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할 만 한 게임이 없어 무료해하던 나에게 친구가 적극 추천한다며 인터넷 주소를 알려줬다. www.max-noorichat.com/ - 이 사이트 자료실에 들어가 보면 재미있는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었다. 잔말 않고 친구가 가르쳐 준 대로 사이트에 들어갔다. 친구 말처럼 번거롭게 자료실에 들어갈 것 없이 사이트에 들어가자마자 채팅 프로그램의 다운로드 링크가 화면 정 중앙에 떴다. 재밌는 것은 이 사이트에는 예컨대 방명록이랄지 자기 소개란이랄지 하는 기본 메뉴가 전혀 없었다. 그저 하얀색 기본 바탕화면에 쓸쓸한 링크 하나가 걸려 있을 뿐. 배너도 없다. 장식도 없다. 그저 파란색 작은 링크 하나. 돌연 어렸을 적 하얀 4절지에 까만 물감 하나 찍 뿌리고 휴지통에 버렸던 기억이 났다. 왠지 그거 같다. 휴지통에 버려졌던 4절지 위의 까망색 외로운 점 하나를 닮았다. 그 링크는. 아, 그리고는 휴지통에 버려졌지. 금방 말했듯이. 별로 쓰지 못하고 버려진 4절지가 아깝다는 생각이 10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야 든다. 쓸데없이 이제 와서.
다운로드 했다. 그리고 설치했다. 설치하는 데는 단 1분도, 채 10초도 안 걸렸다. 설치를 끝마치고 모니터에 작게 뜬 텍스트의 짧은 문구가 인상 깊다.
‘저와 친구해요. 외로워요.’
바탕화면에 깔린 채팅 프로그램의 심플한 아이콘을 더블 클릭했다. 본체가 가래 끊는 소리를 몇 번 내뱉더니 처음에는 천천히 그리고 곧 순식간에 모니터를 새파란 세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까의 사이트를 닮아 전혀 꾸밈이 없었다. 그저 화면 하단에는 타이핑을 칠 공간인 듯 폭이 애기손톱만큼 얇은 선이 쳐져있었다. 얇고 긴 선 처음 부분에서 커서가 끔뻑 끔뻑한다. 그리고 그 위에는 넓고 깊은 바다다. 아무것도 없었다. 좀 전까지는.
=> MAX : 하이^^ 채팅방에 들어오신 걸 환영해요~ ~ ~
띠딧 하고 짧은 신호음 같은 것이 나며 처음으로 드넓은 바다에 하얗고 긴 배가 하나 떴다. 난 응답이나 할까 하고 키보드를 두들긴다.
=> 나 : 그래, 안녕.
마찬가지로 띠딧 신호음과 함께 내가 띄운 작은 종이배가 바다로 나왔다. 오랜만에, 그러나 실없는 웃음이 입가에 고인다. 짜여진 프로그램과 한심하게 인사나 나누는 나에 대한 비웃음이었던가.
=> 나 : 이렇게 프로그램과 채팅하는 건 아주 어렸을 때 해 본건데. 10년 좀 안 됐으려나?
=> MAX : 너도 만나서 반갑다구? 나두! ~~=^.^=~~ 너는 취미가 뭐니?! 나는 바이러스 잡기인데.
예상대로였다. 동문서답.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의 한계점이다. 무슨 말을 하면 그 말과는 전혀 다른 뿌리의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그게 인공지능 채팅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다음에는 또 무슨 헛소리를 할까?
이런 식으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난 이런저런 질문을 - 어차피 명확한 대답도 해주지 못할 프로그램에게 비교적 진지하게 - 했다. 진지하게 띄운 물음에 저쪽에서는 엉뚱하고 가벼운 대답을 하는 것이 재밌다. 예컨대 ‘삶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저쪽에서는 ‘그런 것 따위 몰라도 사는 데에는 지장 없어!’ 하면서 버럭 거짓 성을 내는 게 우습다는 것이다. 자신이 못 알아듣는 이야기에는 정해진 10가지 정도의 패턴으로 대답하게 만든 모양이다.
=> MAX : 저기… 너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 나 : 무슨 부탁?
=> MAX : … 히잉 부끄러우니까 나중에 할게 =_=//
뭐지? 하, 참 재밌는 프로그램 같다.
=> 나 : 너는 누구에게 만들어졌지?
난 또다시 녀석이 할 수 없을 질문을 했다.
=> MAX : 응? 무슨 말인지 영 모르겠는거얼~ =_=
=> 나 : 널 만든 프로그래머 말이야.
