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 ’
남자의 눈동자는 무척 붉었다. 너무나 붉어서 섬짓함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하지만 인간에게 붉은 눈동자란 존재할리 없다.
“ 죽고 싶은거냐? 인간아! ”
“ 후후후후.. ”
마족의 특기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라면 인간에게 오만불손한 태도다. 정석대로 너무나 솔직하게 인간을 대하는 특유의 발언이 지우의 입가로 미소가 가득하게 만들었다.
“ 마족님이셨군요. ”
마족은 움찔하며 멱살을 잡은 팔이 서서히 지우의 힘에 의해 풀어진다.
“ 이 자식! ”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상에 황당한 얼굴로 두리번 대는 마족은 급기야 붉은 안광이 드리우며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하였으나 지우또한 지지 않을 태세로 기를 불어 상쇄시켰다.
- 파앗! -
기어코 마족의 두 팔이 활짝 벌어지고 비어진 가슴 팍에 깊숙히 들어가는 지우.
“ 어이쿠! 죄송했습니다. 마족씨! ”
질풍신권 (疾風神拳) 제 2장.
전신에서 솟구친 푸른 기운이 굳게 쥔 주먹 사이로 스며들어간다. 상대를 찢어버릴 파동! 그 이름하여
질풍폭쇄파 (疾風爆碎波)
- 쿠아아아앙! -
가슴팍을 정통으로 가격당하자 그 힘에 의하여 날아가 벽에 박혀진 마족을 중심으로 금이 쩌억 가버리고 벽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무수한 파편과 먼지와 함께 바깥 거리로 튀어나간다. 바깥 바람이 들어오면서 지나가던 사람들의 얼굴이 부숴진 벽 사이로 나타났다.
“ 소. 손님! 무.. 무슨 짓입니까! ”
“ 보면 몰라? 신성한 인간계를 더럽히는 마족에게 한방 먹이는 중이시다. ”
“ 아이고.. 어쩌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
“ 시끄러워. 수리비는 저기 뒤에 놈이 줄테니까 얌전히 있어라고. ”
사고쳤군. 난감한 표정을 짓던 상호는 지우의 망언에 펄쩍 뛰었다.
“ 미.. 미쳤어!? 내가 돈이 어딨다고 그래!? ”
“ 느그 마누라 있잖아. 아주 잘나가시는 모델님 말이다. 걔 명의로 카드 있는거 다 알어. ”
“ 야! 그건 허락없이 함부로 긁으면 맞아 죽는다고! ”
“ 조용해봐. 아직 안끝났으니까. ”
무너져내린 파편 틈 사이로 팔 하나가 번쩍하고 치솟았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서며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 마족은 걸레가 되버린 티를 훌훌 벗어던지고 고개를 까닥였다.
“ 능력자였군. ”
“ 틀렸어. 네놈같은 마족 전문 담당 카운셀러님이시다. 상담 방식은 주먹. 수고료는 피떡이 된 마족. ”
“ 크크큭. 간댕이가 부었군. ”
“ 흔히들 날 처음 본 녀석들이 그리 말하지. 하지만 마지막가서 공통점이 뭔 지 알아? ”
지우는 지글지글한 숯불통을 집었다. 일반인은 잡기만 해도 살이 녹으며 큰 화상을 입을테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멀쩡하고 고통을 느끼는 얼굴이 아니었다.
“ 하나같이 무릎 꿇고 살려달라 비는거야! ”
숯불통을 확 집어던지자 뜨거운 숯불이 상대의 전신으로 흩뿌려진다.
“ 멍청한 놈! ”
그가 손을 펼치자 땅바닥에 널부러져있는 파편들이 치솟으며 날아오는 숯불을 막아섰다. 하지만 그때문에 지우의 모습은 난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당황한 눈빛으로 황급히 등을 돌리는 마족의 이마로 지우의 손가락이 접촉되었다.
“ 허억!? ”
“ 왜 이렇게 되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네 놈들은 항상 이랬거든. 인간을 얕잡아 보다가 허구언날 큰 코 다치지. ”
- 빡! -
장력을 실은 마빡 때리기가 작렬. 순간 고개가 뒤로 확 하고 쳐지는 상대의 앞에 자세를 낮추는 지우의 양 팔에서 푸른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질풍신권 2장 오의 정도면 녀석을 넉다운시키는데 부족함 없는 기술이렷다.
“ 지우야 조심해! ”
그러다 문득 상호의 다급한 외침에 지우의 시선이 움직였다.
“ 쿠아아아아아악! ”
뜬금없이 날아오는 주먹에 얼굴을 가격당한 지우는 부숴진 벽면 옆으로 날아가 박혔다. 마찬가지로 벽이 부숴지고 우수수 떨어지는 먼지 속에서 벌떡 일어난 지우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었다. 그제서야 실수했다고 깨닳은 지우는 재미있다며 씩 웃었다.
“ 아참, 잊고 있었네. 한 놈 더 있었지? 미안허이. 술기운때문에 본의 아니게 무시했군. ”
그러나 상대와 제대로 시선을 맞추자 지우는 강대한 압박감에 웃음기를 지울 수 밖에 없었다. 눈가를 가리는 붉은 빛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진홍의 살기가 지우의 전신을 숨막힐듯 조여버린다. 방금 녀석이 어설프게 힘 따위를 믿고 나대는 쪽이라면 지금 상대는 진짜 마족이다.
“ 이 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 아닙니까?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
“ 동방예의는 무슨. 언제적 소릴 하는거야. ”
“ 흐음, ”
그의 풀 네임은 에테오룬 포네르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돼지갈비. 인간계를 찾은지 2년. 우연히 한국에서 돼지갈비를 접한 나머지 아예 눌러 앉아 매주마다 이틀에서 사흘 정도 갈비집을 찾아다니는 마족 남자다.
“ 결투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습니다만 일단 식사를 끝낸 뒤에 하죠. ”
그러면서 자리에 돌아가 앉는다. 이미 식당 분위기는 먹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감히 비너시안(마족)과 시비가 벌어졌으니 살고 싶으면 한시빨리 반경 수십미터 밖으로 도망쳐야했다. 손님은 다 나가고 어느새 와들와들 떠는 사장과 몇몇 종업원.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들만 남았다. 허전한 분위기속에 묵묵히 고기를 굽기 시작하는 놈을 보고 지우의 이마에서 힘줄이 돋아난다.
“ 시방, 지금 나 무시하냐? ”
그는 싸늘한 시선을 아랑곳하지않고 상추에다 고기를 얹히고 된장 찍은 마늘이랑 고추까지 올려 싸서 입안에 넣었다.
-지이이익. -
고기가 지글지글 익는 소리를 낸다. 숯불의 열기가 올라오며 구수하고 달콤한 돼지갈비 양념 향이 코끝을 자극하였다.
“ 이곳은 저의 단골집입니다. 더 이상 주인장에게 민폐를 끼쳐드리지 말아주십시오. ”
무슨 마족 놈이 이래? 마족이 숯불갈비집에서 태연하게 고기를 굽는 모습은 3년전만 해도 감히 상상도 못할 광경이다. 인간이 시비를 걸면 열을 내며 응수하는 게 당연한 마족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돼지갈비보다 못한 입장이 되버린 지우는 가게 하나 통째로 박살내버릴 기세였다.
“ 에.. 에테오룬님. ”
지우에게 호되게 큰코다친 마족은 에테오룬의 행동에 당혹감이 서려있었다. 아마도 그또한 에테오룬이 나서서 한방 먹여줄거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그의 차갑기 그지 없는 시선이었다.
