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간은 무정하게 지나가 오늘 하루도 모든 수업이 끝났다.
그러나 1학년 애들은 계속 교실에 남아 있었다.
구경거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비이 제스텔이 3학년의 가짜 마법사 선배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그걸 지켜보기 위해 애들은 히죽거리며 계속 교실에 있었다.
비이는 그것을 알고 이를 물었다.
자기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생들도 자신에게는 무심했다.
보유 마력량도 모자라고 마력 속성도 하나밖에 없는, 이미 미래가 정해진 열등생.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애초에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학원을 나가기 싫었다.
어머니는 그녀가 9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도 모른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지내던 그녀는 신체검사 중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운 좋게도 사제의 소개장을 받아 보흐봉 마법 학원에 보내졌다.
이제 와서 학원을 나간다 한들 고아원에서 그녀를 다시 받아줄 리가 없다.
일단 학원과 가까운 마을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지내는 것이 최선이겠지.
돈을 모으면 학원과 먼 곳으로 떠난다는 선택지도 생긴다.
그러나 그것보다 그녀의 발을 묶는 것은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기회였다.
저택의 하급 시녀나 여관의 종업원 따위는 마법사와 비교한다면 너무나도 하찮은 직업이었다.
평생 다시 없을 기회를 놓치기는 싫었다.
그러나 학원에 와서 깨달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란 건 다른 이들에 비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비이는 마력 거지라는 별명이 붙어서는 매일 괴롭힘을 당하며 비웃음만 사는 열등생이 되었다.
그럼에도 학원을 관두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집착이 비이는 너무나도 추하다고 생각했다.
“비비!”
“!”
비이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교실 문 앞에 에이가 와 있었다.
“나 왔다네. 나오게.”
비이의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리디아 패거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터, 데인, 로함, 실은 살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리디아는 기대감이 담긴 눈빛을 띤 채 웃고 있었다.
“비비. 뭐 하나. 안 나오고.”
에이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재촉했다.
“…….”
만약 여기서 에이를 따라간다면.
지금 당장은 리디아 패거리를 피할 수 있겠지만 결국 잠시뿐이다.
내일.
아니면 기숙사로 돌아가자마자 그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자신에게 보복이 뒤따를 터였다.
결국 애초부터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에이에게로 다가갔다.
“에이 선배. 죄송하지만 오늘은 같이 가지 못할 것 같아요.”
“왜지?”
에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들과 마법 훈련을 하기로 해서요.”
“…….”
에이의 시선이 교실 안쪽을 향했다.
“그렇군. 그렇다면 나도 따라가겠네.”
그녀가 말한 순간 리디아 패거리의 얼굴에 당혹감이 드리웠다.
“네? 선배가요?”
비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한 자네들끼리 하는 것보다야 내가 따라가는 편이 훈련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나.”
에이의 시선이 리디아를 향했다.
리디아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가 곧 피식 웃었다.
“괜찮은 생각이네요.”
책상 위에 앉아 있던 리디아가 일어나며 말했다.
“선배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저희도 나쁠 게 없죠.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
“재밌겠는걸.”
덩치 큰 문터와 은귀걸이를 한 실이 대답했다.
“선배……. 왜…….”
비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으나 에이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 뒤돌아섰다.
“그럼 연습하기 좋은 곳을 안내하지. 따라오게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복도로 나갔다.
뒤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고 비이는 당황함과 불안함 속에서 발을 옮겼다.
에이가 애들을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보흐봉 마법 학원의 뒷산이었다.
비이는 한쪽 구석에 있는 풀로 가려진 오솔길을 슬쩍 훔쳐보았다.
저 길을 따라가면 얼마 전 에이와 자신이 처음으로 만났던 절벽이 있었다.
“꽤 멀리 왔네요?”
리디아가 에이를 보며 말했다.
“음. 여기라면 우리가 좀 시끄럽게 연습을 해도 아무도 듣지 못할 테니까. 훈련에 적합하지 않나?”
“뭐, 그렇네요.”
“그래서 자네들은 오늘 어떤 마법을 연습하려고 했지?”
