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라맛 빠기!”
“거 아침 버릇은 여전하시구만.”
성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소리쳤다. 땡땡 부은 눈과 입가에 흥건한 침 자국으로 보아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인 게 분명했다.
“흐으으…… 아직두 머리에서 하수구 냄새 나는 거 가태…….”
눈을 뜨기도 전부터 자신의 머리카락을 인중에 갖다 댄 그녀는 그렇게 찡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침 식사의 준비를 끝마친 하시는 의자에 기대앉아 커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메이드복을 갈아입고는, 자신의 캐스터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잠결에 커피 냄새를 맡은 성아가 중얼거렸다.
“하시이…… 내 건 없어……?”
“니가 직접 타서 드세요.”
“우웅…… 그래…… 라떼로 부탁해…….”
그녀는 그러고서 앉은 채로 다시 꾸벅거리기 시작했다.
“…….”
자신의 아가씨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던 하시는, 예상외로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몇 분도 안 돼서 커다란 머그잔에 카페라테가 가득 담겼다. 하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것을 한 손에 들고는, 이불 위로 침을 흘리기 시작한 성아의 정수리에 우아하게 들이부었다.
“……?! 아, 아아, 아 뜨거, 뜨거!!”
“주문하신 카페라테 매우 뜨거움 나왔습니다. 식기 전에 꼬옥 다 먹으세요.”
“아, 미안해, 하시, 하시이!”
꽤액거리며 싱크대를 찾아 나뒹구는 성아 덕분에 사무소는 떠들썩한 아침을 강제로 맞이해야만 했다.
“체육관을 내일 가라고? 아니, 왜?”
성아는 아침을 먹다 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일 가야 시트론님이랑 싸우실 수 있어요.”
“오늘은 문을 안 열어?”
“으음…… 그건 아닙니다만…….”
성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멍청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하시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마티에르가 덧대어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시트로이드가 도전자를 상대하는 날이에요. 시트론님은 한 달에 한 번만 배틀을 하는 데, 그게 아마 내일이라 그런 걸 거예요.”
그녀는 성아에게 미르 체육관의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칼로스의 중심에 위치한 미르 체육관은, 옆 도시로 세 개의 체육관이 맞닿아 있다는, 그리고 신규 트레이너가 등록을 마치는 리그 본부가 위치해 있다는 그 지리적 특성 때문에 유독 트레이너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시트론은 이러한 자신의 업무 중량을 시트로이드에게 분담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그를 찾아오는 도전자가 끊이질 않자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바로 미르 체육관의 퀴즈쇼였다.
“퀴즈쇼?”
“시트론님이랑 다수의 도전자들이 퀴즈 대결을 벌이는 거예요. 총 4문제가 나오는데, 앞에 두 문제는 틀리면 바로 탈락이고, 세 번째 문제에서 먼저 푼 사람 순으로 그날 배틀을 치를 4명이 결정되요.”
“네 번째 문제는?”
“그건 번외편 같은 거예요. 맞추면 바로 배틀이고, 틀리면 체육관 상주 트레이너랑 벌칙 배틀을 하게 되죠.”
“복잡하구만. 그냥 시트로이드랑 배틀하면 안 돼?”
그러자 하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띠, 중요한 걸 빼먹었잖아.”
“아! 그리고 이 모든 건 생방송으로 진행돼요.”
“생방송――?!”
성아가 탁자를 쾅 내리치며 마티에르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마티에르는 반짝거리는 그녀의 눈이 부담스럽다는 듯 상체를 뒤로 기울였고, 하시는 재빨리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고서 뒤로 잡아당겼다.
“으그…… 아악……!”
“진정하시고요. 그러니까 오늘은 포켓몬들을 점검하면서 내일 있을 배틀의 대비나 하자는 겁니다.”
“하시, 부티크 가자――!!”
“달팽이관은 어디 뽑아다가 꽃꽂이라도 하셨습니까? 아니, 이건 언어 능력 쪽의 문제인 건가.”
하시는 한숨을 내쉬며 성아의 이마에 촙을 한 대 쥐어박았다.
“잘 들어요. 이 방송은 칼로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송출되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냐는 성아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하시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말인즉슨, 이건 알로라에 계시는 주인마님께도 아가씨를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거죠.”