“ 스플랑크. 제가 그대에게 당부한 말이 있었지요? 이곳에서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날뛰지 마라고 했을텐데? ”
“ 죄... 죄송합니다! ”
서열상 철저히 아래였는지 스플랑크라 불리는 마족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넙죽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실로 웃기지도 않는 모습이다.
“ 짜증나게 하네. 어이!! ”
당연히 지우는 이런 작태를 지켜만 볼 위인이 아니었다. 무시당한 만큼 그대로 돌려주려 그의 어깨위에 손을 올려 젖히면서 주먹을 치켜든다. 바로 그때. 에테오룬은 쌈위에 올리려는 마늘을 엄지로 튕겨 지우의 이마에 날렸다. 마력이 깃들어진 위력에 지우의 머리는 팍 하며 뒤로 크게 젖혀졌다.
“ 아악! ”
- 쿠당탕! -
이마에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하마터면 목뼈가 나가 평생 불구로 살았을 것이다. 목을 이리저리 까닥이자 우드득 소리고 났다.
“ 위.. 위험했다. ”
“ 정말 못말리는 인간이군요. ”
“ 그러니까 그만 쳐먹고 제대로 덤벼. 숯불 위에 지글지글 구워줄테니까. ”
“ 이렇게 겁이 없을 수가.. ”
자리에서 일어나는 에테오룬. 지우는 두 주먹을 굳게 쥐고 상대의 반응을 주시하였다. 보통내기가 아닌 만큼 오래간만에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각오였다. 하지만 그는 지우를 무시하고 식당 주인에게 향한다. 마족 주제에 지갑까지 꺼내들고는 안에서 카드 하나를 척하고 주인에게 건냈다.
“ 체크 카드입니다. 가게 수리비 정도는 들어있을테니 가지십시오. ”
“ 괘.. 괜찮겠습니까? 경찰을 부르는 편이.. ”
아니 저 아저씨는 대체 마족 편이야 아니면 인간편이야? 지우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린 식당 주인은 재빨리 주방으로 숨었다.
“ 얌마! 무시하지 마라고! ”
지우가 날아오른다. 굳게 쥔 주먹에서 기가 분출하였다. 가볍게 옆으로 피한 에테오룬의 앞으로 바닥이 부숴지며 주변의 모든 기물이 일제히 벽면으로 날아가버린다.
“ 미숙하군요. ”
“ 헉?! ”
어느틈엔가 등 뒤에 바짝 붙은 에테오룬의 손아귀가 지우의 상의 주머니를 만지고 있었다. 홱 돌아 팔꿈치로 찍어버리려 했지만 이미 거리를 띄운 뒤다.
“ 당신도 사루 고교생입니까? ”
방금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지우는 얼른 주머니를 뒤졌다. 손에서 자그마한 뱃지가 집힌다. 녀석은 그것을 만져보고 알아챈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주머니에 뱃지가 있는 것을 안거지?
“ 내일부터 다닐 복학생 님이시다. 너도 다니냐? ”
“ 복학생?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
“ 복학생도 모르냐? 뭐.. 알리가 없겠지. 알 필요도 없어... ”
“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쪽또한 교칙은 모르시는 것 같군요. ”
뜬금없이 교칙이란 단어에 지우는 공격을 멈춰야했다.
“ 사루 고교의 교칙 중에는 분명 허락없이 학교 밖에서 학생끼리의 결투는 금지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과 싸울 수 없지요. ”
“ 호오? 그렇다면 학교 내에서는 가능하다는 건가? ”
“ 원한다면 언제든지. 하지만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으면서 덤비는 것은 좀 비겁하지 않습니까? ”
“ 안전장치? ”
영문도 모르는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지우. 그런 그의 상의 주머니로 손가락을 향한 에테오룬의 마력이 뭔가를 캐치했다.
“ 얌마! 뭐하는거야? ”
갑자기 자신의 소매에서 뭔가를 빼내자 재빨리 그것을 낚아챈 지우는 손바닥을 펼쳤다. 그것의 정체는 뱃지였다. 학교를 다니는데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이라던가? 보이스카웃의 뱃지마냥 시시한 것이 안정장치라니? 의아한 눈초리에 에테오룬은 입가의 잔잔한 웃음을 띄웠다.
“ 그것은 학생들끼리 분쟁을 피하기 위한 수단. 말하자면 당신 같은 인간이 마족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그 뱃지를 소지한 상태로 싸우는 것은 다시 말해 학교 규칙에 어긋나는 행위지요. 저는 마계로 돌아가기 싫군요. ”
“ 호오? 이 뱃지가 있는 상태로 인간을 공격하면 더러운 마계로 꺼질 수 있는거냐? ”
“ 반대로 당신또한 저와 싸우게 된다면 강제 퇴학이겠지요. ”
“ !!!!!!!! ”
에테오룬의 손가락 끝에서도 지우의 것과 같은 디자인의 뱃지가 있었다. 난데없이 소름이 등허리를 쫘악 때리면서 식은땀이 흐른다. 만약 멋도 모르고 덤벼들었다가는 즉시 퇴학을 당할 것이고 그때는...
“ 꿀꺽... ”
“ 만약 싸운다해도 당신의 패배는 100 퍼센트입니다. 저는 싫거든요. 시시한 일에 힘을 빼는 행위 만큼 추잡한 것은 없지요.”
자존심을 공격당한 지우는 이를 빠드득 갈았지만 방법은 없었다. 녀석이 뱃지를 버리지 않는한 함부로 덤비면 퇴학이다.
“ 잠깐.. ”
여유롭게 나가려던 그를 불러 세우는 지우. 그냥 보내주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한가지 있다.
“ 네 놈 옆에 그 쫄따구는 뭐야? 분명 나를 공격했었다! 뱃지를 소지한 나를 말이야. 그렇다면 녀석은 집으로 꺼져주서야겠군. 거기다 네 놈도 마찬가지다.”
에테오룬은 조그마한 소리로 코웃음 친다. 재미있는 녀석이라는 듯 그 표정에 얽혀있는 거만함이 자꾸만 지우의 호승심을 자극하였다.
“ 확실히 그렇지요. 흐흠.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곳은 학교가 아니기에 얼마든지 싸울 수는 있겠지만 소문이 퍼져서 그들의 귀에 흘러들어갈지는 저도 장담 못합니다. 아무것도 못얻는 그저 자존심만 내건 승부를 하실 겁니까? 잃어버릴 게 훨씬 많은 도박이실텐데? ”
“ 예컨데 들키지만 않으면 장땡이라는 거군. ”
“ ..........그 말씀은? ”
위험하다. 불연듯 스치는 불안에 상호의 손길이 지우의 어깨 위로 향하였으나 그보다 빨리 지우의 모습은 에테오룬의 바로 앞까지 달려간 뒤였다. 그러나 에테오룬의 얼굴을 노린 펀치는 허공을 가르고 떨어진다. 갑자기 사라진 상대를 찾느라 고개를 돌리는 사이 등 뒤로 나타난 에테오룬의 붉은 마나가 실려진 손바닥이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 커헉! ”
단 일격에 바닥에 쓰러지고 마는 지우. 결국 허를 찌르는 공격에 맥없이 당한 것이다.
