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더위 때문에 녹초가 된 주인공 일행들.
신호등 건너는 것도 힘들어 보입니다.
이때 신호등에서 멜로디가 들립니다.
이 교통신호음의 멜로디는 토랸세(通りゃんせ)라는 것으로 일본의 민요 중 하나라고 합니다.
아래는 그 민요의 가사입니다.
1절
通りゃんせ 通りゃんせ
토:랸세 토:랸세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ここはどこの 細通じゃ
코코와 도코노 호소미치쟈
여기는 어디로 가는 샛길인가요?
天神さまの 細道じゃ
텐진사마노 호소미치쟈
천신님에게 가는 샛길입니다.
ちょっと通して 下しゃんせ
춋토 토:시테 쿠다샨세
지나가게 해주세요.
御用のないもの 通しゃせぬ
고요:노나이 모노 토:샤세누
용건이 없으면 지나갈 수 없습니다.
この子の七つの お祝いに
코노코노 나나츠노 오이와이니
이 아이의 7살 생일을 기념해
お札を納めに まいります
오후다오 오사메니 마이리마스
부적을 봉납하러 갑니다.
行きはよいよい 帰りはこわい
이키와 요이요이 카에리와 코와이
가도 좋아요 좋아요, 돌아가는 건 두렵죠.
こわいながらも
코와이나가라모
두렵더라도
通りゃんせ 通りゃんせ
토:랸세 토:랸세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2절
通りゃんせ 通りゃんせ
토:랸세 토:랸세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ここは冥府の細道じゃ
코코와 메:후노 호소미치쟈
여기는 명부의 샛길
鬼神様の細道じゃ
키신사마노 호소미치쟈
귀신님에게 가는 샛길입니다.
ちょっと通して 下しゃんせ
춋토 토:시테 쿠다샨세
지나가게 해주세요.
贄のないもの通しゃせぬ
니에노 나이모노 토:샤세누
제물이 없으면 지나갈 수 없습니다.
この子の七つの弔いに
코노코노 나나츠노 토부라이니
이 아이의 7세 기제일로
供養を頼みに参ります
쿠요:오 타노미니 마이리마스
공양을 부탁하러 갑니다
生きはよいよい 還りはこわい
이키와 요이요이 카에리와 코와이
삶은 좋아요 좋아요. 돌아가는 건 두렵죠.
こわいながらも
코와이나가라모
두렵더라도
通りゃんせ 通りゃんせ
토:랸세 토:랸세
지나가세요, 지나가세요.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내용이 어둡습니다. 어린이에게는 다소 부적절하죠. 특히 '돌아가는 건 두렵죠' 라는 구절과 '이 아이의 7세 기제일로 공양을 부탁하러 갑니다' 라는 구절이 아이들 민요 치고는 상당히 소름 돋는데 이 가사에는 전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이 아이의 7세" 라는 구절은 일본의 시치고산이라는 풍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에도 시절에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당시 일본은 유아의 사망률이 높던 시대라고 합니다. 이유는 너무 과한 세금과 그로 인한 적은 수입 때문에 아이를 키우기가 힘든 환경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7살이 되기 전에 죽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키우기가 너무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영아를 버리거나 직접 살해하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7살이 되면 그제서야 비로소 가족으로서 정식으로 받아들여 졌다고 합니다.
즉, 1절 가사에 나온 "이 아이의 7세 생일을 기념"이라는 구절은 7세까지 신령에게 가호를 받아 무사히 살아남았으니 이에 답례하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지만 동시에, "더 이상은 신령께 도움을 바랄 수 없으니 무섭다."는 의미이고, 2절인 "이 아이의 7세 기제일로 공양을 부탁하러 갑니다" 라는 구절은 7살이 되기 전에 일찍 죽었으니 죽은 아이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명부의 길을 지난다 라는 의미가 됩니다.
일본에서 아이를 죽이는 악습은 메이지 유신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거의 한 300년이 될 정도로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이를 막기위해 움직였지만 일부 지역에서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영아살해는 당시 일본의 큰 오명 중 하나였습니다.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여 서구화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만의 하나 이 악습이 세계에 전파되면 일본은 큰 망신거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이 오점을 가릴만한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거기서 찾은 것이 바로 조선이었습니다.
