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야 환영이지."
리퍼의 말에 도펠코프가 흔쾌히 대답한다.
당황의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비춰지지 않는 기대와 희열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눈앞에 상황에 제일 당황한 것은, 영문도 모른 채 그걸 마주한 유진 쪽이었다.
뭐가 뭔지 제대로 알기 힘든 상황에서 그는 그나마 알아들 수 있는 정보를 되물었다.
"그러니까… 리퍼라는 애가, 유노? 그렇다는 거야?"
그 '리퍼'라는 인물의 입지, 나아가 악명을 유진이 제대로 실감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거리에서 만난 낯선 청년의 설명을 통해 적어도 어둠의 듀얼에 대해서라면 자신보다 훨씬 익숙한 것이 틀림없는, 그런 심상찮은 인물 정도라는 인식이 있을 뿐이었다.
직접 처음 봤을 당시만 해도 그 알 수 없는 기백, 그리고 주변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그저 코스플레이어 괴인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인물이 의외의 인물과 한 몸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악스럽기는 충분했다. 하물며 그런 인물과 이 어둠의 입구에서 바로 마주쳤을 줄이야.
그 해골 가면이 어쩐지 처음 보는 태도가 아니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셈이다.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니 말장난도 정도가 있다.
그녀와 바로 전에 듀얼을 했음을 떠올린다. 만만찮은 승부였다만, 어둠의 듀얼이 되어버리는 일 없이 아무렇지 않게 끝난 것은 물론, 자신의 승리로 끝난 것을 상기했다.
어둠의 듀얼리스트 사이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이라는 자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런 자로부터 승리를 겪었다. 그 사실이 좀처럼 와닿지가 않는다.
적당히 봐줬을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어쩌면, 유진 자신이 그런 소문의 듀얼리스트 이상의 강자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승부조차 힘겹게 버티고 나온 유진은 후자를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애초에 왜 자신에게 듀얼을 걸었을까. 적어도 자신이 가진 디젠과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꺼낼 수가 있다.
"그렇게 됐어. 설명은 나중에."
"나중은 무슨. 그냥 지금 털어놓지? 화끈하게 정체를 드러내신 김에 서로 얘기 좀 해보자고."
도펠코프 역시 문답에 끼어든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왜 없겠어? 그렇게 만나고 싶었는데 당연히 많지 않겠냐?"
그러면서도 도펠코프는 이 건조한 태도에서부터 유추할 수가 있었다.
이럴 시간도 별다른 관심도 없지만 들어는 주겠다는 생색. 자신이 그런 생색을 부린다는 자각조차도 없겠지.
그렇다면 방금 자신이 내뱉은 대답부터가 귀찮고 짜증나는 게 아닐까, 하고 도펠코프는 생각했다.
"그래. 조금이라도 따라다니면서 약점이나 단서를 캐치해낸다. 좋은 작전이야. 그 정도로 내가 경계해야 마땅한 상대라는 거겠지."
그리고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당한 기만에 대해 오히려 뿌듯하다는 듯이 되짚어본다.
아무리 잘나신 인물이라 해도, 자신이라는 존재를 상대하려면 정공법이 아닌 기만이라도 동원할 수 밖에 없다는 반증이니까.
"그래서 어땠어? 내 실력."
"경계할 만한 상대라는 건 인정하지."
"어머나, 기뻐라."
"소토인 료지, 아니, 도펠코프. 네녀석이 컬렉터 중에서도 요주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확인했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상대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잘나신 인물이 자신을 직접 지명해주다니. 도저히 미소를 감출 수가 없다.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를 수도 없다.
그러나 빈말로나마 몇 가지 거슬리는 요소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셔. 근데 좀 늦은 거 아니냐? 붙을 거면 아까 새 카드 받기 전에 덤비는 게 그나마 낫지 않았을까?"
"상관없어. 무슨 덱을 써오던 이 승부를 주저할 생각은 없다."
"그래. 근데 그 카드 준 놈 있잖아. 걔도 네가 찾던 컬렉터라는 거 충분히 알았을 텐데? 걔는 어쩌려고?"
"당연히 잡을 거다. 이 승부를 끝내거든."
"그러시겠다?"
자신을 이기고 다음 일을 하러가겠다는 저 배짱이 마음에 든다. 저건 그에게 오만도 뭣도 아닌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역시 전력으로 밟아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또, 뭐냐."
갑작스럽게 도펠코프의 시선이 넘어오자 유진은 흠칫했다.
"아무리 사람이 적다지만 목격자 하나가 빤히 보고 있지 않나?"
"문제 없어. 의도한 일이니까."
"의도했다고…?"
유진이 의문을 표하자 마자 리퍼의 시선을 마주한다.
여전히 유노의 얼굴은 무뚝뚝하기 짝이 없지만, 어딘가 분위기가 달랐다.
머리를 쓸어올려 이미지를 바꾼 탓일까. 시선이 날카로워진 탓일까. 아니면 팔찌를 찬 그 순간부터 무언가가 근본적으로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곧 리퍼는 가방에 든 짐을 더 꺼내든다.
빨래를 털듯이 검은 코트를 꺼내 펼치고는 그 소매에 팔을 집어넣어 환복을 완료한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린다.
그것은 해골을 형상화한 붉은 안광의 마스크.
그 모습은 별명인 '사신(Reaper)'을 재현하려 애쓴 듯한 모양새였다.
"그래. 역시 그 모습으로 나오셔야지."
도펠코프의 감탄섞인 반응이 돌아온다.
유진으로서는 삼류 히어로 캐릭터의 변신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잠깐의 환복을 마치고 난 모습이, 영역에 들어섰을 당시 처음 접했던 그대로의 그 모습이, 유진에게는 왠지 모를 위압을 안겨주었다.
적어도 그것은 저 분장 때문만큼은 아닐 것이다.
"구경할지 말지는 자유다만, 여기를 벗어나지 말았으면 하는데."
"……."
한 편, 고대하던 상대가 고대하던 모습까지 갖추는 모습에 도펠코프의 희열이 박차를 가한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던 적이야 많지만, 너무 빠르지 않나 하는 괜한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열심히 살고 볼일이야. 벌써부터 운명의 상대의 이런저런 모습을 구경할 수가 있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 안 하냐?"
이번에도 유진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별로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쉰다. 여전히 존재감이라곤 찾기 힘든 뜨뜻미지근한 공기지만 그의 기분은 충분히 상쾌했다.
다른 멤버들과 다를 것 없는 장기말 신세겠지만, 그래도 위저드에게는 감사하기로 한다. 그 동안 비싼 돈을 받아처먹기는 했어도 레어 카드는 어떻게든 받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염원하던 상대와 맞붙을 기회가 생겼으니까. 자쿠로는 섣불리 나섰을 경우을 알려주는 반면교사로 여기면 될 것이리라.
그런 도펠코프에게 복장까지 갖춰입은 리퍼가 질문한다.
"즐겁냐? 아직도 즐겁다고 할 거냐? 지금 이 상황이?"
어쩌면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 적이라도 관용을 베풀 여지가 남아있으리라는 선의가, 윤리적 허영이 엿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소토인 료지에게는 너무나 늦은 질문이다. 왜 아직도 이런 질문을 꺼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그가 여태까지 이런 듀얼을 치뤄올 수 있는 동기가 무엇인지 전해 들었을 텐데. 정해두었던 인생의 목표가 이뤄지는 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도 맞바꿀 수 없음을 알 텐데.
이해할 생각이 없다면 그냥 없다고 솔직히 털어놓으면 될 텐데.
충분히 흥을 깨고도 남을 질문이었지만, 승부 직전의 짜릿함은 그걸 다 덮어버리고도 충분히 남는 쾌감이었다. 그는 여전히 들뜬 기분에서 친히 대답해주기로 한다.
진심이든 도발이든, 대답의 내용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니까.
"즐겁고 말고. 몇 번이고 물어도 대답은 똑같아. 그러니까 잔말 말고 시작이나 하지?"
"할 얘기가 많다고 하지 않았나?"
"그거야 듀얼하면서 나누면 되고."
이 승부는 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도펠코프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자고로 빨리 끝나버리면 재미라는 게 없으니까. 높은 것일 수록 밟아올라서 넘어가는 쾌감이 있는 법이니까.
어쩌면 대화를 충분히 나누고도 턴이 이어지리라는 예감이 있었던 것이다.
"말이 그렇다면."
대화를 나눠줄 생각이 없어도 좋다.
만나고 싶다. 싸우고 싶다. 유린해버리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뭔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런 의도가 충분히 전해졌다면 저쪽도 더욱 적의를 불태워줄 것이다.
그걸로 더욱 투지를 불태워줬으면 좋겠다. 그거면 됐다.
"듀얼."
"듀얼!"