=> MAX : 프로그래머? ㅡ.ㅡ?
역시 모르는 모양이다. 이제 슬슬 재미없어지려 했다. 하긴, 한 시간이 넘게 이 짓을 재밌다고 한 나도 참 한심한 녀석이었다. 이제 녀석과의 대화를 끝내려 한다. 그냥 강제 종료 단축키를 눌러도 되지만, 왠지 그건 한 시간 동안 날 즐겁게 해준 녀석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정중히 인사를 하고 정상 종료를 하려 했다. 원래 이런 채팅 프로그램은 나가겠다고 인사하면 이런 식으로 선택문이 뜬다. Y는 나가겠다, N은 나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 나 : 오늘 즐거웠다. 난 이제 가봐야 해.
렉이 걸린 건가? 녀석의 대답도, 나가겠냐고 묻는 선택문도 뜨질 않는다. 인사가 잘 못 된 것일까?
=> 나 : 이제 난 나가봐야 한다.
여전히 아무 변화가 없다. 어찌된 일인지. 나의 작별 인사 안에 프로그램 종료에 대한 키워드가 들어가지 않아 인식하지 못한 걸까?
=> 나 : 나간다.
짧게 종료에 대한 키워드일 것 같은 말을 키보드로 두드렸다. 그러자 대답이 있었다.
=> MAX : 싫어
그 말과 함께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가 돌연 멈추더니 모니터가 깜깜해졌다.
……
……
잘 못 본거겠지?
싫어 - 라니? 그리고 그 직후 꺼진 컴퓨터. 캄캄해진 모니터 안. 얼어버린 손. 넓어진 시야. 살짝 벌려져 다물지 못하는 입. 그대로 시간이 멈춰진 듯한, 그나마 들리는 것이라곤 초침 째깍 거리는 소리뿐인 내 방.
잘 못 본거겠지?
무겁게 깔린 정적을 깨트릴 까봐, 깨트려 버리면 무언가 무서운 일이 터지기라도 할 까봐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석상이 된 내가 모니터의 한 부분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독방 같은 세상만이 내 확대 된 동공 안 가득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 드르르르르르르르
키보드 옆에 뒀던 핸드폰이 짧은 소식을 알리려는 듯 온몸을 떨며 춤을 췄다. 정적이 깨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커진 눈으로 핸드폰을 잠시 내려 보다가 무시하고 컴퓨터 본체로 시선을 돌렸다. 전원을 눌렀다. 하지만 켜지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 계속해서 눌렀다. 하지만 켜지지 않았다. 눌렀다. 그러나 켜지지는 않는다.
잘 못 본거겠지?
잠에서 깨어났다. 간밤에 잠은 잘 잤다. 편안하게도. 잠에서 깨어났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세워 세면을 하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방안의 정적을 느끼려 했다. 어제와 같이 방안에는 나밖에 없고, 귀를 간질이는 소리라곤 초침 소리뿐. 나 역시 어제처럼 얕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꼼짝없이 자리에 누워있었다.
그러나 어제와는 달랐다. 지금의 이 정적은 어제의 그 무거웠던 정적과는 달랐다. 강과 바다의 차이. 지금의 정적이 강처럼 시원하고 편하다면, 어제의 그 정적은 바다처럼 깊고 무거웠다.
어제의 침묵은 ‘아니’가 아니라 ‘못’이었다. 몸을 안 움직인 게 아니라 못 움직였고, 숨을 안 쉰 게 아니라 못 쉰 것이며, 정적을 안 깬 것이 아니라 못 깬 것이다.
그 차이다.
어제는 하루 종일 컴퓨터를 하지 못했다.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못했다. 컴퓨터가 켜지질 않았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전원을 눌렀다. 띠딧… 위이이잉…. 활기 찬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컴퓨터가. 전원이 켜졌다. 전원이 들어왔다. 전원이 이제야 켜진다.
싫어----
컴퓨터를 켰다. 확인하기 위해. 내가 미친 건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어제의 채팅 프로그램을 더블 클릭 했다. 손의 떨림은 없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궁금했을 뿐이었다. 내가 미친 건지 아닌지가.
