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화랑이 뭐하고 있나 궁금했을 뿐이다.
아니 잠시 못 봤다고 보고 싶어졌을 지도 모른다.
꼭 어린애 다루는 것 마냥 오빠 노릇하는 그 거친 손길이 거슬리지만 그래도 싫지 않았다.아니 좋아한다.. 그 손길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 느낌..가끔은 능청스럽고 장난치는 투는 밉상이지만 그래도 내 심장을 뛰게 만드는 녀석이다.
그 녀석이 고결한 공작가의 여자보다 날 선택해 줬을 땐 머릿속이 핑 돌아 정신을 붙들고 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날 안아 주고 이마에 키스를 받았을 땐 처음으로 여자로 태어난게 너무 행복했다.. 난 그 녀석을 믿었다.. 그 눈은 절대 날 속이는 눈이 아니었으니깐.
“(거짓말쟁이....)”
로즈는 후드를 눌러쓰고 이를 악 문채로 로즈마리의 배를 강하게 치고는 앞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으랴아!”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그 모습을 본 안젤리카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로즈를 뒤따르기 시작했다.그리고 마차 안에 화랑이 아리아와 함께 오긋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흘겨보고는 절망적인 마음으로 로즈를 맹추격했다.
벨터도 로즈가 본 것을 보았지만 전부 오해 일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화랑의 눈엔 거짓이 없음을 벨터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마차 안에 무슨 일이 펼쳐졌던 그것은 화랑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오해 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그렇기에 딱히 로즈를 따라갈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곧 돌아 올 것이다.더 재밌는 얼굴을 하고서 나타날 모습이 너무나도 기대되고 있었다.
반면 로즈와 안젤리카가 갑자기 대열에서 이탈하자 휴이는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 두 사람이 없으면 마차를 사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로즈는 후드를 눌러쓴 채 괴로운 얼굴로 눈물을 흘기며 지나간 것을 본 한스 브라이튼은 혹시 하는 마음에 로즈가 지키던 측면으로 이동하여 마차 내부를 살피고는 깊은 한숨을 쉬고서 이마를 짚었다.
아리아도 화랑도, 너무나도 평화롭게 햇살을 받으며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단지 화랑이 아리아 공녀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있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태어나서 그렇게 행복했던 적도 없었지만 이토록 가슴 아프고 괴로운 경험도 처음이었다.
로즈는 탁 트인 시야를 바라보고는 울컥하는 감정을 제어하며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좋아했던 녀석한테 배신당한 처절한 아픔이 마음을 마구 멍들게 하고 있었다.
화랑 스스로 아리아 무릎에 머리를 뉘웠고 그녀는 미소 지으며 화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것도 매우 행복한 얼굴로...
“으아아아아-!!”
로즈는 목청 터져라 고함을 내질렀다.
가슴 속에 밀려드는 답답함과 분노 그리고 괴로움을 마음껏 소리내어 끄집어내고 있었다.하지만 전혀 개운하거나 편해지지 않았다.
뒤쫓던 안젤리카는 로즈가 방향을 틀고 숲으로 들어가자 이내 추격 멈추고 그 자리에서 대기했다.
이제 저 숲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전부 사라질 것이 분명했고 거기에 휘말리면 자신조차 위험해 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즈가 이탈한지 어느덧 4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와 마법사가 돌아올 기미가 없자 휴이는 특단에 대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어 졌다.
현재 레드 플라워 용병단에 움직임 수상한데다 두 명이 이탈한 부분은 좋지 않은 전조를 나타낸다.현재 배틀 엑스 용병단과 벨터 아스테만으론 아리아 공녀의 안전을 보장 받기 어려웠다.
이내 휴이는 마차와 호위 행렬을 멈추고 마차 문을 열었다.
휴이는 잠에 빠진 두 사람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엄연히 혈통에 법도가 지엄한데 아리아는 화랑에게 너무 관대하며 무방비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리아의 숙녀로써 평가와 여인의 조심함에 흠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오레오 칼테 가르시아 공작이 아리아 공녀의 마음을 알게 되고도 화랑을 살려 둘지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휴이는 마차 안에 있던 종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 소리에 반응한 루카스와 게일은 소리를 쫓아 시선을 뒀지만 이내 휴이가 별 일 아님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시끄러운 종소리에 잠이 깬 아리아와 화랑은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무언가 포근함과 부드러움이 빰에 전달된 화랑은 아리아의 무릎을 베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악!죄.. 죄송합니다..아... 근데.. 왜 공녀님이 제 옆에?”
“신경 쓰지 마세요.. 피곤해 보이시 길래 .. ”
신경 엄청 쓰이거든요?
태어나서 무릎 배게 받은 역사가 없구요!
