을 하였다.
별로 어려운 부탁은 아니니 휴이를 데리고 헤레 시장으로 포탈을 열었고 로제타는 기쁜 마음으로 우리 두 사람을 배웅하며 머리를 숙여 보였다.
헤레 시장으로 포탈을 열고 나온 우리 두 사람은 3시 정각이 되자 허공에 생성된 포탈에서 걸어 나온 이브와 만나게 되었다.
이브는 내 옆에 서 있는 휴이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휴이는 신사의 도리를 보이며 손을 가슴에 대고 허리를 숙여 이브에게 자신의 소개를 해주었고 이브도 숙녀의 예절을 보이며 차분하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몇 초간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리고는 내 앞에서 문자를 적어 보냈다.
이브@이 사람은 왜 데리고 나온 거야?네 비밀은 남들한테 떠벌릴 만큼 가벼운 사안이 아냐
화랑@내 친구야.. 나의 대해선 모두 알고 있어..
이브@모두?그걸 전부 납득했단 말이야?
화랑@ㅇㅇ 맞아..
이브@ㅇㅇ 이거 ㅋㅋ 같이 글을 변형 시킨 말이지?가급적 내 앞에선 쓰지 말아줘.. 이해도 안되고 글이 가진 고유에 의미를 퇴색 시키니깐.. 그리고 아무리 그걸 납득했다고 해도 나한테 귀 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냐?난 내 작업에 대해 다른 사람이 몰랐으면 좋겠거든?
상당히 짜증내고 있는 느낌이다.
바로 앞에 있는데 말이 아닌 메시지로 대화를 주고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화랑@널 소개 달래서 데리고 나온거야.. 만나보고 싶데서..
이브@서로 소개는 했으니깐 다음부터는 너 혼자 나와.. 난 딱히 친구 사귀는 취미는 없으니깐
문자를 마친 이브는 차분하게 돌아서서 시장을 향해 걸어갔다.
휴이는 우리 두 사람이 뭘 했는지 조차 모르는 눈치였다.그도 그럴 것이 문자는 모두 한글이었고 우리 두 사람은 오직 스마트 폰만 쳐다보고 문자를 주고 받았으니 이해 못 할만도 했다.
거기다 이브도 화랑과 똑같은 마법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정말 그녀가 발명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이브를 따라 간 곳은 대장간 거리였고 드워프 볼튼이 있는 곳에서 멈춰선 이브는 갑자기 내 팔을 꼭 끌어안고 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날 알아본 볼튼은 이브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긋이 띄웠다.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온건가?크큭 뜨겁군 그래?”
“여자 친구 아닌..”
이브는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치고는 차분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전 화랑의 여자 친구 이브 아반트 패트리샤라고 합니다”
뭐래?여자 친구?
우리 언제부터 사귄거냐?
“난 볼튼 이오.. 그래 무슨 용무가 있어서 찾아오셨소?보아하니 마법사 같은데.. 여긴 마법사에게 필요한 물건은 없소만..혹 남자친구한테 장비를 사주려고 온 것이오?”
이브는 가방에서 종이 다발을 꺼내고는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볼튼은 종이에 적힌 글자와 그림들을 관찰하며 읽어 내려갔다.
“이것은....”
“주원료가 미스릴인 60여가지 부품들입니다.수량은 모두 적어두었습니다.. 그것을 빠른 시일내에 만들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볼튼은 종이를 하나하나 넘기며 부품 도면을 살폈지만 하나같이 특이한 모양뿐이었고 어떤 용도인지도 알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었다.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긴 어렵소.. 하지만 어지간한 것은 가능할 것 같구려.. 아마도 20일 이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오”
이브는 역시라는 눈빛으로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볼튼은 종이 다발을 이브에게 도로 건네 주었다.그 행동에 의아함을 느낀 이브는 조용히 볼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군.. 현재 모국인 미슈미드 왕국이 전쟁에 휩싸일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은 이미 상인들을 통해 파다하게 퍼져 상황은 알 것이오.. 난 곧 짐을 싸서 이곳을 떠나야 한다오.. 그러니 다른 대장장이를 찾아가는 것이 나을게요”
휴이와 이브 그리고 화랑은 왕도 벨리타에 있었기 때문에 전쟁 소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지만 에텔은 미슈미드와 근접한 거리에 있어 이 소식이 빠르게 전달되었다.