“오…… 그렇구나…….”
성아는 싱긋 웃으며 하시의 손아귀를 뿌리쳤다.
“하시야, 난 가끔씩 네가 이렇게 헛소리를 할 때마다 너도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곤 해.”
“이 아가씨가 근데 진짜.”
“예, 잘 들었구요. 전 그냥 시트로이드한테 가서 소꿉놀이나 하겠습니다――.”
뺀질거리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아를 보며, 하시가 예상했다는 듯 안타까운 한숨을 자아냈다. 그녀의 의도는 지극히 단순한 것이어서, 그저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의 동생이 성장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많이 지켜보게 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그래, 보는 것이면 된다. 지금 당장 무언가가 달라지지 않더라도, 그 순간순간들이 차곡차곡 모이면 언젠가는 두 사람의 관계도 회복되지 않을까. 하시는 내심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성아도 하시의 그런 의도를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 양반이 그런다고 바뀔 사람이었으면 내가 진즉에 챔피언 땄지.”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을 안 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옛날처럼 모든 걸 한순간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차근차근 거리를 줄여나가려고 해보세요.”
“아아아――, 몰라! 안 들려! 나 갈 거야! 가자, 얘들아!”
“저, 저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야! 안 앉아?!”
하시의 역정에도 불구하고 성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토라진 목소리로 자신의 포켓몬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라란티스와 독침붕은 관심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하시네 포켓몬들과 떠들고 있었다. 성아는 그들을 향해 몇 번이고 다그치는 소리를 내었으나, 라란티스가 일부로 콧방귀도 뀌지 않으며 성아의 말을 무시하는 바람에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당황한 성아가 고개를 돌려 레디바를 쳐다봤지만 애초에 그는 머릿속에 생각이랄게 없는 듯했고, 그나마 비비용만이 좌불안석으로 날갯짓하며 두 사람의 눈치를 볼 뿐이었다.
“이이…… 이것들이……!!”
얼굴이 벌게진 성아가 온몸을 부들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 정답. 대포무노의 부들거리기!”
하시는 그런 그녀에게 야유 섞인 핀잔을 주며 시비를 걸었고
“누, 누가 대포무노라는 거야!!”
곧 사무실은 두 자매의 정신 사나운 소란으로 가득 뒤덮이게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마티에르는 이러한 풍파 속에서도 맑은 미소를 고수하며 말했다.
“내 사무실에서 나가.”
비비용의 더듬이가 천천히 부풀었다가 사그라들었다.
“아가씨 때문에 마티 화났잖아요. 책임지세요.”
“시끄러.”
성아는 궁시렁거리는 하시의 짜증을 단칼에 잘라내며, 다시금 웃는 낯으로 비비용의 이마에 놓인 도넛 모양의 디스크를 떼어내었다.
“어때, 쓸 수 있겠어?”
비비용은 성아를 올려다보며 밝은 미소를 짓더니, 이내 눈을 감고서 미간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진 그녀의 더듬이가 빳빳하게 허리를 세웠다. 둥글게 말린 그 끝 몽우리는 거대한 자줏빛 에너지로 뒤덮였고, 비비용은 거기서 한 줌의 에너지를 떼어내어 성아의 손에 놓인 디스크를 건네받았다.
“유우우!”
“와, 이게 진짜 되네.”
그러자 하시가 그녀를 비웃었다.
“리그 우승까지 했으면서 기술머신 켜는 법도 모르는 아가씨 인생이 레전듭니다.”
“시, 시끄러!”
성아는 정곡을 찔린 듯 알딸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녀가 비비용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자, 시야의 너머로 라란티스와 독침붕이 저들끼리 기술머신을 고르고 있었다.
“어라, 레디바는?”
“이거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시는 그러고서 기술머신 무더기를 헤집으며 놀고 있는 레디바를 집어던지듯 건네주었다. 기술머신 하나가 그의 머리 위에서 밝은 빛을 내며 스며들고 있었다.
“레디바, 이런 건 막 함부로 배우면 못 써.”
“바아아?”
성아는 그런 그의 이마에 들린 기술머신을 떼어내어 하시에게 건넸다.