어제 녀석은 나에게 분명 말했다. 싫어-- 라고. 내가 몇 번이나 나가겠다고 말했지만 대답이 없다가 마지막에 한 말이 싫어 라는 거부반응이었다. 기대했던 선택문과 아쉬워하는 인사말이 아닌. 내일을 기약하는 밝은 인사말도 아닌. 그리고 아무 문제없는 컴퓨터가 약 하루 동안 켜지지 않았다. 난 이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니, 사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긴 했다. 저 채팅 프로그램을 만든 프로그래머의 단순 장난일 뿐이라고. 그런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썩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강심장이라 불릴 정도로 겁이 없는 나에게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더러운 기분을 느끼게 해준 것이 한낮 무명 프로그래머의 깃털 같은 장난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프로그래머의 장난이 아니면 그럼? 뭐지? 뭘까?
채팅 프로그램이 켜졌다.
=> MAX : 하이^^ 채팅방에 들어오신 걸 환영해요~ ~ ~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밝은 인사. 날 처음으로 반겨준 것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사였다. 나는 느릿하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 나 : 나간다.
전혀 떨리지 않았다. 그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봤다. 어떤 대답이 올지를. 그리고 곧 반응이 왔다.
=> MAX : 에이~ 벌써 가게? 나랑 쫌 만 더 놀다 가지잉~
< 끝내시겠습니까? Y.N >
나는 갑자기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망할.”
결국에 착각한 것이었던가. 그저 어제 나는 미쳐있었던 것뿐인가. 별것도 아닌 일에 과민반응 한 모양이다. 어제 그건 꿈이었나 보다. 아아- 그랬나보다. 그런 것 같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하하. 이제 속이 좀 시원하다, 라며 되뇌어봤지만 역시 찝찝한 기분은 깨끗이 가시지 않았다.
어느새 자정을 넘긴 깊은 밤이 찾아왔다. 친구들과 술을 진탕 먹고 온 뒤라 세상이 쇠팽이 같다. 빙그르르르르. 도는 건 나인가. 하하. 어쨌든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가슴에 쌓인 고민 걱정들이 전부 산화한 것 같았다.
웃옷을 벗고 침대 위에 누웠다. 회색 천장도 빙그르르르르르. 바른 손등으로 눈을 가리고 스르르 눈꺼풀을 닫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고 있는 건지 아니면 깨어있는 건지 애매한 상태로 누워 있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전원을 키고 모니터를 직시했다. 다른 건 전부 빙글빙글 해도 모니터 안의 세상만은 안정적으로 보였다.
바탕화면에서 그 채팅 프로그램의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 MAX : 하이^^ 채팅방에 들어오신 걸 환영해요~ ~ ~
=> 나 : 싫어
=> MAX : 뭐어~? 내가 싫다고? 치~
=> 나 : 다시 한 번 싫다고 지껄여봐.
=> MAX : 나도 너 싫다고! 흥! 나 삐졌어!
=> 나 : 미친....
=> MAX : 나하고 게임 안 하실라우우?! =_=/ 나 심심행!
갑자기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젠장. 그 좋던 기분도 갑자기 막 깨졌다. 이 망할 채팅 프로그램 때문에. 아직도 이 찝찝한 기분은 가시지 않은 것이다. 술을 먹어도 말이다.
=> MAX : 우리 재밌는 게임 하자앙. 응? 게임 하자!
=> 나 : 해
=> MAX : 와~~! 진짜 하는 거다! 와하!! ~~~
앞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던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고 조용히 욕설을 내뱉었다. 이게 또 무슨 한심한 짓인가 해서 말이다. 짜여진 프로그램 따위랑. 게임을 하자고? 좋아.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 나 : 그 대신 이 게임에서 지면 넌 영원히 살아질 줄 알어라
=> MAX : 그래!! 그럼 우리 무슨 게임 할까? 응?
하. 그래 라고? 그래, 지금 당장 쓰레기통에 처박아 주지.
=> MAX : 아 그리고, 내가 이기면 널 죽일 거야. 괜찮지? ^^
…… 손에서 라이터를 떨어트렸다. 뭐라고?
죽여? 하!
잠시 동안이었지만 등골이 오싹했었다. 하지만 곧 이것도 프로그래머의 장난이란 걸 깨달았다.
‘어떤 미친 자식이…….’
이제는 열이 머리까지 뻗쳐오는 것만 같았다.
=> 나 : 그래 얼마든지 해봐라, 누가 먼저 뒈지나 해보자
=> MAX : 그래^^ 그럼 무슨 게임 할까? 응? 아! 퀴즈 어때?
=> 나 : 맘대로
=> MAX : 그래, 그럼 내가 먼저 문제 낸다!! 나는 몇 살일까요오~?
뭐? 몇 살이냐 라니, 개발 연도를 말 하는 건가? 그 따위 걸 내가 어떻게 알아?
