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응칠. 태어날 때 검은 점이 7개가 있어서 북두칠성의 기운으로 응하여 태어났다는 뜻으로 붙여진 아명.
한 때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동학의 이름을 빌린 도적들을 진압하기도 했던 그의 업적 중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단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의거일 것이다.
현대인에게는 그의 아명보다는 본명으로 잘 알려져 있을 터. 성민은 곧장 그의 진명을 떠올렸다.
"도마 안중근...!"
"...아아, 과연."
그것이 어새신의 진명이었다. 아처는 그 이름을 듣고 어째서 어새신이 자신을 노리고 온 것인지 이해했다. 왜인이라는 정보만 들었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진명을 알기 전까지는 적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을테니.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곤란하겠군."
아처의 말대로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표적으로 노린 두 서번트가 서로 적대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한 흐름이었다.
"대답하지 못한다면... 네 녀석도, 여기서 죽어라."
"자네, 상당히 머리가 굳어 있군. 마스터의 영향인 것인가 아니면..."
어새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랜서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창이 닿기 전에 어새신은 재빠르게 팔을 크게 휘저어 창의 궤도를 비튼 후, 그대로 랜서의 몸통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밀쳤다. 곧이어 무릎을 꿇은 랜서를 향해 달려든 어새신은 꿇은 무릎을 밟고 도약하여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듯 찼다. 순식간에 들어온 연속공격에 랜서는 무방비 상태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 좀 식히게. 왠만하면 자네와는 싸우고 싶지 않네."
어새신은 몸을 일으키며 쓰러져 있는 랜서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권총을 꺼내 자신의 오른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쪽도 머리를 식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되오만."
자신을 향해 날아온 총알을 간신히 칼로 튕겨낸 아처가 말했다.
"이 친구와 내가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일세. 무엇보다 자네도 내가 누군지 안다면 내가 왜 자네에게 총을 겨누는지 모르진 않을 터."
"그렇겠지. 그쪽의 하얼빈 의거는 이 나라에만 유명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호오? 의거라고, 말했는가 지금?"
"그쪽이 행한 일이 의로운 거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오?"
아처의 말에 어새신은 잠시 그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과연, 이 성배전쟁에 참여한 영령으로 선정된 이상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군."
"...그쪽이 어떤 생각이었는지, 대충 짐작은 가는구려. 그렇다면..."
"허나, 아직 그대와의 적대 관계는 거두긴 어렵겠다만 말이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성배전쟁이니까."
"...그렇게 나오는 것이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아처, 조심해!"
성민의 말을 듣자마자 아처는 뽑아든 칼을 들고 랜서를 향해 달려들어 그의 창을 베었다. 또 다시 정좌 자세에서 창을 바로 세우려는 찰나였다. 다시 일어서려는 랜서를 이번엔 어새신이 달려들어 바로 랜서의 몸통 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의 허리춤을 잡고 들어올린 후, 몸을 크게 돌려 아처를 향해 내동댕이쳤다. 미처 방비하지 못한 아처는 자신을 향해 날아온 랜서에게 깔려 넘어졌다.
"거듭 얘기하지만, 나는 아직 그대와의 적대 관계를 거둘 수 없네."
"저기...!"
잠자코 보고 있던 성민은 조심스럽게 어새신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는... 아처의 마스터인가."
"가능하다면 저희와 협력해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이 성배전쟁의 원인이 된 성배를 파괴하고 성배전쟁을 끝내기 위해 참여했어요."
성민의 말을 들은 어새신은 잠시 두 서번트가 있는 쪽을 둘러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충돌 때문인지 둘은 서로 거리는 벌렸지만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성민을 다시 돌아본 어새신의 눈빛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세 가지, 자네가 실수하고 있는 것이 있네."
"...네?"
"하나. 일개 마스터가 자신의 서번트의 보호 없이 다른 서번트의 앞에 나서는 것. 아무리 내가 성배전쟁에서는 다소 약한 축에 드는 어새신 클래스라고 해도 서번트 보정을 받고 있는 이상 자네의 머리를 맨손으로 날려버리긴 충분하네. 성배전쟁에 임하는 마스터 입장에서 그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지."
"...하지만 지금..."
"둘. 성배를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다? 자네는 성배전쟁에 참여한 영령들이 어떠한 목적으로 참여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성배라는 만능의 원망기에 자신의 소원을 걸고 임하는 입장에서 그 만능의 원망기를 파괴하는 것에 협력해달라는 말에 순순히 넘어갈 서번트는 없을 걸세."
계속되는 어새신의 일침에 성민은 대꾸할 수 없었다.
"셋. 진명을 안다고 그 상대가 자네의 생각처럼 행동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성배전쟁은 말 그대로 전쟁일세. 그 어떠한 의인이더라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신념을 굽히고 비정해질 수 있는 무대란 말일세."
"......"