하시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그건 왜 잡으신 거예요?”
“왜애! 레디바가 어때서!”
“‘어때서――’라고 하기엔, 배틀이라는 의미 자체가 성립이 안 되잖아요.”
“야 임마!”
그러거나 말거나, 하시는 자신의 품에서 이어롤을 불러내며 말했다.
“준비는 되셨어요?”
때마침 라란티스와 독침붕도 정비를 끝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성아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좋아요. 룰은 간단하게 1대 3으로 가죠. 아가씨는 라랑이를 뺀 세 녀석으로 제 라피를 쓰러뜨리면 돼요. 교체나 도구는 되도록이면 쓰지 마시고요.”
이어롭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고조된 목소리로 울어 보였다. 하시의 발치에서 두어 번 깡충거리며 전의를 다지고는, 말린 귀를 펴내어 하시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이어――!!”
“좋은 기합이네, 라피! 이거 불타오르는구만!”
“벌레가 불타면 죽어요, 아가씨.”
하시가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말했지만 이건 시합이 아니라 점검 차원의 배틀이에요. 이기든 지든 욕먹을 각오는 단단히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녀가 이어롤을 꺼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시트론님의 공식 파트너는 렌트라. 물론 난이도의 문제가 있으니 나올 것은 럭시오 정도겠지만, 그렇다면 나머지 한 마리가 랜덤이라는 건데, 지금까지 밝혀진 시트론님의 포켓몬들로 추려 보자면 파르토나 코일, 에몽가, 목도리키텔 중 하나일 가능성이 커요.”
그리고 코일의 경우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이어롤로 어느 정도 대비가 가능했다.
성아도 그 사실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어롤로 1대 3은 너무 봐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자만심에 휘말려 일찌감치 승리를 점찍고 있었다.
“역시 초반은 탐색전이지. 레디바, 선봉은 너야!”
“바아?”
그러나 레디바는 필드 위에 오르지도 않고서 성아를 향해 웃어 보였다.
하시가 생기 없는 표정으로 그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배틀이 뭔지는 알고 있는 거죠?”
“우, 우리 레디바 무시하지 마! 가자, 레디바! 마하펀치!”
“바아아아??”
성아는 이어롤을 향해 열의에 찬 주먹을 휘둘렀지만, 레디바가 그녀의 명령을 상큼하게 무시해버린 탓에 그만 우스운 꼴이 돼 버렸다.
그리고 라란티스는 실제로 웃었다.
“우, 웃지마!”
“레디바를 내보낸 시점에서 이미 예능이었는 걸요, 뭘.”
“바아아?”
“으으, 마하펀치! 마하펀치 몰라? 마하펀치!”
성아는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을 숨기기 위해 괜스레 레디바를 닦달할 뿐이었다. 그러나 레디바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켜보던 하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뭐하자는 건지…… 라피, 막치기.”
“야! 잠깐! 대화하는 데 공격하는 게 어딨어 치사하게! 레디바, 너 뭐 쓸 수 있는 기술 없어?!”
“바아?”
그러자 레디바는, 잠시 눈알을 여러 번 깜빡거리다가, 마치 성아의 질문을 이제야 이해한 것처럼 눈알을 반짝이며 다시 말했다.
“바아!”
“오, 그래! 그거라도 써봐!”
성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디바는 눈을 감으며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뒤바뀐 기류가 그의 주변부를 맴돌았다. 라란티스는 심상찮은 기운에 화들짝 놀라며 귀를 곤두세웠고, 하시도 전에 없던 놀란 표정으로 레디바의 기술을 지켜보았다. 머지않아 안개보다 하얀, 그렇지만 신비롭게 일렁이는 에너지가 필드를 뒤덮었고, 그것은 곧 투명하게 빛을 굴절시키는 장막이 되었다.
“저…… 저건……”
하시가 경외심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능 신이다…….”
레디바가 쓴 것은 신비의 부적이었다.
기술을 끝마치고 다시 바보처럼 울어대는 레디바의 모습에, 성아는 오히려 그녀야말로 울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짜 버러지같은 인생……”
“라피, 막치기.”
