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유성의 7일 2화 치아나
“세, 세계를 구해요?!”
“네! 세계가 위험에 처했다고요! 저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실력 좋은 트레이너 분을 찾고 있어요.”
치아나는 손을 모아 주먹을 꾹 쥔 자세로 말했다.
“.......”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솔직히 실례지만, 현실감이 없었다. 세계를 구한다니. 일단 궁금한 점을 묻기로 했다.
“그, 세계가 왜 위험해요?”
“으음, 그건 여기서 설명 드리기 좀 힘들어요.......”
“좋아요. 그, 어떻게 세계를 구해요?”
“으으, 그것도 확실한 방법까지는.......”
“저, 그럼 제가 언제까지 도우면 되는 거예요?”
“아! 그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어, 그러니까. 오늘까지 해서 7일. 딱 일 주일만 도와주시면 돼요!”
당당한 대답에 오히려 신빙성이 떨어졌다. 하긴 갑자기 세계가 위험하다니, 말도 안 된다.
설령 그게 진짜라고 해도 사람 몇 명이서, 그것도 7일 만에 막을 수 있을 리는 없다.
“저, 관장님, 관장님.”
예나가 옆에서 귓속말했다.
“이거 좀 수상한데요. 갑자기 세계를 구한다느니, 그런데도 설명은 못 한다느니. 신종 사기 같은 게 아닐까요. 아니면, 이상한 사람이라든가.”
“뭐, 확실히 수상하긴 하네요.”
“그래도!”
분위기를 읽었는지 치아나가 갑자기 소리를 냈다.
“유성의 민족의 당주 이름을 걸고 세계에 위험이 닥쳤다는 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절박한 표정이 거짓말같진 않지만, 응?
“유성의 민족?”
유성의 민족. 아까도 분명 자기를 그렇게 소개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위로 올라가면 유성의 폭포라는 이름의 폭포가 있었던 것 같은데.”
“네. 그곳이 저희 고향인데요. 거기까지만 가면 다 설명드릴 수 있어요. 그래서 저, 같이 가 주실 수 있나요?”
“고향이라고요? 유성의 폭포가?”
“네!”
내가 알기론 유성의 폭포에 사람이 살진 않았던 거 같은데. 점점 더 수상해진다.
마지막으로 치아나가 덧붙였다.
“세계를 구하는 일이에요!”
세계를 구하기 싫은 건 아니지만, 솔직히 믿기질 않았다. 예나의 말대로 사기일 가능성도 있었다.
사기라기엔 너무 어설프긴 하지만.
“저 유성의 폭포에서 왔다고 하셨죠?”
“네, 그런데요.”
“아까 실력 좋은 트레이너를 찾는다고 들었는데.”
치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 좋은 트레이너라면 다른 분들도 계시지 않나요? 유성의 폭포에서 내려왔다면 오는 길에 금탄도시도 들러서 왔을 텐데, 원규는 만나 보지 못했나요? 금탄도시의 관장인데.”
“그게, 그분께도 말씀은 드렸지만, 트레이너 스쿨? 이라는 일 때문에 자릴 비울 수 없으시다고 하셔서요.”
확실히. 원규는 새내기 트레이너의 교육 사업도 도맡아 하고 있다. 맡은 업무만 따지면 호연의 관장 중에서는 가장 바쁠 것이다.
“그, 원규님이 등화도시에 자기보다 더 뛰어난 관장님이 계신다고 하셔서요. 그래서 등화숲을 헤쳐서 다음 도시로 오려는데, 버섯꼬를 만났고. 그 뒤는... 다 아시죠?”
버섯꼬의 포자 때문에 쓰러져 여기까지 왔다는 건가.
“저, 그래서 같이 가 주실 수 있나요?”
치아나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나도 모르게 턱을 집었다.
의뢰인의 정체도 확실하지 않다. 의뢰 내용도 의문투성이다. 심지어 얼마나 걸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장의 직책이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옆에서 다시 예나가 속삭였다.
“이번 일은 거절하죠. 관장님도 바쁘시잖아요. 연구도 있으시고. 무엇보다 수상하기도 하고요.”
아마 원규도 이런 의미에서 거절했으리라. 트레이너 스쿨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유를 제대로 말해 줄 수 없다면 곤란하다. 연구도 해야 하고.
“일단 제가 데려온 거니까, 제가 처리할까요?”
표현이 무섭다.
내 무언이 동의로 이해됐는지 예나는 치아나 앞에 서서 말했다.
“저, 치아나씨? 그런 일은 보수를 먼저 제시하셔야죠.”
......? 예나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네? 보수라뇨?”
“보수라고 해야 하나. 관장님은 바쁘신 분이시거든요. 관장님을 데려가시려면, 어디 보자.......”
소곤소곤.
“네?! 그, 그렇게 많은 돈은 없어요.......”
치아나의 침울한 표정을 보니,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짐작이 갔다.
“없으시면 이야기는 끝! 안녕히 가시길.”
예나는 한 건 했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봤다. 왠지 미안해서 치아나의 얼굴을 살폈다.
