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몇 마리에게 산채로 물어뜯기는 짐꾼을 보며 다른 짐꾼들은 할 말을 잃었다.
눈앞에서 자신의 동료가 산짐승에게 죽어가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사지가 찢겨나고서 넝마가 된 시체를 가리키며 막심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또 사지가 찢겨나가고 싶은 놈이 있냐?”
“…….”
“저 분 앞에서 짐승이란 단어는 쓰지도 마라, 저분은 우리와는 격이 다른 분이다.”
“…….”
짐꾼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의 대장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건지는 몰라도 살고 싶으면 입을 다물고 명령을 따라야한다는 걸 그들은 알아차렸다.
짐꾼들이 조용해지자 막심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짐꾼들이 아닌 꼬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꼬마는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을 보고 전의를 잃었는지 도망은커녕 반항조차 하지 않았다.
막심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 답게 얌전히 있는 구나.”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짐꾼들을 이끈 겁니까?”
가온의 질문에 막심은 피식 웃었다.
이 상황이 되어서도 궁금한 게 있다니.
다른 이의 질문이었다면 바로 목을 날렸겠지만, 어차피 모든 게 끝난 지금 어린 소년의 호기심 정도는 충족해줄 여유는 있었다.
막심은 여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처음부터 내가 전부 꾸민 일이었지, 하룬가에게 그 분의 위치를 알린 것도, 멍청하고 욕심만 많은 부단장 하워드를 끌인 것도, 난 저기 계신 하운드님과 함께 세상을 지배할 거다!”
“고작 짐승 몇 마리로?”
“짐승이 다가 아니야!”
막심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손가락을 튕겼다.
스윽.
막심의 호위를 맡았던 두 자유 해방단원들이 그의 옆에 나타났다.
초점을 잃은 눈과 썩은 얼굴을 한 두 자유 해방단원들은 조용히 막심에게 무릎을 끓은 채 예를 표했다.
막심은 두 자유 해방단원들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치며 웃었다.
“큭큭, 뭔가 이상하지 않니, 꼬마야, 원정대 출발할 때만 해도 불만 가득하던 자유 해방단 놈들이 이렇게 얌전하니 말이야.”
“그들에게 뭔가를 한 겁니까?”
“성스러운 의식이지! 자유 해방단원들은 전부 내 부하가 되었다! 너와 다른 짐꾼들도 곧 그렇게 될 거고, 너와 짐꾼들마저 그분의 수하가 된다면, 준비는 끝난다!”
자아 도취해 스스로 떠드는 막심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가온은 슬그머니 옆을 돌아보았다.
짐승들에게 처참하게 물어뜯긴 짐꾼의 시체는 사방에 널러져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시체 중 그나마 얼굴 형태는 온전했다.
원정대가 출발하고서 자신을 괴롭혔던 짐꾼들 중 하나였다.
자신을 괴롭히던 자가 죽었지만, 기쁘거나 통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에 메스꺼웠다.
사람의 목숨을 물건이하로 취급하는 자, 쓰레기 같던 자유 해방단원들보다도 힘없는 노예들을 죽이고 다니는 불량아들보다도 악질인 놈이었다.
가온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정신 차리자, 지금 저자를 자극해선 안 된다.’
아차하면 자신 또한 죽은 짐꾼처럼 시체가 될 것이다.
늘 하던 대로 굴복하고 참아야 한다.
그러나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없던 정의감이 생긴 것도 아니고 죽은 짐꾼에게 정을 붙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짜증이 났다.
가온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난 시간이 없어, 이런 데서 노닥거릴 시간 따윈 없다고.”
“음?”
가온의 중얼거림을 들은 막심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깐 질문을 하고 이젠 혼잣말이나 하다니.
막심은 가온을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이젠 하다하다 정신까지 놓아버린 거냐, 꼬마 짐꾼?”
“닥쳐.”
“지금 이 자식이 뭐라고…….”
“네 놈이고 다른 놈이고 상관없어, 난 그녀를 구해야 해, 그러려면 공을 세워야 해.”
가온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곤 막심을 노려보며 다시금 말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여기서 꺼지면 목숨은 살려주지, 내가 원하는 건 네 목이 아닌 이방인 하운드의 목이니.”
가온과 눈을 마주친 막심은 자기도 모르게 흠칫했다.
싸늘하고 차가운 눈빛과 딱딱하게 굳은 입가, 보는 이의 가슴을 움츠려들게 하는 살기까지.
사춘기도 안 온 어린아이의 표정이 아니었다.
멈칫.
막심은 잠깐 당황해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꼬마한테 겁을 먹다니, 젠장.’
무려 하룬가의 늑대 기사단의 부장인 자신이었다.
그리고 조만간 이방인 하운드와 함께 이 세상을 지배할 주역 중 하나가 될 자신이 고작 이런 짐꾼에게 움츠러들다니.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막심은 그 가늘던 눈을 크게 뜨며 험악하게 외쳤다.