명령을 받은 이어롤이 몸을 부대끼는 것만으로도, 레디바는 필드의 저 끝까지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 뿐이었다.
“아니――!! 맞기만 하는 게 아니라 너도 공격하는 거라고!!”
“어머, 야만적이셔라. 애가 싸움을 싫어할 수도 있지.”
그 말에 성아는 팔짝 뛰듯 콧김을 들이쉬며 레디바를 가리켰다.
“저게 지금 싸움을 싫어하는 표정으로 보여?!”
이어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레디바는, 땅에 거꾸로 처박히면서도 그 땡그란 눈알을 반짝거렸다. 이어롤은 노이로제에 걸린 것처럼 신음했다. 이쪽을 때리면 이쪽으로 날아가다가 다시 돌아오고, 저쪽을 때리면 저쪽으로 날아가다가 돌아오니, 이쯤 되면 때리는 이어롤의 체력이 먼저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이……”
“바아아?”
그런 그녀의 고충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다는 듯, 레디바는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이어롤을 물고 늘어졌다.
성아는 왜인지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쟤 진짜 배틀이 뭔지 모르는 거 아니야?!”
“그걸 니가 말하면 안되죠, 이 아가씨야.”
“하아…….”
더 이상 배틀이 진행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 성아는 하는 수 없이 레디바를 불러들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레디바는 그녀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고, 보다 못한 라란티스가 그를 질질 끌고 나올 때까지 성아는 연신 가슴을 두드릴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짜증 반 울상 반이었다.
“아가씨께서 데리고 다니시는 것까지는 말리지 않겠습니다만,”
하시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배틀은 무리에요, 그 레디바.”
“……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고집 좀 그만 부려요.”
“…….”
성아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바락바락 대들기라도 했겠지만, 그녀의 마음 한편에서도 어느 정도 하시의 말에 동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레디바는 배틀을 하기엔 무리일지도 모른다.
‘라고 하기엔 이상하리만치 맷집이 좋지만 말야…….’
미간을 잡아당기는 착잡한 심상을 뒤로 한 채, 성아는 다음 포켓몬을 꺼내 들었다.
“가자, 비비용. 부탁할게.”
“비유우!”
비비용은 걱정 말라는 듯 성아의 손을 한 번 꼭 붙잡고는 필드 위로 날아올랐다.
하시의 눈에 생기가 되돌아왔다.
“드디어 메인 포켓몬께서 나오셨구만.”
“비비용! 바람으로 견제부터!”
성아의 지시는 짧고 경쾌했다.
비비용은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몸을 비틀고는, 그 반동을 이용해 이어롤이 있던 자리로 바람을 쏟아내었다.
“라피, 달려!”
그러나 이어롤에겐 맞지 않았다.
하시가 선 자리에서 가만히 오른팔을 벌리자, 이어롤은 그 방향을 따라 뜀박질하며 둥글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비용 또한 그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하게 몸을 뒤틀었고, 일그러진 바람 뭉텅이들은 필드 위의 흙먼지들을 거세게 밖으로 밀쳐내었다.
하시가 눈앞을 스치는 모래 먼지에도 아랑곳않고 명령했다.
“뛰어!”
“점프킥?!”
이어롤의 모습을 놓친 성아는 다급히 백스텝을 명령했다. 비비용이야 복안이 있어서 그녀를 계속해서 시야에 둘 수 있었다지만, 성아는 한참 전부터 이어롤의 움직임을 쫓느라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이어롤을 놓치지 마, 비비용!”
그녀는 다급한 마음에 그렇게 외쳤다. 비비용이 날개를 앞으로 물리며,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어롤이 쓴 것은 점프킥이 아니었다.
“비이?!”
성아의 명령에 따라 이어롤이 달려들 것을 예상한 비비용은, 공격이 들어와야 할 타이밍에 들어오지 않자 당황하여 그녀의 모습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하늘 높이 뛰어오른 이어롤은, 안정적으로 자세로 비비용의 뒷통수에 발차기를 내리꽂았다.
“뛰어오르다?! 이어롤이 저런 걸 배워?!”
“덕분에 한 턴 벌었네요, 바보 아가씨.”
효과는 굉장했다.
“비이이!”
