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예상과는 달리
서용석은
온전히 사냥감에 대한 생각만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크레디트 에우로파(Credit Europa)의 얀 베르그만(Jan Bergmann) 회장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저 늙은 자본가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자본주의의 괴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헬기에서 뛰어내리고,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상태로
행렬을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호흡.
2시간 가깝도록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눈 내린 산을 걷고 있음에도,
그의 호흡은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서용석은
그 부분이 신경 쓰였다.
전투화와는 이질적인
구두의 눈 밟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호흡은 안정되어 있었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서용석이
저 알 수 없는 미지의 인물을 평가하는 잣대는
오직 하나뿐이다.
공화국에 득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해가 될 것인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조국에
원심분리기를 제공하고,
미국이 알 수 없도록 자금을 투자하고,
체제 유지를 위한 도움을 주기로 한
유럽 투자은행의 회장이라고 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득이 된다.
물론
가슴속에 시커먼 칼을 감추고 있겠지만,
향후에 공화국의 자원과 인민을 침탈하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득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득이 된다.
그저 유럽계 투자은행의 회장이라면.
그러나 지금은?
지금 그가 보여 주는 모습은
유럽계 투자은행의 회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고급 양복과 모직 코트,
가죽 구두를 걸치고
헬리콥터에서 강하해
2시간이 넘도록 설산을 행군하면서
숨 한 번 흐트러지지 않은 남자를,
그저
유럽에서 온 투자은행 회장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단지
사람을 사냥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타락한 자본가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다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535부대원 중 일부를
경호원으로 쓰고 싶다고?
그래서
그 실력을 직접 보고 싶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의도가 있다.
분명히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535에,
지금 이 현장에 접근한 것이다.
왜일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공화국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서용석은
다양한 상황을 염두에 두기로 했다.
그가
헬리콥터에서 스스로 뛰어내리는 것을
동승하고 있던
통역사가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함경북도의 이름 없는 산야에서
가혹한 자연환경에 의해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한다 해도,
그가 스스로 자초했다는 증명을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