“ 러브 앤 피스. 저는 평화주의자라서 당신같은 별볼일 없는 남자와 얽히기 싫군요. ”
목덜미를 덥썩 붙잡혀 들어올려진 지우를 상호의 발 아래 내던진 에테오룬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가볍게 기절 시킨겁니다. 안심하십시오. 아.. 그리고 나중에 깨어나게 되면 말 좀 전해주시겠습니까? 학교에서 얼굴 부딛히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요. 후후후. 그럼 실례. ”
마족들이 사라지자 그제까지 조용하던 식당 주인은 기가 살아나 방방 뛰기 시작했다. 모든 책임의 화살을 지우에게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변명이 힘든 사실이었고 상호는 머리가 땅에 닿을 만큼 연신 허리를 숙이며 사과에 사과를 거듭해서야 겨우겨우 고소를 면할 수 있었다.
“ 그런고로 이 정도에서 끝난 게 다행인줄 알아. 잘못하다 소문이라도 퍼지면 그 뱃지인지 뭔지 때문에 교칙 위반 당해서 큰일 나잖아? ”
“ 시끄러워. ”
한적한 동네 공원. 벤치 위에서 눈을 뜬 지우의 머리속에는 오로지 마족에게 당했다는 수치심만이 가득했다. 해보지도 못하고 당했다는 사실에 잔뜩 화가나서 길바닥에 놓인 죄없는 깡통을 걷어차며 씩씩거리는 그의 모습은 어린아이의 어리광과 같은 것이다. 당연한 결과겠지. 자존심이라면 둘째가라 서러워하니까. 씁슬하게 웃어넘긴 상호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하지만 말이야. 만약 정말로 싸웠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
“ 뻔한 걸 묻지마. 이 손으로 묵사발이 되었을 거니까. ”
“ 과연 그럴까? ”
지금껏 숱한 마물들과 싸워온 지우의 실력은 상호가 볼때 정말 대단한 수준이다. 허나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으로서 이야기다. 지우보다는 한참 아래지만 같은 능력자이기도 한 상호는 에테오룬이란 마족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순간적이지만 손에서 뿜어져나오던 가공할만한 마력은 만약 마음만 먹었다면 즉사시킬 수준이었다.
“ .... 그런것 쯤.. 알고 있다고 멍청아. ”
상호의 표정에서 그 뜻을 읽었는지 지우는 애써 화를 삭히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다음 날 아침.
“ 박지우!!!! 빨리 일어나지 못해?!! ”
“ 으헉! ”
시계가 가르킨 시간은 7시 50분. 학교 등교 시간은 8시 30분 까지인 것을 감안하면 첫날부터 지각할 운명에 쳐했다. 왜 지금에 와서 깨웠냐고 투덜거리던 지우는 머리에 주먹만한 혹이 나타나서야 묵묵히 교복을 찾아 입기 시작했다.
“ 그러기에 얼마나 마신거야?! 너는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실컷 마시려면 대학 가서나 해! 알아 들었어? 이 무책임한 아들아! ”
“ 크윽.. 알았으니까 때리지 좀 마. ”
“ 이게 죽을라고? ”
지우의 대꾸에 그녀의 몸에서 검은 오오라가 펼쳐지고 현석을 비롯한 하숙집 식솔들은 시퍼렇게 질린 표정으로 식사에 집중했다. 기어코 그 손에 들려진 국자가 지우를 지나쳐 현관 앞에 벽으로 박혔다. 명중했다면 오늘 학교는 물론이고 며칠동안 누워서 끙끙 앓았을 터이다. 하나뿐인 아들을 죽일 셈이냐!
“ 히이이익! 가.. 갔다올게. ”
“ 너 거기 안서?! ”
2층 난간에서 대문 밖까지 뛰어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 지우는 잡히면 그날로 사망이라는 일념으로 열심히 달렸다. 어느정도 달리자 속도를 줄인 그는 벌떡이는 가슴을 움켜쥐고 왔던 길을 돌아본다. 이 정도니까 다행이지 그 아줌마가 진심이었다면 전력을 다하지 않는 이상 순식간에 따라잡혔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집에서 나오지 않은 모양이겠지.
“ 학교 첫날이라고 지각은 하지 마라 이거겠지. ”
집과 학교 사이의 거리는 전에 다니던 학교들과 비교하면 대중교통이 필요없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다.
“ 지각은 안해서 좋군. ”
벌써 저만치부터 학교 정문이 보이려 하자 지우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발걸음을 힘차게 재촉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
“ 우와아아악! ”
난데없이 뒤에서 차들이 지나가자 황급히 길가로 뛰어나온 지우는 쉴세없이 들어오는 각종 자동차들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 세.. 세상에 이것들 전부 뭐야? ”
지나가는 차들은 하나같이 고급 승용차 중에서 탑을 먹는 기종들. 죄다 국산 클래스가 아니다. 볼브며 벤츠며 롤스로이드 하며 전부 억대 이상의 엄청나게 값비싼 외국 차들로 마치 자동차 박람회라도 온 것이 아닐까 지우는 뺨을 꼬집어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길가에 지나가 겨우 한 대 볼까말까한 차들을 한꺼번에 그것도 수십대씩이나 보게 되었으니 그 누구도 놀라지 않고서는 못배기겠지. 물론 차에 탄 당사자들은 제외가 되겠지만..
“ 저것들 전부 뭐야? ”
전부 이 학교 학생은 아니겠지? 다니는데 비용만 해도 20억이 넘으니까 더러운 마족이나 중세 유럽에서 타임머신 타고 온 이상한 것들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 으헥.. 그렇다는 말은 죄다 부잣집 도련님 아가씨들 밖에 없다는 거야? ”
사촌 상호의 부인(?) 리아의 싸가지 없는 모습이 학교 안에 잔뜩 돌아다는 것을 떠올리자 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몸에서 힘이 들어갔다.
“ 거기 학생! ”
“ 예? ”
그때, 교문 앞에서 누군가가 부르자 지우는 고개를 돌렸다.
“ 그래, 너 말이야. 너. ”
그래도 괜찮은 점은 지금 자신을 부르는 여자아이의 외모가 제법 볼만하다고나 할까.
“ 나 말이냐? ”
“ 그래, 너. 이름표를 보니 2학년 같은데? ”
그녀의 말투에서 상급자로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다분했다. 한학년 위라는 소리겠지. 하지만 지우는 존댓말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따지고보면 자신의 나이가 그녀보다 한 살 위니까.
“ 그래서 뭐? ”
“ 제법 건방진 말투네. 뭐 좋아. 어찌되었건 처음 보는 얼굴인데 혹시 소문의 전학생? ”
이야, 벌써부터 그런 소문이 퍼진 건가?
“ 어제 잘도 대형사고를 쳤더군. ”
“ 잠깐, 그쪽은 뭔데 감히 날 훈계하려 드는 거지? ”
지우가 말을 끊고 대꾸하자 그녀는 갈색 빛의 웨이브치는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흘러내리며 입고리를 슬며시 들었다.
“ 나는 선도부의.. ”
“ 응? ”
그녀를 중심으로 여러명의 남학생이 몰려든다. 옳거니. 어깨에 찬 완장을 보니 선도부라 이거군.
“ .......다. 이름쯤은 들어봤겠지. ”
“ 뭐라고 했는데? 잘 못들었는걸.. 다시 말해봐. ”
“ 뭐.. 뭐시라! ”
그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차갑게 눌러붙는다. 당황하는 그녀보다는 옆에 있는 남자 놈들의 살기에서 비롯된 기운이겠지. 저마다 각각의 기가 느껴지자 지우또한 슬며시 몸에 기를 배출시켰다.