비비용은 맹렬한 속도로 바닥에 나가떨어졌고, 그녀를 피해 달아난 흙먼지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어롤의 두 번째 공격이 들이닥쳤다.
“비비용, 일어나지 말고 마비를 걸어!”
“비윳!”
비비용은 확실히 그렇게 했다. 그녀의 몸에서 누런 가루가 떨어져 나와 이어롤의 얼굴을 뒤덮었으니, 이어롤이 마비 가루를 들이마신 것은 분명했다.
“――?!”
그러나 그녀는 별다른 주저 없이 비비용의 몸통을 걷어찼다. 비비용은 그녀가 찬 방향대로 땅바닥을 쓸며 나뒹굴었다.
“뭐야?! 왜 마비가 안 걸려!”
“전기 타입이 마비 걸리는 거 보셨습니까.”
성아는 당황한 투로 비비용과 이어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니, 쟤는 전기 타입이 아니잖아!”
“아주 자기네 타입 아닌 포켓몬한텐 관심도 없죠?”
하시는 이어롤과 다시 한번 열정의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미르 체육관의 대비용으로 준비하겠다고 그랬잖아요. 라피는 마비에 걸리지 않는 이어롤이예요.”
“그런 게 어딨어!”
“꼬우면 니도 드림월드 하던가요.”
하시는 잠시 기지개를 켜고선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성아를 바라보았다.
“이제 진심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녀는 명령했다.
“라피, 10만 볼트.”
“……?!”
성아의 동공이 그녀의 입만큼이나 커졌다.
“안 돼! 비비용! 저건 피해야 해!”
불규칙적으로 진동하는 전기의 흐름이 이어롤의 입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그 전류의 줄기는 땅바닥에 곧은 상처를 내며 비비용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당황한 비비용은 차마 날아오르지 못해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날개를 들썩였다.
“사이코키네시스! 그걸로 보조해!”
성아는 비비용에게 사이코 에너지로 스스로를 들어 올리라 명령했다. 간발의 차이로 비비용이 공중에 떠오르자, 뭉쳐진 전기 덩어리가 마치 삽질을 하듯 그녀가 있던 필드를 파헤쳤다.
“아아, 까비.”
“계속해서 사이코키네시스!”
“10만 볼트로 쳐내.”
비비용이 쏘아 내린 에너지의 덩어리는 곧장 이어롤의 10만 볼트를 맞고 공중에서 와해 되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하시가 힘겹게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비비용을 가리키며 말했다.
“라피의 10만 볼트는 pp 만땅이에요.”
말인즉슨, 이어롤은 포인트업을 이용해 10만볼트의 pp를 최대로 맞춰놓았단 뜻이었다.
반면 비비용의 사이코키네시스는 이제 막 배운 것이면서도 벌써 절반 가까이 닳아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기술과 기술이 맞부딪히는 정면승부를 벌인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이어롤이 다시 한번 뜀박질을 시작했다. 이번엔 비비용의 아래에서 지그재그를 그리며, 무작위로 내디딘 발을 따라 공중에 전기를 내뿜었다. 사이코키네시스의 보조를 받은 비비용은 곡예에 가까운 솜씨로 그것을 피해 보았지만, 이 또한 pp가 부족해지자 점점 반응속도가 늦어지기 시작했다.
성아가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일단 재정비를 좀…….’
“비비용, 그대로 날면서 수면가루야! 뿌릴 수 있겠어?”
비비용은 이를 악문 웃음으로 회답했다. 여유롭지는 않지만, 시도는 해보겠다는 뜻이었다.
머지않아 수면의 탄막이 넓게 필드 위를 뒤덮었다. 이어롤은 걸음을 멈추고 하늘하늘 내려앉는 수면가루를 바라보며 하시에게 다음 지시를 요구했다.
“달라질 건 없어, 라피. 10만볼트. 수면가루가 내려앉기 전에 끝내는 거야.”
그 말에 따라 이어롤은 전격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하시의 실책이었다.
“뭐?!”
“헤헷.”
속절없이 부대끼던 수면가루들은, 이어롤이 10만볼트를 뿜어대자 맹렬한 기세로 그것을 향해 들러붙기 시작했다.
