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도 거의 끝나가는 것 같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고 특징적인 것도 없는
말 그대로 평범한 마을과 그 마을에서 2킬로 정도 떨어진 거리에 차려진 캠프, 평범한 여행자들의 캠프 치곤 천막의 장식이나 대열이 깔끔하고 화려하며 제식화 된 복장의 사람들이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가… 그럼 이 마을을 끝으로 우리는 철수하도록 하자.
밑에 병사들 한테도 그렇게 전달해 두고”
캠프 외곽에서 파괴의 연무가 피어오르는 마을을 바라보며 그룹의 리더로 보이는 자는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고 부관으로 보이는 남자는 분주한 캠프 중앙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 짓도 못해먹겠구만….아무리 일거리가 없어서 시작한 일이었다지만 여기 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말야.’
잘 닦여진 철제 갑옷과 손잡이에 화려하진 않지만 흔히 보기 힘든 장식으로 장식된 롱소드를 허리에 차고 있는 남자가 푸념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를 감지한 남자는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급하게 달려오는 자가 그룹에서 전령을 담당하는 자 라는걸 알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장님. 약간 문제가 생겼습니다!”
‘역시 그런가…’ 전령의 소식을 전해들은 남자는 알고 있었다는 듯 가늘게 중얼거리며 떠올렸다.
사실 대장은 이 마을에서의 임무를 마지막으로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손을 땔 생각이었다. 애초에 의뢰인에게 첫 수주를 받을 때 이후로는 의뢰하던 일들의 보수가 임무에 비해 크기도 했고, 지금까지 의뢰인이 요구했던 요구치도 충분히 달성한 상태였다. 그러나 여지것 어렵지도 않은 일들 이었고 이런 기회도 곧잘 없기에 마지막 의뢰를 한번 더 수락했던 상황이었으나 마지막에 받은 의뢰는 다름아닌 의뢰인이 선정한 마을 한곳의 약탈과 파괴공작이었고 의뢰의 이유는 묻지 않는 것이 조건이었다. 덜컥 눈앞의 이익에 끌려 수락해버린 이상 그저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앞에서의 일들이 다 이번 일을 위한 포섭과정 이었다는걸 알았고 그걸 깨닳게 되었을 땐 너무 먼 길을 온 후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귀공 에게 부탁한 의뢰의 목적지는 크레앙 일세’
의뢰인의 노쇠하고 갈라진듯한 목소리가 문득 대장이라는 남자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크레앙, 왕국 국경지대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국경을 연결하는 대로에서도 꽤나 멀리 떨어진 곳 으로 일반적인 국경인근의 마을처럼 국경을 통행하는 여행자를 상대로 상업이나 숙박을 제공하며 소득을 벌던 마을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마을 주변 대부분이 산지에 위치하여 토지 또한 고르지 못하고 간신히 일부 구역에서 작물을 재배 하며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수준의 환경이었다. 이 그룹의 대장 또한 이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진 이 마을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을에 도착하고 작업을 시작하던중 의뢰인이 왜 이 마을의 수탈을 요구했는지 그리고 이 임무를 의뢰한 이유와 의뢰인이 누구인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분 때문이겠지? 네가 이렇게 요란떠는 이유는”
대장은 달려온 전령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전령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장을 응시하다 이내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시작했다.
“그분이라니.. 누굴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왠 남자 하나가 마을 구석에서 마을사람들을 모아 응전하고 있는데 지휘솜씨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농기구와 집안의 가구들로 훌륭한 방어선을 펴고 나무 막대기를 들고있는 주민들이 마치 잘 제련된 검을 들고 버티는 병사처럼 보일정도로 예리하게 포진해 있습니다. 저희로써는 도저히 와해시킬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때문에 부장께서 저를 보내 방법을 여쭤보라 하셔서….”
전령은 경외와 두려움이 섞인 말투로 대장에게 대답했다. 그 이야길 들은 대장은 결심을 굳힌 표정과 말투로 명령했다.
“역시.. 쉽게 넘어갈수 있는 산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전투 병력을 모두 모아서 진격한다. 출발 전 모든 무기를 정비하라. 또한 기름이 남았다면 모든 기름을 모아서 화살촉에 먹여둬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엔 최후의 수단도 생각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모두에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대장님도 준비하시죠!”
그렇게 전령은 아까의 남자와 같이 캠프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로부터 수 분 뒤 출진 소식이 전해진 것에 대한 반응인지 캠프안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구성원 하나하나의 표정 또한 긴장감을 엿볼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훌륭하게 대열이 구축되었고 하나의 블럭이 움직이듯 그 대열은 마을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포기해 주실 순 없습니까? 전 당신 같은 사람을 죽일 수도 그럴 자격도 없습니다
.”
화마가 지나간 흔적 속에 그룹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을 뱉어냈다
그러자 화려한 롱소드 장식 너머로 마을사람을 이끌던 자로 보이는 사람은 무릎을 꿇고 위를 향해 대장이라는 자를 응시하고 있었으나 그 눈에선 두려움이나 위축됨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 했다.
“꼬맹아 누구보다 날 잘 알텐데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고 어서 하던일이나 마무리 하지 그러나”
그 목소리는 누구보다 맑고 청명했으며 대장의 마음 깊은곳까지 침투해 들어갔다
“후…. 이제 아집은 그만 두십시요! 이미 마을은 수복하기 어려운 상태로 파괴되었고 곧 왕국 정규군도 들이닥칠 겁니다. 제발.. 제발 한번만 저에게 져 주실 수는 없는겁니까? 수급의 조작은 제가 힘을 쓰면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그렇게만 되면 지금보다 더 조용한 곳에서 따님과 숨어사실수 있을겁니다. 제가 꼭 그렇게 되도록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마을의 수장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왕국놈들인가 꼬맹이라면 내가 여기있는걸 알면서 일을 받진 않았을거고.. 그 여우 같은 자식은 자네를 잘도 구워삶았군 그래….흐흣.. 크하핫!”