남들이 보면 완전 오해하잖아요?전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보지도 않고 지금은 여친도 있는 몸입니다만?
“우선 제가 범한 무례는 사과 드리고 싶습니다.. 새벽 파티를 마치고 3시간 자고 일어나는 바람에 다소 피곤했었습니다.그리고 앨보 마을 모험가 주점에서 술을 마신 것 때문에 노근함이 올라온 모양입니다.정신을 붙들지 못하고 잠이 든 점과 공녀님께 누를 끼친 점 진심으로 사과 드리겠습니다.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 드리자면 전 용병단 단장 로즈 켈 클라우디아와 사랑을 속삭이는 사이가 됐습니다.. 그녀한태 오해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아리아 공녀님에게 피해가 없도록 미리 말씀 드리겠습니다”
화랑의 말을 들은 휴이와 아리아는 각자 다른 반응과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티 자리에서 게임 할 때 화랑과 아리아의 분위기를 읽은 휴이 였다.하지만 이토록 단호하게 자기주장을 펼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사실 불순한 의도만 있었다면 두 여자 사이를 오가거나 공작가의 영애를 홀려 한 목 잡으려 했을 텐데 말이다.
휴이는 화랑의 의도와 생각을 알게 되어 안도했다.
반면 화랑의 마음을 알게 된 아리아는 전혀 동요하지 않은 얼굴로 차분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애초에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임은 그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물론 사랑을 속삭이거나 맹세한 상대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기뻤지만 그렇다고 그와 이루어 질 수 없는 현실을 부정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그녀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운명은 언니와 같이 아버지가 정한 정혼자 이외 그 누구와도 사랑을 속삭이지 못하기에 그저 레아를 부러워했던 것이다.막시무스 랏테 에우르고 공작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 확장보단 가족의 행복을 우선시 했다.레아가 평생 혼자 살겠다고 결정하면 그는 그것을 존중해 줄 만큼 가족을 우선으로 여기는 인물이었다.그런 아버지를 둔 레아를 아리아는 부러워했다.
단지 잠시 화랑을 통해 꿈이라도 꾸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녀보다 더 현실적인 면을 들어낸 것은 화랑이었다.
“제가 더 죄송스럽네요.. 화랑님에게 피해를 드린 것은 아닌지..”
“그런 것은 없습니다.다만 앞으로 조금만 주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휴이는 마차에 탑승하여 화랑을 바라보고는 현재 상황을 대략적으로 알려주기 시작했다.
로즈가 갑자기 위치를 이탈해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었던 찰라였다.그리고 떠오른 것이 자기가 아리아의 무릎을 베고 누운 것을 보고 오해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에 처박혔다.
“그 녀석 어디로 갔는데?”
“그건 잘.. 요 앞에는 길이 두 갈래야.. 거기다 숲이나 강으로 빠지는 길들이 존재해서 어디로 갔는지 그건 알 수 없어.. ”
“방법이 없는 거야??부탁해 급하단 말이야”
로즈로부터 오해를 풀어야만 했다.
그 녀석은 단순한데다 어리숙해서 이런 장면을 보고 엄청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눈에 선 했다.
“미안 도와 줄 수 없어서”
“아이씨.. ”
추적은 가능했다.
로즈가 몰고 있던 말의 말발굽은 다른 말들에 비해 깊은 발굽 자국을 남겼다.
그건 그녀의 말이 지탱하는 무게가 무겁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만 추이해 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화랑이 빠지면 아리아의 안전이 크게 위협 받게 되기 때문에 휴이는 그를 보낼 수 없었다.
아리아는 휴이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화랑에게 재차 사과를 했으나 난 그것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화랑?!화랑!!내 말 잘 들어줘”
그녀석이 걱정되서 정신이 먹통이다.근데 휴이 녀석은 자꾸 자기 계획을 강조하며 안전 대책만을 늘어놓고 있었다.현재 상태가 최악인 점을 고려하면 아리아도 방치하고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내 맹세와 행동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지금 그 녀석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괴로움에 눈물을 흘릴 지도 모른단 말이다.
“알았어?화랑 내 말 알아들었냐고?”
“알았어!알았다고!!다 들었으니깐 그만해 좀!”
내 날카롭고 격한 반응에 휴이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고는 아리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마차 밖으로 나섰다.
죄책감이 밀려온 아리아는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휴이의 지시에 따라 마차를 벗어 날 수 없다.거기다 찾아 떠난다 해도 어디 갔는지 찾아낼 방도가 나에겐 없었다.
마차는 드디어 두 갈래 길을 앞두게 되었다.
하지만 밋스 마을은 경비병들에게 통제되고 있었다.휴이는 의아한 얼굴로 곧바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귀족 마차를 발견한 병사들은 마차 앞을 가로막아 섰다.