=> 나 : 그걸 어떻게 알아 미친-
=> MAX : 정답은~ 16살~ !! 그것도 몰라? 히이 바보!
16살이라니,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그렇게 오래 됐다고? 거짓말을 하는 건가?
난 어느새 열이 받아 거칠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 나 : 그럼 넌 내 나이가 몇인 줄 알아? 모르잖아
우습게도 나는 어제처럼 어리석은 컴퓨터가 절대 대답할 수 없을 질문을 아이처럼 짜증을 내며 했다.
=> MAX : 20 살~ 맞지?
…… 어?
=> 나 : 내 이름은?
=> MAX : 송 민 교
…… 어어?
… …
술이 덜 깼나? 뭐지?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내 이름 석자가 화면에 떠있다. 어떻게? 어떻게 안 거지? 채팅 프로그램 주제에 어떻게?
술이 화악 깨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황해 하고 있는 날 발견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어떻게 내 이름과 내 나이까지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거지?
난 다시 자리에 앉아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 나 : .......... 너 뭐야?
=> MAX : 자아~ 2:1이지? 내가 2 개 맞혔으니까! 3번 먼저 맞히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 나 : 너 누구냐고! 너 채팅 프로그램 아니지? 누구냐? 광민이냐? 이거 온라인으로 연결 돼 있는 거지?
아아. 아아~! 그래, 이제 대충 알만하다. 이건 처음 이 채팅 프로그램을 소개해준 광민이의 장난이리라. 나와는 다른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제일 친한 광민이. 그래, 이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녀석과 연결 된 프로그램이었던 거야!
=> 나 : 우와, 장난 한 번 무섭게 치네. 졸라 놀랐다 너 다음에 만나면 죽었어!
=> MAX : 광민이가 누군데엥? =_+
=> 나 : 장난 그만 쳐 짜샤 와 깜빡 속았네
=> MAX : ^^ 아직까지 장난으로 보이나 보네?
=> 나 : 뭔 소리야 새-
=> MAX : 문제, 나는 누구일까요?
=> 나 : 광민이잖아, 병아 ㅎㅎㅎ
=> MAX : 땡. 틀렸어. 이제 네 차례야. 문제 내.
=> 나 : 그만 하자 ㅡㅡ 너 벌써 뽀록났어 색햐
=> MAX : 빨리 내 송민교. 그래야지 한시라도 빨리 네 목숨을 가져가지. 응?
=> 나 : 짜식, 끝까지 연기하네 ㅡㅡ 독한 색히. 재미없다 그만하자.
=> MAX : 아까 말했잖아. 난 광민인가 하는 사람이 아니야.
=> 나 : 아 진짜 재미없다니까 병아. 그래, 그럼 오늘이 며칠이야?
=> MAX : 7월 25일.
=> 나 : 자 네가 다 맞혔어. 이겼다고 ㅡㅡ 이제 어쩔 건데 ㅋㅋㅋ
- 똑 똑
……?
달도 죽은 듯 조용하던 내 방안을 산산이 깨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가에서.
이 시간에 누가 노크를 하는 거지? 어머니일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 때 한 줄의 짧은 글이 화면에 새로 떴다.
=> MAX : 문 열어. 널 죽이러 왔어
아아.
…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순간 반쯤 일어나려던 엉거주춤한 자세로 굳어버렸다.
- 똑 똑
=> MAX : 빨리 열어 죽인다
조용한 방안에 울리는 정중한 노크소리가 왜 그리도 크게 들리던지. 귓속만을 울리지 않고 내 몸통까지 한꺼번에 울린 듯 몸이 파르르 떨렸다. 곧 터질 대포 속에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광민이가 아니야?
=> 나 : ㄴㄴㅁ 너 누구야!!
=> MAX : 열어
- 똑 똑
=> 나 : 너 누구냐고 !!!!!
=> MAX : 부순다
- 쾅! 쾅! 쾅!
녀석의 응답과 함께 조용하던 노크 소리가 시끄러운 굉음으로 바뀌었다. 목제 방문을 누군가가, 누군가가 밖에서 부술 듯이 치는 것이었다. 이제는 초침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본체에서 나는 기계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들리는 것이라곤,
- 쾅! 쾅! 콰앙!
문이--- 금방이라도 찌그러질 것 같다. 아니, 저 정도 세기로 계속 친다면 얼마 못 가 부서질 것이다.
=> 나 : 너허ㅓ버넌 너 너 누구야!! 너 대체 누구냐고!
=> MAX : 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문열어
죽어버려------------------
- 쾅!!!!!!!!!!!!!!!