“안 돼! 끊어!”
더덕더덕 전류 줄기를 좀먹는 수면가루에게 혐오에 가까운 시선을 보내며, 이어롤은 고개를 냉큼 휘젓고는 분진에서 벗어난 곳으로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하시는 갑자기 온몸이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아…… 짜증나…… 저 말괄량이 아가씨가 그냥 얻어걸린 걸 아닐테고……”
“집에 돌아가면 기초과학부터 다시 공부하는 게 어때, 하시?”
성아가 거만한 눈짓으로 사교계의 조소를 지어 보였다.
“…… 역시 노린 건가.”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기술을 쓸 리가 없잖아? 뭐, 이렇게 효과적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아유, 꼴 보기 싫어.”
간발의 차이로 수면가루를 피한 이어롤이 숨을 고르는 새, 비비용은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빠른 속도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하여튼 사이코키네시스만 맞아라!”
“비윳――!!”
“하아…… 진짜…….”
하시는 앞머리를 바싹 뒤로 넘기며 나지막하게 명령했다.
“갑자기 귀찮아지네. 그냥 끝내, 라피.”
“엥?”
그녀의 명령에 이어롤은 숨을 고르다가도 금방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자, 잠깐! 벌써?!”
“아가씬 욕먹을 준비나 단단히 하세요.”
이어롤의 귀는 전기에 휩싸여 번쩍거리고 있었다.
비비용은 그 모습에 눈이 부셔 고개를 훽 돌렸다. 그러나 이어롤은, 그 무시무시한 점프력으로 무장한 번개 펀치를 몸쪽으로 바싹 잡아당기고선, 곧장 온 힘을 다해 비비용의 복부에 꽂아 넣었다.
“――?!!”
눈이 휘둥그레진 비비용은 차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안 돼! 비비용!”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한 번 더.”
“너무하잖아, 하시!”
“이게 바로 뇌절이라는 겁니다.”
이어롤은 번뜩거리는 번개펀치를 다시 한번 준비하며 천천히 비비용을 향해 다가왔다.
비비용이 힘겹게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등줄기에 깊이 박힌 섬뜩한 감전의 고통에 덜덜 떨면서도, 그녀는 끝까지 이어롤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이었다.
그리고 흐린 시야의 너머로, 귀를 바싹 잡아당기며 마지막 돌진을 준비하는 이어롤의 모습이 어렴풋이 일렁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역광을 받아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가, 라피.”
그 말에 이어롤은 뛰었다.
“알겠어, 그만!”
성아는 차마 필드 위에 뛰어들지 못한 채 소리쳤고
“언니……”
“그만하라고 좀!”
그런 이어롤을 막아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독침붕이었다.
“저 인간이 그만하라잖아! 그럼 그만할 줄 알아야지!”
“허허, 미친놈인가. 나이를 먹으니까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말이야, 내가 왜 내 주인도 아닌 인간의 말을 꼬박꼬박 들어야 하는 건지 세 줄 이내로 요약해서 알려줄래, 꼬맹아?”
팔과 귀를 맞부딪힌 두 포켓몬이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트레이너가 그만하겠다고 말했잖아! 그거면 됐지!”
“하시 언니한테 그만하라는 말이 없었잖니. 그럼 계속하는 거야.”
“뭔 말도 안되는……!”
“이봐, 꼬맹이, 네가 이러는 거야말로 눈치 없는 행동이란 생각은 안 하지? 성아 언니네 포켓몬들은 아주 하나같이 주인 닮아서 무식한가 봐?”
“너 이……”
보다못한 비비용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 그만, 독침붕…… 네가 싸워서 이길 만한 상대가 아냐…….”
“뭐?!”
“오호, 그래도 쟤는 너보다 낫구나.”
“시끄러! 그리고 넌 조용히 보기나 해, 안 그래도 힘 빠지니까!”
“뭔 되도 않는 가오를 부리고 있어……! 너 나보다 약하잖아……!”
그러나 독침붕은 이어롤과의 팽팽한 힘겨루기 때문에 대꾸할 여력조차 없었다.