[리퍼: LP 8000, 패 5장]
[도펠코프: LP 8000, 패 5장]
"내 턴. 메인 페이즈에 속공 마법 '엔보이드 어라이벌'을 발동. 내 필드에 몬스터가 없으면, 덱에서 '엔보이드'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할 수 있다."
"그럼 인사 대신해서 '증식의 G'로 체인. 그쪽은 체인 없나?"
"속공 마법 '무덤의 지명자'. '증식의 G'를 제외하고 효과를 무효로. 그럼 '엔보이드 어라이벌'의 효과를 처리."
[엔보이드 뷔브르: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400 / DEF 1100]
[리퍼: 패 3장]
[도펠코프: 패 4장]
"쉽지 않구만."
이걸로 양쪽 모두 시작부터 패 1장 이상을 손실하고 시작한다.
"특수 소환한 '엔보이드 뷔브르'의 ①의 효과로, 덱에서 다른 '엔보이드' 몬스터를 패로 가져온다. '엔보이드 코아틀'을 추가. 그리고, 필드에 '엔보이드' 몬스터가 있으니 '엔보이드 코아틀'을 패에서 특수 소환."
[엔보이드 코아틀: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300 / DEF 1800]
"'뷔브르'와 '코아틀'을 소재로, 링크 2 '엔보이드 아벤트브룸'을 링크 소환. ①의 효과를 발동해서 덱 위에서부터 5장을 확인, 그 중에 환룡족 하나를 특수 소환한다."
[엔보이드 아벤트브룸: 환룡족 / 어둠 / LINK-2 / ATK 1400 / 링크 마커 ↙↘]
[엔보이드 개스터: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700 / DEF 900]
"나머지는 뒷면 표시로 제외. 여기에 특수 소환한 '엔보이드 개스터'의 ①의 효과. 자신 필드의 '엔보이드' 몬스터 하나의 레벨 수만큼 각자의 덱의 카드를 뒷면 표시로 제외한다. '개스터' 자신을 지정해서 4장을 제외. 그리고 카드가 제외됐을 경우, 패에서 '엔보이드 마카라'를 특수 소환."
[엔보이드 마카라: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0]
"'아벤트브룸'과 '개스터'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3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을 링크 소환."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 환룡족 / 어둠 / LINK-3 / ATK 2500 / 링크 마커 ↙↓↘]
"링크 소환된 '나이트 드래곤'의 ①의 효과로, 제외된 카드 1장을 패로 회수. 그리고 회수한 '카오스 미라지 드래곤'을 통상 소환."
[카오스 미라지 드래곤: 환룡족 / 빛 / 레벨 4 / ATK 1600 / DEF 600]
"레벨 4 '엔보이드 마카라'에 '카오스 미라지 드래곤'을 튜닝. 레벨 8 '천위의 용귀신'을 싱크로 소환."
[천위의 용귀신: 환룡족 / 어둠 / 레벨 8 / ATK 3000 / DEF 0]
"이어서 묘지에 있는 '개스터'의 ②의 효과를 사용. 자신을 뒷면 표시로 제외하고, 뒷면 표시로 제외된 카드 1장을 묘지로 되돌린다. 되돌린 '엔보이드 암피프테레'의 ②의 효과를 사용. 자신을 뒷면 표시로 제외하고 1장 드로우."
[리퍼: 패 3장]
"카드 2장을 세트. 그리고 엔드 페이즈에 '아벤트브룸'의 ②의 효과를 사용. 제외된 '마카라'를 패로 회수한다. 그럼 턴 엔드."
"확실히 처음보는 카드가 많네. 아무 정보도 없었으면 큰일날 뻔했겠어. 그럼 내 턴."
[도펠코프: 패 5장]
[리퍼: 패 2장]
드로우를 하고 난 직후, 도펠코프는 D-패드에서 아직 대기중인 덱을 잠시 바라본다. 쌍둥이 형제와의 듀얼을 앞두고 위저드가 전해준 새 카드들이 이 안에 껴있다. 그리고 그 중 일부가 패에 잡혀있다.
목표를 이루는 데에 도움이 줄 선물이라고 했으니, 주문대로 자신이 쓰던 덱을 충분히 고려하고 엄선해온 결과물임이 틀림없다.
이런 걸 그냥 공짜로 주겠다고 한 것은 솔직히 보통 놀랄 일이 아니다.
머지않아 파랑새를 찾게 될 것이라고 위저드가 말했었다. 도펠코프가 막상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그 순간은 정말로 머지않아 찾아온 것이다.
그녀가 있는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면 분명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알고 있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때 진작에 알려주지 않은 것은 역시 괘씸하다. 본인의 안전을 생각하고 넘어간 것일지도 모르지만 기만이라는 건 변함없으니까.
'뭐, 어쨌든 고맙게 써 주마.'
그래도 물질적인 도움은 착실히 받았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만약에 자신의 마지막 승부를 대비한 전별로 전한 것이라면, 기분은 더럽긴 해도 고맙게 받을 가치가 있다.
길잡이 요정이라면서 선물한 이들의 성능을, 실전에서 시험해볼 차례다.
"내 턴, 패에서 '드래그니티-레무스'를 묘지로 보내고 ①의 효과를 사용. 체인 있냐?"
"없어."
"그래. 처리해서 덱에 있는 필드 마법 '용의 계곡'을 가져온다. 그리고 발동. 여기서는?"
"카운터 함정 '엔보이드 메너스'. 내 필드에 '엔보이드' 몬스터가 있으면 마법이나 함정의 발동을 무효로 하고 파괴한다."
배경을 덧씌워나가던 짙은 석양 아래 높은 산봉우리들이 이내 신기루였던 것처럼 다시 사라진다.
개운한 공기도 피부에 다가오지 못했다. 그가 여러 결투를 치뤄온 전장이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었지만, 아직까지 가능성이 되어줄 패는 남아 있다.
[도펠코프: 패 4장]
"아쉽네. 그럼 패의 어둠 속성 몬스터를 묘지로 보내고, 마법 카드 '카오스 테리토리'를 발동. 이건 체인 있냐?"
"없어."
"오케이. 그럼 레벨 4에서 8까지의 빛 속성 특수 소환 몬스터를 가져온다. '휘백룡 와이버스터'를 서치. 계속해서 방금 묘지로 간 '비스테드 살로니르'의 ②의 효과. 덱에서 '심연의 짐승(비스테드)' 몬스터 1장을 묘지로 보낼 수 있어."
'비스테드'…?'
생소한 이름에 유진이 잠시 갸웃한다.
매장에서 얼핏 접해본 테마명이었던 것도 같지만 제대로 된 정보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적어도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테마였을 것이다.
"난 '더 비스테드 루벨리온'을 묘지로. 계속해서 묘지에 있는 어둠 속성의 '살로니르'를 제외하고, 패에서 '휘백룡 와이버스터'를 특수 소환."
[휘백룡 와이버스터: 드래곤족 / 빛 / 레벨 4 / ATK 1700 / DEF 1800]
[도펠코프: 패 2장]
"'와이버스터'를 소재로 링크 1 '스트라이커 드래곤'을 링크 소환."
[스트라이커 드래곤: 드래곤족 / 어둠 / LINK-1 / ATK 1000 / DEF ↓]
"'와이버스터'의 효과, 여기에 링크 소환된 '스트라이커 드래곤'의 ①의 효과를 체인. 너도 체인 있냐?"
"'용귀신'의 ①의 효과로 체인. 효과를 발동한 몬스터를 제외한다. '스트라이커 드래곤'을 제외."
"이걸 어쩌나? 효과를 막는 건 아니네. 그럼 처리해서 '리볼부트 섹터'를 추가. '와이버스터'의 효과로 '암흑룡 코라프서펜트'도 패에 추가."
"카드가 효과로 제외되었으니, 패에 있는 '엔보이드 마카라'를 특수 소환."
[도펠코프: 패 4장]
[엔보이드 마카라: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0]
[리퍼: 패 1장]
처음보는 카드이긴 하지만, 방금 막 정보를 확인한 바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은 특수 소환을 견제하기 위한 몬스터. 그것도 재활용이 매우 까다로운 뒷면 표시 제외라는 방법으로 처리해버린다. 그 효과를 발동하기 위해 필요한 소재가 될 몬스터가 방금 막 필드에 차려진 것이다.
도펠코프가 챙겨온 '리볼부트 섹터'는 아직까지 쓸모가 없다. 그러니 남은 카드를 써주면서 천천히 공략해보기로 했다.
"빛 속성의 '와이버스터'를 제외. 패의 '암흑룡 코라프서펜트'를 특수 소환."
[암흑룡 코라프서펜트: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1700]
"음, 이건 체인을 안 하네. 그럼 다음으로. 묘지의 '카오스 테리토리'를 제외하고 ②의 효과를 사용. 제외된 '와이버스터'를 덱 아래로 되돌린 다음 1장 드로우."
