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현대에는 보기힘든 낡은 집이였다. 난로 겸 죽을 끓이던 화로가 중앙에 있는 큰 방 하나와, 양 옆으로 열리는 문으로 연결된 작은 방 하나. 화장실은 집 밖에 있고, 집의 옆구리에는 조금은 낡았지만 잘 정돈된 부엌이 하나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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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지진 않을까 ? ”
하품을 길게, 예쁜 이와, 선홍빛 혀가 보이기도 전에 고운 손으로 선홍은 입을 가렸다. 어느새 시계의 숫자는 12시를 넘겼다. 12시 반쯔음이 되어갔으나, 평소에도 늦게 잘 뿐만 아니라. 한번 정신을 잃고 일어났던 백으로써는 그닥, 잠이 오지 않았다.
“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지만 .. 그, 잠이 오질 않아서 .. ”
고개를 쭈뼛거렸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스르륵,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장롱속의 두터운 솜이불을 양 손으로 들어 꺼내고는 바닥에 두고는 확, 펼처 자리를 피고는 설홍은 말했다.
“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룻밤을 새버리면, 내일의 즐거움이 없어질거야. 여기선 내 말을 듣고, 자려고 노력이나 해 보아. ”
그리곤 싱긋 웃고는, 바닥에 다시금 두터운 덮을 이불을 놓곤, 메밀을 넣은 베게를 그에게 놓아주었다. 그리곤 그 옆에 비슷하게 생긴 이불을 깔고, 다시금 이불을 덮어 자리를 깔고는 그 위로 폭 소리가 나게 몸을 앉힌 설홍은 괜히 새 이불을 꺼내니 마음이 들뜬 모양이였다.
“ 크흐흐, 손님이 자주 오진 않지만 .. 손님용 이불 하나 없이 박정한 곳은 아니야.. 혹시 한 이불에서 자는걸 기대한 것은 아니겠지 ? ”
당연히 아니겠지, 하지만 그 말을 듣기 전까진 괜찮았던 양 뺨이 그 말을 듣자마자 발그레하게 핏기가 돌아. 적당히 양 볼이 열감을 띄자 여전히 우스운 사내라고 생각하는지. 옆으로 가볍게 다가와 등을 몇 번 두드려주고는 설홍은 말했다.
“ 또, 또 .. 하여간 숫기 없는 모습이 .. 그렇게 굴면 계집아이들에게 인기 없을거야. ”
옷 소매로 입을 가리며, 크큭 하고 웃고는 설홍은 화로의 불을 끄고. 은은하게 빛나는 숯에 모래를 덮었다. 그리고는 하나씩, 등불을 입으로 불어 꺼트리기 시작했다. 방 사면을 밝히던 네 개의 등불이 이제는 세 개로. 세 개는 두 개로. 두 개는 하나로. 마지막 하나만 은은하게 수면등처럼, 둘이면 작은 방 안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 오래 켜두면, 기름이 아까우니까. 하늘에 두껍게 눈구름이 쌓여 달빛이 보이진 않지만 .. 그래도 어둑어둑한것도 운치가 있으니 .. 슬슬 자리에 눕지 않겠어?"
고개를 끄덕인 백을 보자마자, 착한 아이로구만 하고 작게 중얼거리더니 훅 하고 마지막 등불을 끈 설홍이였다. 마지막 등불이 꺼지고 난 방은 모래 사이로 천천히 사그라드는 숯의 뭉근한 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정도로 캄캄한 칠흑속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홍이 어디 있는지는 쉽게 눈치챌수 있는 소년이였다. 그것의 눈은 어둠 속이라고 해도, 은은히 그리고 붉게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소년을 보고 있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는 그였다.
“ 역시 잠이 오지 않아? ”
“ .. 네, 그렇네요 ”
“ 크흐, 나같은 미인이 같은 방에서 잠든다는것에 기대되어서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고? ”
“ 아 .. 아닙니다. ”
“ 아니라면 .. 그건 그것대로 실망스러운데 말야. ”
“ .. 그건 .. ! ”
“ 농이네, 농이야. 하나 하나, 반응이 재미있어서 놀리는 맛이 있는 사내야. 정말로 .. ”
“ ... ”
“ 삐치지 말아. 졸리지 않다고 해도, 눈을 푹 감고 있으면 곧 잠들테니. 떼쓰지말고 눈 감고 조용히 양이라도 세어 ”
그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꾸벅하고는 천장을 보고 곰곰이 생각에 잠긴 소년이였다. 아직도 현재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떠오른 생각으로부터 이 상황까지. 평범과는 거리가 먼 시간에 머리가 조금 아파온다. 머릿속에 걱정이, 잡념이 가득차 소용돌이치기 때문이였다. 양 눈은 슬슬 암순응이 되었는지 주변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소년은 고개를 살짝 돌려. 설홍을 바라보았다. 양 눈을 감고. 작은 호흡만을 내뱉는 그것. 소년은 아직도 이것이 내 꿈인지, 망상인지, 환상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기어코 미처서, 정신병에라도 걸려버린것인지 혼란스러워 했다. 손목에 채워진 시계의 야광버튼을 괜히 눌러본다. 시간은 벌써 한시가 넘었다.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고, 눈덩이들을 떨어트리는 소리를 냈다. 나무들이 살랑거리고. 내일은 눈이 더 많이. 잔뜩 쌓였겠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 잠못들고 우왕좌왕하는 소년이 신경쓰였는지. 설홍은 제 지네꼬리를 꼼지락거려 들어올려선, 그의 덮는 이불을 붙잡아. 목 밑까지 올려주곤 말했다.
“ 잘 자. ”
소년은, 고개를 푹 이불에 묻으며 대답했다.
“ .. 네 ”
주변은 어두컴컴했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라고 해도. 모든 것이 보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보았다. 떨어진 곳에 누워 이불 위에 자기 꼬리를 올려놓은 설홍이 괜시리 미소를 띄고 있었다는 것을.
비록 그것이 소년의 착각이였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 기분이라면 금방 잠들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