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밤의 끝에서-3-
“커피? 홍차?”
“…홍차로”
방금 24시 영업을 하는 카페에서 사 온 홍차가 담긴 유리병을 세로스에게 던져주었다.
현재 우리는 있는 장소는 비즈니스 스트리트와 레드 스트리트를 가르는 강을 이어주는 다리의 중간에 앉아있었다. 자동차와 마차, 휠 라인도 모두 지나갈 수 있게 만들어진 튼튼한 다리에는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도도 있었다.
나와 세로스는 그 인도의 한 가운데서 끝 없이 늘어선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그런 세로스의 작아 보이는 등을 쳐다보고 있었다, 찢어진 상의를 대신해서 덮어준 내 정장 상의가 아무래도 작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더 무너질 것 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먼저 말을 걸기 보다는 그녀가 먼저 말을 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런 내 생각을 그녀도 눈치 챈 것일까?
천천히 세로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미안해, 창피를 당하게 해버려서…”
창피? 아아 그런 공적인 자리에서 난동(?)비스무리한 것을 부린 것에 대해서 사과하는 건가?
“신경쓰지마, 어차피 그런 곳에 갈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고 뭣 하면 다른 명함을 쓰면 그만이야”
“하하, 넌 정말 수수께끼 투성이인 사람이네…”
그렇게 말한 세로스는 내가 건내준 홍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난 바른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주어가 없지만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제국의 부활을 위한 일들을 올바르다 생각해왔으나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입 발린 말로 그녀의 눈물을 멈춰주어야 하나? 아니, 그런 걸 나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고 하고 싶지도 않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나와 그녀는 어떤 관계였나? 처음 마주한 그 순간 검을 겨루었고 그 다음 날 밤에는 주먹을 겨뤘다, 사랑도 우정도 동정도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마주해서…나는 그녀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보수….그러고 보니 아직 제대로 정하지 않았군”
“보수…? 아 그러고 보니 그랬지”
세로스는 고개를 숙이면서 그런 것도 있었지 라고 중얼거렸다.
“십이성재보 확보라니 어지간한 S급 의뢰 이상의 위험도와 난이도라는 건 인정하겠지? 최소한 S급 최고등급의 보수를 받겠어, 하지만 그것만 으로도 부족하니 거기에 더해서…”
“더해서?”
“다음에 한번 더 너를 에스코트 하게 해줘”
말을 해 놓고도 너무나 창피한 말이었다, 로맨스 소설이냐!? 그렇게 생각한 건 나만이 아니겠지, 아까 전까지 울상이었던 세로스가 고개를 숙이고 웃고 있다.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냐~”
“그치만…쿡,후후 넌 절대 그런 말 안 하는 부류라고 생각했었단 말이야”
동감이다, 이런 말은 여태까지도 앞으로도 절대 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그런 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로스는 쭈그려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좋아, 하지만 더 이상 나를 바보 취급 하는 건 용서 못 해”
“바보취급?”
“연회장에서!”
아,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챘다, 연회장에서 돌발상황에 너무 급한 나머지 손대중 없이 덤벼온 세로스를 압도적인 실력차로 무력화시켜버렸다.
“너 얼마나 강한거야? A랭크나 B랭크니 하는 정도가 아니야”
“…원래 내가 수수께끼가 좀 많아”
그런 나의 대답에 그녀는 만족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이제는 어찌 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세로스는 기지게를 크게 켰다.
“그래, 뭘 어떻게 하던 일단은 십이성재보를 찾는 것이 우선이지, 다른 건…일단 모두 잊어버리겠어, 고민한는 건 나한테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렇게 웃어보이는 세로스의 모습은…어째서일까?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누군가의 미소와 너무나 닮아 있어서 나는…나도 모르게 흐를 것 같은 눈물을 억누르고 미소 지었다.
눈물과 함께 미소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잠깐 연회장에 두고 온 물건이 있네, 어디가지 말고 기다려 금방 가져올게!”
“급하다고 거리에서 운신(運身)의 기술을 쓰는 건 꼴불견이야”
“아직 새벽이니까 괜찮아!”
비즈니스 스트리트의 골목 어딘가.
“이런 X발! 그 개X끼! 죽여버릴거야!!”
“혀,형님 진정히세요! 쿠헥!!”
욕지거리를 내뱉고 자신을 말리는 부하를 한 주먹에 기절시킨 오른팔에 난잡한 문신이 새겨진 남자, 그 남자의 정체는 바로 방금 전 세로스를 어떻게 해보려다 잭슨에게 종이박스 던져지듯이 던져진 사내였다.