독침붕은 맞붙고 나서야 그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깨달았다. 필드 위로 뛰어들 때만 해도 그의 머릿속에선 여러 가지 계획들이 떠올랐건만, 지금은 오로지 이어롤의 번개 펀치를 막아내는 데에 급급해선 힘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원래 다들 처맞기 전까진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단다, 꼬맹아.”
“자꾸 꼬맹이, 꼬맹이 하지 마! 생긴 것도 쬐끄매선!”
그러자 이어롤이 귀뿌리에 힘을 실으며 광소를 터뜨렸다.
독침붕은 저도 모르게 신음했다.
“나보다 한참은 어린 것들이……. 이래 뵈도 라랑이 언니랑 비슷한 나이라고.”
그 말에 비비용이 땡그란 눈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어? 어…… 그렇지, 음, 어, 아마? 라피가 나보다 한 살 어렸던가?”
“두 살이요, 언니.”
“아하, 그랬지.”
비비용은 가만히 주저앉아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라란티스에게 간곡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언니…… 독침붕 좀 어떻게 해 봐요…….”
그러나 라란티스는 귀찮다는 듯 턱을 들어 독침붕을 바라보았다.
“냅 둬라. 뭐, 재밌구만.”
“네?”
“어차피 다음 차례는 쟤였잖아. 그럼 그걸로 된 거야.”
그녀는 그러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비비용을 품에 안았다.
“고생했고, 조금 쉬어. 우린 저 바보탱이가 어떻게 뚜드려 맞나 구경이나 하자고.”
한편, 라란티스가 필드에서 비비용을 데려온 것을 확인한 성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비용은 뭐, 센스는 나름 괜찮았어요.”
하시가 여러 갈래로 찢어져 울부짖는 번개 펀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도 비비용이 진 거는, 물론 약점을 잡힌 것도 있겠지만요, 전적으로 아가씨의 지휘 미숙이에요.”
“우으…….”
“꿍얼거리지만 말고요.”
성아는 전력으로 번개펀치를 받아내는 독침붕을 바라보며, 하시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근데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꼭 설교를 늘어놔야겠어?!”
“이것도 훈련이에요. 배틀을 하면서 다른 대화를 한다는 게 얼마나 고난도 작업인데.”
하시는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이어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아가씨 실력 퇴보한 거 아세요? 벌레 타입의 장점을 하나도 살리지 못하고 있잖아요.”
“욕을 하는 건 좋은데, 하시야, 그럴싸한 근거를 대면서 말해줄래?”
“호오, 3대 떡으로 발리고 계신 주제에 아직도 그 오만불손한 태도는 고쳐지지 않나 봅니다?”
성아 또한 독침붕에게 재정비를 위해 뒤로 물러날 것을 명령했다.
“가루의 정전기를 활용한 건 칭찬해드릴게요. 그건 저도 생각하지 못한 거니까요.”
하지만. 하시는 그렇게 뜸을 들이고는 손가락을 펴 보았다.
“첫째, 사이코키네시스 의존도가 너무 높아요.”
그와 동시에 이어롤은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비비용처럼 눈이 좋지 않은 독침붕은, 그녀의 뜀박질만으로도 버럭 짜증을 내며 부산스럽게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그러나 이어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예 에스퍼 타입 트레이너를 하지 그랬습니까? 누가 보면 사이코키네시스 말고는 쓸 수 있는 기술이 없는 줄 알겠어요.”
“독침붕, 이어롤을 놓치면 안 돼!”
“둘째,”
하시가 그렇게 말을 내뱉자, 독침붕의 발아래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래야, 독침붕!”
“싯――?!”
땅을 파헤치고 튀어나온 이어롤은 히죽거리며 독침붕의 복부를 후려갈겼다. 흙의 파편을 뒤집어쓴 독침붕은 곧장 뒤로 나자빠졌고, 그런 독침붕의 눈앞에 당도한 이어롤은 무작위로 그의 얼굴을 난타했다.
“진화한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아직 나는 게 미숙해요. 곡예까지는 힘들더라도 도움닫기 없이 바로 부상할 수는 있어야죠.”
“알겠어, 비비용, 아니 독침붕, 아니……!”
“샤아――!!”
“아니, 야!! 돌아오라고!”
