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안태훈 씨!”
“왜 나한테 살려달라고 하는 건데!”
태훈은 달리면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티유에게 소리쳤다. 그때 화살이 바로 옆에 있던 나무를 뚫고 지나갔다.
“…….”
“히에에엑!”
태훈은 입을 다물었고, 티유는 비명을 질렀다.
“젠장, 호프는 뭐 하고 있는……!”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호프가 나뒹굴고 있었다.
“벌써 체력 떨어졌냐아아아!”
“죄, 죄송…… 으윽.”
호프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아 버렸고 태훈은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
“이럴 때 데미스는 어디로 간 거야?!”
“몰라요!”
“젠장! 일단 가서 호프 좀 주워와!”
“제가 어떻게 가요?! 전 가면 죽어요! 죽는다고요! 안태훈 씨가 가세요!”
“미쳤냐! 너보다 방어력도 낮은데!”
태훈은 티유의 반발에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전 무리예요! 차라리 죽여요!”
티유는 그렇게 소리쳤다.
“그럼 도와주기라도 해!”
그는 티유를 바라보며 소리친 뒤 호프를 돌아보았다. 바닥을 구르고 있는 호프에게 다가가고 싶었으나, 건너편에서 화살이 빗발치고 있었다.
[키르르륵!]
멀리서 고블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화살의 세례가 멈췄다. 기회는 지금 뿐이었다. 태훈은 심호흡을 한 뒤 호프를 향해 달려갔다.
“호프!”
호프에게 가까이 가 그녀를 흔들자 호프는 힘겹게 눈을 떴다.
“죄, 죄송합니다, 용사님. 저 때문에…….”
호프는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시간에 포션이나 마셔, 이 멍청아!”
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에 차고 있던 파우치에서 붉은색의 포션을 꺼내 그녀의 입에 쑤셔 박았다.
“커흡?!”
호프의 반응을 무시한 채 태훈을 수풀 너머를 바라보았다. 작은 발소리가 점점 커지는 게 들려왔다. 태훈은 이를 악 물었다.
“젠장.”
그리고는 파우치 옆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들었다.
“요, 용사님, 싸우실 줄 아십니까?”
“내가 그런 거 알겠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반 친구들과도 싸워본 적이 없는 태훈이었기에 어떻게 싸워야 좋을지도 알지 못 했다.
‘소설이나 만화의 이세계로 넘어오는 사람들은 특수 스킬도 얻고, 마법도 부리고 검도 잘 쓰더만!’
태훈은 속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단검을 세게 쥐었다.
“그래도 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
태훈은 그렇게 말한 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났다.
“우두머리, 우두머리만 잡으면 되는 거야.”
태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키에에엑!]
그리고 태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로 앞에서 고블린이 튀어나왔다.
“흐, 흐아아!”
“안태훈 씨!”
태훈의 고함에 티유가 그를 부르며 완드를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태훈의 등에 강한 타격이 전해져 왔다.
“엌?!”
순간 숨이 멎을듯한 고통이 전해져왔고, 엉거주춤한 자세였던 태훈은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단검은 앞으로 향한 채,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고블린과 눈이 마주쳤다.
[킥?]
고블린의 당황한 듯한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태훈과 고블린은 그대로 수풀로 넘어졌다.
“으윽.”
등과 복부에 전해져오는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태훈은 몸을 일으켜 자신의 복부를 매만졌다. 복부를 만진 손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으아아아!”
이 세계로 넘어와 처음으로 본 피에 태훈은 놀라 소스라쳤다.
“피, 피!”
“진정하십시오, 용사님! 그건 용사님의 피가 아닙니다!”
당황해 정신을 못 차리는 태훈을 옆에서 호프가 진정시켰다.
“어?”
그 말에 태훈은 자신의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혀를 길게 빼고 가슴팍에 단검이 꽂힌 채 죽어 있는 고블린의 사체가 있었다.
“히이익!?”
태훈은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안태훈 씨!”
티유는 태훈을 부르며 달려왔다.
“괜찮아요?! 제가 영 엉뚱한 곳을 맞춘 것 같은데요!?”
“야, 이, 멍청아!”
자신에게 달려와 등을 확인하는 티유를 보자마자 태훈은 그녀의 머리에 주먹을 쥐어박았다.
“도와달랬더니, 날 맞추냐!”
“그, 급해서 그랬다구요! 아무튼 무사했잖아요! 덕분에 고블린도 잡았잖아요!”