“전투 마법이요. 팀을 나눠서 모의 전투를 할 생각이었어요.”
비이의 표정이 굳었다.
그딴 계획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에이가 따라온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리디아는 전투 마법 운운할 생각이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음. 그럼 팀은 어떻게 나눌 거지?”
“원래는 3대 3으로 나눌 생각이었는데 선배가 왔으니 이건 어떨까요? 선배랑 비이가 팀을 이루고 저희 다섯이 한 팀이 되는 거죠.”
비이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저희보다 두 학년이나 위에 계시니까 이 정도 페널티는 아무렇지도 않으시겠죠?”
리디아는 방긋방긋 웃으며 말하고 있었으나 누가 봐도 도발이었다.
“그래. 자네 말대로야. 그 정도는 되어야 수준이 맞겠지.”
비이와 리디아 패거리의 눈이 동시에 동그래졌다.
내내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던 리디아조차 눈을 깜빡거리며 에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법의 종류에는 제한을 두지 않되 전투 공간은 이 주변으로 한정하지. 전원 전투 불능이 되는 쪽의 패배로 하면 되겠나?”
에이가 히죽거리며 물었다.
“……그거 좋네요.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리디아가 한쪽 입가를 올리며 물었다.
그걸 본 리디아 패거리의 얼굴이 굳었다.
저 표정은 리디아가 짜증을 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상한 질문이로군.”
에이가 고개를 크게 기울이며 말했다.
“2대 5로 팀을 나누는 것이 공평하다고 한 건 자네가 아닌가. 이제 와서 무슨 소리인가?”
“…….”
리디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패거리를 돌아보았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 리디아였으나 싸늘하게 식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네 사람은 바로 알아챘다.
리디아는 전력으로 상대할 것을 명령하고 있었다.
리디아 패거리가 마법봉을 꺼내들었다.
“비비. 자네도 마법봉 꺼내야지.”
에이가 마법봉을 들고 비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비이는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법봉 들게.”
에이가 한 번 더 마법봉 얘기를 하자 비이는 머뭇거리면서 자신의 마법봉을 들었다.
“그러면 시작하지.”
에이가 말했다.
그러자 키 작은 데인과 머리가 긴 로함이 동시에 주문을 외웠다.
“땅속 깊은 곳. 선잠을 자는 그대를 부르니…….”
“모든 것을 삼키며 힘을 더해가는 열기의 직선. 나의 마력을 그대의 먹이로서…….”
‘중급 주문!’
비이가 이를 물었다.
두 사람이 외우는 건 흙인형 소환과 작열 광선이었다.
둘 다 배운 지 사흘도 지나지 않은 중급 전투 마법이었다.
“…영혼조차 얼어붙는 냉기의 감옥.”
거기에 더해 은귀걸이를 낀 실까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에 비해 에이는 팔짱을 낀 채로 세 사람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역시 어렵겠군.”
에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마법봉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주먹만 한 화염구 세 개가 세 사람에게 직선으로 날아가 각자가 든 마법봉을 맞췄다.
퍼엉!
“앗!”
“으악!”
“꺅!”
폭발음과 함께 세 사람의 비명이 울렸다.
각기 다른 모습의 마법봉 세 개는 똑같이 가운데가 부러진 채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문터와 비이는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리디아의 표정은 더욱 딱딱해졌다.
“마법을 사용하는 전투에서 제대로 된 방어 대책도 세우지 않고 주문을 외우는 건 날 공격해달라고 조르는 일이나 다름없네. 더군다나 자네들은 다섯이나 한 팀이었는데도 말이지. 앞으로는 공방을 나누는 전략을 세우도록 하게.”
에이는 그렇게 말하고 마법봉 끝을 까딱거렸다.
“자. 이걸로 자네 셋은 마법을 쓸 수 없으니 전투 불능이지. 다치기 싫다면 뒤로 빠져 있게나.”
마법봉을 잃은 세 사람이 당황한 얼굴로 리디아를 돌아보았다.
“꺼져.”
리디아가 짧게 말하자 세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그녀의 뒤쪽으로 물러났다.
“무슨 속임수를 쓴 거죠?”
