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을 봤습니다.
지금까지 본 애니 중 이렇게까지 섬세한 라임이 느껴지는 작품은 처음입니다.
그림으로 쓴 시 같아요.
서로 인상적으로 짝을 이루는 장면들을 골라 정리해 봅니다.
1화: "사랑해"를 들은 순간
(좌) 소령님의 "사랑해"를 처음 들었을 때 바이올렛은 무척 당황합니다.
(우) "사랑해"를 이해하는 사람(카틀레야)을 처음 만났을 때 바이올렛은 똑같은 표정으로 놀랍니다.
오로지 소령님 일편단심이었던 바이올렛은 그 "사랑해"에 이끌려 소령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3화: 편지의 힘
(좌) 루쿨리아는 부모님을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오빠 스펜서를 위로하고 싶어하지만, 폐인이 되고 만 오빠가 무서워서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우) 바이올렛은 스펜서가 자기방어적으로 휘두른 목발을 가볍게 막고 대필한 루쿨리아의 편지를 건넵니다.
바이올렛은 타인의 감정에 둔감하기 때문에 오히려 수많은 감정들의 소음을 필터링하고 가장 중요한 감정을 건져 내는 것에 뛰어납니다.
바이올렛이 스펜서의 감정을 민감하게 느꼈다면 저렇게 행동할 수 없었겠죠. 그래서 루쿨리아의 마음은 스펜서의 마음의 벽을 뚫고 무사히 전해집니다.
이 장면들은 감정들 중 불필요한 것들은 걸러내고 가장 중요한 것만 골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편지의 장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후의 에피소드들에서도 바이올렛이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방식은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4화: 과거의 수용
(좌) 세련된 도시 인형이 되려는 아이리스에게 시골 카잘리에서의 추억과 인연은 광낸 구두에 달라붙는 진흙처럼 불쾌하고 성가신 것이었습니다.
(우) 편지로 부모님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아이리스는 카잘리를 떠나며 구두에 묻은 진흙과 자신의 과거를 향해 여유있는 미소를 짓습니다.
이 작품에는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아이리스의 이야기가 가장 평범하고 익숙한 소재로 잘 표현되었던 것 같습니다.
5화: 적과 백
드로셀의 흰 동백꽃과 플뤼겔의 붉은 장미는 두 왕실의 결혼을 그린 이 에피소드에서 정말 자주 나왔습니다.
양국의 우호에 국민들이 보내는 성원도 서로 교차하는 국기나 포도주 빛깔로 잘 표현되었지요.
처음으로 눈앞에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한 바이올렛도 기쁜 마음으로 그 결합의 상징을 고이 간직합니다.
형님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만 제외한다면, 가장 순수하게 밝은 결말을 보여준 유일한 에피소드였던 것 같습니다.
6화: 두 사람의 배움
(좌) 리온은 바이올렛에게 작별을 고한 후 슬퍼하지만, 이내 그녀에게서 배운 (사랑이 자아낸) 용기를 되새기며 밝은 미소를 짓습니다.
(우) 바이올렛은 자신의 삶을 응원해 주는 것 같은 리온의 작별 인사에 미소를 짓지만, 이윽고 그에게서 배운 (역시 사랑이 자아낸)
'쓸쓸함'의 의미를 되새기며 침울한 표정을 짓습니다.
구름보다 높은 천문대에서 혜성이 빛나는 별하늘 아래 서로를 만나, 상대의 마음 속에서 값진 배움을 얻어 가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가
낭만적으로 그려진 에피소드였습니다.
7화 & 8화: 바이올렛의 기적
(좌) 7화에서 바이올렛은 호수 위로 몸을 날려서 누군가의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고, 극작가 선생을 돌아보며 처음으로 즐겁게 웃습니다.
(우) 8화에서 바이올렛은 물 위로 몸을 날려서 누군가의 꿈을 앗아가고는 소령님을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봅니다.
같은 능력을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바이올렛의 과거와 현재를 잘 대조시키는 연출입니다.
3화 & 8화: 소령의 결의
(좌) 3화의 회상 장면 중, 노을빛에 물든 전우들의 무덤 앞에서 소령님은 바이올렛에게 언젠가 반드시 라이덴의 경치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우) 8화의 회상 장면 중, 조명탄 빛에 물든 소령님은 결전의 승리를 목전에 두고 바이올렛을 천천히 돌아보며 말없이 미소짓습니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아무 대사도 없었는데 마치 소령님의 말씀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던 연출입니다. 물론 이렇게 사망 플래그를 완성한 소령님은...
1화 & 9화: 거짓과 진실
(좌) 1화에서 사장님은 바지 주머니 속에 손을 감추며 바이올렛이 소령님을 잃었다는 사실을 숨깁니다.