“흐음, 그렇군요. 그렇다면, 여기서는 이렇게.......”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치아나는 이마에 손가락을 짚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지? 의아해하던 순간, 치아나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희 유성의 민족은 대대로 용신 레쿠쟈님의 전승을 지키던 부족으로 검소한 삶을 살아왔거든요.”
복장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당연히 보수 같은 건 받을 수도......?
“잠시만, 지금 뭐라고?”
치아나는 나를 올려다보고 빙긋 웃었다.
“유성의 민족은 대대로 용신 레쿠쟈님의 전승을 지키던 부족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치아나의 말을 이해하는 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자, 잠시만요! 레쿠쟈라면 그? 호연 지방의 전설의 포켓몬 말하는 거 맞죠? 초록색 드래곤 포켓몬! 고대 포켓몬인 그란돈과 가이오가의 싸움을 진정시켰다는 그! 다른 지방의 전설의 포켓몬 전승을 찾아봐도 보통은 무언가를 다스린다든가 창조했다든가 아니면, 다른 전설의 포켓몬과 균형을 이룬다든가 하는 이야기뿐인데, 신기하게도 레쿠쟈는 무려 다른 전설의 포켓몬들을 중재했다는 전승이 있다고요! 몇몇 문헌에 그런 레쿠쟈를 신처럼 모시는 부족이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설마 유성의 민족이라는 게.......”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눈앞에 치아나의 얼굴이 있었다. 이런, 너무 흥분했다. 예나는 익숙한 듯 질려하는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치아나는 빙긋 웃고 있었다.
“관장님께서는 용신님, 레쿠자님에게 관심이 있으신 거군요?”
치아나가 입을 열었다.
아까까진 약간 덤벙대는 분위기였는데 치아나는 레쿠쟈 얘기가 나오자마자 차분하게 변했다. 치아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경건하게 말했다.
“저희 유성의 민족은 대대로 레쿠쟈님의 전승을 지키고 전해오던 부족입니다. 강한 트레이너를 찾는 이유는 유성의 폭포까지 같이 가서야 자세히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전해드릴 수 있는 말은 세계가 큰 위험이 닥쳤다는 것뿐입니다.”
마치 무녀에게 신탁을 받는 느낌이었다. 한 번도 무녀를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만약, 저희가 알고 있는 레쿠쟈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이 관장님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을 대가로 저희를 도와주신다던가...... 하는 건 안 될까요?”
치아나의 분위기는 금세 무녀에서 소심한 아가씨로 돌아왔다. 뭐였지, 방금?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레쿠쟈
상당한 조사를 계속했었지만, 유성의 민족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어쩌면 ‘그 이야기’라는 게 지금 내 연구에 큰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체육관이 걱정이다. 지금 체육관을 떠나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이 될까....... 고민된다. 후, 아까도 생각한 거다. 고민될 때는.
고민되는 게 있으면, 네가 하고 싶은 걸 고르도록 하렴.
“후우.......”
아무래도 나 역시 아버지처럼 레쿠쟈를 고르게 된 것 같다.
“알았어요. 같이 가죠.”
“정말요! 감사합니다!”
치아나는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저, 관장님? 진짜 가시게요?”
당황하는 예나에게 약간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말을 해버린 이상 번복하는 것도 무례한 일이다.
그리고 이미 예의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자, 잠깐만요, 관장님! 체, 체육관은 어쩌고요? 허가 없이 체육관을 비우다가 또 들켰다간, 관장직 박탈당할 지도 모른다고요!”
괜한 걱정은 아니었다. 사실 저번에도 체육관을 비우고 한 달 정도 레쿠쟈를 찾아 다녔다가 결국 협회에서 경고를 받았었다.
“너무 걱정 말아요. 예나씨. 아까 7일만이라고 했고, 그때랑 달리 확실한 목적도 있잖아요?
일단은 연구 목적이니까, 아단님께 잘 말하면 될 겁니다.”
“으으, 그래도....... 아, 모르겠다! 그냥 갔다와요! 대신! 이번에야말로 레쿠쟈 꼭 찾아오셔야 해요?”
“예! 다녀올게요. 체육관 잘 부탁해요.”
“그럼, 다 된 거죠? 같이 가주시는 거죠?”
“네, 우선 주변에 연락부터 하고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주머니를 뒤져 포켓 내비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집에 두고 왔나?
“정말요? 감사합니다. 어... 그러고 보니, 아직 성함을 모르네요.”
그러고 보니 이름을 밝히지도 않았다. 업혀 와서 난리도 아니었으니.
적당히 코트를 둘러 입으며 대답했다.
“저는 등화도시의 체육관 관장을 맡고 있는 레인이라고 합니다. 풀 타입 포켓몬을 다루죠.”
p.s.
1) 레인은 등화도시의 풀 타입 관장입니다. 에이스 포켓몬은 나무킹입니다.
2) 지난 화에 기술 및 특성 설명이 빠졌었네요.
기술
-리프블레이드: 타입-풀, 위력 70(3세대에서), 명중 100, 급소에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오물공격: 타입-독, 위력 65 명중 100
-아로마테라피: 타입-풀, 아군 전원의 상태이상을 회복합니다.
특성
-포자: 스치면 독, 마비, 잠듦 상태로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