거기다 미슈미드의 사절단이 이곳 에텔 도시를 향해 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아마도 막시무스 랏테 에우르고 공작을 설득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렇군요.. 부디 알베듀트님의 가호가 있기를...”
“아가씨도 바라바스의 가호가 있기를 바라겠소”
이브는 나와 휴이를 데리고 볼튼의 대장간을 나왔고 다른 대장간을 더 둘러봤지만 미스릴이라는 광물로 이브가 원하는 부품들을 만들 수 있는 인간 대장장이는 아무도 없었다.소형 비행정을 띄우려면 합판이나 동력장치 등등 가볍고 튼튼해야 했다.
이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재질은 미스릴이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은 엘프와 드워프 밖에 없었다.허나 엘프중에는 대장장이를 찾아보기 힘들고 부탁하기도 애매한 부분이었다.엘프들은 드워프 이상으로 인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강철로 바꿔 볼까도 생각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합판과 동력장치는 태양석과 마나 스톤 그리고 바람에 엘리멘탈 가호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마법에 내성이 있는 것이 아니면 아니됐다.거기다 강철을 쓰게 되면 에너지 비율을 다시 계산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이브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난 알 수 있었다.그녀는 지금 엄청나게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5분에 한번 꼴로 한숨을 팍팍 내쉬고 있는데 모르면 바보가 아닐까.
오늘 이브의 일과는 이러했다.
화랑이 볼튼이라는 드워프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일기를 통해 알게됐다.마침 드워프 대장장에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화랑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다음은 비행정을 제작할 700평 규모에 창고가 필요했다.사실 소형정이라 그리 큰 공간은 필요 없지만 2차 제작부터 점차 크기를 늘려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하필이면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전쟁 발발이라니 머리 아프게 되었다.
하지만 포기를 몰랐던 이브는 우리 두 사람을 데리고 노예 시장으로 향했고 혹시 매물로 드워프를 가진 노예 상인이 없는지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노예 시장이라는 곳에 첫 느낌은 말 그대로 인간을 전시한 시장 같았다.
거대한 철창 우리에 여자와 남자들이 따로 격리되어 있었고 하나 같이 발에 족쇄 같은 것을 차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헐벗은 여성들의 매혹적인 허벅지와 허리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고 남자 노예들은 근육과 건강한 체구를 과시하며 상인이나 귀족에게 팔려 가기위해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여성 엘프들도 모습을 들어냈는데,이세계 엘프를 처음본 소감은 그렇게 오바할 정도로 아름답지는 않았다.워낙 주변에 미인이 많아서 그런가?아름답긴 했지만 넋 놓고 침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단지 인간 여성과 달리 엘프의 미모는 오래간다는 점에서 가격이 높은 것 같았다.
노예 상인이 엘프의 상품 가치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이 영원한 젊음!이었다.
엘프에겐 정해진 가격이 없었다.기본 10금화부터 경매가 들어가는데 운이 좋으면 20금화 이하에 살 수 있지만 경쟁자가 많은 날엔 최고 100금화에서 5000금화 까지 올랐다.
그만큼 엘프 매물은 많이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더욱이 처녀 엘프는 더욱더 귀했다.
비인기 상품인 드워프는 노예 상인들이 꺼려하는 상품이었다.
말도 안 듣지 고객들에게 으름장을 놓거나 화가 나면 철창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리는 성질 고약한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시장을 돌아본 끝에 간신히 노예 드워프를 만날 수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적대적이었으며 만약 자신을 구매한다면 기필코 죽여주겠다는 엄포를 놓는 바람에 구매를 포기하고 돌아설 때 였다.
그때 휴이가 내 목에 걸려있는 세피로스 광석을 보여주며 그와 타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는 바와 같이 이 사람은 당신들의 친구입니다!우린 당신에게서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도움을 구하는 것이죠.. 그리고 거래를 하려는 겁니다!우리를 도와주면 당신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드워프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날 쏘아보았고 난 이브를 바라봤다.