“ 첫날부터 싸우고 싶지는 않군. ”
하지만 지우가 지닌 기는 그들이 가진 힘을 다 합쳐도 모자랄 만큼 대단했고 결국 그들은 살기를 거두고 겁먹은 강아지마냥 고개를 돌렸다.
“ 역시 소문대로네. 굉장히 강한 능력자라고 들었는데 사실이었어. ”
“ 그래서 용건이 그것 뿐인가? ”
“ 응, 어차피 어떻게 생긴 아이인지 궁금했을 뿐이야. 뭐, 이 정도면 학교에서 사고 많이 칠 만하겠는데. ”
“ 남이 건들지만 않으면 조용히 지낼 생각이다. ”
“ 그래서 일부러 교문앞까지 찾아온거야. 이상한 사고나 쳐서 우리 선도부랑 얼굴 붉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
“ 고작 그 것뿐? ”
그녀는 가슴팍에 손을 짚고는 흥겹게 말했다.
“ 영광으로 생각해. 나 선도부 제 3 부장. 차미래가 직접 찾아와 얼굴 도장을 찍어줬으니까. ”
“ 어..... 그것 참 영광이네.. ”
그렇게 말한 지우의 눈동자는 이름따윈 관심없고 손을 얹히고 있는 커다란 가슴에 가 있었다. 허리라인도 그렇고 고교생 치고는 상당한 몸매로구나. 그러나 그 관심은 곧 재미없게 사라졌다. 그에게 있어 여자의 몸따위는 그렇게 궁금한 부류가 아니니까.
“ 그럼 갈까? ”
자신의 할 말을 마치고 차에 올라탄 그들은 손살같이 가버렸다.
“ 이런 젠장할!!! 벌써 시간이 이렇게? 좀 같이 태워주면 어디 덧나나! ”
시간이 되자 그 예의 재수없는 양복 남자들이 우르르 나와 교문을 닫았다. 그들을 한번 노려본 지우는 어제 총구가 자신의 이마에 닿은 것을 떠올리자 잽싸게 고개를 돌려버린다.
“ 이.. 잊고있었군. ”
맨손이라면 천하무적! 누구에게나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총을 든 순간부터는 게임 셋이다.
“ 그건 그렇고 지각생 하나 없다니... ”
자신의 주변에 학생이란 존재는 한명도 없다는 사실에 예전 학교와 비교하여 조금 놀란 지우는 황급히 폰 시계를 보고 달렸다.
“ 12분 지각이네요. 지우군. ”
“ 이.. 이그니스... ”
학교 서무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쭉쭉빵빵의 수수께기같은 젊은 이사장 년. 이그니스가 반겨주었다. 반겨주었다기 보다는 왜 이렇게 늦었냐는 듯 나무라는 표정이지만 지우는 인상부터 팍 그렸다.
“ 시꺼. 교문만 통과했으면 장땡 아니야? 학교 좀 작작 크게 짓지 그래.. ”
그녀의 쌍판은 여전히 여유롭기 그지없다. 학생이 건방지게 막말을 하는데도 여유롭게 맞받아친다.
“ 완벽한 교육을 위한 최상의 선택이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천문학적인 자본을 들일 필요가 없겠지요. ”
“ 아아~ 그러셔? ”
“ 조금은 자각하는게 어때요? 뿌듯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인간이라면 보통.. ”
뿌듯함? 대체 어디서 뿌듯함이 있다는 걸까? 하물며 그녀의 입에서 인간이란 단어에 묘한 이질감을 느낀 지우는 기분이 나빠졌다.
“ 거기까지. 그건 당신네들의 기준으로 말하는 거겠지? 대답을 듣고 싶다면 모든 인간이 똑같은 생각은 아니란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군. ”
“ 어머, 이거 실례. 그 충고는 겸혀히 받아들이지요. ”
“ 이 기회에 하나 묻지. 당신 역시 인간이 아니지? ”
몇 번이고 인간으로서는 가지지 못할 기운을 감지한 지우는 대답에 따라서 적의를 드러낼 기세였다.
“ 노 코멘트. 그걸 말해서 지우 군에게 득이 될 일은 아닐 텐데요. ”
“ 득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예상한 대답이 맞겠군. ”
그녀는 현관의 자명종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 시간은 금이랍니다. 당신 덕분에 아까운 8분 20초를 소비했군요. ”
“ 그것 참 미안하군. 말 돌리려고 하지마......라고 말해도 말해줄 당신이 아니겠지. 뭐 좋아. 언젠가는 그 얼굴이 찡그러질 만큼 까발려줄테다. ”
가소롭다는 뜻일까? 그녀의 여유스런 미소에서 뜻모를 분위기가 풍겨졌다.
“ 좋으실대로.. 그럼 따라 오시죠. 당신이 수업할 교실로 안내해드리겠어요. ”
교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출구로 나서자 바로 대형 박물관 급 수준의 커다란 건물 몇채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 중 하나는 다른 건물에 비해 특이하게도 흡사 오래전 중세 시절에나 볼법한 궁전으로 도통 뭘 하는 곳인지 도무지 상상이 안간다.
“ 지우군 눈에도 놀랍지요? 정면에 궁전 같은 곳이 기숙사랍니다. 원래 저 정도를 만들려면 이 학교를 짓는데 들어간 비용의 두배 이상이 들어갔겠지만 다행히도 소렌트 왕국의 지원아래 현지에 있는 궁을 마법을 이용하여 통째로 텔레포트 시켰답니다. 덕분에 간단한 보수 작업만 거쳐서 비용을 기적적으로 줄였지요. 대다수가 화성인이 머물고 그 외에 소수의 금성인이나 지구인이 살지요. 아쉽게도 기숙사는 저것 하나 뿐이라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자가로 통학 할 수 밖에 없죠. ”
“ 그래서 뭐 어쨌다고.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
그렇다면 아침에 그 수 많은 고급차 퍼레이드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들 전부가 예상한대로 학생이란 뜻이다.
“ 지구인에게는 일평생 해보지 못할 귀중한 경험일텐데요. ”
“ 저런 곳에서 사느니 싸구려 여인숙을 빌리겠다. 난 따뜻한 방바닥에서 이불 덮고 자는게 편해! ”
“ 아아~ 온돌 시스템! 이 나라의 전통적인 난방 구조를 말씀하시는건가요? 그거라면 충분히 구비했지요. ”
“ 무슨 소릴 듣고싶은거야? 설마 나보고 저기서 살아라고? ”
그녀는 말대신 미소로 답하며 궁전(?) 옆의 건물로 향했다. 궁전에 비하면 수천배는 정상적인 현대식 건물이다.
“ 나머지 건물은 전부 교육관이랍니다. 지우군이 공부.. 험험. 정정하죠. 근무할 교실을 비롯해서 각종 실습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
“ 뭐야, 결국은 평범한 학교잖아? ”
이상한 기숙사를 비롯해 규모만 돼지처럼 컷지 어느 학교에나 찾아볼 수 있는 구조다.