[도펠코프: 패 4장]
"역시 운이 따라준다니까. 네 몬스터가 효과를 발동한 참이니까 '삼전의 재'를 발동. 어디…"
직관적으로 따져보면 평소 하던 대로 2장 드로우 효과를 써주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뽑은 패로 몬스터를 특수 소환해봤자 누군가는 뒷면 표시로 제외되는 희생을 겪어야 한다. 당장 저 효과를 막을 수단이 뽑혀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한 것이었다.
"두번째 효과를 써볼까. 네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을 가져갈게."
"……"
상대의 몬스터를 잡아먹기를 기다렸을 리퍼의 몬스터가 순식간에 필드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순간 이동이라도 하듯 도펠코프의 필드에 나타난다.
"흐흠. "
컨트롤 탈취 효과는 어차피 이 턴 동안에만 적용된다. 그 동안 '엔보이드 나이트'의 효과를 써먹자니 메인 몬스터 존으로 이동해버린 이상 링크 앞에 몬스터를 둘 수도 없는 노릇.
더구나 이 몬스터보다 공격력이 높은 몬스터가 아직 리퍼의 필드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즉, 지금의 그에게 이 몬스터는 소재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했다.
"'코라프서펜트'와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을 소재로, 링크 2 '암영의 암령사 달크'를 링크 소환."
[암영의 암령사 달크: 마법사족 / 어둠 / LINK-2 / ATK 1850 / DEF ↙↘]
결국 진짜로 소재로 써버리면서 내보낸 것은 다소 음침한 인상의 검은 머리 소년이었다.
드래곤의 이름도, 모습도 어느 것 하나 갖추지 않은 카드를 꺼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코라프서펜트'가 묘지로 갔으니 효과로 '와이버스터'를 패에 추가. 그리고 '달크'의 ①의 효과. 상대 묘지에 있는 어둠 속성 몬스터를 자기 링크 앞에 특수 소환할 수가 있어. 무슨 뜻인지 알겠지?"
"꺼내갈 거면 꺼내가라."
"쯧, 고맙게 됐네."
[도펠코프: 패 4장]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 환룡족 / 어둠 / LINK-3 / ATK 2500 / 링크 마커 ↙↓↘]
자기 몬스터가 두 번이나 상대 필드에 끌려나가는데도 별다른 반응은 없다. 자신의 특수 소환을 막아줄 수단에게 보란듯이 배신을 당하고 있는 셈이거늘 위기감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혹시나 분노를 삭히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너 따위가 이걸로 뭘 할 수 있냐'는 조롱일까.
생각보다도 재미없는 녀석일지도 몰랐다.
"근데 아직도 역부족이란 말이지. 그럼 이걸로 가볼까."
어쨌든 지금까지의 전개로만 따지면 도펠코프의 특수 소환을 막을 수단이 그에게는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 안심하고 꺼낼 만한 카드를 꺼내면 되는 일이다.
"묘지에 있는 빛이나 어둠 속성 몬스터를 지정하고. 패에 있는 '비스테드 마그나무트'의 ①의 효과를 사용. 이걸로 네 묘지에 있는 '카오스 미라지 드래곤'을 제외하고 자신을 특수 소환한다."
![img/23/06/19/188d3fcfada20b132.jpg](https://i2.ruliweb.com/img/23/06/19/188d3fcfada20b132.jpg)
![img/23/06/19/188d3fcfaa220b132.jpg](https://i2.ruliweb.com/img/23/06/19/188d3fcfaa220b132.jpg)
[비스테드 마그나무트: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6 / ATK 2500 / DEF 2000]
"그리고 '마그나무트'를 릴리스하고 이놈을 묘지에서 특수 소환하지. '심연의 짐승(더 비스테드) 루벨리온'!"
[더 비스테드 루벨리온: 드래곤족 / 빛 / 레벨 8 / ATK 2500 / DEF 3000]
"음음, 부족해. 아직도 부족해. 그럼 '루벨리온'의 ②의 효과. 덱에서 '낙인' 지속 마법이나 지속 함정을 내 필드에 앞면 표시로 놓을 수가 있지. 지속 마법 '복낙인'을 세팅."
백은처럼 번쩍이는 갑주으로 검은 몸체를 가린 드래곤이 벌건 눈을 빛내며 튀어나오는 모습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던 유진이 경악한 것은 따로 있었다.
'덱에서 바로 필드에? 패로 가져오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앞면으로?'
묘지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도 모자라 덱에서 바로 카드를 깔아준다니. 특히나 지속 함정은 세트하고 다음 턴에 발동해야된다는 룰을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꼴이 아닌가.
"계속해서 '휘광룡 세이퍼트'를 통상 소환."
[휘광룡 세이퍼트: 드래곤족 / 빛 / 레벨 4 / ATK 1800 / DEF 0]
"'세이퍼트'의 ①의 효과. 패에 있는 '와이버스터'를 묘지로 보내고, 그와 같은 레벨의 드래곤족 하나를 가져온다. '바렛 칼리버'를 추가. 그리고 링크 2의 '달크', '세이퍼트', '루벨리온'을 소재로 링크 4 '바렐스워드 드래곤'을 링크 소환!"
[바렐스워드 드래곤: 드래곤족 / 어둠 / LINK-4 / ATK 3000 / 링크 마커 ↑←↙↓]
"묘지에 있는 '세이퍼트'를 제외하고 ②의 효과를 사용. 묘지에서 레벨 8의 빛이나 어둠 속성 드래곤족 하나를 패로 회수한다. 여기에 빛 속성 몬스터가 제외됐으니 '복낙인'의 ①의 효과를 사용. '세이퍼트'를 덱 맨 아래로 되돌리고 1장 드로우."
[도펠코프: 패 4장]
꺼내도 꺼내도 패가 일정하게 남아준다. 자신이 제대로 소비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도펠코프의 입꼬리가 내려갈래야 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럼 건져온 '루벨리온'의 ①의 효과. 다시 묘지로 보내고 다른 '비스테드' 몬스터 1마리를 가져올 수 있지. '비스테드 드루이드브룸'을 서치. 그리고 이번에도 네 묘지에 있는 어둠 속성 몬스터 '엔보이드 뷔브르'를 제외하고, 패에서 '드루이드브룸'을 특수 소환. 계속해서 '바렐스워드'의 링크 앞에 튜너 몬스터 '바렛 칼리버'를 특수 소환."
[비스테드 드루이드브룸: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6 / ATK 2500 / DEF 2000]
[바렛 칼리버: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4 / ATK 1700 / DEF 100]
[도펠코프: 패 2장]
"튜너…, 저기서 레벨 10 싱크로 소재들이 떴다는 건 설마…!"
여전히 덤덤한 리퍼를 대신하듯 이번에도 유진이 경악.
그 반응을 흡족하게 받아들이며 도펠코프는 아주 잠깐동안 행복한 고민에 들어갔다.
엑스트라 덱에 잠든 레벨 10의 싱크로 몬스터는 셋. 가장 꺼낼 만한 녀석이라면 당연히 카드 1장 파괴에 1장 무효화까지 가능한 '플뢰르 드 바로네스'가 있다. 드래곤이 아니라는 점이 살짝 거슬리기는 해도 강력한 카드라는 것만큼은 사실이기에 그는 이번에도 투입을 망설이지 않았다.
다른 후보를 꺼내는 것 역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 하나 역시 위저드의 선물. 제법 재미있는 풍경이 나올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지금 리퍼의 필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 생명마저 짓이겨버리기엔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을 눈앞의 상대는 더 누리도록 두지 않는 것이었다.
"상대가 몬스터를 특수 소환했으니, 함정 카드 '격류장'을 발동."
"………뭐?"
"필드의 몬스터를 전부 파괴한다."
리퍼가 발동한 카드로부터 거센 물줄기가 뿜어져나온다. 물줄기는 파도를 이루는 것을 넘어 그들의 주변에 범람을 일으켰다.
한 순간 유진마저도 젖을까봐 움찔거렸지만, 배수구가 물을 빨아들이듯 빠져나가는 이 격류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임을 깨닫는다.
대신 필드를 채워나가던 몬스터들이 그에 무력하게 휩쓸려나가기 시작했다. 도펠코프가 열심히 꺼내둔 몬스터들은 물론, 리퍼의 필드에 남아있던 몬스터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리퍼를 등지고 말았던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 역시 그 무리에 끼어있다.
잠시 후, 물살이 순식간에 잦아든 끝에 남은 몬스터라고는 없었다.
본인도 찬물을 맞은 듯 눈이 휘둥그레진 채 동요하던 도펠코프에게, 그제서야 리퍼는 사담을 꺼내는 것이었다.