그 호방한 웃음을 들은 대장은 순간 어이가 없어 들고 있던 검을 놓칠 지경이었다.
‘어찌 사람이 이렇단 말인가 목숨과 두려움은 어딘가에 버려두고 왔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나 싶을정도야…’
“꼬맹아 아니지… ‘랜블’ 시간끌지말고 끝내려거든 어서 끝내다오 왕국놈들 손에 잡혀 들어가 그 늙은 여우놈 앞에 무릎을 꿇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으니까 말야”
멍하니 서있던 ‘랜블’은 마음을 잡은듯 검을 더욱 힘차게 말아쥐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스랜 클래스턴님 아니… 스승님 당신이 제가 떠난 후 왕국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는지는 또 돌아가시면 어떻게 되실지 솔직히 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 같은 분이 그렇게 의지를 굳히셨다면 더 길게 이야기 안 하겠습니다. 당신을 벨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고맙네 랜블.. 이 일이 끝나면 자네가 듣기 싫어도 나에 대한 소문이 왕국 전체를 떠돌겠지.. 그때의 나에 대한 판단은 그대에게 맡기겠네 그리고 아픈건 싫으니까 실수 없이 한번에 부탁하네”
그렇게 말을 마친 ‘제스랜 클래스턴’ 이라는 남자는 호흡을 고르고 두눈을 감았다. 맞은편에 있던 남자는 손이 떨릴정도로 강하게 붙잡고 있는 롱 소드를 두손 높이 치켜들기 시작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요 스승님”
랜블의 시선은 제스랜의 심장이 위치 할 곳에 정확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빠르게 심장을 향해 검을 쥔 두손을 뻗었다 그 순간…
“아빠아~!”
소녀의 비명과 함께 랜블의 검이 맹렬하게 쇄도했다 그 궤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제스랜의 심장으로 향했고 파고드는 검은 이제 막을길이 없어 보였다.
-퍼억-
마치 농기구가 땅을 파낼때와 같은 소리와 함께 랜블의 검은 정확하게 제스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마도 심장까지 무리없이 닿았을리라..그러나 랜블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어떠한 것 까지 갈라버린 사실을 확인한 후 랜블은 검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아…아아… 아가씨…”
랜블의 앞에는 어리고 가냘픈 소녀가 자신의 아버지를 지키고자 감싸앉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녀의 바램을 들어주기엔 그녀의 육체가 너무 나약했다 그 소녀의 오른팔이 뻗어 나갔어야 할 자리는 랜블의 검이 가로막고 있었으며 그 단면을 가로막은 검 위로 선홍빛 액체가 흘러 나와 소녀와 제스랜의 옷을 적시고 있을 뿐이었다.
“의..의무병! 어서 지혈을! 어서 치료를! 어서 이송을! 어서..!빨리!”
랜블은 당황하며 소리쳤다. 자신의 스승은 준비가 되었으나 그 이외의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장님.. 저희는 일개 용병집단 입니다. 저 정도 상처를 치유하기엔 시설도 장비도 없습니다. 또한 치유마법이 가능한 사람도 없어 상처를 감싸두는 정도가 한계일겁니다.. 그걸로 저 소녀가 살수 있을지는… ”
부관으로 보이는 자는 비통한 표정으로 랜블에게 이야기하자 랜블은 허망한 표정으로 제스랜을 안고 있는 소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아아…”
“대장님… 대장님..? 정신차리십쇼! 이봐! 어서 대장님을 막사로 모셔가!”
부관의 외침과 함께 뒤에 서있던 병사들의 행동은 바뻐졌고 병사들에게 이끌려 가던 랜블의 시선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그렇게 병사들이 사라진뒤 제스랜을 안고있던 소녀는 자신의 ‘아버지 였던 것’ 을 계속해서 안고있다 이내 힘이 풀렸는지 몸은 바닥을 향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소녀는 완전히 떨어져 바닥에 쓰러지게 되었으며 ‘오른팔이었어야 되는 부분’을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애처롭게 뻗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후 하나의 그림자가 소녀와 제스랜의 몸을 가리며 말했다.
“하아… 늦어버린건가… 왕국내부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전해드리려 삼일 밤낮을 달려왔는데 말야… 이건… 설마,아가씨까지? 아무리 용병 놈들 이라지만.. 이건 너무 잔인하다고…”
그렇게 혼잣말을 마친 남자는 시신을 수습하고자 몸을 굽혔고 소녀의 몸을 감싸 올릴 때 쯤이었다 소녀의 몸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으며 미약하지만 숨결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제스랜 님은 늦은 것 같지만 아직 아가씨는 늦지않았어!’
그렇게 생각한 남자는 소녀의 상처에 손을 뻗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면을 타고 흐르던 선홍의 액체는 이내 멈추기 시작했다.
‘제발.. 버티셔야 합니다 .아가씨! 그리고 제스랜님 죄송합니다. 따님의 생명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꼭 수습해드리겠습니다!’
자짓 수다스러워 보이는 남자는 그렇게 난장판속인 크레앙 마을을 소녀를 안은채 전속력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잿더미 밖에 남지 않은 크레앙 마을 그 외곽에 쓸쓸하게 무릎꿇고 앉아있는 왕국 재건의 일등공신 제스랜 클래스턴, 모든 것이 져버려 모든색채를 잃어버린 그자리에 선홍색 핏자국이 마치 꽃을 피우듯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