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가 후반에 접어들면서 무모한 도전을 하는 선수들의 사고가 계속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후는 현이 걱정되는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떨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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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보니 입이 심심해서 ‘기화 초콜릿 스틱’을 입에 하나 꺼낸다. 끄트머리를 강하게 빨아들이면 초콜릿맛 기체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제품이다. ‘기화 스틱 시리즈’는 출시 초창기에는 예전에 건강에 해롭던 기호 식품 담배와 비슷한 모습이라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시나브로 인기를 얻더니 어느새 세계적 필수 기호 식품이 되어 있었다. 인체에 무해하면서 먹는 방법도 깔끔하다는 것이 어필한 한 모양이었다. 인후도 처음에는 뭐 이런게 다 있나 싶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애용하고 있었다.
“똥멍청이 자식. 어찌되던 알바 아냐.”
기화 초콜릿 스틱을 입에 물며 중얼거린다. 그러자 어느샌가 그를 따라 벤치에 걸터 앉은 홀로그램 여성이 묻지도 않은 대답을 시작한다.
“똥멍청이 관련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성 태백팀의 소속 선현 선수의 별명으로 감독인 김인후가 그렇게 부르는 모습이 자주 방송을 타면서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인후는 깜짝 놀라 입이 떡 벌어진다. 덕분에 입술에 매달린 초콜릿 스틱이 미끄러져 내린다. 아직 개시도 못한 스틱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언제 별명이 이 따위로?’
벙찐 표정의 인후를 보며 홀로그램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잇는다.
“똥멍청이 선현 선수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습니다. 2062년 제 7회 대회 데뷔. 첫 해에 종합 3위를 차지하여 2063년 가장 기대되는 선수로 선정됩니다. 그러나 2063년 대회 4 라운드에서 기체 대파로 큰 부상을 입습니다. 이후 기나긴 재활을 거쳐 2067년 극적으로 복귀하지만 2068년 13회 대회까지 두 대회동안 별다른 성적을 남기지 못합니다. 이후 예전의 잠재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인후는 설명을 들으며 인상을 찌푸린다.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온통 붉은 경고등으로 가득찼던 전략실, 박살이 난 서킷 코너, 그리고 우주에서 현의 붉은 핏방울을 뿌리던 하얀 그들의 기체,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푸른 불꽃. 구조원과 스태프들이 엉켰던 그날의 아수라장이 녹화된 영상마냥 뚜렷하게 그의 눈 앞에 떠오르는 기분이다.
“……현재 진행중인 14회 대회에서 종합 7위를 기록하며 부활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지만 팀 감독과 불화가 여론에 오르며 다음 대회에서는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거친 경기 운영이 여러차레 입방아에 오르는 등……”
상념에서 돌아오는데 필요한 시간은 한 순간이었다.
“됐어 꺼져!”
인후는 홀로그램을 향해 거칠게 외쳤다. 그러자 홀로그램이 천천히 옅어지며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빛의 조각이 되어 흩어져 버린다. 잘 알고 있던 사실을 제 3 자로부터 듣는 기분은 아주 더러웠다. 그는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스틱을 주워들어 입에 물고 한숨 크게 들이쉬었다. 기화된 초콜렛이 입 안에 가득 퍼진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메우고 있던 잡다한 생각이 달콤쌉싸르함에 깨끗하게 덧씌워지는 기분이었다.
“저도 하나 주시면 안돼요?”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낯익은 얼굴의 소년 하나가 옆에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 녀석이 경기를 보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는데……’
인후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뚜렷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한가. 삼촌 응원을 오는데 꼭 팀 감독에게 연락을 하고 올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짧은 잡념을 끝낸 인후가 피식 웃으며 말없이 기화 초콜릿 스틱을 하나 꺼내 건넨다.
“감독이 여기 있어도 돼요?”
소년이 넘겨받은 스틱을 망설임 없이 입으로 가져가 쪽쪽 빨면서 말했다.
“그러게.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네 삼촌 때문에 아저씨가 오래 못 살겠어서 뛰쳐 나왔어.”
인후가 어느새 비어버린 자신의 스틱을 옆에 있는 휴지통을 향해서 던지며 대답했다. 스틱이 포물선을 그리며 휴지통 테두리에 부딪혀 땅바닥으로 나동그라진다. 그러자 휴지통에서 가느다란 손이 튀어나와 바닥에 널부러진 스틱을 잡아챈다. 그는 참 쓸모 없는 기능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직접해도 되는 일까지 기계가 알아서 한다. 인간은 얼마나 더 게을러질 셈일까.
“그래도 도와 주실 거 잖아요. 이제 3바퀴 남았대요. 삼촌은 여전히 3등이고.”
소년이 빙긋 웃으며 말한다.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인후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벤치에서 천천히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어차피 나는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감독이야.”
소년이 인후를 올려보며 눈을 꿈뻑인다. 마치 그래서 가겠다는 것인지 안 가겠다는 것인지 되묻는 것 같았다.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라도 체커 받으면…… 그 땐 옆에 있어야겠지. 명색이 감독인데.”