"카드에 선택받는다는 희망, 상대를 짓밟을 수 있다는 쾌감, 그게 그렇게도 신이 나더냐?"
"너 이 새끼……!"
다시 열을 올리듯 이를 갈아대던 도펠코프는 일갈로 답한다.
"사람이 기껏 정성스럽게 빌드를 쌓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박살을 내버리냐!? 로망도 없어?"
"없지."
단답.
도펠코프는 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뭐하러 듀얼하는데?"
"이 승부는 네놈을 부정해버리는 것만이 목적이야. 목숨 갖고 장난치는 짓거리를 즐길 생각도, 존중해줄 생각도 없어."
"그렇게까지 말하기냐. 너무하네, 진짜."
"패가 남았을 텐데. 할 게 남았으면 계속 해보시지."
도펠코프는 아, 이런 녀석이었구나 하고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잠시 입을 다문다. 그리고는 한숨.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그런 꽉막힌 태도에 도펠코프는 나름 관용을 베풀어주기로 했다.
상대를 눌러버릴 진영을 위해 가진 것을 다 써버리려는 찰나야말로 '격류장'을 써먹기는 최적의 타이밍이었을 터. 저쪽은 그저 정석적인 대처를 해왔을 뿐인 것이다.
"엔드 페이즈로 들어가서, 특수 소환했던 '마그나무트'의 ②의 효과를 적용해서 다른 '비스테드' 몬스터 하나를 챙겨올 수가 있지. '비스테드 발드레이크'를 가져온다. 이걸로 엔드할게."
"내 턴."
[리퍼: 패 2장]
[도펠코프: 패 3장]
통쾌하게 몬스터를 싹 날려버린 것은 좋다만, 그로 인해 리퍼의 필드에도 몬스터는 없다.
그나마 자기자신을 지켜줄 벽까지 날려버린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라며 도펠코프는 또 이를 갈았다.
"내 필드에 효과 몬스터가 없으니, 패에서 '천위룡-아다라'를 특수 소환.'"
[천위룡-아다라: 환룡족 / 땅 / 레벨 1 / ATK 0 / DEF 0]
"그럼 '복낙인'의 효과. 상대가 몬스터를 일반 소환이나 특수 소환하면, 묘지에 있는 '비스테드' 하나를 특수 소환할 수가 있어. '마그나무트'를 되살리지."
[비스테드 마그나무트: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6 / ATK 2500 / DEF 2000]
"추가로 패에 있는 '발드레이크'의 ①의 효과. 네 묘지의 '엔보이드 코아틀'을 제외하고, 자신을 특수 소환."
[비스테드 발드레이크: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6 / ATK 2500 / DEF 2000]
비어버린 필드를 수습하려는 듯 한 순간에 드래곤 두 마리가 도펠코프의 필드로 타나난다.
상황을 따져보면 저쪽이 패에서 더 꺼낼 몬스터가 없다고 해도, 최소 '아다라' 하나를 링크 소재로 삼아서 '천위의 권승' 같은 몬스터를 링크 소환할 수가 있다.
그 발버둥 역시 그들이 막아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자, 링크 소환이든 싱크로 소환이든 맘대로 해봐. '발드레이크'의 효과로 잡아먹어 줄테니까."
"그럴 생각이야. 그 전에, 나도 '삼전의 재'를 발동."
"아, 이런."
"첫번째 효과로 2장을 드로우. 이어서 '아다라'를 링크 소재로, 링크 1 '천위의 권승'을 링크 소환."
[리퍼: 패 2장]
[천위의 권승: 환룡족 / 땅 / LINK-1 / ATK 1000 / 링크 마커 ↓]
'천위의 권승'은 링크 몬스터이되 효과 몬스터가 아닌 카드. 즉 '아다라'의 효과를 써주기 좋은 상황이다.
리퍼가 패를 늘렸음에도 결국 이 수단을 택했다면, 예정대로 이 틈에 콤보 따위에 써먹지 못하도록 '천위의 권승'을 치워줄 필요를 느꼈다.
"뭐야, 결국 꺼내기냐? 그럼 '마그나무트'를 릴리스하고 '발드레이크'의 ②의 효과. 상대가 특수 소환한 링크 몬스터를 묘지로 보낸다. 얼른 꺼져버리셔."
"발동에 체인해서 '권승'을 릴리스, 그리고 속공 마법 '천환의 용륜'을 발동. 효과 몬스터 이외를 릴리스했으니, 덱에서 환룡족 몬스터 하나를 효과를 무효로 하고 특수 소환한다. 2장째 '암피프테레'를 불러오지."
[엔보이드 암피프테레: 환룡족 / 어둠 / 레벨 6 / ATK 1200 / DEF 2500]
"'암피프테레'를 링크 소재로, 링크 1의 '엔보이드 나이트링'을 링크 소환."
[엔보이드 나이트링: 환룡족 / 어둠 / LINK-1 / ATK 500 / 링크 마커 ↓]
"'나이트링'의 ①의 효과로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을 엑스트라 덱으로 회수. 그리고 묘지의 '암피프테레'를 뒷면으로 제외하고 ②의 효과를 사용. 1장 드로우."
[리퍼: 패 2장]
"마법 카드 '이차원의 등대'. 뒷면으로 제외된 몬스터를 임의로 묘지에 되돌리면, 그 수와 같은 레벨의 몬스터 하나를 덱에서 특수 소환할 수 있다. 4장을 되돌리고, 2장째 '뷔브르'를 특수 소환."
[엔보이드 뷔브르: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400 / DEF 1100]
"'뷔브르'의 ①의 효과로 2장째 '코아틀'을 서치. 그리고 특수 소환."
[엔보이드 코아틀: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300 / DEF 1800]
전 턴의 전개를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도펠코프가 자연스레 그 몬스터의 등장을 예감하려니, 이번엔 리퍼 쪽에서 낯설지만은 않은 변수를 꺼내들었다.
"'뷔브르'와 '코아틀'을 소재로, 링크 2 '암영의 암령사 달크'를 링크 소환."
[암영의 암령사 달크: 마법사족 / 어둠 / LINK-2 / ATK 1850 / DEF ↙↘]
도펠코프의 필드를 왔다 간 소년이 이번에는 리퍼의 필드로 출현한다. 두 번이나 사용 카드가 겹치는 꼴을 본 것이다.
"그래, 너도 쓴다 이거지?"
하지만 어둠 속성 위주의 몬스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도펠코프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한 선택이었다. 이걸로 뭘 할지는 예상할 필요조차 없다.
"'달크'의 ①의 효과로, 네 묘지의 '바렐스워드'를 자기 링크 앞에 특수 소환한다."
[바렐스워드 드래곤: 드래곤족 / 어둠 / LINK-4 / ATK 3000 / 링크 마커 ↑←↙↓]
전 턴에 최고 전력이 되어야 했을 '바렐스워드'가 이번엔 느닷없이 적 진영에 나와버리는 것이다. 바로 전에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하핫 참, 또 한 방 먹이네. 역시 서로 통하는 게 있다니까. 안 그러냐?"
"'바렐스워드'의 ①의 효과로 '발드레이크'를 수비 표시로 변경."
"아, 재미없어."
연속으로 자신의 말을 들은 척도 않으니 짜증이 솟을 법도 했으나, 도펠코프는 여전히 여유를 부리듯 싱글싱글하고 있었다.
"'나이트링'과 '달크'를 링크 마커에 세트.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을 다시 링크 소환."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 환룡족 / 어둠 / LINK-3 / ATK 2500 / 링크 마커 ↙↓↘]
"'엔보이드 나이트'의 ①의 효과로 제외된 카드 1장을 회수."
"또 꺼내셨네. 다른 건 없냐?"
"네 기대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어. 그럼 배…"
"역시 재미없는 놈이야."
그는 피식 웃더니 그대로 전투를 이행햐라던 리퍼의 말을 끊어버린다.
"그럼 재미있게 해볼까? 짜잔, 이게 뭘까요?"
"……"
대답은 없다.
자신의 숙명의 상대 정도 되는 인간이라면 이 카드 쯤이야 모를리가 없으니, 도펠코프는 허를 찔린 반응이라 판단하기로 했다.
"네가 몬스터를 다섯 마리 이상 꺼내준 덕분에 쓸 수가 있거든. 그럼 특수 소환, '원시생명체 니비루'!"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하늘이 활짝 개인다. 쾌청한 온기는 열기로, 이내 폭염으로 서서히 바뀌어가더니, 하늘의 태양으로만 보이던 번쩍이는 불똥이 두 사람 사이를 자리잡은 필드에 직격해왔다.