이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모든 제안을 승낙하였다.
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릴 도와주신다면 기꺼이 당신을 돕겠습니다..”
“그 세피로스 목걸이를 드워프에게 받았다는 증거를 가져와라!내 목걸이도 인간놈들에게 빼앗긴 판에 동족에게 받았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다!”
“전 대장장거리에 볼튼씨에게 이 목걸이를 받아왔습니다”
“글세!난 볼튼을 몰라.. 드워프가 어디 한둘이야?”
결국 대장장이 거리에 있는 볼튼씨를 힘겹게 설득하여 다시 노예 시장으로 찾아와 그와 마주했다.
철창에 갇힌 드워프는 볼튼을 보자 어두운 낯빛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용병들에게 붙잡혀 상품 신세가 된 것이 무척이나 창피했던 것이다.볼튼은 노예가 된 한심한 동족을 눈에 새기고는 돌아서기 시작했다.
만약 전쟁에서 지게 되어 붙잡히면 차라리 자결 하겠다고 마음먹은 볼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노예 시장을 벗어났다.
“긍지 높은 친구를 두었군, 좋네.. 자네를 돕도록 하지”
간신히 노예 드워프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자 이브는 감격한 반응을 보이며 나와 휴이를 생기 넘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휴이와 내게 엄청나게 고마워하고 있는 무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엘리샤 놀려 먹기라는 어빌리티에 이어 이브의 상태를 파악 할 수 있는 어빌리티도 각성된 느낌이다.
노예 상인은 드워프를 구입해 줘서 너무 감사하다며 금화 10개로 나름 저렴하게 그를 넘겨주었다.
노예 드워프의 이름은 불칸으로 대장장이 경력 70년정도 되는 배테랑이었다.이브는 그에게 조수가 필요하지 않냐는 질문을 하였고 그는 어떤 일을 시킬 건지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했다.
이브는 재료 부품들에 도면을 불칸에게 보여주었다.
“이걸 모두 미스릴로?거기다 이 동력원은 매우 정교하군.. 드워프 2명 정도만 있다면 15일도 안되서 마무리 할 수 있겠어”
이브는 내 팔을 붙잡고서 서둘러 벨리타 노예 시장으로 건너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꼭 콘서트를 기다리는 여고생마냥 들뜬 이런 이브에 모습은 생소했지만 엄청나게 신선했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과 드워프 한명은 왕도 벨리타로 넘어가 그곳에 노예 시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벨리타 노예 시장에는 더 많은 인간 노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에텔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여성들이 더욱더 헐벗고 있다는 점과 남자 노예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는 점이다.더욱이 빛더미로 인해 상품으로 돌변한 귀족가 영애도 있었는데,돈 많은 상인과 귀족들이 그녀를 사고자 피 튀기는 경매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20살가량 되는 몰락한 귀족 처녀 아가씨는 겁에 질린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가엽다고 생각했지만 경매 금액은 어느덧 130금화까지 올라간 상태라 내가 손쓰기는 어려워 보였다.
휴이 로이드도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를 도와줄 방법은 없는데다 자신도 막대한 빚을 갚지 않으면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마음이 무겁기만 하였다.
그렇게 시장을 여러 군대 돌아본 결과 무려 3명에 드워프를 섭외 할 수 있었다.
가격은 30금화씩 사용했지만 불칸이 나서서 그들을 설득한 덕분에 무리 없이 협조를 구할 수 있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4명에 드워프가 작업할 대장간과 거대한 창고를 지을 토지가 필요했다.
이브는 현재 1억 5천만 골드 상당에 보석을 지니고 있었다.물론 이건 그녀가 지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은 개인 재산이었다.
대륙 전체로 이브가 개발한 상품이 팔려나갈 때마다 80%나 되는 금액이 밀레노 상인 조합에 축적되고 있었고 그곳에 조합장은 다름 아닌 샌슨 아반트 패트리샤로 이브의 둘째 오빠였다.이브는 거기서 발생하는 50%에 수익을 얻고 있었는데,연간 4억이 넘는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브는 엘베록에서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에 유명인이 되었다.그녀로 인해 패트리샤 가문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그런 이브 앞에서 로한 후작은 쩔쩔 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브가 개발한 상품들에 독점권을 다른 조합으로 넘겨버리면 패트리샤 가문에 자금원인 밀레노 조합은 엄청난 직격탄을 맞게된다.이브는 이런 이점을 내세워 결혼문제를 포함해 인생에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가족 앞에서 확고히 하였다.