“난 내가 찔려서 죽는 줄 알았거든?!”
태훈은 티유에게 떽떽대며 소리쳤다.
“안 죽었으면 된 거죠!”
“그게, 할 말이냐아아!”
쓸데없이 당당한 티유의 반응에 태훈은 극도로 분노하며 그녀의 뺨을 잡아 늘렸다.
“하, 하흐하이하혀! 히허, 하흐하허혀!”
다시 한 번 느껴지는 고통에 티유는 태훈의 손등을 몇 번이고 쳤지만 태훈은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요, 용사님, 지금 그러실 때가!”
“엉?”
호프의 제지에 태훈은 고개를 돌려 그제서야 자신들이 무슨 상황인지 파악했다.
[키르르르르.]
주변이 고블린들로 가득차 있었다.
“으아아악?!”
“꺄아아악!”
태훈과 티유는 언제 서로 싸웠냐는 듯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호프는 다시 일어나 검과 방패를 강하게 쥐었다.
“두 분, 제 뒤로 오십시오!”
그 말에 태훈과 티유는 호프의 뒤로 숨었다.
“야, 너 이럴 때 쓸 방어마법 같은 거 안 익혔냐?”
“저, 저는 공격 마법 전문이라고요!”
“그것도 영 시원찮으면서 왜 방어를 안 익혔냐고!”
“멋이 안 나잖아요!”
“지금 멋 타령 할 때냐!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호프의 등 뒤로 숨은 둘은 그 상황에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젠장, 이럴 때 데미스는 어디로 간 거야?!”
태훈은 유독 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 데미스를 찾았다. 그때, 뭔가 고블린들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키릭?]
[키리릭!]
그것들은 태훈이 운 좋게 죽인 고블린의 시체를 보며 당황한 것 같았다.
“뭐, 뭐야?”
태훈이 그들의 행동을 보며 의문을 품기 무섭게 그들은 갑자기 뒤로 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 설마!”
“응?”
“용사님, 혹시 우두머리를 쓰러뜨리신 거 아닙니까?!”
“뭐?”
호프의 말에 태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것들이 도주할 이유는 없습니다! 대, 대단하십니다, 용사님!”
호프는 밝게 웃으며 태훈의 행동을 칭송했다.
“아, 아니, 난 그런 건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기회예요!”
그리고 티유가 소리쳤다.
“저희가 받은 임무의 내용은 저 고블린 도적단을 소탕하는 거였죠?! 이 기회에 뿌리를 뽑아버리죠!”
“알겠습니다, 티유 님!”
티유의 제안에 호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달려……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커헉!”
그리고 그대로 기절했다.
“아니, 거기서 왜?!”
태훈은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러는 사이에도 고블린 무리는 멀리 도주하고 있었다.
“야, 티유! 너 당장 저기 가는 놈들 맞춰!”
“알겠어요!”
티유는 태훈의 지시에 경례를 하며 완드를 높이 치켜 올렸다.
“썬더 볼트!”
마법을 외치며 티유는 완드를 휘둘렀고, 완드 끝에서 생성된 번개가 고블린들을 향해 날아, 가다가 엉뚱한 나무를 맞췄다.
“아차, 그러고 보니 저 전격계 마법은 조준을 잘 못 했어요!”
“이 멍청아아!”
티유의 말에 태훈은 소리치며 그녀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에에잇, 파이어 애로우!”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티유는 다시 한 번 마법을 사용했다. 공중에 생성된 불의 화살은 빠른 속도로 고블린들을 향해 날아갔고, 고블린 몇 마리를 맞추는데 성공했다.
[키에에에에…….]
고블린의 단말마가 숲에 울려 퍼지면서 단백질을 태울 때 날 법한 냄새가 숲을 가득 채웠다.
“야, 저건 너무 잔인하잖아!”
티유의 마법에 태훈은 소스라치며 놀랐다.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잖아요!”
티유는 태훈에게 소리친 뒤 다시 완드를 치켜들었다.
“파이어 애……, 윽, 너무 멀어졌어요! 이제 저도 잡을 수 없어요!”
눈을 가늘게 뜨며 티유는 그렇게 말했다.
“그냥 보내주면 안 되냐?”
“저렇게 보내면 새로 우두머리를 만들어서 또 도적단이 형성될 거라고요!”
“젠…….”
티유의 말에 태훈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럴 때 데미스는 어디 있는 거야?!”
“네? 데미스 언니는 왜 찾아요?! 그 언니는 아무 도움도 안 될 텐데요!”