막심은 한심한 눈으로 꼬마를 쳐다보며 싸늘한 말을 내뱉었다.
“감히 그 분을 모욕하다니, 너도 짐승 먹이가 되어야겠구나.”
“먹이? 그런 소리를 내뱉기 전에 네 목이나 간수하지?”
“뭐?”
쉬이이익!
막심이 짐승들에게 신호를 보내기 직전.
막심은 자신의 양 옆에서 날아오는 검 날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눈밭인 땅을 구르고 굴러 거리를 벌린 막심은 자신의 칼을 휘두른 건방진 놈이 누군지 확인했다.
“뭐야, 왜 네 놈들이?”
“으으으으.”
“크으으.”
검을 휘두른 건 호위 역을 맡은 자유 해방단원들이었다.
자신의 말에 철저히 따르는 녀석들이 어째서 자신에게 검을 휘두르는 건가?
침을 흘리며 눈에 핏대를 세우는 두 자유 해방단원들은 막심에게 달려들지 않고 미친 것 마냥 검을 사방으로 휘둘러댔다.
이성에 의한 판단이 아닌 본능에 휩싸인 채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
“크아아아아!”
“으아아악!”
피와 살육에 취한 광 전사처럼 두 자유 해방단원들은 주위에서 살기를 풍기는 짐승들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크르릉?”
짐승들은 자신들의 먹이가 공격을 할 줄은 몰랐는지 해방단원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서걱!
“크아아아아앙!”
사나운 짐승의 비명이 터져 나오며 두 마리의 짐승이 순식간의 죽고 말았다.
이를 보고만 있을 순 없던 막심은 이를 악문 채 짐승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젠장, 저 두 놈을 죽여라!”
멀리 있는 거대 늑대를 제외한 다른 짐승들이 이를 드러내며 두 자유 해방단원들에게 달려들었다.
“크르르르릉!”
“아우우우우!”
“크아아아아!”
“으아아악!”
짐승들은 포효를 하며 이를 드러내고 두 전사는 함성을 내지르며 검을 들었다.
싸움은 치열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건 짐승들이었지만, 정신이 나갔음에도 자유 해방단원들은 오랫동안 갈고 닦은 검 실력으로 그 차이를 극복했다.
“크아아아앙!”
“으아아악!”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늑대의 발톱을 전사는 피하지 않고 검으로 받아쳤다.
챙!
검은 발톱을 받아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밀고 나가 늑대의 팔을 잘라버렸다.
서걱!
“크아아아아앙!”
팔이 날아간 늑대는 그대로 땅에 드러눕고 전사는 쓰러진 늑대의 목을 쳐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터지며 늑대의 죽음을 알렸지만, 뒤를 따르는 다른 짐승들이 들이닥쳤다.
두 전사는 물러서지 않고 몰려오는 짐승들과 맞섰다.
검과 발톱이 교차하는 살육전.
피가 튀고 팔이 떨어져나가거나 짐승의 목이 땅바닥으로 떨궈졌다.
그토록 하얗고 하얗던 눈밭은 피로 얼룩진 피밭으로 변해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가만히 있던 짐꾼들은 서로의 눈치를 봤다.
“야, 야.”
“알아, 젠장.”
“지금 밖에 없어!”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짐꾼들은 이 틈을 타 사방팔방 도주하기 시작했다.
짐꾼들의 도주를 용납할 리가 없는 막심은 주위에 있는 다른 짐승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젠장! 저 놈들을 잡아!”
명령을 내리는 막심은 눈을 불을 킨 채 가온을 찾아보았다.
자신을 모욕하고 자신이 모시는 이방인 하운드 마저 모욕한 그 건방진 꼬마 자식.
짐승 먹이로는 부족하다, 한 점 한 점 살점을 떼어 내주며 눈밭에 뿌려주마.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던 막심의 눈에 저 멀리 도망가는 가온을 발견했다.
막심은 가온을 가리키며 다른 짐승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단 저 개자식부터 잡아와!”
“아우우우!”
“크르르릉!”
두 마리 짐승이 가온에게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짐승들이 가온의 목덜미를 뜯어먹으려 달려들기 직전, 가온은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희미한 보랏빛의 작은 가루였다.
취익!
뿌려진 가루가 눈에 닿는 순간, 작은 폭발과 함께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후우우우웅!
“아우우우?”
“크으으으응?”
몰아치는 눈보라와 함께 가온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짐승들은 당황했다.
막심은 이를 악물며 버럭 화를 냈다.
“야이, 멍청한 짐승 새끼들아! 안 보이면 냄새로 찾으라고!”
막심이 펄쩍 펄쩍 뛰며 화를 내도 짐승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크릉?”
“아우?”
“젠장, 냄새도 못 맡는 다고? 대체 뭘 한 거야, 그 망할 꼬맹이.”
막심은 분개해하며 발을 동동 구를 뿐, 자신이 직접 쫓아가지 않았다.
결국 짐승들은 가온을 쫓아가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 눈보라가 사라진 자리에는 누군가 도망친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