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어서야, 레이무는 찬공기를 느끼고 부스스 일어났다.
깜깜한 주변을 둘러보니, 그릇은 온데간데없고, 분명 덮지도 않았던 이불까지 친절하게 덮여진 채였다.
그래도 갈 때 깨우고 가지. 하는 생각을 하며 레이무는 조금씩 일어났다.
“좀 깨우고 가지... 그냥 갔네... 얘.”
울렁거리는 속기운이 싹 가시자, 상쾌한 표정으로 어둠이 붉은 노을빛과 섞여 들어가며 천천히 깔려오기 시작하는 저녁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감기에 걸린 것은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그녀는 가을공기를 폐안으로 들이키며 맞고만 있어도 기분좋은 바람을 만끽했다. 다만 약간 찝찝한 느낌은 덤이었다.
“어제 안씻고 잤지 참...”
찐득한 피부를 만지며 그녀는 담담하게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코치야 사나에가 내일 연회에 온다.당연한 이야기였다. 다만 그녀는 몇 번이나 연회에 참석했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새로운 기분이었다. 그 기분에 이유는 없었다.
언제나와 같이 다른 것 하나 없었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내일이 기다려지고 설레어왔다.
“기분나빠.”
레이무는 잠시 앉아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내일 연회의 준비에 대한 일, 이것은 스이카가 일단 도와줄 것이다.
누가 올지에 대해서는 애초에 오는 사람들은 정해져있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사나에에 대해서...
“잠깐!”
그녀는 주변에 물이 있다면 당장 세수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머릿속의 생각을 떨쳐냈다.
“왜 연회 생각을 하는데 얘가 생각나는건데?!”
스스로에게 호통이라도 치듯, 그녀는 아무도 들을사람 없는 밤하늘에 대고 빼액 소리를 질렀다.
“하아...”
조금 풀린 표정을 하고서, 그녀는 뻣뻣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나 두근거리는 가슴은 가라앉지 않았다.
“후...”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조금씩 가라앉힌 그녀는 다시 한번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하얀 달이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달보다는 그 아이도 이 달을 보고 있을거라는 생각 뿐이었다.
-
“내일도 그럼 못 들어오니?”
“음... 아마두요?”
팬티 한 장만 덜렁 걸친 스와코가 물었다. 얌전히 엎드려있던 사나에는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대답했다.
“음... 밤에 추우니까 조심하구.”
“네엡~”
그렇게 대답하는 사나에의 표정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스와코는 그런 사나에를 보며 어머니같은 미소를 짓더니 욕실쪽으로 걸어갔다.
“아, 스와코 님!”
“응?”
상반신을 머리칼로 아슬아슬하게 거린 채 뒤돌아보는 스와코의 모습은, 작은 체형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매혹적인 미인이었을 것이다. 물론 야사카 카나코와 달리, 그녀의 몸은 그냥 이쁘장한, 귀여운 소녀같은 느낌이었지만.
“같이 목욕 하실래요?”
“목욕? 음... 상관은 없는데.”
“오랜만에 같이 목욕해요, 목욕!”
“그, 그럴까...”
지나치게 텐션이 높은 사나에의 페이스에, 스와코는 쉽게 휘말려들었다.
“목욕이에요, 목욕!”
그렇게 말하며 랄랄라 걸어가는 사나에의 표정은 한없이 밝아보였고, 스와코는 이 애가 아직 술이 덜 깼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욕조에 몸을 풍덩 담근 두 소녀는, 가만히 앉아 창 너머로 보이는 달빛을 바라보았다.욕탕의 증기 때문에 순간순간 시야가 흐려졌지만, 그래도 물 밖으로 나온 팔에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과 새하얀 달의 풍경은 따뜻한 물에 감싸진 그녀들의 기분을 훨씬 북돋아주기 좋은 풍류거리였다.
“이제 완전히 가을이네.”
“그러게요, 좀 두꺼운 옷을 찾아봐야 할까요?”
“흐응~ 나쁘지 않지~”
스와코는 몸의 힘을 쭉 풀며 자신을 올려놓은 사나에의 몸에 한껏 기대왔다. 그녀의 표정은 정말로 평온해보였다. 스와코는 헤벌레한 표정으로 달을 바라보았다.
“아아, 저렇게 예쁜 달에, 그런 성격 더러운 바보들이 살고있다니, 정말 사물은 겉으로 판단 못하겠다니까.”
“달에서 보면 지구도 굉장히 예뻐요.”
사나에가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인간은... 음, 아닌가? 어떻게 보면 거기서 거기일지도.”
따뜻한 목욕물에 완전히 취한 탓일까, 스와코는 깊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며 말했다.
“스와코 님.”
“응?”
사나에가 스와코의 몸에 팔을 둘러오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스와코는 그 팔을 거부하지 않고, 단지 작은 두 손으로 꼭 잡아주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마음이 전달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되죠?”
“에?”
스와코는 잠시 움찔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을 꼭 잡고있는 사나에의 팔. 그리고 알몸으로 같이 살을 맞대고 있는 이 상황.
“어... 상대가 돌아보지 않으면, 음, 그, 그렇지. 불러서 돌아보게 해야하지 않겠... 니?”
그녀는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사나에의 표정을 확인할 용기도 내지 못한채, 그래도 거짓말은 못하고 가만히 대답했다.
“... 그렇겠죠?”
사나에는 얼굴을 스와코의 머리에 가만히 파묻으며 웅얼거렸다. 스와코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허겁지겁 입을 열었다.
“사, 사나에. 내일 연회도 가야되니까 일찍 자야지?”
“에? 그렇지만 연회는 저녁에 하잖아요.”
“어... 그, 그랬지.”
그제서야 스와코는 고개를 돌려 사나에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사나에는 그런 스와코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스와코 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빨개요.”
“어, 응! 그, 감기기운이 조금 있나봐. 오늘 좀 추우니까...”
“에? 에에? 그럼 저한테 옮으신거 아닌가요? 그럼 안되죠. 그럼 빨리 씻고 나가요. 혹시 모르니 약도 드시고!”
사나에는 그렇게 말하며 스와코를 일으켰다. 스와코는 어찌됐건 이 상황을 지나갔다는 안도감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꾀병을 부리기로 생각했다.
“저기, 사나에?”
“네?”
사나에에게 강제로 두꺼운 옷을 입혀진데다 이마에 수건까지 얹어진 채로 누워있는 스와코가 말했다.
“그, 우린 가족, 이지? 다른 사이도 아니고.”
사나에는 당장 질문을 이해 못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당연하죠, 카나코 님과 스와코 님은 제 둘도없는 가족이시잖아요.”
하고 대답했다.
“그, 그렇지. 그, 그냥 감기기운에 어리광 좀 피워보고 싶었어. 사나에도 편히 쉬렴.”
그러고는 스와코는 사나에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사나에는 순순히 방문을 닫고 나가고, 방에는 어둠만이 남았다.
‘사춘기... 연애... 여자...’
며칠 전 카나코와 했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설마...”
스와코는 머릿속에만 담고있던 생각을, 무심코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녀가 태어난 후, 가장 충격적인 표정을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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