“죄송하지만 이 앞은 통제되었습니다 다른 길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입니까?”
“화제입니다.. 2시간 전 믹스 마을 여관에서 시작된 불이 온 마을로 번져 그곳으로는 갈 수 가 없습니다.”
저 멀리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아 이 말은 사실임이 분명해 보였다.
미간을 찡그린 휴이는 할 수 없이 방향을 배쿠로 마을로 돌렸다.
그것을 본 테리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하늘이 자신을 돕고 있음에 신 헤데스에게 고마음을 표했다.
불안함은 밀려왔지만 화랑에게 부탁해 놓은 일이 있기 때문에 휴이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석이 로즈 때문에 걱정이 산더미라 해도 가장 최우선으로 할 것은 아리아 공녀를 지키는 것쯤 숙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오후 7시가 되자 날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1시간만 더 가면 배쿠로 마을이 나온다.오늘은 그곳에서 머물다 새벽 일찍 출발하기로 마음 먹었으나 경계를 늦출 생각은 없다.
아리아 공녀의 안전은 보장 되지만 그외 문제에 대해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마부는 램프를 밝히고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용병들도 마차에 달린 램프만을 의지하며 밤길을 이동했다.
어둠은 여행자들에도 용병들에게도 불청객이다.이동 속도가 느려지고 기습당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배쿠로 마을까지는 무사히 오게 되었고 마을 촌장이 귀족 마차 행렬을 맞이해 주었다.
“어서오십시오 배쿠로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잠시 신세 좀 지겠네.. 마을 사람들이 마차로 접근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시게나..”
“그러겠습니다”
마을은 특이점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울타리도 단단해 보였고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 인력도 존재했다.
적어도 이곳은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휴이는 루카스와 게일을 불러 레드 플라워 용병단의 수상한 의문점을 공유하며 그들을 감시할 것을 권고했다.
루카스와 게일은 휴이의 말에 수긍하며 마차의 호위는 가르시아 가문의 사병들에게 맡기고 은밀히 레드 플라워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1시간 후면 레아의 침실로 포탈을 열 시간이 다가온다.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화랑의 어두운 표정을 지켜본 아리아는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제가 로즈양에게 꼭 해명해서 화랑님의 무고를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긴 침묵속에서 용기내어 아리아는 자신의 의사를 화랑에게 밝혔다.화랑은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를 받을 입장이 아닌 걸요.. 제 불찰로 일어난 일이니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리아로 인해 한번은 내 목숨을 잃게 되었고 이번엔 로즈와 오해를 불러오긴 했지만 굉장히 착한 여성임은 분명히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고 난 그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내가 아리아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그녀와 나의 신분에 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다.현대 사회에서도 집안에 격차가 심하면 한쪽 부모로부터 반대의견이 나오는 마당에 이곳은 이세계이며 혈통의 법도라는 것이 존재하는 모양인데,어림도 없는 로맨스로 서로 상처 입는 일은 피하고 싶은 것 뿐이다.설령 내가 아리아와 사랑을 나누고 도망간다치자.. 그녀는 부자집 아가씨라는 점에서 도망자처럼 이곳저곳을 떠돌며 거지같이 살 수 있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난 현실을 직시한다.나 개인의 문제에선 도박을 강행할지 몰라도 남의 인생을 엮어 악영향을 끼치는 짓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그렇기 때문에 아리아 같은 절세미녀가 눈앞에 있어도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머릿속에는 로즈의 대한 것 뿐이다.
그 작은 땅콩은 여성미라고는 솔직히 찾아보기 힘들다.어린애 잠옷을 선호하는데다 화가 나면 담배 좀 꼬라무는 일진으로 돌변하고 다혈질 적인 성격으로 툭하면 사람을 때리고 화를 낸다.
하지만....
날 바라보며 싱그럽게 미소 짓던 그 녀석.
내 장난에 아무런 불만 없이 덤덤하게 받던 그 녀석.
내 걱정에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던 그 녀석.
승마를 가르쳐주며 웃어주던 그 녀석..
내 고백에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녀석..
그런 로즈를 난 좋아하게 됐다.
솔직히 첫 눈에 반하긴 커녕 어떻게든 때어 놓고 싶었다.전반적으로 로즈는 내 이상향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성격과 정신세계가 내가 생각하는 여성상과 거리가 있었다.
벨터 때문에 강제성이 작용해 로즈 곁에 있다 보니 점차 좋은 점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그래서 불안에 떠는 그 녀석 한태 내 마음을 전해야 했다.
대체 이 시간이 되도록 왜 돌아오지 않는지 걱정된다.
빨리 와서 나한테 따져보라고!
날이 새도록 해명해 줄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