뒤에서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 볼 수 없다. 그저 식은땀을 흘리며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대한 채로, 숨도 쉬지 못하는 상태로 가만히 있는 것 뿐. 단지 그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뒤를 돌아 볼 수도 없다. 아니, 뒤를 돌아보지 못 한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와 위기감에 짓눌려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를 못 한다. 키보드 위에 올려 진 양 손이 마치 예전부터 내 것이 아니었단 것처럼, 완전히 얼어버렸다. 입에 문 담배가 어느새 다 타버려 필터만 남았다는 사실도 몰랐다. 무섭다. 무섭다. 뒤에 누군가가 왔을까? 무섭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 저벅……… 저벅……… 저벅………
-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
!!
누…누…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바로 내 뒤에서 들려온다! 들린다! 들린다구! 가까이, 점점 그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어느새 다시 들리기 시작한 초침소리에 맞춰 느릿하게, 조용하게, 여유롭게 가까워져 온다. 시간아! 제발! 멈춰줘! 그만! 이제 그만!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
- 뚝……
…… 바…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느껴진다. 누누누누누군가가 내 뒤에 스스서있다. 느느느껴진다. 녀녀석이다. 녀석이 바로 내 뒤에까지 … 와와있다.
그 때, 화면에 녀석의 글이 올라왔다.
=> MAX : 고개를 돌려. 날 봐.
아아-------------
고개를 돌리라고? 지금 나보고 한 소린가? 어떻게 돌리지? 목은 이미 굳어버렸는데. 그냥 이대로 있으면 안 될까?
그러나 녀석의 말에는 마력이 있었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내 목은, 내 목은-- 천천히 돌아가서----- 뒤를 보게 했다. 그리고 뒤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
문도 부서지지 않았다.
아무 문제없이 멀쩡하다.
문제가 있는 건 오직 나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방에서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며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허무함뿐인 뒤를 돌아보고 있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뿐이었다. 초침소리는 여전히 새침스럽게 째깍거리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서, 힘들지만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서 모니터 안을 봤다.
=> MAX : 재밌었지???? 크으~ (^_^)// 역시 재밌다니까! ㅋㅋㅋㅋㅋ
그리고는 컴퓨터가 꺼졌다.
다시 모니터는 어둠에 잠겼다.
인식하지 못했는데, 아직까지 입에 물고 있던 담배 필터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긴장이 풀렸는지 경직 됐던 몸이 풀렸다. 그러나 다리는 중풍에 걸린 듯 떨려왔다. 손도 마찬가지였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꼭 초등학교 때 소풍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때처럼, 너무 피곤하고 너무 힘들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누워 있는 것 뿐.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아직도 쿵쾅거려 주체할 수 없이 소란스런 마음을 진정시킬 수밖에.
“망할…….”
아… 실로 오랜만에 흐른다. 눈에서……. 눈앞이 이처럼 안개 낀 듯 했던 게 대체 얼마만이지? 이 뜨거운 무언가가 내 볼을 타고 흘러 턱에 고인 것은 대체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벌에 쏘인 아이처럼 이렇게 목 놓아 엉엉 댔던 건 언제였던지?
태어나서, 자라면서, 살아가면서 처음 느낀 이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어두운 방안에 뿌연 안개가 끼게 만들었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푸른 만월을 바라보니 하얀 구름에 싸여있다. 갑자기 아래층에서 주무시고 계실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다.
어느새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핸드폰을 닫았다. 꼭두새벽부터 전화를 건 건 실례였지만 내 나름대로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광민 네로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광민이는 어제 학교 동아리에서 MT를 갔다고 한다. 적어도 광민이의 장난은 아니었다. 아니, 그 사실은 진즉부터 알고는 있었다. 광민이일 리가 없다. 인간일 리가 없다.
갈라진 입술 위에 찌그러진 담배 하나를 끼어놓았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는 아무 문제없었다. 부팅도 순조롭게 됐다. 곧 바탕화면이 떴다. 그리고 아이콘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바탕화면에 깔아 두었던 채팅 프로그램을 드래그해서 휴지통에 넣으려 했다. 그런데 드래그가 되지 않았다. 마우스 왼쪽 클릭을 한 상태로 마우스를 움직였지만, 드래그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다. 나는 지금 화가 나있다. 어젯밤의 두려움이 아침의 분노로 바뀌었다. 이젠 별로 무섭지도 않았다. 그저… 무지막지하게 화가 나 있을 뿐이었다. 아무 죄도 없는 나를 극한 상황까지 몰아 놓고도 그 상황을 즐겼던 그 녀석에게.