일본은 당시 영아살해나 버리는 행위를 옛날의 조선, 즉 고려가 했다고 서양에 전했고 자신들의 악습과 행위를 교묘하게 날조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학자, 윌리엄 그리피스가 있었습니다. 그리피스로 인해 미국은 조선을 오해하였고 결국 일본의 날조는 자신들의 악습을 조선의 악습이라고 서양 사람들을 착각시켰습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조상마저 그 날조를 진짜로 믿어 버렸다는 겁니다. 일본의 악습이 날조와 조작으로 인해 한국의 악습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역사에는 고려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쟁이나 기후문제로 기근이 상시로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인구증가량에 영향을 줄 정도로 오랫동안 악습으로서 자행된 영아살해와 노인유기는 전부 일본이 벌인 짓입니다. 우리는 이제 일본의 날조에 속지 말고 올바른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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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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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본문에 있는 '일본측 날조설' 또한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고려장에 대한 확실한 물증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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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본문에 있는 '일본측 날조설' 또한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고려장에 대한 확실한 물증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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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날조설 이라는게 설득력 있는게 고려에 고려장 따위를 할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고려나 조선이나 왕정 국가인데 "충" 과 "효" 가 동급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벌도 엄청나게 무거웠구요. 그렇게나 벌이 무거운 나라에서 부모를 갖다 버리는 풍습이 있다? 거기다 지금도 유명한게 현재의 한국 사람이나 조선 사람이나 먹는 양이 엄청나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 많이 먹는 다는 소리 들어보셨을 거라고 봅니다. 고려는 많이 안먹었을까요? 먹을게 많은 나라에서 입을 줄이겠다고 부모를 버릴까요? 충과 효가 동급 이고 먹을게 풍부한 나라에서 부모를 갖다 버린다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을까요?? 원래 늙은 부모를 버린다는건 중국 하고 일본 입니다. 고려장은 중국의 "효자전" 을 일본에서 날조해서 조선 역사로 덮어 씌운 겁니다. 일제 식민지때 일본이 조선 역사를 날조한게 한두개가 아니라 수두룩 하다고 합니다. 거기다 해방된 이후에도 민족 반역자가 정리가 안되다 보니 당시 역사학을 주름 잡던 지식층이 민족 반역자들 이었습니다. 일본에 의해 날조된 역사를 그대로 차용해서 배우게 했죠. https://www.youtube.com/watch?v=JxvrBPX0g-g 일본의 거장 이라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1982년작 "나라야마 부시코" 라는 일본 역사 영화 리뷰 입니다. 일본의 마비키가 뭔지 알려주는 영상 입니다. 마비키가 뭔지 아시면 기겁을 하실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Kz_QCcu_AQ | 20.08.06 02: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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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이야기 하자면 고려 시절 왜구가 많이 출물했다고 합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라 불리는 이 시기는 많은 왜구들이 고려에 처들어와서 약탈에 약탈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당시 왜구는 자국인 일본을 약탈하긴 커녕 관심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반면, 제법 먼 고려에는 계속해서 찾아왔고요. 위에 언급했듯이 에도 시절의 일본은 엄청 가난했습니다. 아이를 유기하거나 죽이는 것으로 인구를 조절해서 식량을 줄였을 정도니까요. 반면 고려는 하루에 끼니를 항상 먹을 만큼 식량이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왜구가 처들어 와서 약탈 했을 정도로 식량이 있었던 당시 고려에서 과연 식량이 부족해서 부모를 유기했을까요? | 20.08.06 11: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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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A%B0%EB%B0%94%EC%8A%A4%ED%85%8C%EC%95%BC%EB%A7%88 이거 한 번 읽어보세요. 일본에서 전해졌던 고려장 비슷한 풍습(우바스테야마)이라네요. 여담이지만, 애초에 고려장은 역사학자들에게 제대로 연구되고 있는 분야도 아니며 고려장이라는 표현 자체는 여기저기서 나오지만 '노인을 버리는 풍습'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료나 근거가 없고, 고려장 풍습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라는 그리피스의 책에서도 관련내용은 '그런게 있다더라'는 짧은 언급 밖에 없으니, 따라서 '일본 날조설' 또한 하나의 근거없는 가설이라고 봐야 합니다. 참고로, 고려장이라 여기는 풍습(...)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합니다. 다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 20.08.06 15: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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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전 일본의 역사왜곡도 싫지만 한국의 유사역사학 또한 일본의 역사왜곡과 하등 다를 바 없으므로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고려장의 일본 날조설 또한 환빠 혹은 유사역사학 주장에서 비롯된 거라... | 20.08.06 15: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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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고려장의 일본 날조설이 사실이라면,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영화 역시 일본 극장에 나오지도 않았을 테고, 우바스테야마도 역시 일본 내부에서도 알려질 일은 없었을 텐데요? | 20.08.06 15: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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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고려나 조선은 부모를 버릴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 질수가 없기 때문에 고려장 이라는게 허무맹랑 하게 들릴수 밖에 없습니다. 위 댓글 링크 영상들을 한번 보시길 권장 합니다. | 20.08.06 0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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