“속임수라니? 무슨 말인가?”
에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리디아를 쳐다보았다.
“시치미 떼지 말아요. 방금 주문도 쓰지 않고 중급 마법인 화염연탄을 사용했잖아요.”
“자네 아무래도 보건실에서 눈을 좀 봐달라고 해야겠군. 내가 쓴 건 초급 마법인 화염구야. 화염연탄으로 만들어지는 염구는 크기가 더 크고 유선형이라네.”
“그런데 어떻게 주문도 외우지 않고 세 발이 동시에…!”
“마법은 많이 쓰면 쓸수록 익숙해져서 의식하지 않고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마치 숨 쉬는 것처럼.”
“그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방금은 화염구가 동시에 세 발 나갔잖아요!”
“그야 당연하지. 화염구 마법을 세 번 사용하는 동시에 지연 마법을 사용했으니까.”
“……뭐?”
리디아가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것도 잊고 중얼거렸다.
“무영창으로 종류가 다른 마법을 동시에 사용한다고? 그런 일이…….”
“연습만 많이 한다면 가능하다네. 대충 마력 사용의 부작용으로 눈, 코, 입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마법을 반복 사용하면 말이야. 아무리 가짜 마법사라고 불릴 정도로 마력이 없어도 이 정도 일은 가능하거든.”
리디아와 문터의 얼굴이 굳어졌다.
두근!
“…….”
비이는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어째선지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자. 그럼 모의 전투를 계속해볼까.”
에이가 마법봉을 들자 리디아와 문터가 움찔 어깨를 떨며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자, 비비. 자네 차례라네.”
“……네?”
비이의 눈이 주먹만 해졌다.
자신의 이름이 불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녀였다.
“뭘 그리 놀라나. 마법 훈련을 위해서 왔으니 전투에 참여해야지. 다만 지금 이대로 2대 2를 하면 아무런 훈련도 되지 않을 테니 자네 혼자 저 둘을 상대하게.”
에이의 말을 듣고 있던 리디아와 문터, 그리고 다른 세 사람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하, 하지만……!”
“비비.”
비이의 곁으로 다가간 에이가 입을 상대의 귓가로 가져갔다.
“나는 죽고 싶어서 죽음을 선택하는 이는 없다고 생각한다네. 인간이라는 건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삶을 갈망하는 존재야.”
비이의 몸이 굳었다.
“날 죽이려는 이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면 물어뜯고 할퀴고 들이받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구멍은 절대 보이지 않으니까.”
에이는 비이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마법봉을 든 채 팔짱을 꼈다.
“자, 시작하게나.”
문터는 고개를 돌려 리디아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지?”
리디아는 비이 뒤쪽에 떨어져서 선 에이를 쳐다보았다.
“……전력으로 해.”
그녀는 문터만 들을 수 있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사망자가 나오면 전부 저 가짜 마법사의 탓으로 돌리면 되니까. 선배인 데다가 우리를 여기로 데리고 왔잖아?”
“과연. 알겠어.”
문터가 씩 웃은 뒤 마법봉을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리디아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두 사람을 가리는 반투명한 방패가 나타났다.
보호막 마법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비이는 이를 물었다.
리디아는 방어를 했고 문터는 공격 주문을 외웠다.
이러면 아까 에이가 했던 것처럼 빈틈을 노려 마법봉을 부러뜨리는 전략은 쓸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에이가 방금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도망칠 수 없다면 물어뜯고 할퀴고 들이받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구멍은 절대 보이지 않으니까.’
‘……물어뜯고 할퀴고 들이받으라고.’
비이는 마법봉을 꼭 쥐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매일 이어지는 괴롭힘 속에서 그녀는 수없이 리디아 패거리를 때려눕히고 불태워 죽이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걸 실천으로 옮긴 적은 없었다.
후환이 두려워서.
실패하고 보복당할 것이 뻔해서.
학생으로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니까.
폭력에 의존하면 자신도 쓰레기가 되니까.
‘그게 어쨌다는 거지?’
비이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되든 아무것도 못 하고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뒤에는 자신이 뛰어내리려고 하던 절벽.