“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죠. 혹시 아시나요? 학교로 지정된 구역이 이곳뿐만이 아니라고 뒷산까지 모두 포함되는 사실을요. 차차 아시게 될거에요. ”
“ 그래봤자. 야외 쉼터나 등산 코스따위겠지. 이봐, 이사장. 설명은 됐고 어서 교실로 안내나 해! ”
그러자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 마침 생각나서 이야기하는데. 이 학교에 이사장은 없어요. ”
“ 무슨 소리야. 니가 니입으로 말했잖아? ”
“ 표면적으로 저는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한명의 교사랍니다. 전공은 마계역사학이죠. 뭐, 지우군이랑 수업시간에 부딪힐 일은 없을거에요. 마족들에게는 마계의 역사를 가르칠 필요가 없으니까요. ”
그 말에 지우는 두 주먹을 굳게 쥐었다.
“ 역시 마계 소속이셨군. 친절하게도 정체를 다 까발려주셨네? ”
그녀는 또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 어찌되었건 이제 근무시간동안 뭘 하실 건가요? 가능하면 얌전히 있는 편이 좋겠지만.. ”
“ 별거 없어. 그냥 공부나 할거야. ”
공부는 개뿔. 우선 어제 만난 재수없는 마족. 세바스마인가? 씨바ㅆㄲ인지부터 에테오룬인가 뭔가하는 쌍판을 확 조져버리고 시작해야지. 그리고 보나스로 이 학교에서 제일 강한 녀석을 만나서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이가 누군지 확실하게 인식시켜주는 걸로 마무리 짓고 조용히 살겠다는 것이 지우의 현재 목표다.
“ ...............................다시 말하지만 얌전히 있는게 좋을거에요. ”
“ 어라? 어이 아줌마! 혹시 방금 내 생각을 읽은거야? ”
- !!!! -
바로 그때 지우는 심장을 관통할 만큼 엄청난 프랫셔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 아줌마란 소리는 기분나쁘군요. ”
그 정체는 그녀가 내뿜는 기운이었다. 인간도 마족의 느낌이 아닌 다른 이형의 기운에 지우는 문득 자신의 떨고있는 손바닥을 보게 되었다.
“ 후훗, 한번만 더 아줌마란 소릴 들으면 그때는 아시겠죠? ”
“ 어.... 누.. 누님.. 하하핫. 농담 한번 한거 가지고 왜 그러세요? 하하. 이쪽에 가면 교실이 있나요? ”
너무나 강하다. 자신 따위는 한주먹도 안될 정도로 엄청난 수준 차이에 몸소리 쳐야했다. 그제까지 건방지게 굴다 일순간 굽신거리는 지우의 태도를 보고 마음에 든 이그니스는 평소처럼 미소를 흘리며 교실로 안내하였다.
“ 헤헷, 과연 어떤 곳일까나~ 새 친구들을 어서 보고싶네요. 누님. ”
해봤자 부잣집 도련님 딸내미들이 득실거리는 밥맛떨어지는 곳이겠지. 후딱 분위기 파악시키고 계획대로 움직여보실까?
“ 다 왔어요. 들어갈까요? ”
“ 오오! 벌써요? 그럼 어디.. ”
드디어 도착한 교실문이 열리고 이그니스를 따라 들어간 지우는 실로 오래간만에 느끼는 교실의 공기를 흠뻑 마시며 교탁 앞에 섰다.
“ !!!!!!!!!!!!!!!!!!!!!!!!!!!!!!!!!!!!!!!!!!!!!!!!!!!!!!!!!!!!!!!!!!!!!!!!!!!!!!!!!!!!!!!!!!!!!!!!!!!!!!!!!!!!!!!!!!!!!!!!!!!!!!!!!!!!!!!!!!!!!!!!!!!!!!!!!!!!!!!!!!!!!!!!!!!!!!!!!!!!!!!!!!!!!!!!!!!!!!!!!!!!!!!!!!!!!!!!!!!!!!!!!!!!!!!!!!!!!!!!!!!!!!!!!!!!!!!!!!!!!!!!!!!!!!!!!!!!!!!!!!!!!!!!!!!!!!!!!!!!!!!!!!!!!!!!!!!!!!!!!!!!!!! ”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지우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 오늘부터 같이 공부하게될 전학생이랍니다. 여러분~ 반갑게 맞이해주세요. ”
“ ..................................... ”
“ ..................... ”
지우는 마치 호두까기 인형의 머리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여 이그니스를 쳐다보았다.
“ 저기요. 혹시 잘못 오신게 아니에요? 저는 인간이랍니다. 누님... ”
“ 맞아요. 누가 뭐라 해요? 지우군은 어딜 봐도 완벽한 인간이 맞답니다. ”
“ 그렇죠? 그럼 장난 그만하시고 원래 교실로.. ”
“ 잊으셨나요? 지우 군은 특별 케이스랍니다. ”
이 곳은....
이 곳은!!!!!!!!!!!!!!!!!!!!!!!!!
이 곳은!!!!!!!!!!!!!!!!!???????????????????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터질것같은 머리를 움켜쥔 지우는 힘없이 무릎을 꿇는다.
“ 지우군. 마족 A반에 오신걸 환영해요. 자~ 전학생의 소개 인사가 있으니 여러분들의 뜨거운 박수 부탁드릴게요. ”
“ 이.. 이런 것이었나? ”
이런 것이었나!!!!!!!!!! 이그니스!! 네 년!!!!!!!!!!!!!!!!!!!!!!
지우의 눈빛에는 흡사 레이저라도 나올 듯이 엄청난 살기가 흘러넘쳤으나 그걸 표정 하나 변화 없이 받아들이는 이그니스란 수수께기의 여인도 굉장했다. 그녀는 조용히 귓속말을 하였다.
“ 어찌되었든 졸업장만 따면 되잖아요? 조용히 지내기만 하면 괜찮을거에요. ”
“ 후후후.. 아까 그 말의 뜻을 이제 이해하겠군. 좋아! 네 년의 장단에 맞춰주지! ”
이제야 생각이 정리된 지우는 헝클어진 머리를 바로 세웠다. 어찌되었건 새출발할 교실의 급우들이니 잘 보여드려야겠지. “
“ 박지우다! 기타 사항은 프라이버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갑자기 엄지 손가락을 척 올리는 지우.
“ 너희들도 이게 무슨 표식인지 잘 알거다. ”
이대로는 상대방에게 최고란 의미로 내미는 제스츄어겠지만 반대로 거꾸로 내리면 최악의 모욕을 의미하였다.
“ 성질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 알겠냐? ”
너무나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는지 이그니스의 얼굴에도 상당한 당혹감이 서려있었다.
‘ 그래, 그 표정이라고. 큭큭. ’
더군다나 이 안에 마족들의 얼굴빛도 흡족할만한 수준이겠군. 기대대로 도발에 걸려서 잔뜩 화가난 얼굴...........은 단 한명도 없었다.
완벽한 무시.
이쪽은 어떻게든 상관없는 얼굴로 저마다 딴 짓거리를 하고 있다. 애새끼고 계집애들이고 전부다 말이다!
“ 쿡쿡쿡.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박지우군. ”
재수없는 이그니스의 비웃음까지 들려오자 꼭지가 제대로 들릴 수 밖에.