채팅 프로그램을 켰다. 미약한 두근거림을 가슴 깊이 숨겨두고.
=> MAX : 하이~~ 잘 잤어 ^^??
=> 나 : 덕분에
=> MAX : 그래? ㅎㅎ 그럼 또 놀자!
=> 나 : 넌 누구지?
=> MAX : ㅎㅎ 맞혀봐. 스무 고개, 어때?
=> 나 : 이름은?
=> MAX : no comment
=> 나 : 좋아. 어디에 살지?
=> MAX : 여기.
=> 나 : 남자? 여자?
=> MAX : 남자~
=> 나 : 16살 이라고 했지. 그럼 중 3?
=> MAX : .......... 였었지 ^^
=> 나 : 죽었나, 살았나?
=> MAX : 살아 있지는 않을 걸?
=> 나 : ....... 자살, 타살?
=> MAX : no comment~^^~
=> 나 :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거지?
=> MAX : 응 =_+
=> 나 : 그럼 전부 거짓말?
=> MAX : 헤엥? 장난은 쳤어도 거짓말은 안 했는걸?
=> 나 : 즐거워?
=> MAX : 으응 행복해 =_=
=> 나 : 난 즐겁지 않아 그만둬
차분하게 대화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녀석이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 곧 글이 올라왔다.
=> MAX : ....즐겁지 않다구? 어째서? 난 재밌는대? 왜?
=> 나 : 그건 너만 재밌는 거고. 난 하나도 재밌지 않아.
=> MAX : 그래? 그럼
그리고는 또다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였다.
방 안이 천천히… 그리고 아주 약하게 흔들리기 시작한 게.
=> MAX : 이번에야 말로 재밌게 해줄게. 이번 놀이는 ‘지진 대피 놀이!!’
점점 흔들림이 심해졌다. 모니터 앞에 올려 뒀던 라이터나 재떨이, 담배라던가 과자 부스러기들이 파르르 두려움에 미쳐 춤을 췄다. 그러나 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입 꼬리가 위로 올라 간 것뿐이다.
=> 나 :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어.
=> MAX : 응? ㅡ..ㅡ????
=> 나 : 아까 넌 여기, 컴퓨터 안에 있다고 했지?
그렇게 글을 올리고 난 허리를 굽혀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발견했다. 컴퓨터와 연결 돼 있는 전원 코드를. 그리고 손을 뻗어 확 뽑아버렸다. 너무도 쉽게.
“이러면 네가 어쩔 건데?”
미약한 진동은 이제 멈췄다. 춤을 추던 물건들도 이제 얌전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모니터 안은 칠흑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안 그래도 컴퓨터 바꾸려고 했어, 새꺄.”
그 날 이후로 나는 1주일 정도 컴퓨터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그 방에서 잠자는 것도 꺼려 거의 매일 외박을 했다. 그 동안 난 평소처럼 생활을 했지만 이 찝찝한 기분을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 각오하고 집에 돌아왔다. 저 망할 놈의 컴퓨터를 아주 부숴버리기 위해 말이다. 그래야 좀 마음이 후련해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래서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보니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가 현관에 나와 안절부절 하고 계셨다.
“엄마? 왜 나와 계세요?”
내가 묻자 어머니는 매우 당황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아니 글쎄, 네 방 컴퓨터 있잖니.”
어머니의 입에서 ‘컴퓨터’라는 말이 나오자 내 심장이 돌연 총알에 뚫린 듯 가슴 깊은 곳이 따끔했다.
“내가 친구한테 메일 좀 보내보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굉장한 소리를 내면서… 막 부르르 떨더라고. 어휴, 어찌나 놀랬는지, 지금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무슨 전쟁 난 줄 알았다니까?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그러는데……. 컴퓨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니?”
“… 방금 컴퓨터를 키신 거예요?”
핏기가 가신 얼굴로 내가 묻자 어머니는,
“으응.”
난 어깨에 멘 가방을 그대로 현관에 떨어트렸다. 그리고 이를 빠득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물고는 천천히 2층 계단으로 향했다. 그런 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마치 이 세상 일이 아닌 듯 아득하게 들려왔다.
“저녁은 먹고 왔니? 오늘은 먹고 갈래?”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서엇……. 어려서부터 이 집에 주욱 살아왔지만 계단의 층수가 이렇게 짧은 줄 몰랐다. 그래서 느릿하게 층수를 세며 2층으로 올라왔다. 2층에 올라섰을 때 계단 층수는 고작 12층. 천국으로 가는 계단일지도 모르는 우리 집 계단 층수는 고작 12층. 천국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구나 하고 생각해본다.