그 여파에 전의를 상실한 듯 주저앉아 있던 '발드레이크'는 물론, 재기하여 역습을 노리던 리퍼의 군단까지 싸그리 일소되어 사라진다. 본인이 바로 전에 써본 카드임에도 그 충격에 유진은 잠시 눈과 귀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리퍼의 코트 자락을 정신없이 휘날리던 폭풍이 잦아들자, 도펠코프의 필드에는 커다란 돌덩어리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리퍼 쪽에는 정체를 알기 힘든 생물체 하나가 자신이 비워놓은 자리를 대신해주듯 나타나 있었다.
[원시생명체 니비루: 암석족 / 빛 / 레벨 11 / ATK 3000 / DEF 600]
[원시생명체 토큰: 암석족 / 빛 / 레벨 11 / ATK 8000 / DEF 2000]
"…저 사람도 갖고 있었어?"
"너도 알아보냐? 아니 글쎄, 딴 데서 어떤 놈이 이걸 쓰고 있더라니까? 임팩트 하나는 끝내주니까 나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갖고 있어서 다행이지."
이번에도 대신 당황해주는 유진에게 도펠코프는 묘하게 뿌듯해하는 태도로 대답해준다.
설마 그 '어떤 놈'이 바로 옆에 있으리라고까지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윽고 도펠코프는 다시 리퍼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흉악한 미소를 띄운다.
"그래, 뒷통수는 너만 치는줄 알아?"
"……"
"어때? 이쯤되면 너도 안 느꼈을리가 없는데? 당장이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냐? 내 카드까지 빌려가고 말야."
"물론 이길 거다."
"허세는."
"'엔보이드' 몬스터가 묘지로 보내졌을 경우, 묘지에서 '엔보이드 나이트링'의 ②의 효과를 사용. 자신을 특수 소환한다."
[엔보이드 나이트링: 환룡족 / 어둠 / LINK-1 / ATK 500 / 링크 마커 ↓]
"아, 남는 게 있었구나."
"효과 몬스터 이외의 몬스터가 내 필드에 있으니, 묘지에 있는 '아다라"의 ②의 효과를 사용. 자신을 제외하고, 제외된 다른 환룡족 하나를 패로 회수한다. '마카라'를 회수. 그리고 통상 소환."
[엔보이드 마카라: 환룡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0]
[리퍼: 패 1장]
어차피 이것 또한 상정한 사태일 것이라 도펠코프도 짐작했다.
그러니 이렇게 될 때까지 소환권을 아껴두고 있었으리라.
"링크 몬스터가 아닌 '원시생명체 토큰'과 '마카라'를 소재로, 링크 2 '아이:피 마스카레나'를 링크 소환."
[아이:피 마스카레나: 사이버스족 / 어둠 / LINK-2 / ATK 800 / 링크 마커 ↙↘]
"카드 1장을 세트. 턴 엔드."
"기다리고 기다리던 엔드 페이즈. 그럼 '마그나무트'의 ②의 효과로 이번엔 2장째 '살로니르'를 추가한다. 이제 내 턴."
[도펠코프: 패 3장]
[리퍼: 패 0장]
'그 엔보이드 나이트'인가 뭔가 하는 건 1장 또 있나? 그럼 높은 확률로 그거겠는데.'
정말로 그 카드가 맞다면 몬스터를 다시 전개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꽤나 골치아파진다. 더구나 상대 턴에 링크 소환이 가능한 '아이:피 마스카레나'까지 꺼내놨으니.
특수 소환을 견제하는 몬스터가 뜨기 전에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까.
"패에서 필드 마법 '리볼부트 섹터'를 발동. 체인 있냐?"
"체인해서 2장째 '엔보이드 메너스'를 발동. '리볼부트 섹터'를 무효로 하고 파괴한다."
'또 그거였냐…'
[도펠코프: 패 2장]
'용의 계곡'과 마찬가지로 전개의 축이 될 또다른 필드 마법마저 날려버렸다.
이로써 '바렛 칼리버'를 되살리고 소재 삼아 '플뢰르 드 바로네스'를 꺼낸다는 전략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럼 패에 있는 '살로니르'의 ①의 효과를 네 묘지의 '마카라'를 지정해서 발동. 또 체인 있나?"
"'마스카레나'로 체인. 링크 몬스터인 자신과 '나이트링'을 소재로, 링크 3 '천위의 용권성'을 링크 소환."
[천위의 용권성: 환룡족 / 빛 / LINK-3 / ATK 2600 / 링크 마커 ↙↓↘]
'용권성'은 효과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파괴 내성을 갖는 몬스터. '니비루'로 때린다고 해도 400의 전투 데미지가 고작이다.
더구나 '마스카레나'를 링크 소재로 삼았으니 효과 파괴도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파괴라는 방법 자체로는 대처할 수가 없는 상태다.
"그럼 '살로니르'의 효과를 처리해서, '마카라'를 제외하고 특수 소환. 그리고 상대가 몬스터를 특수 소환했으니까, '복낙인'의 ②의 효과로 묘지에서 '마그나무트'를 특수 소환."
[비스테드 살로니르: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6 / ATK 2500 / DEF 2000]
[비스테드 마그나무트: 드래곤족 / 어둠 / 레벨 6 / ATK 2500 / DEF 2000]
보다시피 '비스테드'의 공격력으로도 '용권성'은 아깝게 상대해낼 수가 없다.
이 상태로 묘지의 '루벨리온'을 꺼내봤자 공격력은 똑같으니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흠, 난처하게 됐네."
그러나, 입꼬리를 다시 씨익 올리며 그는 패의 카드를 집어들기 시작한다.
"아니, 그렇지만도 않나."
"무슨 뜻이지?"
"마침 좋은 걸 보여줄 때가 됐어. '세이퍼트'를 소환."
[휘광룡 세이퍼트: 드래곤족 / 빛 / 레벨 4 / ATK 1800 / DEF 0]
"계속해서 레벨 6의 '살로니르'에 레벨 4 '세이퍼트'를 튜닝!"
"어, 둘 다 튜너가 아닐 텐데…?"
또다시 유진 쪽에서 의문을 표하자, 도펠코프는 살벌한 미소를 띄우며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지금 불러낼 놈은 말야, 고맙게도 빛이나 어둠 속성 몬스터 하나를 튜너로 취급할 수가 있거든."
그렇다면 링크 소환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라는 유진의 의문을 뒤로 하고서 도펠코프는 엑스트라 덱의 전력을 또 하나 불러내는 것이었다.
"그럼 싱크로 소환. 빛과 어둠을 아우르는 한 쌍의 날개, 레벨 10, '카오스 앙헬-혼돈의 쌍익-'!"
[카오스 앙헬-혼돈의 쌍익-: 악마족 / 어둠 / 레벨 10 / ATK 3500 / DEF 2800]
두 용이 자아낸 빛의 기둥을 통해 나타난 것은, 날개를 펄럭이는 마인.
흰 깃털의 날개와 박쥐같은 검은 날개를 각각 양쪽에 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반씩 합쳐놓은 것만 같았다. '천사(앙헬)"라는 이름과는 달리 악마족에 속한 것도 그러한 의도일 것이다.
하얀 갑옷으로 전신을 둘러싸고 있음에도 그 조형은 천사와 악마의 날개, 그리고 해골을 형상화한 것이었기에, 성스럽다기보다 불길한 분위기가 전해져온다.
"'카오스 앙헬'의 효과. 특수 소환에 성공하면 필드의 카드 1장을 제외한다. 꺼져라, '용권성'!"
빛과 어둠을 상징하듯, '앙헬'의 양손에 제각기 검은 불꽃과 하얀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 불꽃을 하나로 겹치는 순간, 한층 더 불길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몸을 키워나갔다. 그 손을 지명한 몬스터를 향해 뻗으니, 불꽃은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듯한 아지랑이를 흩날리며 목표를 향해 날아간다.
파괴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한 제거이기에 '용권성'이 이를 대처할 방법은 없었다. 곧 불길에 휩싸인 '용권성'의 두 남녀가 비명을 지르며 허망하게 증발하는 것이었다.
"묘지로 간 '살로니르'의 ②의 효과로, 덱에서 '낙인' 마법 / 함정 하나를 묘지로 보낸다. '낙인의 에튀드'를 묘지로. 계속해서 묘지의 '세이퍼트'를 제외하고 ②의 효과를 사용. 이번에도 묘지의 '루벨리온'을 회수. 그리고 '복낙인'의 ①의 효과로 다시 '세이퍼트'를 덱 맨 밑으로 되돌리고 1장을 드로우."
[도펠코프: 패 2장]
"'루벨리온'의 ①의 효과. 자신을 묘지로 보내고, 덱에서 '더 비스테드 알베르'를 서치한다. 계속해서 필드의 '마그나무트'를 릴리스하고 '루벨리온'을 묘지에서 특수 소환!"