“ 닥쳐! 아줌마! ”
“ 후후, 그리 화내실... 뭐.. 뭐 아줌마?! ”
이렇게 된 이상 전부 부숴주마!!!!!!!!! 있는 힘껏 들어간 펀치는 나무 판때기로 만들어진 교탁 정도는 우습다. 박살이 나버린 더미에 발로 지긋이 으스리며 살기를 발산시키자 그제서야 만화책보는 놈도 게임기 가지고 노는 놈도 수다 떠는 년도 컵라면 먹는 놈도.. 아니 교실에서 왠 컵라면? 아무튼 이제야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문득 교실과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금기시 된 특유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 너.. 너 거기 임마! 교실에서 흡연 하도록 되어있냐? ”
“ 흥! 왠 멍청이가 오셨군. 인간 주제에 어디서.. ”
말 잘했다!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인데 아주!! 잘되었군. 기다렸다는 듯이 지우는 팔을 걷어붙이며 한판 붙을 기세로 부숴진 교탁을 밟고 올라섰다. 허나 그것도 잠시 뿐.
“ 으아아아악! 내 귀! ”
이마에 잔뜩 힘줄이 돋아난 이그니스의 매서운 손길에 귀가 붙잡힌 그는 연신 비명을 질렀다. 보통 인간 레벨로 잡은 게 아니다. 그녀의 손에서 확실히 마나가 감지되었다.
“ 조금은 얌전해지세요. 전학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
“ 이이이.. 아줌... 끄아아아아악! ”
“ 여기서 끝내지요. 한번 더 말하지만 한번만 더 그 단어가 입에서 나오면 죽일거에요. ”
죽인다는 말을 잘도 웃으면서 할 수 있구나.. 지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두 번 다시 귀를 잡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입을 굳게 다문 지우는 그녀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그녀의 손길이 가볍게 스치자 박살이 났던 교탁이 눈깜작 할 사이에 복원된다. 어느정도 상황이 진전되자 싱긋 웃으며 입을 여는 그녀.
“ 여러분의 이곳에 온 이유는 타종족간의 문화 교류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무엇을 어떻게? 졸업하는 그 날까지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탐구하면서 진리를 찾아 가는 것이 최대의 목표겠지요. 불순한 존재가 들어와 분위기를 흐린다고 생각지 마시고..”
“ 누.. 누가,, 불순한 존재야! ”
“ 아무튼 조금 난폭한 인간이지만 천성은 착할거라 믿어요. 사이좋게 지내주세요. 아시겠죠? ”
이그니스의 말에 입을 모아 순순히 예라고 대답하는 마족들을 보고 지우는 턱을 괴고 생각했다. 그녀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마족은 아닌 것 같은데.. 동족을 제외하면 모든 존재를
하찮게 여기는 마족이 순순히 대답하는 상황 자체가 이상할 따름이다.
“ 그럼 전 수업 때문에 가겠어요. 어디보자 1교시가 수학인가요? ”
“ 예~~ ”
“ 재미있는 학문이지요. 그럼 지우 군.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세요. ”
빨리 꺼져버려! 이 할망구야!
- 퍽!! -
갑자기 칠판 지우개가 날아와 지우의 면상에 박혔다. 누가 벌인 짓인지 뻔하다. 교실 밖으로 나가는 이그니스 년이겠지.
‘ 저 녀석. 정말로 내 생각을 읽었잖아? 확인차 생각한 것 뿐인데.. ’
그녀가 나가고 교실은 여타 인간의 교실과 다를 바 없었다. 마족 암캐들은 인간 여자들처럼 지우를 힐끔 보며 수다를 떨었고 수컷들은 저마다 더러운 벌레를 보는 마냥 뭐 씹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 뭘 봐! 인간 처음 봐?! ”
“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이 목소리는 절대 잊을 수 없지. 지우는 벌떡 일어나 몸을 획 돌려 뒷자리의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 에테오룬!! ”
“ 정말 걸작입니다. 지금껏 만난 인간 중에서 최고에요. ”
지우는 냅다 그의 멱살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몇몇을 제외한 마족 수컷들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 너 이 자식! 비겁하게 도망갔겠다! ”
“ 도망이라니, 저는 쓸데없는 분쟁을 피하려 했을 뿐입니다. 흠흠.. 이것 좀 풀어주시겠습니까? 곧 수업시작인데 말썽을 피우기는 싫군요. ”
“ 아! 그렇군. 어차피 한 반인데 마음 급하게 먹을 필요는 없겠지. ”
그의 멱살은 풀렸지만 다른 마족들은 용납안되는 얼굴들이었다.
“ 뭘 그렇게 째려봐!? 불만있으면 한놈씩 덤벼. ”
“ 완전 돌았군. ”
익숙한 얼굴은 에테오룬뿐만이 아니었다. 컵라면 국물까지 홀짝 다 비운 마족 하나가 자리에 턱하니 일어나 먹은 것을 쓰레기통에 넣고는 지우를 쳐다본다.
“ 오호라. 너도 있었냐? 씨바로마? ”
“ 세바스마 데스몬이다. 멍청아. ”
“ 입냄새가 여기까지 진동하는군. 교실 내에서 라면은 삼가시지 그래? ”
한바탕 싸울 분위기에 에테오룬이 끼여들어 말린다.
“ 둘 다 그만하십시오. 곧 수업시간입니다. 세바스마... 그대가 참으십시오. ”
“ 흥! ”
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리고 교사가 나타나자 두 사람은 애써 시선을 돌리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뭐 이딴 데가 다있어? 밟아버릴 타겟이 전부 교실안에 있는 것은 좋지만 마족들과 뒤섞여 공부한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나쁘기 그지 없다.
“ 인사는 됐고 바로 수업 시작하지. 모두 교과서를 펴도록. ”
중년의 수학 교사는 인간이었지만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철저하게 교사 입장에서 학생을 내려다보는 말투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특히 인간을 벌레로 보는 마족들이 고분고분 따른다는 것이다. 저 선생. 강한가? 지우는 의구심에 교사의 신체를 살폈다. 허나 특별한 기운같은건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 분명했다.
‘ 허.. 참. 별 희한한 꼴을 다겪네. ’
애초에 마족들이 인간들의 수학을 배우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만.
- 툭! -
그때. 지우의 교과서 위로 꾸깃꾸깃 접은 종이쪼가리 하나가 날아왔다.
“ 응? 이게 뭐야? ”
펼쳐진 종이에는 별다른 내용은 없고 다만 누가 던졌는지는 정확하게 쓰여져 있었다.
“ 쥬리에드 스펠마? ”
바로 옆자리의 여학생이다. 윙크까지 보내는데 아주 밥맛이다. 뭐,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엄청난 미소녀지만 마족 암컷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여기는 지우였다. 마족이 인간을 보듯이 지우또한 가증스런 괴물체를 보는마냥 묘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웃으면서 종이를 보라고 손짓한다.
‘ 내가 두 녀석으로부터 지켜줄게. 걱정마렴. 귀여운 꼬마야. ’
이 년이 지금 나를 물로 보나! 그녀가 마법으로 종이에 즉석으로 써내간 글귀를 보자 솥뚜겅이 열릴뻔한 지우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종이를 북북 찢어버린다. 잠시 놀라는 그녀. 당연하겠지. 너희들이랑은 절대 어울리기 싫거든. 허나 그녀의 표정에는 전혀 기분 나쁜 뜻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마음에 든다는듯 이번에는 남의 교과서 위에다 낚서를 해버린다.
‘ 그러니까 더 마음에 들어. 괜찮아. 나는 강한 남자라면 종족 막론하고 가리지 않으니까. ’
이거 혹시 고백... 비슷한건 아니겠지? 지우는 왠지 모르게 위험한 기분에 황급히 칠판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절대로 돌아봐서는 안된다. 책도 보면 안돼. 오로지 칠판을 주목하자! 그나저나 이거 고등학교 수학 맞아? 뭔 공식이 숨막힐 정도로 복잡해?