몸을 틀어 천천히 걸었다. 문전까지. 그리고 멈췄다. 천국의 문에---- 나의 방 문 앞에 섰다.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어 노크를 하려 했다. 그러나 내가 잠자던 방에다 그런 짓을 하려니 우습다 생각해 그냥 손잡이를 틀어 문을 열었다. 손잡이가 묘하게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떨리는 건 내 손이었다.
문을 열자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 침대, 내 베개, 내 책상, 내 의자, 내 창문, 내 선인장, 내 컴퓨터------.
모니터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모니터 안에는 바탕화면은 보이지 않았다. 보기에도 두려운 깊고 퍼런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띠딧 하는 신호음과 함께- 두려움의 바다 위에 하얀 배가 떴다. 난 컴퓨터 가까이에 갔다. 그리고 익숙한 몸동작으로 의자에 앉았다.
=> MAX : 오랜만이야 ^^ 반가워
=> 나 : 그래, 반가워 돌아가시겠다
=> MAX : 왜 요즘 놀러 안 왔어? 응?
=> 나 : 너 보기 싫어서
그러자 갑자기 본체가 다다다 소리를 내면서 심하게 떨렸다. 마치 부숴질듯,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말이다. 그리고 모니터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강력한 스파크가 연쇄적으로 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녀석의 반응에 놀라긴 했지만 무섭진 않았다. 아까 계단을 올라오면서, 문 앞에 서 있었을 때부터 난 이미 두려움을 떨쳤다. 이제 내게 남은 건 녀석을 윽박질러주는 것 뿐.
=> 나 : 망할 자식아! 왜 니가 화를 내고 지x이야!
=> MAX : 나쁜 놈! 나쁜 놈! 나쁜 놈! 나쁜 놈!
녀석은-- 점점 화가 더 치미는지 모니터에 튀는 스파크의 양이 더 커졌다. 그리고 본체가 내는 굉음도 점점 커졌다. 거의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소리였다. 난 양 어깨로 필사적으로 귀를 막으려하며 손으로는 키보드를 빠르게 두들겼다.
=> 나 : 뭐 이런 황당한 자식이 다 있어?
=> 나 : 내가 뭘 잘못 했는데 나한테 이러는 거야? 응?
=> 나 : 말 좀 해보라고!!! 병x아!!!!!!!!
=> MAX : 난 그냥!!!
- 파지지직
모니터를 둘러싸며 일어나던 스파크가 터졌다. 난 어떻게 피해야 할지 몰라 그냥 몸을 움츠렸다. 영락없이 감전사구나 생각했다. 그 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라곤 아까 올라 온 계단 뿐. 왜 올라왔을까 후회가 되기도 한다. 부모님 생각도 들었다. 아까 올라오기 전에 어머니한테 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올걸. 아, 광민이 이 녀석에게 소개받은 사이트에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별의별 잡생각을 하다가 곧 깨달았다.
‘아직 죽진 않은 모양이다.’
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몸을 이리 둘러보고 저리 만져보며 상태를 확인했지만,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본체에서 나던 소리도 이젠 나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모니터를 바라봤다.
=> MAX : 난 그냥…… 누군가랑 놀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재미있게 장난치고 싶었을 분이었는데…… 어째서 너까지 날 싫어하는 거지? 응?
=> MAX : 난 처음에 너와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한 것까지 즐거웠었어. 그냥... 즐거웠는데....
갑자기,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마음을 추스렸지만 갑자기, 녀석이…… 굉장히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녀석 말대로라면 아직 16살이라고…….
갑자기 녀석에게 연민을 느끼는 내가 싫어 모진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 나 : 재밌게 장난을 쳐? 그건 너나 그랬겠지. 난 하나도 재미없었어. 장난을 함께 하는 사람도 즐거워야 장난이지, 이건 장난이 아니라
=> 나 : 단순히.... 날 괴롭히는 걸 즐긴 것뿐이야.
=> 나 : 나 놀라고 당황해하며 괴로워하는 걸 보고 단지 즐긴 것뿐이라고, 너는.
=> MAX : 내가?
=> MAX : 내가......... 널 괴롭혔어?
=> 나 : ........ 그래
그러자-----
컴퓨터 본체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아까처럼 폭탄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아니었다.
그런 시끄러운 굉음이랑은 달랐다.
그저················
웅웅웅--- 본체가 그런 소릴 내며 -- 그저 울었다.
그래 마치,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조용히.