[더 비스테드 루벨리온: 드래곤족 / 빛 / 레벨 8 / ATK 2500 / DEF 3000]
"'루벨리온'의 ②의 효과로, 덱에 있는 지속 함정 '낙인의 야수'를 필드에 세팅."
벌써 리퍼의 LP를 전부 깎아버릴 정도의 세력이 도펠코프의 필드에 갖춰졌다.
유진의 표정은 뚜렷한 사색이 되어간다. 가면에 숨은 리퍼의 얼굴만큼은 아직 확인할 수가 없다.
괜히 궁금해진 도펠코프는 도발을 한 번 던져보았다.
"어디 또 물어보지 그래? 즐겁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
"그럼! 속이 뻥 뚫린다, 야."
'용의 계곡'의 상쾌한 바람이 없어도 기분은 상쾌하다.
여전히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하는 듯한 저 모습을 실컷 놀려주고 싶어질 정도였다.
"어떻게든 버텨볼 생각인 것 같은데 다 소용없다니까. 네가 쓴 그 가면만큼이나."
이번에도 무반응. 화라도 났으려나.
기분이 나쁘면 어쩔 건데? 라고 능멸하듯 희번득한 표정으로 약올려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숙명의 상대. 유언을 귀담아들을 예우 정도는 차려주는 게 도리이리라.
"기분이다. 특별히 뭐 남길 말은 있냐?"
"………."
그 도리를 리퍼는 끝까지 무시로 일관할 뿐이었지만.
"끝까지 재미없는 놈이구만. 그럼 배틀! '루벨리온'으로──"
"묘지에서 '초전자 터틀'의 효과. 자신을 제외하고, 배틀 페이즈를 종료한다."
공격을 지시받은 '루벨리온'이 뭘 해보기도 전에 번쩍이는 자기장이 몬스터들을 습격한다.
"뭐야, 그런 게 언제… 아아!"
갑작스런 효과의 기습에 당황하던 도펠코프는, 이내 자신이 놓친 것을 깨닫는다.
'이차원의 등대'의 발동 조건은 뒷면으로 제외된 카드를 묘지로 되돌리는 것. 그렇게 되돌린 뒷면 표시 제외 상태의 카드 4장 중에 저것이 끼어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초전자 터틀'은 빛 속성. '비스테드' 몬스터를 특수 소환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제외시켜버릴 수 있었다.
"그 '비스테드'라는 카드로 대처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기회를 남겨준 건 방심한 네놈 쪽이다."
'엔보이드 마카라'는 카드가 효과로 제외되는 순간 튀어나올 수 있는 몬스터. 이번 턴의 수비벽이 되어줄 수도 있었을 테고, '엔보이드 나이트 드래곤'의 효과 발동을 위한 소재로 쓸 수도 있는 만큼, 어떻게든 써먹을 여지를 주지 않고자 날려버리기를 택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공격을 확실히 막아버리는 '초전자 터틀'을 치우고 확실한 타격을 줄 수 있었던 기회를 보기좋게 날려먹었다. 나무 한 그루를 관찰하겠답시고 숲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파악하지 못한 꼴이다.
이것은 명백한 자신의 실책이다. 정말로 감이 죽어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 그걸 놓치냐! 이런 등신, 빡대가리…"
최후의 개전이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으니, 도펠코프는 탄식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제 머리를 마구 때려대며 자책한다. 더 나빠질 머리도 없다는 건지 망설임없이 힘이 들어간 주먹을 내리치다가, 돌머리에 부딪힌 충격인지, 혹은 손가락 마디가 부딪힌 탓인지 이내 한껏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에 신음한다.
그런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자책의 시간이 지나고, 이내 그는 나름 평온을 되찾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 괜찮지 않나?"
"왜지?"
"덕분에 듀얼을 더 계속할 수가 있잖아. 그냥 이대로 끝나버렸으면 오히려 내 쪽에서 섭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일부러 봐줬다 치고 넘어가자, 응?"
그 부탁에 리퍼는 잠시 말을 잃고 있다가 되묻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사람이 자존심이라는 게 있잖냐? 어차피 턴도 벌어다 줬는데 그 보답이라 생각하라니깐."
"아니. 그게 아냐. 승리의 기회가 물건너갔으면서 어떻게, 아직도 즐기는 자세로 임할 수가 있냐는 거다."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연속해서 물건너가고 있다. 그렇게나 싫어하던 '공든 탑이 무너지는' 상황이 계속해서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단발적인 짜증에서 끝날 뿐 제대로 된 분노는 아니다. 저것은 명백히 다음을 기대하는 태도다.
아직도 보여줄 것이 남아있다. 아직도 상대의 공격을 받아낼 수단이 남아있다. 아직도 이 듀얼을 즐길 만한 정신이 남아있다.
그런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이 여실히 보인다.
리퍼로서 정체를 드러낸 자신은 결코 그에게 호의를 내줄 생각 따위 없다. 물론 그 보여줄 것을 다 겪어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런 마음을 저 자에게 결코 숨기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그런 기대와 희열을 거두지 않는 것일까.
불안할 정도로 불쾌해지는 의문에 리퍼는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었다.
"여전히 즐겁다는 거냐? 승리만이 아니라, 이 승부 자체가?"
"또 물어보냐? 그렇다니까."
대답은 시원스레 돌아온다.
가볍다. 그렇기에 불순한 거짓이 끼어들 여지 따윈 없다.
"아니 뭐, 기왕이면 이기는 게 더 즐겁긴 해. 이 바닥은 한 번이라도 졌다간 즐겁냐 빡치냐 하는 것도 생각 못 하게 되잖아. 넌 아닌가 봐?"
"이전에도, 앞으로도, 이 의무를 '즐겁다'고 생각할 일은 없어."
"손해만 보는 삶이네. 이 짓도 의무감만으론 못 해먹을 텐데."
대답하는 도펠코프의 시선에는 어쩐지 진짜로 동정이 담긴 것만 같다.
"내가 따지는 손익이란, 세계 뒷편의 어둠을 얼마나 배제할 수 있느냐다."
"그러니까 나같은 사람을 없애려고 이런 짓을 계속하고 있다 이거지?"
"그래."
"그럼, 그런 식으로 '즐기는' 거구나."
기억 속에서 한 여성의 말소리가 오버랩된다. 자신은 이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는 의견이.
"너도 그런 소리냐? 내가 즐긴다고?"
"사람은 아주 기본적인 흥미도 없는 일에 손이 안 가는 법이잖아. 두 자릿수가 되는 사람들을 담궈왔는데, 넌 관둘 생각도 않고 여기까지 왔어. 전쟁터에서 적에게 총을 갈기는 인간이 과연 어떻게 맨정신을 버티고 전쟁을 계속하겠냐?"
"…………."
리퍼가 깃들어있는 유노의 두 눈은 여전히 차분하다.
물결칠 여지조차 없을 만큼 얼어붙은 듯이.
"뭐, 나라고 직접 전쟁터에 나가본 것도 아니니까. 함부로 추측 좀 하자면 이런 느낌 아니겠어?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경험치 덩어리다. 해치우면 점수가 나온다. 안 해치우면 내 목숨이 깎인다. 하다가 못 하겠다? 그 판을 꺼버리는 거지."
"…게임이라고?"
"그래, 게임. 패드나 키보드 붙잡고 하는 게 다가 아니거든. 넌 필드에 우글대는 몬스터를 하나씩 토벌하는 심정인 거야. 클리어되는 순간이 찾아올 때까지. 쌓이는 점수는 뭐, 네가 어둠을 해치워 나간다는 성취감이겠지?"
사람이 행동하기 위한 목표 의식 자체를 오락 행위로 치부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간단히 '즐긴다'라고 답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이로써 여태껏 자신의 상대가 어둠의 게임을 긍정했던 것의 원리는 파악했다. 또한 이 자는 그 원리를 자각하고 있을 정도로 진심으로 이 행위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도출되지 않은 해답이 있다. 어떻게 저런 답이 나올 수 있을까. 언제부터 저런 답이 나왔을까.
리퍼라는 인격은 숙주의 머리를 빌려 쉴새없이 해석한다. 하지만 아직은 차질이 있기에 해석을 위한 실마리가 더 필요하다.
"그럼, 넌 어떤 식으로 즐기고 있나?"
"나는…, 굳이 따지자면 더 센 몹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거지."
"이 승부를 고대한 이유가, 정말 그것 뿐이라고?"
"그래. 내 말 뭘로 들었어?"
"만에 하나 날 이긴다면 어쩔 셈이지?"
그렇게나 어리둥절해지는 질문인지,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물어볼 게 뭐 있어? 더 싸울 만한 상대를 찾으러 다니겠지."
"정말로 그것만 반복할 셈이냐?"