쉬는종이 울리고 깜빡 잠이든 자신을 발견한 지우는 피곤한 기색으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 헉!? ”
부리나케 옆자리로 고개를 돌린 지우는 빈 자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한번 찔러볼까라며 세바스마 놈에게 가려고 했지만 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더군다나 에테오룬도 함께 말이다.
“ 끄윽.. 겁.. 겁먹어서 도망친거군. ”
바로 그때. 정면에서 불쑥 고개를 드는 존재가 있었으니.
“ 야호! ”
“ 히이익!!! ”
쥬리에드 스펠마. 첫날 1교시부터 묘한 시선을 보내던 암컷이다.
“ 후후후. 잠자던 달링의 모습도 괜찮았어. ”
“ 뭐.. 뭐가 달링이냐? 절루 가. 재수없게 내 앞에서 숨소리 내지 마란 말이다. ”
“ 어쩜 이렇게 멋있을까? ”
불길함은 적중했다. 그녀의 관심은 이성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봐, 만난지 1시간 밖에 안되었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때마다 자리를 옳겨가며 빤히 시선을 들이대는데 아주 죽을 맛이다. 어디에도 시선을 주기 힘들자 지우는 냅다 책상위에 엎드렸다. 하다못해 잠자는 척이라도 하면 제풀에 지치겠지.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난데없이 책상이 투영되며 아래에서 쭈그려 앉아 올려보는 게 아닌가?!
“ 히이이익!! 너.. 너 임마!!! ”
“ 당황하는 모습도 귀여워. 의외로 수줍음이 많은 아이네? ”
“ 아이라고? 웃기지마. 나는 성인이다. ”
바로 그때였다. 잽싸게 몸을 돌려 날아오는 샤프를 받아내는 지우. 뾰족한 샤프 끝은 칼과는 비교 될 수 없지만 나름대로 흉기다.
“ 어떤 녀석이냐. ”
어차피 찾아볼 필요도 없겠지. 바로 눈앞에 녀석들이니까.
“ 인간 주제에 건방진 녀석이군. ”
“ 겁이 없다고 해야지. 세바스마 님 말대로 완전히 미친 녀석이야. ”
마족 둘이 마력까지 흘리며 노려보고 있자 지우또한 기를 분출시키며 일어났다.
“ 결투라면 정정당당하게 해. 이런 애도 안하는 장난이나 치지 말고. ”
“ 이 놈이 죽을라고 환장했나. ”
마족 특유의 콧대높은 프라이드가 발동되는 순간이다. 여타 놈들과 다를바 없다. 벌레같은 인간에게 모욕을 들었으니 당연히 화가 나겠지. 그러나 지우의 자존심은 그들의 어줍잖은 자긍심을 훨씬 능가했다.
“ 수업까지 5분이나 남았네? 그동안 한판 붙어볼까? 둘 다 덤벼도 좋아. 한큐에 끝내줄테니까. ”
“ 저.. 저게 돌았군. ”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가능성은 애초에 배제시키는 그였다. 안되면 되게하라. 불가능도 가능케하라! 지금까지 그런 신조로 숱한 적을 쓰러뜨려왔었다.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일단 부딪힌다! 그러자 쌍방에서 미칠듯한 마력과 기가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교실에서 간만에 벌어지는 결투에 어느틈엔가 창문가로 수 많은 마족들이 구경꾼처럼 몰려들었다.
“ 인간 따위 죽여버려! 헬몬드! ”
“ 이엘듀가. 너한테 5천원 건다. 박살을 내버려! ”
역시 적지 한복판이라 이거군. 사방에서 몰려오는 온갖 적의에 지우는 오히려 기쁜 표정을 지었다.
“ 마음에 들어. 재수없는 부잣집 애새끼들을 상대할까 노심초사했는데 의외로 괜찮잖아? 매일 매일 즐거운 나날이 되겠군. 3분 남았네? 그럼 어서 시작하자고! ”
길게 끌 생각은 없다. 수업 시간까지 별로 남지 않았으니 전부 오의로 끝장낸다. 그러자 지우의 몸에서 기가 폭발적으로 급상승하였다. 그를 상대하는 마족 둘의 얼굴 표정에 약간의 당혹감이 나타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다가가려는 그때. 난데없이 양측 사이로 그 예의 재수없는 마족년 쥬리에드가 나타나 두 팔을 벌려 막아선다.
“ 너희들이 A반에 무슨 용무일까나? ”
“ 커..커헉.. 쥬리에드님! ”
조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기세등등하던 마족들이 일순간 얼굴색이 시퍼렇게 질려진 것이다.
“ !!!! ”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붉게 그리고 인간의 것이 아닌 짐승의 눈처럼 변모하며 마족 특유의 색깔을 품자 두 마족은 아예 꼬리를 내리고 겁에 질린 강아지마냥 줄행랑을 쳤다. 그 많던 구경꾼까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지우또한 흠칫 몸이 떨릴 만큼 무시무시하고 굉장한 흠을 느꼈다.
“ 무슨 짓이야.... ”
“ 뭐긴~ 달링. 귀찮은 벌레들이 달링에게 옮겨붙지 않게 도와줬잖아~ 고맙지? 고맙지? ”
- 딱! -
그녀에게 꿀밤을 먹이는 지우의 행동에 반 안의 모든 마족들이 일제히 경악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지우또한 잘 알고있다. 이 녀석도 제법 강한축에 속하는 년이 분명하겠지.
“ .......너.. ”
역시 효과가 있는지 그녀의 눈매에서 상당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바로 그 눈이야. 밥맛이니까 제발 사라져달라고..
“ 거기다 터프함까지. 아아아... 가련한 소녀의 데몬 하트가 가열될 것 같아.. ”
대체 뭐하는 년이냐!!!!!!!!!!!!!!!!!!!! 그리고 가련한 소녀라니! 분명 천살은 더 먹은 할망구가 분명해.
“ 뭐, 어찌되었든 달링은 나란 행운을 만나서 천만다행으로 생각해. 뭐, 이 반에서 달링에게 관심 가져다 주는 애들은 나랑 그 둘밖에 없는 것 같지만.. ”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지우의 뇌리로 섬광이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말대로 반 안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드러내는 이는 한명도 없었다.
“ 방금 그 녀석들은? ”
하찮은 것에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 아아~ B반의 귀여운 아이들 말이야? 그들은 평범한 마족들. 말하자면 우리들 최고위 마족의 힘 앞에 털끝도 미치지 못하는 어린애들이지. ”
“ 뭐라고? ”
“ 후후후후, 달링이 관심을 가져주니까 기분이 좋아지네? 그럼 설명해줄게. ”
마족은 순수하게 강함을 기준으로 계급이 달라진다. 간단하게 인간의 기준일때 평민이 있고 그 위에 상인이나 사회 인사 계층 또 여기 위로 귀족과 왕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마족의 경우도 똑같았다. 최하위 마족은 오로지 살육과 번식 위주의 동물이라면 하위나 중위급에 비로서 인간같은 생각하는 지능을 갖추었지만 그 모습은 제각각의 형상을 지닌 괴물이나 다름없다. 행성혁명 이전에 익히 유명세를 떨친 늑대인간, 뱀파이어가 그 예 중 하나다. 그러나 상위 마족부터는 차원이 틀리다. 그 힘은 아래 계층의 마족 수백 수천이 때로 덤벼도 이길 수 없는 절대무적의 불문율. 그 벽을 깨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 최고위급이라고? ”
“ 어머나~ 달링은 나같은 마계의 미스코리아를 처음보는구나. ”
“ 미스코리아는 한국안에서 붙는 명칭이다. 바보야. ”
이처럼 마계의 계층은 여러 가지지만 또 하나 인간과 닮은 점은 피라미드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갈수록 그 인구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마련이다. 특히 최고위 마족의 경우 마계 총 인구 19억 중에서 딱 1000명. 이 이상부터는 순위권에 따라 고위마족으로 규명된다.