그리고 앞에는 히죽거리며 주문을 외우고 있는 문터와 패거리의 리더인 리디아.
자신이 돌진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이제는 확실하게 보였다.
“앗!”
“뭐야!?”
“미쳤나?”
마법봉을 잃고 허수아비처럼 서 있던 리디아 패거리 세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비이가 마법봉을 쥔 채 문터와 리디아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아니…!”
문터가 깜짝 놀라 움찔거렸다.
그 바람에 집중이 흔들리며 방금까지 마법을 지탱하던 마력 일부가 흩어졌다.
“문터 이 멍청아! 집중해!”
리디아가 소리를 질렀다.
문터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신의 마력을 조절했으나 그때는 이미 비이의 마법봉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바람이여!”
그것은 마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조잡했다.
단순히 마력의 방출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비이 주변에서 일어난 돌풍은 그녀의 의도대로 흙바람을 일으켰다.
“이런! 눈에 먼지가!”
“쯧!”
문터와 리디아가 동시에 눈을 소매로 가렸다.
그 사이 비이는 두 사람의 뒤로 돌아가 다시 마법봉을 들었다.
그리고 문터의 등에 마법봉의 끝을 댔다.
“잠까……!”
문터가 깜짝 놀라 뒤로 돌려고 했지만 이미 비이는 마력을 방출했다.
“커헉!”
주문도 시동어도 없이 이뤄진 영거리 무속성 마력 방출.
문터는 마치 척추에 거대한 주먹을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쿵!
몸집이 큰 그가 바닥에 그대로 쓰러지며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다음은…!’
비이가 리디아를 향해 마법봉을 겨누려던 그때.
“번개여. 내리쳐라.”
파지직!!
“!!!”
눈부신 스파크와 함께 비이가 경련했다.
그녀는 입을 벌린 채로 바닥에 쓰러진 뒤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과연. 마법 전투라는 건 정말 재밌네.”
비이 바로 옆에 선 리디아가 웃으며 말했다.
“공방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돌발사태도 계속 일어나고. 수업 때 배운 공격 마법보다 다른 방식의 공격이 더 효과적이기도 하네. 고마워, 비이. 설마 너한테서도 배울 점이 있을 줄은 몰랐어.”
단순한 시동어를 이용한 속성 마력의 방출.
그리고 마법봉을 갖다 댄 채 행하는 영거리 마법 공격.
전부 비이를 따라한 것이었다.
“하지만 비이. 설마 네가 정말로 덤빌 줄이야. 혹시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리디아의 마법봉이 비이의 머리 위에 놓였다.
“마력 거지 주제에. 건방지게.”
마력이 모이며 마법봉의 끝이 노랗게 빛났다.
“닥쳐.”
“!?”
리디아는 몸을 뒤로 확 젖히려고 했다.
그러나 손목을 단단히 잡힌 바람에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다.
“이겨? 승부?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비이가 무릎을 세우며 일어섰다.
그녀의 손아귀에 잡힌 리디아의 손목 부분이 새하얬다.
“아, 아파! 당장 이거 놓지 못해!”
리디아가 소리를 질렀다.
“죽일 거야.”
“뭐…?”
“두 눈을 파내고 목을 물어뜯고. 뼈가 네 그 새하얀 가죽을 뚫고 나오도록 부러뜨려서.”
비이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널 죽일 거야. 그렇게 해서 난 살아남을 거야. 그리고 계속 이 학원에 다닐 거야.”
“뭐, 뭐라는 거야! 미쳤어!?”
리디아는 소리를 지르며 손목을 비틀었다.
그러자 그녀의 마법봉이 비이의 배를 향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리디아는 다시 한번 번개 속성의 마력을 방출했다.
마력을 맞은 비이의 몸이 경련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에는 쓰러지지 않았다.
“어, 어떻게…….”
리디아의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너희가 있으면 난 살 수가 없어. 그러니까 죽일 거야.”
그녀가 반대쪽 손에 들린 마법봉을 들어 리디아의 얼굴에 겨누었다.
“바람이여!”