“아냐! 분명 그 녀석 전에 최고의 방어는 공…….”
거기까지 말하던 태훈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제서야 어제 있었던 일이 기억나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리서 빛이 터져 나오며 고통에 가득찬 몬스터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엑?!”
티유의 반응에 태훈은 멍하니 그 빛을 바라봤다.
“앗, 아아…….”
어째서 자신은 그 빛을 잊고 있었는가. 멀리 터져 나오는 빛을 보며 태훈은 그제서야 어제 어떻게 슬라임을 잡았는지 기억이 났다.
“후후후, 안녕하세요, 여러분. 해결사가 왔답니다?”
그리고 그 빛을 뚫고 데미스가 나타났다.
“데미스, 저건 뭐야.”
“어머? 이제는 기억하셨나요? 후후후, 안타깝네요.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데미스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기억하셨다면 어쩔 수 없죠. 다시 한 번 설명 드릴게요. 상대를 먼저 공격해 치유를 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치유의 최고랍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아주 좋아한답니다?”
“좋아한다는 건, 즉?”
“네. 제가 상대를 직접 괴롭힐 수 있으니까요. 그건 언제나 절 흥분시키죠.”
“……그 흥분이란 건.”
“네, 성……!”
“으아아, 미친년아!”
데미스의 해맑은 표정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태훈은 그렇게 소리쳤다.
◇
돌아오는 하늘은 노을이 유난히 붉었다.
“어찌되었든, 이걸로 상단의 의뢰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건 좋긴 한데.”
호프의 말에 태훈은 말끝을 흐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너 우리가 고블린한테 쫓길 때 어디 있었냐?”
“후후후, 아시려고 하면 큰일 나요.”
데미스는 태훈의 물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 대답에 태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됐다. 망할. 어차피 고블린 도적단인지 뭔지는 우리가 잡았으니까 됐겠지.”
“후후후, 좋게 생각하시는군요, 용사님은.”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 우리가 쫓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게 말하며 태훈은 데미스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데미스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100퍼센트다.’
누가 봐도 그럴 확률이 못 해도 99퍼센트일 것이라는 생각이 태훈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너, 우릴 죽일 셈이었냐?”
“후후, 그럴 리가요. 전 이래 봬도 최고 사제님의 명으로 용사님의 동료로 들어온 걸요? 아무리 제가 타인의 고통에 흥분한다고 해도 동료를 죽게 놔두지는 않는답니다.”
태훈은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어제만 해도 호프가 거대 슬라임에게 깔렸을 때 아쉬워하지 않았던가.
“후후후.”
하지만 차마 데미스의 웃는 낯에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여자의 미소에 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묻기가 껄끄러울 뿐이었다. 물었다가는 어떤 판타지가 펼쳐질지 알 수가 없다고, 태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이 유독 붉었다.
“후후, 여관으로 돌아가면 우선 여러분의 체력부터 회복을 시켜드릴게요.”
“그걸 좀 최우선적으로 삼아주라, 제발.”
태훈은 그렇게 불평하며 한숨을 쉬었다.
“상단에 그렇게 거절을 했는데도 감사의 표시로 300만 틸을 받아 버렸으니, 오늘은 마음껏 먹도록 하죠!”
호프와 함께 상단에 갔다가 돌아온 티유는 돈 주머니를 보여주며 그렇게 말했다.
“너 진짜 거절한 거 맞냐?”
“당연하죠! 저도 이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사람으로서,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고요!”
태훈의 말에 티유는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태훈은 호프를 바라보았고, 호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제 말보다 호프의 말을 더 믿는 건가요?!”
“너 같으면 믿을 수 있겠냐.”
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앉았다.
“남의 인생계획을 망쳐버리는 놈인데.”
“아, 아직도 그걸로 뭐라고 하시는 건가요. 이 남자, 얼마나 속이 좁은 건가요!”
“원래대로라면 난 수능 끝나고 놀고 있어야 됐었다고! 그랬는데, 너 때문에 오늘도 죽을 고생한 거잖아! 어제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뭔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 못 하고!”
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티유의 관자놀이 양쪽에 주먹을 대고 그대로 돌렸다.
“으갸악! 아, 아파요! 아파요오! 죄송해요!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여억!”
티유의 고통을 뒤로 하고 데미스와 호프는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도 티유의 고통에 찬 몸부림은 끝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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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INATRICE
괜찮습니다. 훈수가 아니라 조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요. | 18.05.22 08: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