"그리고 한 가지 더. 분명 자네는 지금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을 걸세. '그렇다면 왜 난 지금 자네를 죽이고 있지 않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네. 자신의 의지대로 성배전쟁에 뛰어들지 않은 자는 마스터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세."
"그건...!"
"그런 자는 설령 영주를 가지고 있고 서번트를 사역하고 있더라도 마스터가 아니네. 그저 아무것도 모른채 휘말린 민간인과 다를 거 없지. 민간인을 불필요하게 살해하는 것은 내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니 말일세."
성민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내 의지로 이 전쟁에 뛰어든 것인가? 아니면 단지 선배의 요청에 아무 생각 없이 참가했을 뿐인가?
"그 답을 내기 전까지는 난 자네의 말을 듣지 않을 걸세."
'무엇보다 이 성배전쟁은, 그 답을 내지 않으면 자네같은 사람은 버틸 수 없을 테니.'
어새신은 충격에 빠진 성민을 뒤로하고 두 서번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느 새 정신을 차린 두 서번트는 다시 격렬하게 무기를 맞대고 있었다.
아처는 한 손에 검을, 다른 한 손에 조총을 들고 상당히 격하게 랜서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거리를 벌리면 보구를 사용할 틈을 줄 거라는 판단 때문인지 사격 대신 조총을 둔기 내지 또 한 자루의 칼처럼 다루면서 랜서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랜서도 처음 맞붙었을 때만큼 거친 움직임으로 아처의 공격을 막아내며 빈틈을 찌르고 있었다. 번번히 아처에게 막히고 있음에도 조금만 타이밍이 늦으면 유효타가 될 공격들이 계속되었다.
어새신은 가만히 그 격돌을 지켜보다가 두 서번트 사이에 순간의 틈이 생긴 것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파고들어 두 서번트 사이에 들어왔다. 곧이어 한 팔을 땅에 짚고 물구나무를 서듯 몸을 뒤집어 양 다리로 두 서번트의 안면을 가격한 후, 재빠르게 몸을 숙여 빠르게 몸을 회전하여 돌려차기로 아처의 측면을 가격하여 날려보냈다. 곧이어 반격을 하려는 랜서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그대로 몸을 들어올려 그를 자신의 뒤로 넘겨 그대로 지면에 내동댕이쳤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격이었다.
"아처, 괜찮아?"
"아직은 괜찮습니다, 주군."
성민은 자신 쪽으로 날아온 아처에게 다가갔다.
'묘하게 치명타는 피하고 있군.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건가...'
아처는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면서 어새신과 랜서의 격돌을 바라보았다. 죽창을 들고 달려드는 랜서와는 다르게 어새신은 총조차 들지 않고 맨손으로 맞서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새신은 상당히 여유롭게 랜서의 공격을 흘려내며 역으로 타격을 주고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적의는 보이고 있지만 치명타는 피하고 제압하는 수준에만 그치고 있다는 것을 아처는 눈치채고 있었다. 어느 정도 합을 주고받다 어새신이 내지른 앞발차기에 랜서는 뒤로 밀려났다.
"자네는 내가 먼저인가, 아니면 저 자가 먼저인가?"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그저 죽일 뿐."
"거 참, 버서커 클래스로 현계한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아서야."
어새신은 한숨을 쉬었다.
"이보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네는 자네와 동학의 이름에 먹칠을 한 자들도 동지도 받아들일 생각인가? 그렇게 한다면 그러한 무리들과 자네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들 중엔 분명, 순수한 동학의 이름 하에 투쟁한 동지도 있었다! 그대는, 그러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까지 짓밟은 것도 올바른 것이라 하는 건가?"
"...그렇겠군.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하겠네. 그대의 말대로 내가 선택한 것도 올바른 것이라 할 수는 없겠지."
"그것을 인정한다면..."
"허나 분명히 말하자면 그 때 내가 농민군 진압에 나선 것은 그러한 이들이 아닌 무뢰배들을 단죄하기 위함이었네. 그 선택이 나는 올바르다 생각했고, 지금도 그 선택에 대해 후회는 없네."
어새신의 반문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결국, 그대도 올바르지 못한 이일 뿐이었는가."
창이 부서질 정도로 세게 쥐는 랜서의 목소리엔 억누른 분노가 서려 있었다.
"세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올바르지 못한 이들이 지배하고, 무지한 백성을 수탈하며, 자기들 배 불리기에만 급급한 세상. 그러한 자들로 인해 올바른 자들만 탄압당할 뿐이다. 나의 동지처럼..."
"자네..."
"그렇기에, 그대 또한 용서할 수 없다. 한 순간이더라도, 그대는 올바르지 못한 자들의 편에 섰다. 그렇기에 죽일 뿐."
살벌한 침묵이 둘 사이에 감돌았다.
"그렇게 말하는 그쪽은 자신이 올바르다 생각하는가?"