“셋째,”
눈이 뒤집힌 독침붕은 성아의 말도 무시하고 무작정 뛰쳐나갔다.
“명령 불복종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가볍게 그의 돌진을 흘려보낸 이어롤이 곧장 그 뒤통수를 내리꽂았다.
굴욕적인 자세로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힌 독침붕은 온몸을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이어롤은 여유롭게 그를 제압하며 가지고 놀 뿐이었다.
“기본적인 유대조차 없잖아요. 레디바는 대화조차 안 통하고, 독침붕은 아가씨 명령도 안 듣고. 결국 무늬만 3마리인 거지 실질적인 전력은 비비용 혼자나 다름없어요.”
“독침붕,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다음에 트레이너가 내릴 지시가 무엇인지 정도는 스스로 판단하게끔 훈련이 돼 있어야죠.”
실제로 이어롤은 아까 전부터 하시의 명령 없이도 배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시가 아무런 지적이 없었던 것은, 이어롤 스스로 그녀의 주인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때로 하시의 특별한 명령이 있지 않고서는,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배틀을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성아는 처참했다. 물론 포켓몬들을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니와, 일 년이라는 긴 공백으로 인해 그녀의 실력이 위축된 감도 없잖아 있었다.
“놔! 이익…… 이거 안 놔!”
“무르구나 애송아.”
거만한 표정의 이어롤에게 잘근잘근 밟히는 독침붕을 바라보며, 비비용은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바보야, 언니 말 좀 들어!”
“아니…… 나 혼자서도…… 이런 것쯤은……!”
독침붕은 그렇게 부득부득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던 하시는, 잠시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마찬가지로 이어롤에게 명령을 내렸다.
“힘으로 누르는 건 그만하고, 다른 거로 가 보자, 라피. 뭐 색다른 거 없어?”
“이어?”
“저 아가씨가 어떻게 대처하나 한번 보자고.”
그러자 이어롤은 처박혀있던 독침붕의 턱주가리를 들어 올리고선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 하시 언니가 그렇다고 하니까, 이봐, 꼬맹이.”
독침붕은 고개를 뻣뻣하게 들어 올리고선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서로한테 악감정은 가지지 말자고.”
그러자 그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르르 풀리더니,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독침붕은 온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렇다고 기절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이어롤을 향해 거친 호흡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옳지, 옳지. 독침붕은 착한 아이구나.”
그는 이어롤에게 헤롱헤롱해있었다.
“그럼 착한 아이에겐 상을 줘야겠지?”
이어롤은 그러고서 독침붕의 머리를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자, 잠깐! 타임! 이거 수위, 수위!!”
“아이고 저 화상.”
“꺄악! 지금 뭐 하는 거야?! 독침붕!”
“바아아??”
이어롤의 돌발 행동으로 성아네 멤버 전체는 혼란에 빠졌다.
“…… 정말이지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군요.”
하시는 그런 모두를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독침붕은 바보처럼 침을 흘리며 이어롤만 바라보고 있었고, 이어롤은 그런 그의 턱주가리를 바싹 잡아당기는 척하더니, 곧장 귀를 뻗어 리드미컬하게 그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쨉, 쨉, 쨉 펀 훅! 쨉, 쨉, 쨉 펀 훅!”
“옳지, 잘한다, 라피. 그냥 끝내버려.”
그녀에게 헤롱헤롱하느라 정신을 못 차린 독침붕은 한참을 얻어맞으면서도 기어코 이어롤을 향해 달려드는 추태를 저질렀다.
“그만, 독침붕! 돌아와!”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몬스터볼조차도 거부했다.
“그래, 너도 이제부터 하루에 25분만 태보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꾸나.”
“쟨 아까부터 뭔 이상한 리듬을 타는 거야?! 잼잼펀치?”
“……? 태보인데요?”
“자, 따라만 하세요, 따라만 하세요!”
“그, 그게 뭐야아――!!”
혼란에 빠진 성아의 비명이 마침내 쓰러진 독침붕의 위로 널리 울려 퍼지고 있었다.
3대 1로 이루어진 하시와의 배틀, 성아의 완패였다.
― 벌레 타입 포켓몬 트레이너 하는 소설 8화
Electric shock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