(우) 9화에서 사장님은 바지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내며 바이올렛이 사실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고 단언합니다.
그 동안 바이올렛의 성장을 지켜보며 사장님이 그녀를 얼마나 신뢰하게 되었는지 잘 드러납니다.
1화와 9화는 이것 외에도 손과 의수가 클로즈업 되는 장면들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1화 & 12화: 화상
(좌) 1화에서 가로등 너머로 보이는 바이올렛. 사장님께 멀쩡한 몸이 불에 타고 있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 중입니다.
(우) 12화에서 벽난로의 불길을 응시하는 메르쿨로프 준장. 인텐스 전투에서의 치욕적인 패배를 회상한 직후입니다.
두 사람 모두 전쟁이 남긴 화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화상의 고통을 견디며 두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세상에 대한 정반대의 감정을 품습니다. 한 사람은 연민을, 다른 한 사람은 분노를.
12화: 열차 위에서의 대결
(좌) 공격하는 입장인 메르쿨로프 준장이 화면 왼쪽, 방어하는 입장인 바이올렛이 화면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
(우) 옛 주인에게 도전하는 입장인 바이올렛이 화면 왼쪽, 옛 도구를 윽박지르는 입장인 형님이 화면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
화면상의 위치는 입장에 따라 변하지만, 기차가 나아가는 정방향으로 서 있는 쪽은 언제나 바이올렛입니다.
9화 & 13화: 바이올렛의 자기 희생
(좌) 9화에서 바이올렛은 적의 총탄에 오른팔을 잃고, 수류탄에 당한 상태에서 소령님을 무리하게 옮기다 왼팔도 잃습니다.
(우) 13화에서 바이올렛은 적의 총탄에 오른쪽 의수를 잃고, 철교에 설치된 폭탄을 무리하게 제거하는 과정에서 왼쪽 의수도 잃습니다.
오직 소령님만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9화에서는 끝내 소령님을 지키지 못했지만,
적과 아군 모두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13화에서는 강화사절단과 대륙횡단철도를 지켜냅니다.
2화 & 13화: 고객 응대법
(좌) 2화의 바이올렛은 자식 문제로 속이 상해 우는 손님에게 업무에 방해되니 당장 그치라고 요구합니다.
(우) 13화의 바이올렛은 실종된 아들 생각으로 오열하는 손님에게 공감하고 그를 위로합니다.
이 장면들에서 바이올렛은 상처투성이 얼굴에 평상복 차림이지만, 글러먹은 수습 직원에서 훌륭한 인형으로 성장했습니다.
12화 & 13화: 형제의 분노
(좌) 12화에서 형님은 바이올렛이 도구답지 않게 행동해서 동생을 잃었다며 분노합니다.
하지만 바이올렛도 소령님을 지키려 했던 자신의 진정성을 격정적으로 호소하며 옛 주인에게 맞섭니다.
(우) 13화의 회상 장면에서 소령님은 바이올렛이 명령에 집착하며 인간답지 않게 행동하는 것에 분노합니다.
바이올렛은 울먹이며 소령님의 명령을 끝까지 따르고 싶은 자신의 진정성을 호소하다 고개를 떨굽니다.
두 형제가 바이올렛을 대하는 방식은 정반대지만 그래도 분노하는 표정은 꽤 많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바이올렛은 그동안 감정에 관한 어휘력이 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진솔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11화 & 13화: 유족과의 만남
(좌) 11화: 에이단을 구하지 못하고 편지만 가져온 것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를 표하는 유족들 앞에서, 바이올렛은 사과와 회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우) 13화: 소령님을 구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해"가 무엇인지 알려준 어머님 앞에서, 바이올렛은 또다시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사랑해"를 깨달은 순간 바이올렛이 지은 표정은...
소령님이 "사랑해"라고 고백하던 순간 지었던 표정과 거의 같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은 이제 온전히 이어진 것 같습니다.
1화 & 13화: 트램에 오른 바이올렛
(좌) 1화에서 트램에 오른 바이올렛은 소령님 곁에서 그의 명령에 따르던 지금까지의 삶이 멀어져 가는 것을 느끼고 어두운 표정을 짓습니다.
(우) 13화에서 트램에 오른 바이올렛은 명령이 없는 새로운 삶 속에서도 소령님과의 결속이 결코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따스하면서도 어딘지 아련한 표정을 짓습니다.
13화: 편지와 바이올렛(제비꽃)
(좌) 하늘에서 흩뿌려지는 수취인 없는 편지들 속에서 바이올렛은 그 편지들을 보낸 사람들의 답할 길 없는 마음을 봅니다.