“ 1000씩이나!!? ”
“ 뭐, 이 누나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는 최고위 마족은 얼마 안될걸? 나머지는 전부 쓸데없는 유희나 즐긴달까? 후후훗. ”
강함을 추구하는 마족이기에 힘은 곧 법이 되었다. 최강자의 힘에 따라 돌아가는 마계.
“ 거기다 놀라지 마라고. 이 몸은 1000명 중에서 서열 722위. 자랑스런 스펠마 가문의 차기 당주 후보이기도 하지. 후후후후. ”
“ 겨우 722위? ”
“ 무.. 무례한 소릴! 이 학교 내에서 나보다 높은 녀석은 에테오룬 밖에 없다고! 그 녀석. 얼마전까지만 해도 509위 였던가? ”
“ 무슨 복싱 타이틀 전이라도 하냐? 애들처럼 유치하게 순위나 매기기는.. ”
결론적으로 에테오룬이 이 학교내 최강이란 이야기렸다. 지우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간단하게 녀석만 쓰러뜨리면 학교 안에서 자신을 건드릴 자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 세바스마인가 그 녀석은 몇위지? ”
“ 으음.. 나보다 3위 아래던가.. 녀석이랑 붙은 적은 없어. 뭐 앞으로 붙을 일이 있을까 싶지만 쿡쿡. 아아~ 물론 에테오룬이 집적대면 이 누나가 나서서 혼줄을 내줄게. ”
“ 사양하겠어. 여자의 힘을 빌릴 정도로 나약하진 않아. ”
“ 바로 그 허세가 마음에 든단 말이야. 달링~ ”
“ 허세가 아니야! ”
문득 한가지 궁금한 점이 떠오른 지우는 화를 가라앉히고 질문을 던졌다.
“ 그럼 1등은 누구지? 네 놈들 중에 최고로 쎈 녀석 말이야. ”
바로 그 순간. 교실 내부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살벌해졌다. 그것은 살기 때문이 아니다. 사색에 질린 쥬리에드의 얼굴빛처럼 제각각 무언가 두려움이 담긴 눈빛으로 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관심을 보이는군. 그녀는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아이리네 D. 류드밀라. ”
“ 아이리네? 여자 이름같은데.. ”
그녀는 반색하며 대꾸했다.
“ 바보같은 소리 하지마. 그 힘은 우리같은 존재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절대 그 자체이신 분이란 말야. 듣기로는 서열 2위의 벨크로스님이나 서열 3위와 4위의 세르니카 님과 디아스님이 힘을 합쳐도 어찌 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고 했어. 뭐, 달링이 죽었다 깨어나도 그분을 만날 일은 없겠지만... ”
마계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이 담겨진 공포를 알고 있다. 마계의 왕. 줄여서 마왕의 혈통을 지닌 그녀는 선대 마왕의 힘을 이어받은 정통 계승자로서 그 힘은 차원까지 부숴뜨릴 만큼 형식과 개념을 초월한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수천년전 마계를 위험에 빠뜨린 마신이자 몽마의 여왕 퀸 나이트메어를 봉인시킨 장본인이며 또한 비공식적인 이야기로 몽마의 여왕과 호각 이상을 다루는 또 한명의 마신이며 마계의 창조자인 알테레제또한 봉인에서 풀려 세상에 본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에 물리쳤다는 소문이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마왕이 부활을 꿈꾸었으나 모두 그녀의 앞에서 무너졌으니. 최강무적이란 수식어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몽마의 여왕을 봉인시킨 후 사라지고 간혹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문이 자자하지만 현재 마왕조차 행방불명된 마당에 마왕의 계승자인 그녀조차 없어졌으니 마계는 이런저런 혼란이 일어난 터. 다행히도 서열 2위인 대장로 벨크로스의 독보적인 카리스마 앞에 동족간의 피를 부르는 분열이 일어났던 마계는 진정되었지만 무책임한 그녀의 태도에 감히 불만을 가지고 반박하는 이는 전무하다. 왜냐하면 마계는 힘이 곧 법이기 때문이다.
“ 아무튼!! 그 분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게! 아이 무서워.. !~ 나 안아줘. 갑자기 무서워졌단 말야. ”
“ 꺼져. ”
무슨 여자가 지조도 없나. 아직 반나절도 안본 남자에게 안기려 들고. 육탄돌격하는 그녀의 면상에 손바닥을 가져가 상쇄시킨 지우는 자리에 앉았다.
“ 그건 그렇고 마왕이란게 진짜 있긴 있었군. ”
“ 그분 앞에서는 순위권 따위 무의미해. 그 강함을 말하자면 으으으으.. 아이리네님을 가볍게 제압하실 정도로 신의 권능을 가지셨으니까, 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실종되셔서 한번도 본 적은 없어. ”
“ 흥.. 무책임한 왕이군. ”
“ 뭐라고 해도 좋아. 그 분의 무책임함 덕분에 우리 마족들도 대다수가 껄끄럽게 여기고 있으니까. ”
서열 1위를 설명할때와 다르게 그녀의 얼굴에는 묘한 살기마저 띄우고 있었다.
“ 힘이 곧 법이라며? ”
“ 그 이전에 가문으로서 긍지와 자존심이 우선이야. 그 분의 힘에 의해 우리 가문이 섬기던 마왕님이 죽었어. 너는 모르겠지만 과거 오래전에 마신이 마계를 다스리던 무렵. 그 마신 아래 여덟명의 마왕이 마계 각지에서 터전을 잡아 서로간의 영역을 조율했었지. 하지만 현재의 마왕님. 그러니까 과거 여덟 마왕 중 한 마왕의 장남이었던 그 분은 마왕의 자리를 계승하자마자 마신에게 반기를 들으셨어. 마신과 함께 다른 일곱 명의 마왕이 가세되어 누가 봐도 승부는 뻔한 싸움을 그 분은 말로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될 엄청난 권능으로 마신을 봉인시키고 마왕 중 일부는 소멸. 그리고 일부는 세상 어딘가에 봉인시켜버렸지. 우리 가문은 그분에 의해 섬기던 마왕을 잃고 자연스럽게 종속된 것 뿐이야. 나뿐만 아니라 에테오룬과 세바스마도 마찬가지야. ”
힘에 한번 종속된 이상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섬겨야하는 것이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철칙이었다. 덕분에 원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이를 바드득 가는 그녀지만 말투에는 알게 모르게 존경이나 경외심이 서러져있었다.
“ 영광으로 생각해~ 이런 이야기는 지금 인간들이 배우는 마계역사학에서 안나오는 내용이니까. 후후후. ”
“ 전혀... ”
기껏 설명한 입장을 뭐라고 보는 거냐는 듯 인상을 그리는 그녀였지만 지우는 귀를 후비며 노골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옆에서 계속 뭐라뭐라 궁시렁거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던 중. 수업 종이 울리며 동시에 사라졌던 에테오룬과 세바스마가 자리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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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