마법봉 끝에서 뿜어져 나온 날카로운 바람이 상대의 얼굴을 그대로 삼켰다.
“꺄아아악!!”
어마어마한 고통에 리디아는 바닥에 누워 뒹굴었다.
얼굴에서 분출된 피가 짙은 고동색의 흙 위에 뿌려졌다.
비이는 리디아가 놓친 마법봉을 저 멀리 걷어찼다.
그런 뒤 상처를 입고 바닥을 뒹구는 짐승을 향해 다시 마법봉을 겨누었다.
“거기까지.”
비이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에이가 리디아의 머리맡에 와 있었다.
“리디아 팀 전원이 전투 불능이 되었으니 이걸로 훈련은 끝났다네.”
“비켜요. 선배.”
비이는 리디아를 겨눈 마법봉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비비, 방금 학원을 계속 다닐 거라고 하지 않았나. 이성적으로 행동하게.”
“……선배 말이 맞네요.”
비이가 마법봉을 거두자 뒤에서 지켜보던 리디아 패거리의 세 사람이 한숨을 내쉬었다.
참고로 문터는 아직 기절 중이었다.
에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법봉을 들었다.
그리고 리디아를 향해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갈기갈기 찢겼던 피부가 붙으며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왔다.
“아…….”
리디아가 뒹구던 것을 멈추고 얼굴에서 손을 뗐다.
“자, 그럼 훈련의 마무리를 하도록 할까.”
에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문터의 마법봉이 들려 있었다.
이후 에이는 금언 계약의 주문을 이용해 리디아 패거리가 오늘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도록 맹세하게 시켰다.
물론 설득 과정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약간의 마력이 곁들여졌다.
“혹시나 싶어 말해두는 건데 자네들, 오늘 일을 원한 삼아 비비에게 쓸데없는 시비는 걸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에이가 품에서 녹색의 보석을 꺼내어 들자 비이의 눈이 커졌다.
분명 어제 받은 마석과 똑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에이가 보석을 손가락으로 톡 치자 공중에 영상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영상에는 리디아 패거리가 뒷산에서 비이를 괴롭히고 있는 장면이 실려 있었다.
‘이건…….’
비이의 입이 벌어졌다.
그건 그녀가 절벽에 몸을 던지려던 그날의 기억이었다.
“이, 이게 대체 뭐죠…….”
안 그래도 하얀 리디아의 얼굴이 완전히 핏기를 잃었다.
“보고도 모르겠나? 역시 자네는 눈을 치료받는 게 좋겠군. 자네들이 저지른 과거의 일이지 않나.”
“…….”
리디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능력 중시인 선생들이라 하더라도 학원 외부에 이런 모습이 유출되면 매~우 곤란해질걸세. 그렇게 된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자네라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지?”
“…….”
“그러면 이제 내려가게. 부디 현명하게 굴라고.”
리디아 패거리는 빠른 발걸음으로 에이와 비이에게서 멀어졌다.
“……선배.”
“왜 그러나?”
“묻고 싶은 게 잔뜩 있는데요.”
“으음. 물어보게나.”
“일단 그 녹색 보석. 마석 아니었어요?”
“이 보석은 내가 만든 기록 마도구라네.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영상으로 남겨주지. 게다가 공유 기능도 갖추고 있어서 일정 거리 내에서는 다른 마석에 기록된 영상도 볼 수 있다네.”
“……그런 거였군요.”
“자, 다른 질문은?”
에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아까 리디아의 마력에 당했을 때. 몸이 무척이나 빠르게 회복되었어요. 마치 내성이라도 생긴 것처럼요. 혹시 이건…….”
“물론 자네가 며칠 동안 반복해서 받았던 마력 자극 장치의 영향이지. 초급 마법도 아닌 단순한 마력 방출이라면 이제 5번은 견딜 수 있을 거야.”
“애초에 마력 보유량을 늘리기 위한 실험이 아니었던 거군요.”
“당연하지. 마력 보유량이라는 건 9할은 재능의 영향을 받고 1할은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성장한다네. 단순한 자극 정도로 마력이 늘어난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아…….”
비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어떤가. 속이 좀 시원한가?”