잭슨에게 굴욕을 당한대다 세로스에게 눈까지 후벼진 문신남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전 A랭크 모험가이자 비즈니스 스트리트와 레드 스트리트의 뒷골목을 오가면서 오만가지 더러운 일을 해 오던 남자는 이런 식으로 당하고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도저히 자신의 면이 서지 않았다.
“얼마나 모였냐?”
맡고 날아간 똘마니A의 모습에 똘마니B는 사색이 되어서 바로 보고 했다.
“지,지금 현재는 40명 정도 모였습니다 형님! 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이 바보자식!”
“쿠헥!?”
충분? 전혀 충분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하게 당하기는 했지만 그 때 세로스를 어떻게 하기 위해 같이 갔던 4명 까지 해서 자신들은 이전 모험가 활동부터 함께 해왔던 A랭크의 정에 중의 정예였다, 그런 자신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휙휙 정리해버린 남자를 상대로 40은 커녕 50명이와도 모자랐다.
“최소한 60, 아니 70은 모으고 전부 무장시켜!”
문신남은 그냥 두들겨 패는 것으로 복수를 마칠 생각은 추어도 없었다, 남자 놈은 다 같이 몰아붙여서 도륙을 낼 생각이었고 여자 놈은 자기들끼리 가지고 놀다가 팔아 치워서 지옥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 정도는 하지 않으면 그의 울분이 풀리지가 않았다.
“킥킥! 두고 봐라 그 건방진 녀석!! 남자 놈은 도륙을 내고 여자 놈은 노리개로 삼다 팔아주마!!”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누,누구냐!?”
문신남은 자신의 혼잣말에 누군가의 대답이 들려오자 화들짝 놀라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이 모아둔 양아치들이 가득한 뒷골목 공터도 돌아보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끝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공중에 떠 있었다.
그들이 모여있는 공터의 허공에, 달빛을 조명 삼아서 작은 그림자를 만들면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기괴한 광경 때문인지 깔끔하게 갖춰입은 신사정장과 산사모, 그리고 한쪽손에 파지한 지팡이까지도 기괴하게 보였다.
허공에 떠 있던 남자는 마치 계단을 밟고 내려오듯이 공터의 허공에서 천천히 공터의 중앙으로 걸어 내려왔다.
그 때가 되어서야 문신남은 이 사내의 정체가 방금 전에 자신들을 묵사발을 낸 남자인 것을 깨달았다.
“너, 너너! 이 개자식! 죽여버려주마!!”
본인 스스로 40명으로도 모자란다는 말을 해놓고서 막상 본인이 눈 앞에 나타나자 머리에 열이 오른 건지 다짜고짜 죽인다는 협박부터 시작했다.
“…처음 난 한 번 자비를 배풀어서 우리에게 위해를 가한 널 풀어줬다 틀린가?”
“개소리 하고 있네 이 자식들아! 무기들어!!”
“화지만 너는 뉘우치기는 커녕 이렇게 불합리한 분노로 복수를 준비했지…여기까지도 용서할 수 있다”
“덤벼!!!”
문신남의 외침에 공터에 모여있던 40명 가량의 양아치 깡패들이 각자의 날붙이를 들고 잭슨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 더러운 입에서 나와 그녀에 대해서 지껄이는 건 참을 수가 없군”
따악!
순간
무엇인가가 일어났다.
무엇인가? 그렇게 표현하는 것 이외의 방법을 문신남은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사라졌다.
덤벼든 40명 가량의 인간이 순식간에 눈 앞에서 증발해 버렸다.
그들의 몸부터 시작해서 입고 있던 옷가지 그리고 들고 휘두르려던 날붙이까지 모두 한 순간에 사라졌다.
“뭐야…뭐가 일어난거야!!!!”
“…그러고 보니 넌 모험가 출신인 것 같던데?”
한 번 집어 들어 던졌을 뿐이지만 그 때 저항했던 정도만 봐도 잭슨은 남자의 수준을 알 수 있었다.
“최소한 A랭크 언저리는 되는 것 같은데…어디 만약 내가 쓰는 기술의 정체를 맞춘다면 너 만은 살려주마”
“뭐,뭐!?”
그 순간.
“어?”
난잡한 문신이 이리저리 새겨져 있던 문신남의 왼쪽 팔이 사라졌다.
잘렸다거나 터졌다, 혹은 뭉게졌다 같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로 사라졌다.
얼마나 깔끔하게 사라졌는지 상처 단면에서 피 한 방울 조차 흐르지 않았다.
“자, 지금 나는 무엇을 한 걸까?”