(우) 그런 마음들 하나하나가 바이올렛의 마음 속에 새로운 꽃으로 남고, 소령님께 보내는 편지는 마침내 그 꽃들 사이에 안착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바이올렛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장면입니다.
1화 & 13화: 여행의 시작과 끝
1화의 도입부(좌)와 13화의 편지 낭독씬(우), 그리고 두 화의 제목들은 서로 거울 대칭을 이룹니다.
바이올렛이 작중 처음으로 던진 질문은 사실 "사랑해"의 의미가 아닌, 소령님의 눈동자를 볼 때 가슴 한켠이 아릿해지는 그 느낌에 관한 물음이었습니다.
이 장면들은 바이올렛이 두 질문들의 답을 동시에 찾아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바이올렛은 자기 마음 속에 이미 있던 것을 찾아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먼 길을 돌아왔다고 해서 그 여행이 헛수고였던 것은 아닙니다.
여행의 끝에서 바이올렛은 더 넓은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더 깊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4화 & 13화: 자동수기인형의 인사
(좌) 4화에서 나온 자동수기인형으로서의 첫 출장에서 새로운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바이올렛은 프로페셔널한 우아함으로 첫 인사를 소화해 냈습니다.
(우) 13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바이올렛은 예의 그 인사를 다시 한 번 우아하게 소화해 냅니다.
그러나 이제 이 우아한 인형의 새로운 여행에는 프릴 달린 양산(혹은 기적을 일으키는 공감 능력)과 따스한 미소가(혹은 전염되는 행복감이)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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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애니가 그려낸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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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이 소령을 처음 만났을 때 손을 깨문 것과 두 팔을 잃은 상태에서 소령을 구하기 위해 옷을 깨문 것 사이에는 깨문다는 동일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 소령을 구하려는 마음을 대조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보다 선명하게 변화를 인지 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서정적이면서 잔잔한 내용의 작품속에서 운율과 대조를 통한 연출이 보여준 선명함이 교애니 특유의 아름다운 작화와 맞물려 바이올렛의 변화와 성장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여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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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보니 진짜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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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지막까지 지켜봐 준 시청자들에게 바이올렛과 제작진이 선사하는 작은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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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사가 가장 감명 깊었어요. 4화의 인사는 겉으로는 아름다웠지만 속으로는 딱딱한 마음이 느껴졌는데 13화의 인사에서는 부드러운 마음이 느껴져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성장을 가장 잘 알 수가 있어서 가장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저한테는 바이올렛의 마지막 인사(13화)가 명장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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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애니가 그려낸 또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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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잘 해왔듯 앞으로도 계속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주길 바랄 뿐입니다. | 19.05.27 18: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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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보니 진짜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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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심혈을 기울인 제작진들에게 절로 존경심이 듭니다. | 19.05.27 18: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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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이 소령을 처음 만났을 때 손을 깨문 것과 두 팔을 잃은 상태에서 소령을 구하기 위해 옷을 깨문 것 사이에는 깨문다는 동일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 소령을 구하려는 마음을 대조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보다 선명하게 변화를 인지 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서정적이면서 잔잔한 내용의 작품속에서 운율과 대조를 통한 연출이 보여준 선명함이 교애니 특유의 아름다운 작화와 맞물려 바이올렛의 변화와 성장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여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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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입니다. 바이올렛의 감정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경우에도 '아름다운'이나 '쓸쓸함' 등 틀리지는 않지만 약간씩 덜 본질적인 단어들부터 나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명령'이라는 단어에 소령과의 너무도 많은 추억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로 그것을 대체하고 나서야 '명령'을 자신감 있게 포기할 수 있었던 바이올렛의 모습도 잘 그려진 것 같습니다. | 19.05.27 18: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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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사가 가장 감명 깊었어요. 4화의 인사는 겉으로는 아름다웠지만 속으로는 딱딱한 마음이 느껴졌는데 13화의 인사에서는 부드러운 마음이 느껴져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성장을 가장 잘 알 수가 있어서 가장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저한테는 바이올렛의 마지막 인사(13화)가 명장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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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지막까지 지켜봐 준 시청자들에게 바이올렛과 제작진이 선사하는 작은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 19.05.27 18: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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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보기클릭)82.7.***.***
다시 볼수록 더 깊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작품 같습니다. | 19.05.27 18: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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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이 실제로 생존했는지는 바이올렛의 홀로서기라는 큰 이야기의 흐름에 그리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소령이 살아돌아올 경우에도 그가 오롯이 홀로 선 바이올렛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그게 TV판의 이야기와 어떤 라임을 이를지 나름 감동적으로 풀어나갈 수도 있을 겁니다. | 19.05.28 18:26 | |