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글이 만지소에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 올려봅니다.
시작에 앞서, 이 글은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며 그저 ‘내가 느끼기엔 이렇더라. 라는 것을 적은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만화를 그리시는 분들, 그리고 만화를 시작하시려는 분들 중에선 ‘나는 스토리는 괜찮은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본인이 느끼는 ‘스토리’란 대게 구조적으로 엉성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스토리’라는 것을 오용하여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러면 스토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그리고 만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대해 인체에 빗대 설명해보겠습니다.
먼저 작가가 영감이 떠오를 때 생각하는 것은 인물(캐릭터)입니다. 스토리가 먼저고 그 다음에 인물을 짠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 인물을 먼저 설정하고, 인물이 없는 경우에도 화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물은 그 존재가 희미하더라도 제일 먼저 설정되는 요소입니다.
인물은 관절입니다. 각각의 관절은 또 다른 관절로 이어지는데, 이는 관절을 잇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관절이 뼈대로 이어지듯 인물 또한 사건으로 서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관절의 특성에 따라 뼈대는 짧기도 하고 길기도합니다. 뼈대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관절이 움직이고, 이는 사건 진행에 따라 인물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와 비슷합니다.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스토리’라고 할 때, 보통 여기까지입니다. 인물과 그 인물이 처한 사건은 존재하지만, 그 이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머릿속의 스토리가 심화되면 작품으로 나오지 않고 설정으로 만들어집니다. 하나에 관절에 여러 개의 뼈대가 붙고 관절 하나에만 집중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깨뜨립니다. 균형이 깨진 이야기는 복잡해져서 여기저기 관절염과 골절에 시달립니다. 만화가 나오지 않고 정체에 시달리는 것이죠.
무덤 속에 흩어진 뼈들처럼. 땅속에 묻힌 채 나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인체’로 나아가기 위해선 근육과 피부가 붙어야합니다. 뼈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이 약합니다. 이 허술한 관계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근육. 배경입니다.
배경은 작가에게 있어 가장 소홀하게 다뤄지는 것입니다. 만화에서의 배경과 같이 대충 처리되기 마련입니다. 머릿속에서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그만큼 배경은 스토리가 머릿속에서 나와 종이 위에 구체화 되는 일입니다.
근육은 뼈를 보호하고, 관절을 보조합니다. 또한 인체에 힘을 내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근육은 단순한 배경(시간, 공간)이 아니라 스토리의 구성도 담고 있는 요소로 배경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근육이 붙음으로 인해 뼈와 관절은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졌고, 각 뼈와 근육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과 피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스토리는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만약 여기까지 완성되었다면, 어느 정도 ‘스토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스토리가 어떻게 작품이 될 수 있을까요?
뼈와 근육은 인체를 이루는 요소지만 피부가 없다면 상당히 징그럽고 ‘날 것’ 일 것입니다. 그림(혹은 그림체)은 이 뼈와 근육을 덮는 요소로서 피가 흐르는 날것을 덮고 그것을 보기 좋게 합니다. 피부가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 사람의 첫인상이 결정 됩니다. 그림은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림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독자계층이 달라집니다. 만약 끈적하고 화끈한 에로망가를 그리는데, 그림체가 팬시나 일상만화에 머물러있다면 근육과 피부가 맞지 않아 주름이 생기거나 피부가 갈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추함’이고. ‘못 그림’입니다.
저는 그림실력이 부족하면 무조건 추하다고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아이의 몸을 만들었다면 아이의 피부를 입혀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스토리’와 ‘그림’의 차이는 또 다시 균형을 깨뜨리고 독자를 불편하게 합니다. 자신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의 한계를 깨닫고 그것에 맞는 그림을 짜야 (혹은 그걸 그려줄 그림 작가를 만나야) 추한 상황을 면할 수 있단 말이죠.
자. 그럼 관절-뼈대-근육-피부/인물-사건-배경-그림 까지 모두 왔습니다. 이 정도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이 정도까지 왔다면 만화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뭔가 어색함을 느끼실 겁니다. 사람은 있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끼죠. 여기서 바로 ‘움직임’이 탄생합니다.
움직임은 ‘구조’만 존재하던 만화에 생동감을 넣습니다. 바로 효과와 스토리의 구성이죠. 일직선으로만 이뤄지는 이야기는 생동감이 부족합니다. 이야기는 때에 따라 회상되어야 하고, 미래를 추측해야 합니다. 이러한 스토리의 역동성은 심심하던 구조에 활력을 불어넣고 다음 움직임을 궁금하게 합니다. 장면의 효과음과 연출은 지금 보고 있는 신체가 인간을 모방한 마네킨이 아닌 ‘진짜 인간’임을 느끼게 합니다.
간혹 여러 단계를 건너뛰어 움직임으로 바로 넘어가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근육과 뼈대의 요소가 부족하더라도, 피부와 움직임으로 그 허점을 보완하는 것이죠. 왜냐면 뭐든지 움직이는 동안은, 그 허점이 흐릿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허점을 만화를 진행시키면서 천천히 살찌우는 것이죠. 마치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모조 피부처럼. 그것은 움직임과 따뜻함이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럼 신체의 마지막 단계는. ‘타인과의 관계’입니다. 관계는 만화의 문자. 대사입니다. 타인과의 관계는 신체의 움직임을 정당화합니다. 마찬가지로 대사는 만화의 이야기를 정당화합니다. 상황에 따라 대사는 생략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문맥 속에 감춰져 있는 것입니다. 대사가 없는 장면은 문자를 캐릭터의 움직임과 표정 그리고 배경 속에 숨겨둡니다. 앞의 대사와 뒤의 대사를 통해 중간의 대사는 독자가 상상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관계는 다른 관계들을 통해 유추 될 수 있습니다.
대사는 만화에 있어 작가들이 시간을 들이는 요소입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는 시간을 들여서 복잡하게 만든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말일 뿐입니다. 말은 우릴 소통하게 만들지만, 말 뒤에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공허한 공기의 떨림에 불과합니다. 관계에 육체가 없다면 말은 비명입니다. 대사에 그림이 따르지 않는다면 독자는 비명을 지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완벽한 관계도 없습니다. 작품이 나오기 위해선 자신에게 부족한 요소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타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는 스토리는 괜찮은데’ 라고 생각하려면, 내가 짠 스토리가 당장 피부와 움직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어도 괜찮은 뼈와 근육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피부를 입힌 몸은 흐물흐물 흘러내려 땅 위에서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것이 다일 겁니다. 알 수 없는 웅얼거림만을 간직 한 채로요.
마지막으로 만화를 그리는데 있어서, 이 모든 요소를 염두하고 꼭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처럼 만화의 요소들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것입니다. 재밌는 만화들은 ‘작가가 그리는 게 즐거워서’ 존재합니다. 물론 만화를 항상 즐겁게 그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아주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제도화 된 교육기관에서 정해진 교육을 받고 훈련 된 실력이 아니라면, 이러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는 것은 작품을 지체시키고 재미없게 만듭니다. 왜냐면 이미 당신이 한 것을 더 잘한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그럴 거면 자신이 잘하고 재밌는 것을 하는 게 낫습니다.
물론. 어느 영역에서나 그렇듯이 끊임없이 공부하고 훈련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만화 그리는동안 뻘생각이 나서 적어봤습니다.
그럼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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