"질리거나 누구한테 지지 않는 이상은 뭐. 승부가 끝나고, 먹고 지내고, 카드 모으고 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이거든. 그게 내 인생계획이야. 그렇게 정한 거라고."
인생의 전부를 간단히 걸어버린 것에 별다른 후회가 없는 건 사실인지, 아까부터 그의 말은 가볍기 짝이 없다.
그가 답한 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듀얼리스트의 방식이다. 그런 방식으로 어째서 어둠의 듀얼 따위에 매진해오고 있는지, 리퍼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성질의 발언을 들었던 것을 유진은 떠올렸다.
"승부를 원한다면 더 건전한 방법을 찾아볼 기회가 있었을 텐데."
"건전한 방법이라. 이기고 지는 데에 의미를 두면 그딴 걸로 성에 안 찬단 말이지. 아까부터 때늦은 질문만 하고 있네."
"이기고 지는 데에 어떤 의미를 둔다는 거지?"
"승자가 모든 걸 가진다. 그 말 알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들이 어둠의 듀얼을 해서 패자의 운명을 뒤흔드는 이 시스템이야말로 그 사상을 깊게 반영하고 있는 셈이니까.
"사람이란 건 뭘 얻어야 살 수 있는 거잖아. 그래서 쥐뿔도 없는 내가 그나마 잘 하는 걸로 많이 이기고 싶었거든. 이겨서 많이 갖고, 많이 즐기고 싶어서, 어쩌다 보니 여기 오게 됐어."
"진다면?"
"그럼 끝이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시원한 대답이다. 자신의 인생이 끝날 가능성을 논하고 있음에도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공포심이란 것이 결여되어버린 것만 같다.
유진은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답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 멋대로 최후를 받아들인 녀석이 그런 소리를 했었던 것 같다.
"놀랄 정도로 단순하군."
"'심플 이즈 베스트', 몰라?"
어찌 됐든 솔직한 문답을 거친 덕분에 리퍼는 그의 사고방식을 해석하는 것 자체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걸 확인해보기 위해 말로 꺼내보기로 한다.
"적어도 확실히 깨달은 건 있어. 귀찮은 거구나. 목숨 걸기를 고민하는 것조차."
도펠코프는 눈을 살짝 찡그린다. '뭔 소리냐'라고 물어오는 듯한 표정이다.
"자신이 잃을 걸 최대한 무시한다. 어떤 일이 되었든 간에 오로지 이기는 것만을 생각한다.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런 행위에서 긍정적인 요소만을 남기고, 모종의 쾌감을 느낀 끝에 즐기는 쪽에 들어선 거겠지."
긍정적인 요소로서의 결과, 곧 '달콤한 결과'.
유진은 이번에도 트릭스가 남겼던 표현을 떠올렸다.
'저 사람도, 트릭스 같은 부류라는 거야?'
의견을 꺼낸 리퍼의 시선은 여전히 잔잔했기에 어떤 생각이든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모멸이든, 냉소든, 동정이든. 심지어는 동경으로조차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태도를 향한 도펠코프의 반응은 아직 바뀐 것이 없다.
"간결한 사고. 간결한 목표. 간결한 행동양식. 그걸로 두려움을 무마해온 거냐? 그래서 물러날 순간을 놓친 거고?"
"뭐야, 이번엔 겁쟁이 취급이냐?"
질린 표정으로 딴지를 걸어오면서도, 도펠코프는 비니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잡아 비비적거리며 태도를 바꾼다.
"그래. 뭐,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네."
그는 떫떠름하게나마 리퍼의 결론을 긍정했다. 하지만 아직도 동요의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뭔가 할 말이 남아 있다는 듯이.
"근데 따져 보면 피차일반 아닌가?"
"무슨 뜻이지?"
"너도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을 거 아냐. 그래서 이길 만한 상대를 찾아다니거나 받아들이다가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래도 아직 안 즐겁다고 할 거야?"
끈질기다. 계속 동류로 취급하려 들고 있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으니 문답이 이어지는 이상 비슷한 질문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말했을 텐데.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의무감이다."
'나'가 움직인다는 표현을 듣고서, 도펠코프는 눈 앞의 상대에게 의문을 품으며 물어본다.
"의무감? 유노? 아니면 너?"
"둘 다 마찬가지야. 어둠의 게임을 부정하자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으니까."
"유노 쪽도?"
"그 목표를 먼저 보여준 게 유노다."
"생각보다 더 독한 애였구나. 장하다 장해."
도펠코프는 내심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줍잖은 수로나마 자신에게 접근해올 만한 행동력의 근원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을지는, 필시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리라 짐작해두기로 했다.
그리고는 다시 궁금한 것이 생기면서 둥그렇게 뜬 눈으로 문답을 이어갔다.
"근데, 그럼 네 쪽은 뭐가 되냐?"
"뭐?"
"넌 몸뚱아리 원래 주인이 아니지? 평소에는 디젠에 갇혀있다가 걔 말을 듣고 같이 행동하고 있을 뿐이잖아."
"………."
"아님 말고. 어쨌든 그 의무감인가 뭔가는 결국 유노 거잖아? 몸뚱아리도 유노고. 그걸 빼면 넌 뭔데?"
한 순간 유노의 뇌를 통해 뭔가 이상한 감각이 찾아온다. 머릿속이 텅 비는 듯한 감각. 혹은, 뭔가 지나친 자극을 받아 마비되어 있다가 욱신한 것이 찾아오는 듯한 감각.
분노, 라고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감정을 상대를 벌하면서 느껴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다하다 저 자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려들고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고 싶은 거냐?"
"무의미하다니? 네가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익히 들었을 텐데. 말이 섭하네."
진심이었다. 그가 자신을 무의미하다고 단정해버리면 그걸 이기기 위해 달려본 자신의 순간마저 무의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둘 중 하나는 어차피 얼마 안 남은 인생이겠지만 그런 말은 두 번 다시 꺼내지 말기를 바랄 뿐.
"단지, 네가 없어도 유노는 어떻게든 행동하지 않았을까 싶거든. 너는 너만의 뜻을 펼칠 기회가 있지 않았나 싶은데."
"이미 펼치고 있다."
"오호. 유노가 자기네 뜻이라고 알려준 걸 말이지."
이 발언들이 리퍼에게 무언가 자극이 되주기를 바란다.
기회다 싶어서 도펠코프는 더욱더 주장을 꺼내들기 시작한다.
"뭐야, 그럼 너도 '심플 이즈 베스트'를 실천 중인 거 아냐?"
"무슨 뜻이지?"
"간결한 사고. 간결한 목표. 간결한 행동양식. 그런 걸 그 애 뒤치닥거리하면서 누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지."
남의 말을 되돌려주는 것은 통쾌한 맛이 있다. 이걸로 리퍼가 조금이라도 꼭지가 돈다면 더 통쾌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리퍼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날 도구 같은 존재로 취급할 생각이라면,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어."
"그래, 잘 아네. 네 본체는 어차피 그 팔찌잖아?"
"……."
"도구가 의지를 가지고 주인 몸뚱아리를 조종한다니 어디 호러물 찍냐고. 걔 혹시, 널 처음 알게 됐을 때만 해도 귀찮은 것하고 엮였다 생각하지 않았을까?"
"…………"
"어쩌면 걔가 떠올린 최선의 방법으로 지금까지 온 걸지도 모르겠네. 귀찮은 일을 대신해줄 도구로 길들여서. 뭐, 본인 몸뚱아리를 내주는 게 맨정신으로 할 짓인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이 침묵은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화를 열심히 참고 있는 중일까. 아니면 그냥 머릿속에서 관전 중일 유노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는 중일까.
반응을 즐기는 중인 도펠코프는 정작 말을 꺼내면서도 내심 그대로 인정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 정도로 꺾일 녀석일리가 없다.
그러니 별다른 표정도 대답도 보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런 자신의 무의미함을 인정해버린 것이 아닐지 불안해진다. 차라리 화를 참고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제발 화를 내라. 화를 내서 전력으로 부딪혀 달라.
"그런 거라면, 그쪽도 다를 건 없을 텐데."
"아앙?"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도구로서 이용된다. 위저드라는 자를 따르는 네 처지가 그렇지 않나?"
반론이라니. 이런 식으로 화풀이하는 것은 다소 성가시다.
그 논리가 억지로 점철되었을 뿐이라면 더더욱 성가실 뿐이다.
"따른다고? 내가? 그 놈을? 난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같이 다니던 것 뿐인데?"
"네놈한테 내 존재를 알리고, 나하고 승부를 하도록 기대하게 만든 게 누구였지? 그걸 새로운 즐거움으로 여기도록 부추겨온 게 누구였지?"
"……."
"네놈같은 자를 이미 상대한 참이다. 단순하게 즐길 만한 걸 추구한다는 네가, 정말 자기 의지만으로 여기까지 온 거라 확신할 수 있나?"