“내일 쟤네들이랑 마주칠 생각하면 체할 것 같은데요.”
“그런 것치고는 죽인다고 반복해서 말할 때는 즐겁게 웃고 있던데. 자네 혹시 살인마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
비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에이는 그런 비이를 보며 히죽거렸다.
잠시 간의 침묵이 이어진 뒤.
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는…… 저에 대해서 전부 알고 있던 상태에서 이런 일을 꾸민 건가요?”
“음. 뒷산에서 마도구 제작을 위한 재료를 구하고 있는데 우연히 자네와 리디아 패거리의 모습을 보게 되어서 말이야. 여기서 계속 그런 일을 벌이면 재료 수집에 방해거든. 그래서 조금 손을 썼지.”
“…….”
비이는 리디아가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마력 거지라는 별명이 붙은 자신보다도 마력 보유량이 적은 선배.
어쩌면 선배 역시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녀는 자신보다 못한 처지면서도 이 학원에서 3학년까지 버티고 있었다.
“더 물어볼 건 없나?”
비이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나 곧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러면 이제 자네도 내려가게. 나는 여기 온 김에 마도구의 재료를 모아가려고 하거든. 아,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인체 실험은 더 이상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에이는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절벽 반대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갔다.
자리에 남은 비이는 멀어지는 에이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학원 쪽을 향했다.
***
다음날, 해가 저문 시각.
비이는 구 기숙사의 버려진 창고를 찾았다.
그녀가 다가서도 이전과 달리 문은 자동으로 열리지 않았다.
“크흠.”
비이가 헛기침을 한 뒤 문을 두드리려던 그때.
문이 확 열렸다.
“!”
깜짝 놀란 그녀가 뒷걸음질을 쳤다.
“비비? 무슨 일인가?”
에이가 두꺼운 녹색 렌즈가 달린 안경을 쓴 채로 물었다.
“설마 그 애들이 또 시비를 걸기라도 했나?”
“…아뇨.”
몸을 뒤로 당기고 있던 비이는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에이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에이 선배.”
“뭔가?”
“부탁할 게 있어요.”
“부탁?”
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선배의 조수로 써 주세요.”
“……조수라고?”
비이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내게 보은이라도 할 생각인가?”
“…….”
“음. 하지만 자네는 내 조수를 맡기에는 한참 부족한데. 내 생각에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것 같구만. 적어도 2년은 더 정규 수업을 듣고 오는 게….”
“그러면 선배가 가르쳐주세요.”
“뭐라고?”
“2년은 너무 늦잖아요. 하지만 선배가 마법이랑 마도구에 대해 따로 가르쳐주면 좀 시간이 단축되지 않겠어요?”
“자네, 생각은 하고 말하는 건가? 자네를 가르치는 시간만큼 내게는 손해가 되지 않나.”
“책에서 읽은 건데 남을 가르치면 자신이 모자란 걸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해요. 게다가 가르치는 것만으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있다고 하고요. 그렇다면 선배에게도 이득이잖아요.”
에이의 얼굴이 펴지질 않자 비이가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만약 선배가 끝까지 거부한다면 멋대로 구 기숙사에 공방을 만들었다고 선생님께 보고할 거예요.”
그 순간, 에이가 입을 쩍 벌렸다.
“자네 생각보다 뻔뻔하구만. 그저 소심하고 겁많은 아이인 줄 알았는데 은인을 도리어 협박하다니.”
“뻔뻔해도 좋아요. 선배랑 같이 있고 싶어요.”
비이는 에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
에이가 아무 말도 없이 눈을 깜빡거리길 약 10초.
“안 돼요?”
비이가 물었다.
“후.”
에이가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더니 뒤돌아섰다.
“이것도 내가 초래한 일이겠지. 최대한 빠르게 배우겠다는 자네의 말, 믿어 보겠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공방으로 들어갔다.
비이의 얼굴이 확 펴졌다.
“고마워요, 선배!”
그녀는 활짝 웃는 얼굴로 에이를 따라 공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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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흐봉 학원 마도구 개발 동아리]
<불량아의 거래>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