잭슨은 그저 ‘어, 어’ 라는 말만을 반복하는 문신남을 형오스럽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이전부터
신경쓰고 있었던 녀석들이었는데 이번에 아주 타이밍이 좋았다.
비즈니스 스트리트와 레드 스트리트에 머물기만 하면 좋을 것을 점점 세력을 늘려 이제는 상업지구와 공업지구에 까지 손을 뻗쳐 바넬 아파트를 위협하던 녀석들, 이전에는 이런 녀석들은 적당히 정리했건만 이 녀석은 그런 이들 중에서도 특히 죄질이 나쁜 녀석이었다, 전직 A랭크 모험가 출신이면서도 동료 살해, 혹은 살해 방조의 의혹으로 모험가직을 박탈당한 쓰레기…
그런 놈이 끈덕지게 살아남아서는 부유층이 사는 거리의 어둠에 숨어들어 수 많은 더러운 일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납치 마약 성매매 살인 방화까지, 그림으로 그린 것만 같은 죽어 마땅한 녀석…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해도 괜찮아”
남자의 몸에서 양 팔 양 다리가 모두 사라져서 이제는 그에게는 몸통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힉! 히익!!”
고통은 없을 것이건만 남자는 비명도 뭣도 되지 못한 기이한 신음을 흘리면서 눈물을 질질 흘릴 뿐이었다.
“시간초과야”
끝까지 공포에 질려 입 한 번 열지 못한 문신남은 그의 40명의 동료와 똑같은 방법으로 끝내버렸다.
만약 그가 조금만 눈썰미가 좋았다면, 혹은 조금만 주의력이 좋았다면 눈치챘을 것이다
공터를 가득 메우고 있는 아주 얇은 검은 실의 무리를…
“오랜만에 쓰니까 깔끔하지가 않네”
그 한마디를 남기고 잭슨은 다시 허공으로 걸어 올라갔다.
“내가 너무 늦었나?”
“늦었다 기에는 빨랐고 일찍 왔다 기에는 늦었지”
재치 있는 대답에 웃음을 짓고 함께 집으로 가려고 하니 세로스는 발을 절룩거렸다.
“뭐야, 설마 술 좀 마셨다고 발목이 삐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바보 취급 하지 마 그런 게 아니라…”
세로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오른쪽 신발을 벗어 보였다.
“…술 취해서 발을 삔 게 아니라 그 양아치 들과 실랑이 하다 힘을 잘 못 죄서 로퍼의 굽을 날려버렸어……”
“아니 로퍼의 굽이 날라가다니 그게 무슨…진짜네…용케 신발이 형태가 남았다”
내 농담에 세로스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 내 등을 찰싹 찰싹 하고 때렸다.
“음, 이건 어쩔 수 없군”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신고 있는 구두를 벗어주었다.
“근데 이럴 때는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아?”
“공주님 안기라도 할 줄 알았냐? 그런 거 안 좋아하잖아?”
내 말에 세로스는 작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구두를 신었다, 역시 발 사이즈의 차이가 있어서인지 내구두를 신은 세로스의 모습은 조금 우스운 부분이 있었다.
”…괜찮겠어, 신발없이 가는 거?”
“레이디를 에스코트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그 말에 세로스는 웃었다, 이전 어떤 때 보다도 크게 그리고 즐겁게 웃어 보였다.
나도 웃었다, 그 웃음이 과거를 떠오르게 해서, 울 듯이 웃었다.
해가 떠올라간다.
밤이 끝이나고 새벽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우리도 새벽이 비추는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간다.
끝이 무엇인지,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로 그저 성큼성큼 집으로 걸어 돌아갔다.
긴 밤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잭슨~일어나! 일어나서 놀러가자!”
“샤샤! 그렇게 깨워봤자 안 일어난다, 기다려봐라 내가 물의 정령으로~”
아아 제발 그냥 놔두면 안되겠나요? 저 잔지 3시간 도 안됐어요.
엔틱한 시계에 그려진 시침과 초침을 보면서 올라오는 한 숨을 참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우와!”
“와!”
“와아!!”
“샤샤…오늘은 또 무슨일이야…그리고 티레사 넌 안 말리고 같이 뭐 하는 거고…”
“그, 그건 우음, 할 말이 없군…”
“잭슨! 놀자! 아논 스트리트에 가극단이 왔데!”
“가극단!?”
원래 연재일이 아니지만필받아서 써 봤습니다, 이러다 연재일인 토요일날 분량 적으면 엄청 민망한대 말입니다....
네이버 챌린지 리그에서도 연재 중입니다, 시간되시면 한 번즘 들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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