타자의 입장에서 살펴본 새로운 해석이란 자주 충격을 안기고는 한다. 당돌하게 머리를 후려갈기는 맛이 있다.
수상하게 여기지 않은 적이야 없었다. 블랙 잭 같은 다른 컬렉터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언젠가 뒷통수를 맞기 전에 먼저 쳐야 마땅할 녀석이라 생각하고는 있었다.
단지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목표를 돕고 있으므로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뒀을 뿐.
하지만 그 목적 자체를 갖도록 위저드 녀석이 유도한 것이었다면. 그 결과 블랙 잭과 하등 다를 것 없이 리퍼의 정보를 도출해내기 위한 꼭두각시 신세가 된 것일 뿐이라면.
적어도 저쪽은 별로 자신이나 자쿠로나 다를 것 없을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역시 자신이 누구를 비웃을 처지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하지만 후회하기는 한참 늦었다. 이런 걸로 고뇌하고 화낼 정도로 정신 에너지가 남아도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걸 받아들이고 선택한 것은, 그리고 즐거움을 찾아낸 것은 어쨌든 자기 자신이므로, 누군가의 꼭두각시로서 움직였다는 자각은 딱히 없다.
그러니 진심으로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그래. 유노를 따르기로 한 나 역시 그렇다. 네가 그 목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얻은 것처럼, 나도 그녀를 통해 존재의의라는 걸 찾고 있어."
"몸뚱아리도 없는 놈이 찾을 수나 있겠냐?"
"못 찾는다고 해도, 도구 신세를 못 벗어나도 좋아. 그래도 내가 해온 일이 무의미하지는 않을 거니까."
무슨 자신감이람. 그 트집은 속으로만 하는 것으로 끝낸다. 그 생각을 동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 지금만큼은 유노의 뜻을 따른다. 어둠의 게임을 즐기는 행위를 부정한다, 그 뜻이 이뤄지기 위해 내가 할 일이 이기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지. 네놈이 스스로 갖고 있는 목표라는 걸 여전히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그것 역시 부정하겠다."
"…그렇단 말이지. 역시 말싸움은 할 게 못되는 거구만."
결과적으로 서로 알게된 것은 있을지라도 바뀌는 것은 없다. 도펠코프는 여전히 듀얼의 즐거움을 추구할 것이고, 그런 그를 리퍼가 저지하기 위해 승부에 임한다.
문답은 결국 평행선으로 끝날 뿐이다. 이해할 수 없다와 이해해서는 안 된다의 차이지만 결국 불이해라는 결론은 같았다.
어차피 원점으로 돌아갈 이야기였으니 처음부터 할 의미는 없었을지 모른다. 도발이라고 한 마디 꺼낸다는 것이 결국 쓸데없는 일에 기운을 빼버린 꼴이 되버린 것이다.
"자쿠로도 김 팍 샜겠네. 기대했던 상대가 이런 놈이라니."
"네놈들 기대는 필요 없어. 우리한텐 부정할 상대라는 의미밖에 없으니까."
"또 가차없네. 어쨌든 다 용서해줄게. 즐거운 듀얼만 있다면야."
"용서 받을 생각도, 할 생각도 없어."
"그래그래."
도펠코프는 아쉬운 대로 아직까지도 유일한 구경꾼에게 말을 건넨다.
"그 쪽은 어때?"
"뭐?"
"너도 여태까지 버틴 걸 보면 잘 피해다니든 계속 이겼든 둘 중 하나일 텐데. 어때, 잘 즐기고 있어?"
당황스럽기는 해도 유진에게 그것은 뜻밖의 질문인 것만은 아니다.
자신은 싸움을 피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어쨌든 지지 않았으니 여기 있다. 따지고 보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해서 저 자가 계속 강조하는 '즐거움'에 대해서만큼은 공감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래, 너도 쟤 편이라 이거냐? 당연히 그렇겠지."
"그게 무슨…."
무슨 뜻이냐라고 따지기도 전에 또다른 질문이 날아온다.
"근데 너, 만에 하나 내가 얘를 이겨버리면 어쩔 거냐?"
"…뭐?"
유진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구체적인 제안을 대볼까? 싸울래? 도망칠래? 아님 나 따라갈래?"
"따라간다니?"
"내가 점찍어둔 놈만 아니면 싸울 생각 없는 애한테 굳이 싸우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거든. 왜 연도 없는 계집애를 데리고 다녔겠어? 다음 상대인 재버워키 찾아다니려면 눈과 귀가 더 많을 수록 좋지 않겠냐?"
"……."
유진은 눈만 부릅뜬 채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그가 리퍼를 상대로 승리하고 자신과 둘만 남는 순간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까.
또다시 원수를 갚는 싸움을 해야 할까.
분명 그녀가 사라진다면 눈앞에서 보는 입장으로서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녀와 자신은 어쩌다 가끔 마주치고, 매장에서 듀얼 한 번 해봤을 뿐인 그런 관계다. 친구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친구라 대놓고 단언하기까지는 애매한, 그런 애에 불과한 것이다.
그냥 도망칠까.
도망치는 것 따위 소용없음을 진즉에 깨닫지 않았는가.
트릭스와 동류인 인간이라면, 언제 말을 바꿔서 자신을 사냥하러 쫓아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유노가 그래왔던 것처럼 진짜 목적을 숨기고 따라다닐까.
그런 위태로운 관계를 자신은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저쪽이 언제까지 자신에게 덤비지 않고 있을 수 있냐는 보장도 없다.
유진은 스스로 깨달았다. 자신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져있다는 것을. 그러니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수를 궁리하고 있는 것이다.
"뭐, 듀얼하는 동안 천천히 생각하고 있던지. 아직은 네 선택을 존중할 수 있거든."
위저드는 '남이 시키지 않은 자신만의 선택'을 중시했다.
자신은 스스로의 선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 선택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실력으로 그것이 증명이 된다는 말인가.
도펠코프는 그런 갈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뻔한 유진의 모습에 코웃음을 쳐준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척을 보아하니, 저쪽도 어떤 식으로든 위저드와 엮여있을지 모른다. 직접 만나고 왔을 가능성마저 있다.
하지만 이 심상치 않은 기척을 위저드가 마주했다면 과연 가만히 두고 넘어갔을까. 짚고 넘어가기엔 의문이 남는다.
리퍼가 아니지만 유노라는 아이를 상대로 이기긴 했던 것을 보면 분명 보통 아이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보통이 아니게 될 재목은 있다. 만약 위저드를 이기고 오기라도 한 것이라면 이미 보통은 아니다.
여기서 다음 궁리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알아둘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고. 어쩌면, 리퍼 다음의 목표를 마련해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적어도 눈앞의 상대를 이기고 나서의 이야기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다시 그 상대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잡담이 길었네. 많이 기다렸어?"
그 상대는 가면 너머로 싸늘한 목소리를 날릴 뿐이었다.
"말했을 텐데. 네가 이기게 두진 않아."
"말처럼 쉬울까?"
"네놈을 움직이는 일말의 희망. 그것까지 전부 부정해주마."
이게 영웅놀음 하는 양반이 칠 대사란 말인가. 도펠코프는 감탄마저 나온다.
어쩔 수 없다. 도펠코프로서는 당장 그저 즐길 수 있는 승부만을 누릴 수 있으면 된 것이다.
어차피 이번 승부로 끝인 것. 그렇다면 그런 리퍼가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전력으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랄 뿐이다.
"알았어. 듀얼 속행이다. …라고는 했지만 더 할 건 없으니 엔드 페이즈로 가야겠네."
이번에 다가올 최후를 막아내기까지 리퍼는 갖은 수를 다 썼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 그의 패나 필드에 남은 카드라고는 없다.
그럼에도 무슨 자신감으로 이렇게까지 대들 수가 있을까. 만약에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면, 대체 또 무슨 수를 숨겨놓은 것인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끝났으니 턴을 넘겨줄 수밖에.
"그럼 '낙인의 야수'의 효과. 묘지에서 다른 '낙인' 지속 마법이나 지속 함정을 필드에 앞면 표시로 놓는다. '낙인의 즉흉극(에튀드)'를 세팅. 그리고 이번에도 '마그나무트'의 효과로 '마옥룡 질드라스'를 가져온다. 이걸로 엔드."
"내 턴."
[리퍼: 패 1장]
[도펠코프: 패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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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몇 달만의 업로드인지 모르겠네요.
굳이 새로 내놓을 오리카 만든답시고 끄적거리다가 시간이 더더욱 늘어난 것만 같습니다.
다음 파트에 있을 오리카는 아직 완성이 안 됐기에 애매한 지점에서 끊어버린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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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대화 페이즈적인 의미인가요 | 23.06.08 22: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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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건 마듀에서() | 23.06.08 23: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