그 자리에 모인 가족 전원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이브의 의사를 존중 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기에 이브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능력이야 어찌 되었든 말 안 듣는 딸에게 휘둘리는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브는 휴이를 바라보며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휴이 로이드 영주님”
“말씀하시죠 이브 아가씨”
“엘시노어 영지에 대지 면적은 어떻게 되나요?”
갑자기 그런 것을 묻는 이브에 의중은 알 수 없었지만 휴이는 그녀의 질문에 즉답해주었다.
“11만4.4563m 정도입니다.. ”
“동서남북에 분포된 가장 인접한 가문은요?또 한 근방에 가장 강력한 힘을 과시하는 가문을 알려주세요”
“인근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세력이라면 유니온 나이트 파벌 소속 엘리자벳 미툴 백작부인이 다스리는 발터자르 영지입니다.. 엘시노어 북쪽엔 아담스 태일러 자작님의 벨루카 영지가 있고 동쪽엔 맥시밀리안 루소 남작 다스리는 록카인 영지가 있으며 서쪽엔 다비드 루퍼 자작님이 다스리는 텔파스 영지가 있습니다.. 엘시노어는 최남단이라 바다가 인접해 있고 2.4500m여러 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작은 섬들은 영지라고 껴넣기도 뭐한 불필요한 땅 떵이였다.
이브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휴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휴이 로이드 경.. 엘시노어 영지에 대지 1천평을 나에게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네?!”
“물론 대가는 지불할 생각입니다.. 한 달 단위로 휴이 영주님께 400금화를 드리도록 하죠”
뜻밖에 제안에 휴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지에서 나오는 세금이래봐야 고작 20금화도 채 넘지 못했다.이마져 이자를 빼고 빚을 갚고 나면 3금화도 남을까 말까였다.거기다 국왕에게 세금을 내면 남는 것이 전혀 없었다.
매달 400금화라면 부유한 자작가문 정도 되야 거둘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저..저야 영광입니다만.. 대체 무엇을 하실 생각이신지?”
“제 전용 창고와 연구실 그리고 대장간을 만들 계획입니다.. 아마도 많은 물자가 엘시노어 영지로 넘어가겠죠.. 그럼 주변 귀족들이 큰 관심을 둘 것이 분명할 테니 제 이름은 거론마시고 적당히 둘러대 주셨으면 합니다.. 보안 유지를 조건으로 400금화씩이나 되는 금액을 드리는 겁니다.. ”
화색이 돈 휴이의 표정은 크게 밝아져 있었다.
“저희 영지를 이용해 주신다니 저야 말로 감사드립니다.. 이브 아가씨를 돕는데 최선을 기우려 보겠습니다!”
뜻밖에 재정난을 해소할 방법이 생긴 휴이는 기쁜 내색을 꾹 참아 보였다.
이브는 나를 바라보고서도 한 가지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지도를 열어보니 엘시노어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폭스빌 마을 인근이었어.. 미안하지만 엘시노어에 다녀와 주지 않을래?별도로 비용은 챙겨주도록 할게”
“얼마나 줄건데?”
“하루 백금화 1개를 줄게.. 이 계약은 30일간 지속 될 거야.. 일이 마무리 되면 너에게 백금화 30개를 주도록 하지”
“굳잡인데?받아드리지”
휴이는 서둘러 엘시노어로 출발할 것을 보채기 시작했고 난 우리 집으로 포탈을 열어 휴이와 함께 이동했다.
이브는 드워프 4명을 데리고 자신의 연구실로 포탈을 열어 이동했고 소형 비행정에 대한 도면을 보여주며 전체적인 계획 구성을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드워프들은 하늘을 나는 기구를 만든다는 것에 놀라움을 들어내며 한껏 흥분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완성되면 대륙 최초로 하늘을 나는 기계를 자신들의 손으로 만드는 업적과 함께 이름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