침묵을 깬 것은 아처였다. 그의 말에 둘은 그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뭣..."
"저건..."
아처의 등 뒤엔 수많은 조총들이 늘어나 있었다. 그것은 이전에 세이버와 교전할 때 마지막에 꺼내들려 했던 아처의 비장의 수.
"어지간하면 그대들을 상대로 이것을 쓰려 하진 않았거늘. 얘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소."
이전과는 다르게 이번엔 성민도 그의 보구 개방을 허용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아처는 다시 한 번 성민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3천 정 가까운 수의 조총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대들이 올바른가, 그렇지 않은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이 삼천 정의 총포일지니."
아처는 조총을 두 서번트가 있는 방향을 향해 조준했다. 이미 두 사람이 총포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충도총통 · 삼천연격(충의를 관철하라, 나의 뜻을 따르는 군세여)!"
아처의 호령과 함께 삼천 정 가량의 총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단 한번의 일제사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계가 없었다면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소리가 갈대밭을 뒤흔들었다. 넓은 범위에 무작위로 뿌리는 듯한 총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동추적이라도 하듯 두 서번트를 향해 집중되었다. 피할 길 없이 총탄은 그대로 두 서번트를 꿰뚫으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굉장해..."
자신의 서번트의 보구 위력을 처음 느낀 성민은 감탄했다. 일순간 방금 전 어새신의 말을 잊을 정도로.
이윽고 흙먼지가 걷히자 그 사이에서 두 서번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포화가 집중되었음에도 의외로 스쳐 지나간 정도의 상처만 보이는 어새신은 살짝 몸을 숙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반면 명백히 곳곳에 꿰뚫린 흔적이 있는 랜서는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런가. 이것이 그대의 보구..."
어새신은 어째서 자신과 랜서가 입은 데미지가 차이가 있는지 어느 정도 짐작되는 눈치였다.
"더 싸우겠다 하면 이 총포들이 한 번 더 불을 뿜을 수도 있소만, 어쩌시겠소?"
아처의 물음에 어새신은 슬쩍 랜서 쪽을 보았다. 랜서는 오히려 더 싸울 여력이 남아 있다는 듯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투지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처는 다소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 번 총을 조준했다.
* * *
"다들 멈추시오!"
누군가의 목소리에 세 서번트와 성민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목소리가 들린 자리엔 누군가가 있었다.
"...일반인?!"
마력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서번트도 아니었고 하물며 마스터도 아닌 것처럼 보인 그 남자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결계 안으로 일반인이 들어온 것인가. 성민은 물론 아처와 랜서도 다소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유일하게 그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는 자는 어새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성민은 혼란에 빠졌다. 검은 양복의 남자는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조금 다가와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그들의 시야를 가렸다. 바람이 조금 잦아들자 성민은 다시 그 남자가 있는 곳을 보았다.
"뭐...뭐야 저거?!"
남자의 옷차림이 바뀌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입고 있던 양복 대신 진청색 도포를 입고 갓까지 쓰고 있는 차림새는 현대인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성민이 당황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그 어떠한 마력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던 상대에게 서번트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한 손에 들어갈 정도의 원형의 쇠붙이였다. 동으로 만들어진 듯한 그 물건에는 4마리의 말이 새겨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사극같은 것을 보았다면 절대 모를 리 없는 물건이었다. 곧이어 남자의 입에서 믿기지 않는 말이 터져 나왔다.
"이 자리에 모인 그대들에게 말한다! 지금 당장 이 싸움을 멈추고 본인의 말을 들으라! 내 진명은 어사 박문수, 룰러 클래스로서 이 성배전쟁에 현계하였으니! 그대들과 함께 이 성배전쟁을 끝내러 온 자이니라!"
◀이전화 다음화▶
부록
- - - -
아마 없겠지만(...) 오랫동안 다음 화를 기다리셨을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지난 화를 올린지 4개월이나 지나서야 다음 화를 쓰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작성 중에 갑자기 컴퓨터가 멈춰버린 탓에 그 때까지 쓰던 분량을 전부 날려먹어버려서...
당시 절반 가량 작성된 상태였던데다가 어새신의 전투 방식을 서술하는 데 상당히 여러 자료를 찾아가면서 골머리를 썩혔다보니
그게 한 방에 날아간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의욕상실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거기에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다보니 4개월이 지나서야 간신이 집필을 완료했네요.
보시다시피 이번 화에서 2명의 서번트의 진명이 공개되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이전에 떡밥이 던져졌던 룰러죠.
다음 화 이후 룰러 클래스의 서번트 정보가 올라올 예정입니다.
거기에서 자세하게 밝히겠지만 룰러 클래스의 진명은 '박문수'가 아니라 '어사 박문수'입니다.
다음 화 작성 중엔 이번같은 불상사가 없길 바라며...
여러분 무언가 중요한 문서를 작성할 땐 세이브를 꾸준히 해두는 습관을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