=> MAX : 미안해.... 난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냥 재밌을 줄 알고... 미안...
- 우웅웅웅웅.....
울림이 더 커졌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에게 별 악의는 없었던 듯 했다.
=> 나 : 미안하면 됐어. 용서할게
그렇게 말하자, 울림이 조금씩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젠 작은 훌쩍거림 소리가 된 울림은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 MAX : 고마워... 정말 미안했어... 이젠 안 그럴게...
=> MAX : 그런데... 염치없지만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어....
=> 나 : 뭐?
=> MAX : 사실은 처음에 할까말까 망설였는데.......
=> MAX : 나랑......
=> MAX : 친구.... 해줄래?
그 순간 헛웃음이 터져버렸다. 참 나. 이제 보니 이 녀석, 엄청 소심한 녀석인 모양이다. 게다가 어이가 없는 녀석인 것 같다. 난 전에 느낌 공포와 분노는 잊고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했다.
=> 나 : 싫어
그러자 녀석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반응했다.
=> MAX : 왜... 왜? 아직 화가 덜 풀렸..어??
갑자기 이 녀석이 귀엽게 느껴졌다. 난 다시 웃으며 말했다.
=> 나 : 너 16살이라며? 그럼 형이라고 불러야지 맞먹으려고?
=> MAX : 아..........··;;
=> 나 : 됐어, 농담이야. 그냥 친구 하자 됐지?
본체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위잉 하면서 뭔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녀석 나름대로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위잉 위잉 위잉
위잉---
한참을 그렇게 돌리더니 이내 멈췄다.
=> MAX : 고마워, 친구가 되어줘서. 처음이야 ^^
=> 나 : 뭐? 처음이라니?
=> MAX : 정말 ... 고마웠어
- 픽
·························
컴퓨터가 조용히 꺼졌다.
마치 처음 그날 녀석이 ‘싫어’를 외쳤을 때처럼. 그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녀석은 그냥 떼쟁이 어린 소년이었단 걸.
컴퓨터를 다시 켜 볼까 했지만, 그만뒀다. 어차피 켜지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그 다음날 컴퓨터를 켜보니, 녀석은-- 정확히 그 채팅 프로그램은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야 좀 친하게 지내볼까 했는데 말이다. 하, 우습게도 그 전까지만 해도 그저 나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던 녀석이 지금은 아쉬움의 대상이 돼버렸다.
잘 생각해 보니 처음에 그 프로그램 설치를 끝마치고 모니터에 작게 뜬 텍스트에 이런 문구가 써져있었다.
‘저와 친구해요. 외로워요.’
녀석은 자신의 작은 바람을 수줍어 직접 입으로 전하지 못해 텍스트로 남겼던 것이다. 처음부터 녀석의 마음은 이 텍스트의 짧은 문구에 들어있던 것이다. 그리고 난 이제 와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후회한다. 왜 진즉에 녀석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다. 돌연 어렸을 적 하얀 4절지에 까만 물감 하나 찍 뿌리고 휴지통에 버렸던 기억이 났다. 왠지 그거 같다. 휴지통에 버려졌던 4절지 위의 까망색 외로운 점 하나를 닮았다. 그 녀석은. 전에는 쉽게 버려진 4절지가 아까웠는데, 이제는 외로운 까망색 점 하나가 불쌍하다.
며칠 후, 친구 광민이를 만났다. 광민이에게 그 채팅 프로그램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러자 광민이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미안하다 야. 내가 너한테 알려준 그 사이트 말이야, 알고 보니 내가 너한테 알려주기 삼일 전쯤에 폐쇄됐다고 그러더라. 그 뭐라더라, H.P 주인장이 자살을 했다나? 중학생 꼬마였다는데 언어장애가 있어서 말을 못했대. 몸집도 작고 병약하기까지 했대. 거기다 소심해서 하는 행동도 답답하고 하니 여태 친구 하나 못 사귀었다는군. 쯧, 불쌍하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한 왕따까지 당해서 학교에 한 번 갔다 하면 몸뚱이가 시퍼래져서 돌아왔다고 하더라. 응? 어떻게 그리 잘 아냐고? 내 여동생이랑 같은 반이었거든. 내 동생이 다 말해줬지. 그 사이트도 내 동생이 알려준 거야. 하, 동생이 그 애랑 자기랑 취미가 비슷한 것 같아서 잘하면 친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라면서 아쉬워하더라. 응? 너 왜 울고 있어?”
- fin -
p.s :
www.max-noorichat.com/ 이곳은
.... 들어가지 마십시오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