인후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어기적어기적 팀 전략실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소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긋 웃었다.
관성력을 타고 이마에서 눈썹 끝을 거쳐 빰을 가로질러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간다. 현의 온몸은 이미 식은땀으로 푹 절어 있었다. 콕핏 내부가 최적 온습도를 유지하도록 설정되어 있지만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긴장한 근섬유 한섬한섬에서 수분이 쥐어짜내어지는 속도를 콕핏에 설치된 건조기가 따라잡지 못한다.
이제 남은 건 단 세 랩 뿐, 필요한 시간은 겨우 7분 남짓, 두 시간에 가까운 레이스도 이제 곧 끝난다. 선두인 지구 뮌헨팀과 차이는 계속해서 4초 이내. 마지막 바퀴에 들어서기 전에 선두와 차이를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2위 자리를 차지해야한다.
달 궤도 소행성 서킷은 추월을 할만한 코너가 적은 편으로 레이서가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중반 이후의 순위가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드라마틱한 순위 변동을 볼 수 있는 곳이 제 1 코너와 제 5 코너 둘 뿐인데 현이 승부를 걸 수 있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현은 오른날개의 제어를 잠시 풀었다. 날개처럼 팽팽하게 뻗어있던 오른팔이 흐느적거리며 속박에서 자유로워진다. 현은 그 손으로 눈썹 위로 주렁주렁 매달린 땀방울들을 훔친다. 굳이 닦아내지 않아도 그의 눈까지 흘러내릴 정도의 양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종일관 앞을 막아서는 2위 화성 베이징팀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에 앞서 현은 만전을 기하고 싶었다. 혹시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땀이 눈에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짧은 휴식을 가진 현은 마지막 코너이자 서킷에서 가장 밋밋한 제 16 코너를 넘기 무섭게 화성 베이징 팀의 꼬리에 바짝 붙었다. 본격적인 흔들기를 시작해야할 때다. 현은 베징팀의 붉은 기체 좌측으로 붙어 자신의 기체를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4개의 하얀 날개에 매달린 16개 추진기가 시퍼런 불빛을 폭발적으로 쏟아낸다. 붉은 기체도 질세라 급가속을 하며 좌측으로 움직이며 현의 진로를 막아섰다. 경로가 막힌 현은 속도를 줄이는 대신 붉은 기체의 오른쪽꼬리로 방향을 바꾼다. 좌에서 우로 급하게 방향을 바꾸어 빈틈을 공략하려는 작전이었다.
-현. 그 공략은 16랩부터 써오던 거라 효과가 별로 없어요. 그보다 이제 기체 내구가 버티질 못합니다. 이대로 출력을 올려둔 채로 달렸다간 마지막 랩에서 최고 속도를 낼 수 없을 거에요. 속도를 줄이세요.
팀 메시지가 현의 눈에 떠올랐다. 집중하려던 찰나에 거슬리는 메시지가 뜨자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다. 현은 메시지 수신마저 거부로 돌려버린다.
인후가 전략실로 들어온 건 그때였다. 스태프들이 인후를 보고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프리젠테이션 모니터를 보고 현 상태를 파악한 인후는 현을 이대로 내버려둬선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통신 시스템 우회해서 녀석의 귓구멍 음소거를 뚫어봐. 최소한 마지막 랩이 되기 전까지는 내 목소리가 저 자식 귀에 박히도록!"
“안 그래도 아까부터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1분 이내에 뚫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커멓고 커다란 통신 시스템 엔지니어가 씨익 웃으며 대답한다. 인후도 그를 마주보며 한번 씨익 웃어준다.
“나머지는 기체 밸런스 서포트에 최선을 다해!”
인후가 전체 스태프에게 눈길을 한번씩 주며 외쳤다.
“우리의 똥멍청이가 최소한 밖에서 욕은 안 먹도록 도와주자. 저 자식을 욕할 수 있는 건 우리뿐이다.”
몇몇 스태프들이 킥킥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관중석 앞 짧은 직선 주로가 끝나고 제 1코너로 들어서기까지 현은 끊임없이 좌우로 움직이며 베이징팀의 빈틈을 노렸지만 소득은 없었다. 붉은 기체는 마치 만리장성마냥 철벽으로 그를 막아섰다. 최소한 제 1 코너에서 들어서면서 조금이라도 실수하기를 바란 것이 무색하게 코너링도 완벽하다. 그러나 현은 실망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 1 코너를 베이징팀에 바짝 붙어 통과한 후, 그는 무난한 2번 코너 앞에서 다시 붉은 기체의 왼쪽 꽁무니에 붙었다. 베이징팀이 지체없이 그의 앞길을 막아선다. 현은 별다른 후속 시도 없이 제 2 코너를 넘겼다. 제 2 코너와 반대방향으로 꺾어지는 제 3 코너에서는 오른쪽으로 바꿔 공략해보았지만 마찬가지로 무위로 끝난다. 이어진 직선 주로에서 최대 가속을 내면서도 현은 포기하지 않고 베이징팀의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가며 위협했다. 그러나 베이징팀은 별다른 동요없이 손쉽게 슬쩍 슬쩍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막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