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랑 결혼해야 한다고? 내가?"
"그래 결혼,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까지."
어울리지 않게 보기 민망한 제스쳐를 취하는 남자 뒤로 수단의 자락을 붙잡은 산양 수인 소녀가 슬쩍 얼굴을 내밀었다.
"하... 수인이잖아... 나 이런 취향 아니라고..."
"수인이라는 단어가 네 고국 헤르타즈에선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멸칭이니 주의하도록."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건 꽤 중요한 문제다. 인종 간의......"
"야!"
결국 열이 바짝 오른 헤르타즈인은 기어이 남자의 말을 끊어먹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 여자라고."
# # #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으휴 진짜......!"
결국 소녀를 떠맡은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이목구비 대신 붉은 문장이 새겨진 남자의 금속 머리를 한 대 후려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이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3미터가 넘는 키에 온 몸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천사' 라는, 위압감이 넘치는 외모와 직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입은 은혜 때문이었다. 그 은혜 탓에 이런 억지스러운 부탁도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여자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날을 떠올리며 목에 깊게 새겨진 흉터를 만지작거렸다.
"됐다, 그만두자...... 너 배고프지 않아?"
"......"
"말 좀 해보세요. 이제부터 제가 그 쪽 남편이래요. 아니지 아내인가?"
"......"
"말할 생각 없으면 안해도 돼. 누군 좋아서 같이 있는 거 아니니까."
여자가 쉴새없이 궁시렁거렸음에도 소녀는 입을 앙다물고 눈은 아래로 내리깐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언제까지 그러고 있나보자.'
여자는 생각하며 소녀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이렇게 보니 소녀는 꽤 미인인 축에 속했다. 흰 털은 햇빛을 받아 윤슬을 그리듯 반짝였고, 샛노란 눈은 투명한 호박을 박아놓은 듯 했다.
여자는 자신이 수인 남자였다면 말이라도 한 번 터보겠다며 득달같이 달려들었겠다고 생각하다 웃음을 터뜨렸다.
"저기......!"
"너 때문에 웃은 거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
여자는 멋쩍은 탓에 거짓말을 하곤 시선을 돌렸다.
끼이이이이이익!!
불쾌한 금속성 마찰음이 고막을 긁었다.
여자는 소녀가 자신을 비웃어 불쾌해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멀리서 인간 형상의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기괴하게 꺾인 팔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천사......!"
여자는 반사적으로 소녀를 발로 차버렸고 눈 깜짝할 새에 코 앞으로 다가온 천사의 주먹이 여자를덮쳤다.
피와 고깃덩이가 흰 털을 붉게 물들였고 소녀의 커다란 눈망울엔 공포가 가득 어렸다.
천사가 조각난 여자를 천천히 주워 삼키기 시작했을 때 소녀는 거의 혼절할 것 마냥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아그윽...... 그윽......"
그 때, 고깃덩이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비틀렸다.
"그르륵...... 끄륵......"
고깃덩이는 뭉치고 자라나며 다시 인간의 형상을 갖췄다.
"으아...... 더럽게 아프네......"
이후 여자는 말 그대로 악귀가 들린 것처럼 싸웠다. 주먹이 맞부딪칠 때마다 팔이 터져나갔으나 개의치 않고 다른 한 쪽 주먹을 내질렀다. 끝없는 소모전 끝에 천사의 금속 머리가 탄성 한계치를 넘는 구간까지 비틀렸다.
# # #
"저게 뭐냐고?"
더 이상 옷이라 하기도 애매한 천 조각을 걸쳐입던 여자는 소녀의 이상한 질문에 반문했다.
"저게 뭔지 모르는 거야? 붉은 천사잖아."
용의 오만함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결국 신과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 중에 신과 연결이 끊겨 자력으론 영원을 살아갈 수 없는 천사들을 '붉은 천사'라 한다. 자신들의 심장을 움직이기 위해 끝 없이 열량을 소비해야 하는 이들이 모든 것을 삼켜대는 탓에 세계는 멸망 직전이다.
하지만 소녀는 이 당연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 했다.
"넌 대체 뭐냐"
사실 이상한 것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갑자기 결혼을 하라는 둥, '그 짓'을 하라는 둥, 짚고 넘어가야 할 게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천사는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할 인물이 아니었다.
여자는 주먹을 쥐고 다시 한 번 물었다.
"너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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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수상해요? 하지만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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